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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리키, 함께해요 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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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조회 301회 20-01-0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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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다니엘 블레이크>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노장 켄 로치 감독(1936년생)의 새로운 영화 <미안해요, 리키>가 상영 중이다. 택배 노동자 리키와 방문 돌봄 노동자 애비 부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원제는 <Sorry We Missed You(“당신을 놓쳤네요정도로 직역할 수 있다)>이다.

 

택배 노동자가 수취인이 부재중일 때 남기는 스티커의 이 문구는 영화에서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리키와 애비 둘 다, 노동자에게 보장된 기본적인 법적 권리에서 온전히 소외된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긱 이코노미의 시대에 리키와 애비는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missed), 우리가 놓쳐버린 노동자들을 대표한다.

 

한국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우리에겐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들이 스크린을 채운다. 영화는 리키가 택배 회사에 취업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리키는 자기 차량을 가지고 일하고 임금 대신 건당 수수료를 받는 개인사업자다.

 

말 그대로 허울뿐인 개인사업자여서, 내 마음대로 쉴 수도 없고(쉬는 경우 대체기사를 자기 비용으로 들이거나 회사에 벌금을 내야 한다) 딸아이를 자기 차량에 태우는 것도 회사로부터 제재를 받는다. 배송업무가 2분만 중단돼도 PDA 단말기가 경고음을 내기 시작한다. 하루 14시간, 6일의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영화는 택배 노동자들이 차량에 싣고 다니는 소변통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방문 돌봄 노동을 하는 애비 역시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애비는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나 환자들의 가정을 돌아가며 간병노동을 하는데, 정해진 방문시간 외에 이동시간이나 추가로 호출되는 시간은 노동시간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아침 7시부터 저녁 9시 반까지 일한다는 애비에게 어느 할머니는 세상에, 8시간 노동을 하는 게 아니었어?”라고 묻는다. 한국의 요양보호사, 장애인지원활동사 등 돌봄 노동자들에게 공짜노동이 강요되는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윤은 얻지만 책임은 하나도 지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플랫폼 노동, 긱 이코노미. 거창한 생산방식의 변혁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최근 노동시장 변화는 사실 전통적인 노동권에 대한 공격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킨지가 긱 이코노미를 디지털 장터에서 거래되는 기간제 노동으로 정의했듯이 말이다.)

 

8시간만 일할 권리, 함부로 해고되지 않을 권리, 일하다가 다치면 자본가로부터 보상을 받을 권리 등 세계 노동자계급이 19세기 후반부터 피 흘린 투쟁으로 쟁취한 권리들은 자본가들이 고안해낸 변칙적인 고용 형태 때문에 끊임없이 무력화된다. 노동자의 노동을 전제적(專制的)으로 통제하고 또 그 노동으로 이윤을 창출하면서도, 자본가는 아무런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다. 당신을 고용한 사장은 내가 아니라 허울뿐인 하청업체라고 우기거나(간접고용), 더 나아가 당신은 사업자이지 노동자가 아니라고 강변한다(특수고용).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어떤 계급을 억압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억압받는 계급에게 적어도 노예적 생존을 이어갈 만한 조건이 보장돼 있어야하지만, “현대 노동자는 공업의 진보와 함께 상승하는 대신에 자기 계급의 현존 조건 아래로 점점 더 깊이 침몰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마르크스의 이 같은 지적은 4차 산업혁명을 떠벌리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더 들어맞는다. 인공지능 등 갖가지 혁신기술이 발전했다지만, 오히려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사실 그것조차 노동자계급을 임금노예 신분에 영원히 묶어두기 위해 보장된 최소한의 권리에 불과하다)마저 다시 박탈하지 않으면 위기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 오늘날의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함께해요, 리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선돼야 할 것은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 그 자체다. 리키와 애비가 하루 14시간씩 노동하는 대신 아직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과 저녁을 함께 보낼 수 있어야 하고, 일하다 다치더라도 벌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후진적인 노동법제는 간접고용 노동자들,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하는 걸 가로막는다. ILO 협약의 조건 없는 즉시 비준, 노조법 2조 개정 등을 통해 특수고용·간접고용·플랫폼 불안정 노동자 모두가 노조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듯이 현실은 그 자체로는 아무 답을 주지 않는다. 누구도 노동자를 위해 법을 고쳐주진 않는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길은 노동자의 단결이다. 노동자가 단결하지 않는다면 설사 법적 권리가 확대되더라도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조 없는 노동자들, 중소영세사업장·비정규직 노동자의 압도 다수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듯이 말이다.

 

이 대목에서 1노조 지위에 올라섰다는 민주노총의 양적 확대가 갖는 의미를 짚어봐야 한다. “당신을 놓쳤네요라고 되새겨야 할 무수한 노동자들이 여전히 노동조합 바깥에서 서성이고 있다.

 

영화의 엔딩을 극찬하는 평론들이 적지 않다. 물론 개인적인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영화의 엔딩은 켄 로치 감독의 작품 성향 그대로다. 어떤 극적인 요소를 보여주기보다는 현실 자체를 날것 그대로 담담히 관조하는 방식 말이다. 상업영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상영 기간이 길 것 같지 않다. 동지들의 빠른 관람을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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