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현장

기고 | 친구를 보내며

페이지 정보

임권수한국지엠 부평비정규직지회 조회 5,515회 2019-12-16 15:40

첨부파일

본문

 

6f3b666a0472f5d52819e8fd480a7a34_1576478394_8525.jpg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엠 자본에 책임을 묻는 부평공장 노동자들

 


얼마 전 현장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였고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동갑내기 친구를 떠나보냈다. 사고 후 대책위를 구성해 유족들과 함께 사측의 소극적인 태도와 책임회피를 언론과 방송을 통해서 성토하며 여러 가지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대책위에 참여해 일을 하다 보니 하루에 한두 번 정도는 그 친구의 영정과 마주친다. 그러다 보면 잠시 추억을 더듬게 되면서 그 친구와 나눴던 대화, 그 친구의 행동, 몸짓, 특유의 웃음소리 등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귓가에 맴돈다. 이따금씩 그 친구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운 감정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곤 했다.

 

어느 날 그 친구의 동생과 친구가 마지막까지 입고 있던 현장 작업복을 조용히 확인하게 된 시간이 있었다. 사고 때의 감정과 기운이 느껴지는 숙연한 마음에 천천히 고이 접혀 있는 작업복을 펼쳤다. 그냥 대충 훑어보아도 정말 낡은 작업복이었다. 여기저기 자동차에 칠하는 도색부분이 묻어있고, 낡고 해어져 여기저기 찢어진 부분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왠지 그 친구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보여주는 거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그 친구는 그 작업복 속에서 외로이 고통스럽게 20~30분 정도 혼자 방치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출근지시를 받고 출근해 공장 안에서 근무시간에 사망사고가 났는데도, 저들은 전날 회식자리에서의 과음을 문제 삼아 개인 건강관리 소홀 탓으로 몰고 가며 위로금과 보상은커녕 산재신청 협조조차도 꺼려하며, 하청업체 관리자들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여러 가지 현장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장 동료들도, 입을 함부로 잘못 놀렸다가 미래에 자신들의 고용유지에서도 문제가 될 거라는 걸 숙지하고 교육받은 것처럼, 대답도 일관되고 비협조적인 형편이다.

 

그렇게 현장은 당일 잠시 소란했을 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그 친구는 자연사로 정리되고,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지고, 여전히 컨베이어 벨트에 사람이 매달린 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하고 있다. 조만간 그 친구는 사물함의 이름표와 출근부, 근태기록 명단에서도 사라질 것이다. 문제가 생긴 사람은 아주 쉽게, 최대한 빠르게 파일 삭제시키듯이 간단히 처리되지만, 또 똑같은 억울한 죽음의 재발방지를 위한 조사나 방안도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지금 한국지엠 공장 안은 그야말로 어떠한 법도 적용되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국적을 두고 있는 글로벌 지엠 자본의 독재와 폭주가 한국지엠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열 번 가까이 판정 났고, 노동부에서 시정명령이 떨어지고, 검찰이 한국지엠 사장을 불법파견으로 기소해 유죄를 받아도, 그리고 위험의 외주화로부터 도급이 금지되고 있는 유해, 위험 작업장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아야 하는 산업안전보건법까지 있는데도, 한국지엠은 우리나라의 행정, 입법, 사법 모든 것을 무시하고 적용도 안 받고 통하지도 않는다.

 

결국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기본적인 노동인권을 지키기 위한 이 모든 법이 재벌과 대기업 자본의 행태를 변화시키지도 못하고, 그저 가진 자들의 재산을 보고하고 유지하려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 법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하루에 3명씩 1년에 1천 명의 노동자가 그냥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있는 법, 피해사망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도 받지 않게 만들어진 법, 그런데도 매년 대기업과 재벌들의 사내보유금을 증가시키는 법이라면, 노동자의 희생과 죽음으로 자본의 이익을 만들어주는 법이라면, 그 법은 우리 노동자에게는 악법일 뿐이다. 더 이상 우리 옆 동료들의 희생과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악법을 수호해서 대대손손 이익을 얻고 싶은 자들과 이제는 큰 싸움에서 승리로 쟁취해야만 할 것이다.

 

배가 불러도 배가 터질 것 같아도 한 번 손에 움켜진 자본의 탐욕은 쉽게 놓지 않을 것이다. 우리 노동자들도 쉽지는 않겠지만 결국은 싸워야만 한다.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의 그날을 위해 결사항전의 자세로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

페이스북 페이지 노동해방투쟁연대

텔레그램 채널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

유튜브 채널 노해투

이메일 nohaetu@jinbo.net

■ 출력해서 보실 분은 상단에 첨부한 PDF 파일을 누르세요.

■ 기사가 도움이 됐나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온라인 정치신문 <가자! 노동해방>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058-254774 이청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목록

게시물 검색
로그인
노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