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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진압 멈추고 싶다” - 두 발목 으스러졌던 이주 노동자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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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예주 조회 5,312회 2019-12-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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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일 부산출입국 민원센터 앞에서 2019년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 부산·울산·경남 집회가 열렸다. 울산이주민센터 차를 타고 함께 출발했다. 양산을 지나면서 한 태국 노동자가 차에 오른다. 울산의 어느 공장에서 자동차 부품을 만들던 미등록 이주 노동자, 젠지라.

 

깜짝 놀랐다. 지난 7월 출입국사무소의 폭력단속 때문에 20대 태국 노동자가 양쪽 발목에 분쇄골절 부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긴급수술을 한 후 혼자 휠체어도 못 타는데 사장이 강제 출국시키려던 노동자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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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사람은 없다피켓을 들고 행진에 참여한 이주 노동자 젠지라



8월 초 소식을 접한 한국 이주단체 활동가들의 대응으로 다행히 젠지라는 지금 산재기간이다.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한 그녀가 1218일 난생 처음으로 이주 노동자의 날 집회에 참가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젠지라에게 집회에 참가한 느낌을 물었다. 구글 번역기로 해석된 그녀의 메시지는 이랬다.

 

폭력진압[단속]을 멈추고 싶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에 이주 노동자 착취에 관한 온갖 상황과 단어들이 떠오르며 눈물이 났다.

 

인간사냥

 

723일 이주 노동자 15명을 잡아간 출입국사무소의 강제단속으로 젠지라의 두 발목이 다 으스러졌을 때, 출입국 측은 단속 중에 다쳐 알려지면 인권문제 등이 제기되고 시끄러우니 (사업주가 내야 할) 벌금 대신 치료해주라며 사업주에게 떠넘기고 갔다.

 

924일 경남 김해에선 단속을 피하려던 태국 이주 노동자 아누삭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인은 외력에 의한 장기파열(간파열). 목격자 진술과 CCTV에 의하면 공장 옆 20~40m 낭떠러지가 있는 지형에 잠입한 출입국 인원이 이주 노동자들을 덮쳤다고 한다.

 

123일 관할 경찰은 단속으로 인한 사망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짐승사냥과 다를 바 없는 정부의 단속에 이주 노동자가 죽임을 당해도 경찰 조사, 법원 판결은 오로지 면죄부.

 

노동자는 하나, ‘Labor is the one’

 

18일 집회에서 부산, 울산, 경남의 한국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들은 이주 노동자 아누삭의 영정을 들었다. 더 힘찬 목소리로 살인단속 중단하라”, “불법인 사람은 없다고 외쳤다. 당연한 착취와 탄압만 있고, 당연한 노동권이 없는 사회를 규탄했다. 온갖 착취와 차별, 죽음에 분노하며 정주·이주 노동자가 함께 권리를 찾자고 결의했다.

 

참가자들이 함께 노동자는 하나(Labor is the one) 노래를 불렀다. 공공·금속·서비스 등 정주 노동자들, 종교계 참가자들과 여러 사회단체 활동가들, 그리고 국경을 넘어 일할 자유, 노동의 권리를 가진 이주 노동자들이 같이 부르는 노랫소리와 표정은 이미 하나였다. 힘과 확신이 넘쳤다.

 

집회 후 대오는 이주 노동자 노동권 요구가 쓰인 스티커를 출입국 입구에 부착하고 피켓 행진을 했다. 피켓 하나도 정성스레 드는 모습, 참가단위가 구별되지 않고 대오가 하나로 뭉쳐 행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부산출입국·외국인청에서 집회와 기자회견문 낭독까지 대오는 꾸준히 집중했다. 지나가는 시민도 우리의 분노와 정정당당함을 느꼈을 것이다.

 

형식적 자유, 현대판 노예

 

자본과 상품은 너무도 당연하게 국경을 넘는다. 생산도 대부분 국제적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노동자가 노동력을 팔 때는 형식적 자유마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한국의 고용허가제, 미등록 이주 노동자 단속추방, 해외투자기업 산업연수생제 등은 수많은 이주 노동자를 차별하며 착취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몬다.

 

지난 7월까지 한국 내 이주민 수는 242만 명으로 대구광역시 인구 규모다. 취업자격 등록 수는 약 58만 명이지만 미등록 이주 노동자까지 합치면 100~150만으로 추정된다. 통계에 포함되는 이주 노동자의 임금은 정주 노동자의 64% 불과하다. 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1위다. 정부와 자본은 이주 노동자를 쓰다 버리고, 다시 쓰고, 다시 쫓아내며 현대판 노예로 취급하고 있다.

 

태국 이주 노동자 젠지라는 서열 2위 재벌의 자동차 부품을 만들었다. 최저임금도 못 받았다. 출입국에서 단속 나왔을 때 무서웠다고 한다. 으스러진 두 발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달려 몸을 숨겼을 정도로. 젠지라가 겪었던 공포를 가늠해볼 수 있을까. 한 고전영화에서 노예가 도망치던 장면이 떠오르는 게 너무도 끔찍하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2017년 기준 이주 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은 1.16%, 정주 노동자(0.18%)에 비해 6배나 높다. 이주 노동자의 산재 신고율은 24%에 불과하다는데도 말이다. ‘위험의 이주화라고까지 불리는 이주 노동자 산재 사망사고는 최근에도 끊이지 않았다.

 

823일 서울 청담동에서 아파트 외벽을 칠하던 러시아 이주 노동자(36) 추락 사망

910일 경북 영덕에서 오징어 가공업체 폐기물 청소에 투입된 태국·베트남 이주 노동자 4명 질식 사망

1011일 대전의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10여일 된 네팔 이주 노동자(23) 조형물에 깔려 사망

1116일 경북 칠곡군의 패널 공장에서 스리랑카 이주 노동자(38) 파쇄기에 끼어 사망

1130일 제주 해상의 어선에서 일하던 베트남 이주 노동자(20) 양망기에 끼어 사망

127일 경기도 평택에서 자동차 부품을 만들던 우즈베키스탄 이주 노동자(56) 700톤짜리 프레스기에 끼어 사망

 

그리고 1211일 영천에선 이주 노동자들에게 농사일을 시킨 파견업체가 임금으로 돈을 주는 대신 숫자를 적은 종이쿠폰을 줘 고발당하는 어이없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30년 전 자본가 정부들은 UN에서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를 위한 국제협약을 채택했다. GDP 기준 세계 12위 경제규모인 한국 정부와 자본은 협약 비준을 검토조차 하지 않는다. 자본에게 값싸고 부려먹기 편한 이주 노동력, 그래서 정주 노동자까지 착취하기 쉬운 방안만 강요한다.

 

1218일 정부는 주52시간제 보완대책이라며 외국인력 고용 확대를 포함시켰다. 내국인 인력충원이 어려운 기업을 위한 정책이란 입장이다. 지금보다 더 오래, 더 위험하게 쓰다 버릴 작정인가보다.

2019년 이주 노동자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고 외친다. 더 죽을 순 없다.

 

모든 노동자의 권리

 

6년 전 어느 해외 연구를 보면 한국인의 1/3 이상이 다른 인종과 이웃에 살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한국 자본이 노동자에게 민족주의를 조장하고 이주 노동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부추긴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며 자국(자본가) 보호주의, 노동자계급 분열전략은 더 강화되고 있다. 우리 노동자운동은 노동자는 하나라는 계급의식을 제대로 성장시키지 못했다. 분열과 경쟁을 넘어서는 건 우리의 절실한 과제다.

 

혹시라도 머리로는 노동자는 하나라고 하지만, 이주 노동자와 내가 동일한 권리를 보장받는 게 왠지 거북하다면, 뉴스에 나오는 나라 이름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에서 일하는 한국 노동자, 최저임금도 못 받아”, “◯◯에서 일하던 한국 노동자, 성범죄 당해도 허가 없이 사업장 못 바꿔”, “◯◯에서 한국 노동자 4명이 마스크도 지급받지 못한 채 폐기물 저장탱크 청소에 투입, 질식사”, “◯◯에서 한국 노동자, 폭력단속에 숨져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권리에 다른 등급을 매긴다는 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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