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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조회 502회 20-01-0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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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복직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현장 동료들(사진_노해투)



쌍용차에 다니는 이상주 씨(가명)는 복직자다. 이제 곧 마지막 복직을 기다리는 해고 동료들에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전화를 받았다. “우리 복직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고 하네. 기업노조랑 회사가 그렇게 합의해 버렸다는군.”

 

우라질 놈들, 돈 몇 푼 더 들어간다고 복직 약속까지 뭉개버려? 그것도 복직을 1주일 앞두고! 동료들보다 먼저 복직해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상주 씨 머리에는 지난 반년 동안 벌어진 석연치 않은 사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동결됐던 임금을 올리기까지

 

경영실패로 인한 판매위기! 조합원들이 만들었나! 위기라 떠들어대며! 내 잘못 없어! 책임회피로 일관!”(710)

지난 10년 대주주와 경영진은 생존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차기교섭 임금포함 일괄 제시를 요구한다!”(724)

 

지금도 상주 씨 머리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문구들이다. 6개월 전, 임금교섭이 한창이던 때 쌍용차 기업노조 소식지에 실린 내용이다. 그래, 말이야 바른 말이지. 지난 10년 동안 마힌드라와 경영진이 한 얘기라고는 생존위기’, ‘고통분담이런 말밖에 없지 않았나. 입에 발린 말이라도 장밋빛 미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게다가 2018년엔 기본급까지 동결됐다. 물론 ···정 해고자 복직 사회적 합의라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기에 임금동결 자체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은 아니었다. 다만 10년간 위기 타령을 하다가 이제 묵은 숙제를 해결했으니, 2019년에는 좀 달라져야 한다는 기대가 있었다. 상주 씨만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 모두가 그랬다.

 

기본급 인상 42,000특별승호 1호봉 승급 신 성과급제도(PI) 250만 원(타결 즉시 지급) 경영위기 타개 동참 격려금 100만 원(12월 말 지급) 전 직원 암 진단 확대 마힌드라 포함 고용안정 3자 특별협약 체결 추진

 

그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81, 쌍용차 노사는 위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을 마련했고, 곧바로 조합원 총회에 붙여져 투표자 대비 74.63%라는 높은 찬성률로 가결됐다. 여름휴가를 다녀온 직후인 816일에는 잠정합의 결과에 따라 노사 간 조인식을 거쳐 임금협상을 마무리하게 된다.

 

합의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임금협상 조인식을 하고 사흘이 지난 819, 예병태 쌍용차 사장 이름으로 홍보물 한 장이 나왔다. ‘임직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 밑으로 현재 쌍용차가 절체절명의 상황이자 벼랑 끝에 선 심정이라며 자구안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상반기 약 780억에 달하는 충격적인 영업적자 기록 이대로는 장기적인 생존이 어렵습니다. 내년과 내후년까지도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불황에서 벗어나기 힘든 보릿고개예상 뼈를 깎는 자구책을 토대로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과 비효율적인 부분을 혁파하는 기회로 삼읍시다.”

 

불과 3일 전만 해도 성과급 250만 원, 격려금 100만 원에 기본급 42천 원 인상을 합의하며 노사화합을 다짐했던 회사가 아니었나. 상반기 영업적자는 임금협상이 한창이던 7월에 다 알고 있었던 규모였고, 814일에는 이미 적자액수와 영업실적 공시까지 마친 상태였다.

 

이 상황 뻔히 알면서 임금인상에 합의해준 게 바로 예병태 사장이었잖아!” 상주 씨 동료들은 이렇게 울화통을 터뜨리곤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뼈를 깎는 자구책을 강요하다니, 이럴 거면 회사가 힘드니 임금인상도, 성과급·격려금도 못 준다고 했어야 상식에 맞는 것 아닌가!

 

빛의 속도로 나온 뼈를 깎는 자구안

 

829, 회사는 단체협약에 보장된 각종 복지혜택 중단·축소를 협의하자는 공문을 노조에 발송한다. 임금협상 끝난 지 11일 만에 거꾸로 가는 협상이 다시 시작된 거다. 임금교섭은 3~4개월 걸려도 쟁점에 걸려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느리더니, 복지 중단·축소를 결정하는 노사협의는 빛의 속도로 진행됐다.

 

일부 중단되는 복지혜택: 의료비 지원 장기근속·정년퇴직자 여행·포상 경조금 지원 학자금 보조 지원 산재자 생계보조금/위안금

전면 중단되는 복지혜택: 주택융자금 지원 만근자·연말유공사원 포상 선진사례 견학(일본연수) 하기휴양소 퇴직금 중간정산 체육대회, 야유회

 

9월 초에 시작된 노사협의는 보름 남짓 만에 위와 같은 복지혜택 중단·축소로 귀결되고 말았다. 물론 중단되는 기간은 1년으로 한정돼 있었지만, 1년 뒤에 원상회복이 된다는 보장을 과연 그 누가 할 수 있을까.

 

노사 간 충분한 공감과 대화를 통해 마련된 선제적인 자구노력은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공고히 하는 원동력이자 밑거름이 될 것.”(예병태 사장, 쌍용자동차 922일 보도자료)

 

복지 축소·중단 협의 직후인 922, 회사는 빛의 속도로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언론플레이를 진행했다. “임금협상 잠정합의 뒤에는 쏜살같이 조합원 총회에 붙이더니, 노사협의 결과는 총회 소집도 안 하네?” 상주 씨도 점점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하나를 내줬더니 둘, 셋을 더 달라 한다

 

복지 축소·중단이 이뤄진 지 불과 2개월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회사는 위기설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주로 사무직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앱 블라인드에는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무급 순환휴직을 한다더라, 희망퇴직도 한다더라, 상여금 다 깎는다더라.

 

아니, 우리가 복지 축소까지 당했는데 대주주인 마힌드라는 아무런 지원도 안 해준다는 거야?” 상주 씨와 동료들은 조합 간부를 만날 때마다 물어봤다. 11월 말에 열린 쌍용차 이사회에서 2020년 사업계획이 부결되었다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예병태 사장의 담화문이 또 나왔다. “919일 자구계획 노사협의 이후, 직원 여러분의 고통분담을 추가적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현실을 운운하며 마힌드라와 정부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뼈를 깎는 초긴축경영을 토대로 진정성을 확고하게 보여줘야한다는 것이다.

 

상주 씨는 다시 궁금해졌다. “그럼 지난 9월에는 뭐하러 복지 축소·중단을 합의했단 말이냐? 그때에도 선제적인 자구 노력이 회사 성장의 밑거름이 될 거라고 얘기했잖아!” 그렇다면 대체 이번에 또 노동자들이 보여줘야 할 진정성은 뭐란 말인가.

 

줬다 뺏는다는 표현도 모자라

 

뼈를 깎는 자구안 이후 또 긴축경영으로 뼈를 깎으라니, 상주 씨는 자기 몸에 더 깎을 뼈가 남아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해고되어 천신만고 끝에 8년 만에 복직의 꿈을 이뤘지만 현실은 상주 씨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기업노조 위원장은 12월 초에 인도로 급히 날아가 마힌드라 경영진을 만나고 오더니 이런 걸 들고 왔다.

 

성과급 PI 250만 원 반납 2019년 말 일시금 100만 원 반납 2020년 임단협 동결 통상상여 200% 반납 상여OT, 제도개선OT, 변동급(연구업적인센티브) 반납 2020년 발생 연차수당 지급율 변경(통상임금 150%100%)

 

아니, 성과급·일시금 반납? 임금협상 때 따낸 것 중 기본급 인상 빼고는 다 사라져버렸네? 게다가 임금협상에서 논의된 적도 없는 상여금 200%도 반납하고 각종 OT수당도 포기하라고? 내년 임단협도 포기? 이럴 거면 대체 임금인상 합의는 뭐하러 했나! 불과 3~4개월 뒤에 벌어질 일도 예상 못하고 있었단 말인가!”

 

상주 씨는 복직자들 모임에 나가 동료들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 틀린 얘기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복직 후에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며 지내온 상주 씨였다. 해고 기간 살아온 얘기에 현장 동료들은 낯설어했고, 노동강도와 통제 그리고 달라진 현장 분위기는 상주 씨가 낯설어했다.

 

반납과 삭감의 차이

 

기업노조 위원장이 직접 조합원 공청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의 많은 희생이 요구되지만, 이를 바탕으로 마힌드라의 2,300억 직접투자를 끌어냈다는 얘기가 곁들여졌다. 하지만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가만히 있을 줄 알았던 조합원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마힌드라가 2,300억 투자한다는 말을 어떻게 믿나? 이거 기술이전료 아닌가!” “게다가 정부와 산업은행 지원이 있어야 투자한다는 전제가 붙은 거 아닌가. 이걸 어떻게 담보하나?” “1인당 무려 연봉 1,700만 원이 깎이는 거다. 10년 전이 생각난다. 정말 우려스럽다.”

 

상주 씨는 공청회를 보며 살짝 놀랐다. 물론 절반 이상이 복직자들의 질문이었지만, 평범한 조합원들 목소리도 꽤 나온 편이었다. 기업노조 지도부도 살짝 놀란 눈치였다. 처음에 수려하게 이어가던 답변이 뒤로 갈수록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막히는 느낌이었다.

 

더 놀라운 일은 그날 저녁에 벌어졌다. 주야간 공청회가 이제 막 끝났을 뿐인데, 기업노조가 설명한 내용 그대로 회사가 경영정상화 동의서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구가 달라졌다. 기업노조는 분명히 성과급·격려금·상여금·OT수당 반납이라고 얘기했는데 회사가 제시한 동의서에는 삭감이라고 찍혀 있었다.

 

상주 씨: 아니, 이거 왜 삭감이야? 반납이랑 삭감이랑 같은 건가?

옆 동료: 그게 안 그렇다네. 회사도 법률 검토를 해본 모양인데 반납은 이미 받기로 한 돈, 그러니까 기존에 일을 한 대가로 받아야 할 상여금·성과금을 포기하는 거고, 삭감은 앞으로 받아야 할 돈을 포기하는 거라더군.

상주 씨: 그러면 이거 동의서만 받으면 되는 거야? 총회 같은 거 안 해?

옆 동료: 반납은 노사합의나 조합원 총회로는 안 되고 반드시 동의서를 받아야 하고, 삭감은 노사 합의와 조합원 총회를 거쳐야 한다더라구.

상주 씨: 그러니까 내 말이. 이거 삭감이라고 찍혀 있는데 동의서만 받고 있잖아. 이거 나중에 법률적으로 걸면 걸리는 거 아니야?

옆 동료: 아이고,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힘없는 놈들만 서러운 거지, .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그래, 힘없는 놈들만 서러운 거지. 그런데 대체 언제까지 서러워야 하는 걸까. 나 같은 놈들에겐 언제쯤 이란 게 생기는 걸까. 그러다 문득 든 호기심. 평소에는 이런 얘기 동료들과 절대로 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진짜 궁금해졌다.

 

상주 씨: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했나? 동의서 써줬어?

옆 동료: 힘이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해. 솔직히 화도 많이 나지만, 진짜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써서 줬다네. 맘 바뀔까봐 그냥 속사포처럼 써버렸어.

상주 씨: 이번이 마지막? 그거 꼭 유행가 가사 같구만~.

옆 동료: 지난번에도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았나.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고, 이번 한 번만 진짜 마지막이라는 얘기를 믿어보기로 했다네.

 

회사 발 통신으로 조합원 2/3 이상이 동의서를 썼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니,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리라. 의지할 곳이라고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기대뿐인데, 조합원들이 저걸 안 쓰고 버티기는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상주 씨는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걸 쓰지 않으면 역적으로 몰리지나 않을까? 이런 마음 저런 걱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번 한 번만은 내 뜻대로 해보자고 말이다. 동의서를 들이미는 놈들이 역적이지, 동의서를 쓴 이도 동의서를 거부한 이도 모두 피해자들 아닌가.

 

쌍용차의 크리스마스 선물: 복직 무기한 연기

 

그래도 한 가지 남아 있는 게 있었다. 해가 바뀌고 12일자로 부서에 배치되기로 한 마지막 복직자들의 현장 복귀. 임금삭감, 복지 중단·축소 관련 노사협의와 합의가 수차례 이어졌지만, 이거(현장 복직) 하나만큼은 건드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크리스마스 이브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화성에서 트럭 몰다가 이제 복직 앞두고 이사도 해야 해서 일을 그만 뒀거든. 그런데 복직이 무기한 연기되었다네. 복직 1주일 앞두고 이거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닌가?” “이곳저곳 떠돌며 생계 이어가던 생활도 이제 끝이구나 싶어서 연말에 아이들과 바다로 가족여행 가기로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또 못 지키게 되었구만.”

 

, 진짜 이제 상주 씨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 상주 씨 역시 복직하기 전 8년 동안 이 공장 저 공장 떠돌던 나그네 노동자였다. 가족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벙어리 냉가슴으로 살아온 생활, 누가 뭐라고 해도 상주 씨는 복직이 좌절된 노동자들의 얘기에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 사회적 합의로 복직 얘기된 거 아닌가. 그런데 이걸 어떻게 회사하고 기업노조가 뒤집을 수 있어? 아니, ···정 합의 얘기는 나중에 하더라도 말이야. 불과 6개월 전에 기업노조하고 회사하고 합의한 내용조차 뒤집은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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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상주 씨가 직접 동료들에게 힘주어 말하기 시작했다. 617일에 기업노조는 회사와 문서로 합의를 했다. 202011일부로 복직대기자 모두를 부서 배치한다고 말이다. 저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전대 집행부가 참여한 노---정 사회적 합의를, 자신들이 재차 확인하고 결실을 맺었다며 얼마나 자랑을 했던가 말이다. 그런데 6개월 만에 스스로 약속을 뒤집어?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가 기록되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회사는 13일과 6일에 휴업을 공고했다. 그러니 현장 동료들을 처음 만나는 날은 17일이다. 아니, 사실 더 가슴 설레는 일이 있다. 무기한 복직이 연기됐다지만 복직 대기자들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17일 모두 회사로 출근하기로 했다. 상주 씨는 그들을 다시 만날 마음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들이 출근을 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10년간 만나지 못했던 현장 동료들은 마지막 복직자들을 어떻게 맞이하게 될까? 회사와 기업노조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언론과 여론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컨베이어 돌아가는 현장과 휴게실에서 마지막 복직자들을 만나게 되면 뭐부터 물어봐야 할까? 담배들은 아직 피우고 있나?

 

하지만 그 많은 궁금증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17일 상주 씨는 가슴 벅차게 출근을 하게 될 것이다. “힘없는 놈들만 서러운 거지, 라던 동료의 말이 귀를 맴돈다. 하지만 공청회 때 상주 씨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다짐한다. 이제 더 서러워지지 말자, 그러기 위해서 우리 그놈의 을 만들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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