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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자본주의 교육에 맞선 투쟁 - 노동자계급의 미래 세대를 책임지고 노동자운동의 미래를 여는 위대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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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익 조회 865회 2019-12-1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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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6일 열린 교육불평등 해소, 입시만능 경쟁교육 철폐 고등학교 교사선언

 

 

조국 사태를 거치며 교육 불평등 문제가 사회 전면에 떠올랐다. 지금의 교육제도가 가진 자들의 지위와 특권을 대물림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 특권의 사슬에는 현 정부의 실세들도 결부돼 있었다.

 

정권 지지율이 급락하자, 1022일 문재인은 국회에서 교육 불공정을 언급하며, 공정한 사회를 위한 교육개혁을 약속했다. 급기야 1026일 정부는 정시 비중 확대, 고졸 취업 활성화, 자사고·외고 2025년 일반고 전환을 골자로 하는 긴급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중요한 조치인 대학 서열화와 학력 간 임금격차를 없애기 위한 방안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이런 현실은 문재인 정부가 자본주의 계급제도를 절대 손보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보호하고 정당화하려 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에게 교육문제는 결코 기권할 수 없는 중요한 투쟁의 영역이다. 노동자계급의 미래세대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를 휘감는 고통의 사슬 앞에서 노동자운동이 대안임을 증명해, 노동자운동의 미래를 개척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교육제도 = 계급제도 정당화 장치

 

자본주의 체제는 중층화된 상부구조를 발전시킨다. 그것은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첨예한 계급대립, 그리고 자본가들이 거둬들이는 천문학적 이윤의 뿌리인 노동자 착취를 은폐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교육제도다. 모두에게 공정한 경쟁 기회를 교육제도, 그리고 그 연장선에 있는 입시제도를 통해 제공했으니, 그 뒤 발생하는 격차는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과 능력 차이를 반영할 뿐이라는 것이다. 자본가계급과 가진 자들의 엄청난 소득이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정당한 대가이며, 그러니 노동자들은 불평등과 낮은 임금, 심지어 실업상태까지도 잠자코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 구조를 작동시키기 위해 대학의 위계질서와 입시제도가 만들어진다. 능력 있고 열심히 노력한 학생은 이른바 명문대학교에 진학해서 고소득과 높은 지위를 누릴 자격을 얻지만, 그러지 못한 학생은 저소득과 낮은 지위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문대에 입학하느냐 마느냐가 능력과 노력의 보증수표로 간주되는데, 이렇게 해서 엄청난 입시경쟁이 자라난다. 다만 이런 구조가 잘 작동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입시경쟁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꾸로 공정하기만 하면, 이런 경쟁체제는 완전히 정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단지 지배계급의 지위와 기득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알리바이일 뿐이다. 이른바 공정한 경쟁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교육비 자체가 차이가 난다.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를 보면, 월 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의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월 소득 200만 원 미만인 가구의 사교육비에 비해 5배나 높다.

 

이른바 공교육비에서도 차이가 난다. 자사고·특목고의 수업료는 일반고 대비 5~8배나 높다.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실상 진학이 쉽지 않은 셈이다. 그런데 어떤 대학에 진학하는가는 어떤 고등학교에 진학하는가에 크게 좌우된다. 자사고·특목고 등 특별학교 출신은 전체 수험생의 12%인데, 2010학년도에 28.2%였던 서울대 합격자 비중이 지금은 40%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했다. 소위 인기학과에서는 그 비중이 50%가 넘는다. 서울대 합격자 비율을 비교하면, “일반고(0.4%)에 비해 영재학교(35.6%)는 약 89, 과학고(8.94%)는 약 22, 외고·국제고(4.33%) 11, 자사고·자공고(1.5%)4배로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노동자연대, “문재인의 정시 확대와 고졸 취업 활성화 대책: 교육 불평등을 되레 심화시킬 것이다.”) 이는 서울대만이 아니라 연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 소위 명문대 모두에서 공히 확인되는 결과다.

 

이처럼 사교육비의 격차 + 특별학교 수업료의 격차만으로도 현행 교육제도와 입시제도는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 지난 조국 사태에서 불거진 부유층 부모들의 잘 짜인 네트워크(보통 가정의 아이들은 범접할 수 없는, 금수저들만의 네트워크)를 더하면 현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기본적으로 어떤 대학을 가느냐는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 즉 어느 계급의 자식으로 태어나느냐에 의해 좌우된다. 대학들의 위계질서와 자본주의 입시제도란 그것을 어떻게 장식하고 변형하든, 이 사회의 계급제도를 반영하고, 그것을 재생산하고 정당화하며 영속화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정부의 개선책’, 그 실체는?

 

정시 비중 확대, 고졸 취업 활성화, 자사고·외고 2025년 일반고 전환 정도가 최근 문재인 정부에서 내놓은 개선책이다. 그 중 정시 비중 확대, 자사고·외고 2025년 일반고 전환을 살펴보자. 조국 사태로 현 수시 중심의 입시제도도 가진 자들만의 리그라는 게 드러났다. 이렇게 금이 간 자본주의 공정성을 급히 수선하기 위해 정부는 정시 비중 확대 카드를 꺼냈다. 수능시험이 공정성 시비를 끊어낼 수 있는 입시제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시 비중 확대는 이런 교육 불평등 구조를 더욱 확대하는 개악일 뿐이다. 학종 중심의 수시제도도 불공정하지만, 수능 중심의 정시제도는 더욱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정시에서 소득 5분위 상위계층 자녀들의 합격자 비율에 비해 소득 1분위 하위계층 가정 출신 합격자의 비율은 10배가량 낮다. 이것은 학생부 수시 전형에서 나타나는 7배 격차에 비해 오히려 높다.

 

이는 아주 당연한 결과다. 작년 정시에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재수생이나 N수생이었다. 그런데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재수나 N수를 할 수가 없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입학처 발표에 의하면, 수시를 축소하고 정시를 늘리면 특목고 같은 특별학교나 강남 3구 일반고 합격자 비율이 대폭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수능 중심 정시는 가진 자들에게 더욱 유리한 제도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정시 비중 확대 방안은 자전거 피하려다 자동차에 부딪히는 격이다. 이 정부도 그 점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이 정부가 이런 어이없는 정책을 대안으로 내놓는 이유는 간단하다. 계급제도를 정당화하는 현행 자본주의 입시제도와 정면으로 맞설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도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불공정한 교육제도와 입시제도에 대한 대중의 분노 앞에서 희생양을 찾으면서 도망치기에 급급한 결과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공약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수능 절대평가와 자격고사화’, ‘대학 서열제 완화가 교육 공약이었다. 재산에 따른 교육격차가 너무나 분명히 나타나는 수능 정시제도 축소 및 국공립대학부터 대학 서열화를 폐지하겠다는 것이 공약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대학 서열화 폐지 공약은 폐지하고, 오히려 수능 정시 비중을 높이고 있다. 이것을 자본주의 교육제도의 본질적 목적인 계급제도 정당화에 충실히 복무하려는 태도, 그것 말고 무엇이라 규정할 것인가?

 

자사고·외고 2025년 일반고 전환은 그나마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완전히 미봉책이다. 우선 고교 서열제의 정점에 있는 영재고와 과학고는 일반고 전환 대상 학교에서 배제됐다. 자사고·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약속도 두고 볼 일이다. 외고를 확대하고, 자사고를 처음 만들어 보급한 것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였다. 올해 자사고 심사에서 탈락한 상산고를 구제해 준 것도 문재인 정부였다.

 

조국 사태로 자신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혼이 나가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오직 포퓰리즘 정책으로 표를 얻어 재집권하는 데에만 집착하는 이 정부에게 어떤 진보적인 조치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사고·외고 존치를 주장하는 상위계층 학부모들과 지역 유지들의 압력 앞에서 이 정부가 과연 그것을 실행할 수 있을까? 그 점에서 2025년으로 전환시점을 유예한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25년은 다음 정권 때다. 결국 이번 정권에서는 그런 작은 조치마저 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의사 표현이 아니겠는가? 이런 정부에게서 5년 후의 일은 믿을 게 전혀 못된다.

 

고졸 취업 활성화?

 

문재인 정부가 내건 고졸 취업 활성화 정책도 이 정부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직업계 고등학교를 대폭 육성했다.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저소득 계층 학생의 비율은 특목고 같은 특별학교에서 저소득 계층 학생이 차지하는 비율보다 무려 10배나 높다. 이처럼 주로 저소득 계층 학생들이 진학하는 직업계 학교는 그 출발부터 대학 진학이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층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직업계 학교가 내건 일과 학습 병행이라는 기치는 학생들을 현장실습이란 미명 아래 자본가의 착취 대상으로 헌납하는 것이었다. 기업들은 이 학생들을 저임금 노동으로 갈취하면서, 아무런 보호장치도 없는 죽음의 노동으로 내몰았다. 현장실습 도중 목숨을 잃는 학생들도 계속 늘어났다. 제주 이민호 군 사망사건 이후 현장실습제에 대한 직업계 학생들의 투쟁이 벌어졌고, 폐지 요구가 사회적으로 거세졌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현장실습제를 전면적으로 손보려 하지 않았다. ‘일과 학습 병행의 취지에 맞게 충분한 안전교육과 안전시설을 의무화하고, 교육 측면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노동을 조정하며, 자본가 착취의 싹을 제거하는 핵심조치들을 도입하지 않았다. 단지 현장실습제의 야만성에 대한 비판여론이 들끓자, ‘기업에 대한 안전점검을 강화하기는 했다.

 

그러자 직업계 학교와 현장실습제의 본질이 오히려 더욱 투명하게 드러났다. 안전점검이 강화되자, 현장실습생을 마음대로 위험작업에 투입하기 어려워진 자본가들은 현장실습제 참여에 소극적이게 됐다. 실습 참가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직업계 고등학교의 취업률도 함께 떨어졌다. 직업계 고등학교, 현장실습제의 본질은 헐값으로 위험노동을 강요해 착취율을 높이는 데 있었던 것이다!

 

그 뒤 문재인 정부가 취한 정책은 더욱 가관이다. 문재인 정부는 고졸 취업 활성화를 통한 직업계 고등학교 살리기 정책을 내걸었다. 무엇이 취업 활성화 수단인가? 바로 자본가들의 요구에 순응하는 것이었다. 현장실습 관련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위험시설을 개선하지 않고서도 어린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을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게 허용한 것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는 고졸 취업 활성화만을 부르짖을 뿐, 이 취업이 어떤 종류의 취업인지에 대해서는 모르쇠하고 있다. 현재 고졸자의 임금은 대졸자의 2/3 수준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유해하고 위험할 뿐만 아니라 극도로 저임금인 일자리다. 문재인 정부는 대학 서열화 문제와 함께 중요한 해결과제인 고졸·대졸 간 차별 문제를 방치함으로써 교육 불평등 및 사회 불평등을 방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결국 저임금 노동자를 요구하는 중소기업 자본가들의 착취 요구에 부응해 자본주의 살리기에 나서겠다는 것이고, 그것에 교육제도를 복종시키겠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교육제도는 이런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애당초 저임금 노동자의 길로 보낼 저소득 계층 자녀들은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육성한다. 대학을 가려는 나머지 학생들은 특별한 귀족학교 소속과 일반학교 소속으로 나눠 위계질서를 수립한다. 일반학교 내에서도 사교육 등에 의해 부유층 자녀들과 노동자 자녀들을 구분 짓는데, 이런 구별 짓기는 최종적으로 입시제도에 의해 완성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배계급의 자녀들은 능력과 노력을 겸비한 우수한 인재로 규정돼 지배계급으로 재생산된다. 반면 노동자 민중의 자녀들은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자들로 낙인찍히면서, 피지배계급으로 재생산된다. 이런 자본주의 교육제도를 문재인 정부는 지금 철저히 보호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교육제도는 없는가

 

노동자계급은 지배와 착취, 계급질서를 정당화하는 이런 교육제도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 대신 노동자계급은 우애와 평등, 개성의 바탕 위에서 모든 학생이 충분하고도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교육에서 완전한 무상교육의 도입은 그 출발점이다. 진정 평등한 교육제도라면, 부모의 재산 정도와 무관하게 모든 학생이 완전히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사립학교를 국립학교로 전환하는 조치와 연동해야 한다. 이미 사립학교 대부분은 정부 보조금과 학생 등록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립재단이 출연하는 교육비는 대단히 제한적이고, 심지어 정부 보조금과 학생 등록금까지 유용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립학교 국유화는 그다지 큰 비용이 들지 않고서도 언제든 실현가능하다.

 

이처럼 교육에서 돈이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것은 교육제도 전반의 혁명을 위한 출발점이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자본주의 교육제도가 낳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 계급제도를 재생산하는 수단으로서 교육제도를 철폐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입시경쟁을 강요하는 것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공정성은 경쟁주의를 부추긴다. 반면 노동자계급의 공정성은 경쟁을 극복하고 이를 우애와 연대로 대체할 것을 요청한다. 타인과 자신을 구별 짓고, 그래서 차등적 지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교육을 전락시키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 자본가계급만의 우월한 특권을 보장하려는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를 반영한다.

 

이와 달리, 노동자계급은 모든 사회구성원이 자신의 개성과 지향에 맞게 충분히 교육받고, 이것을 통해 사회공동체를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래서 개인의 행복과 사회적 번영을 조화롭게 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제시한다. 한마디로 공동체주의의 깃발 아래 모든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과 발전을 보장하고, 서로 조화롭게 만드는 사회주의 교육제도가 노동자계급의 목표다. ‘공정한 경쟁이란 자본주의의 표어를 개성에 기반한 조화로운 사회적 협력이란 사회주의 표어로 대체하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목표다. 그 점에서 노동자운동은 입시제도 철폐, 대학 추첨제, 대학의 평등화를 지지한다. 대학 진학을 원하는 모든 학생에게 대학 교육 기회를 제공할 것을 요구한다.

 

나아가서 노동자운동은 진정한 의미의 일과 교육의 병행을 주장한다. 타인 위에 군림하고, 노동을 천시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교육제도는 사라져야 한다. 반대로 모든 교육제도는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배우고, 이 노동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과학과 기술을 노동에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활용하는 법을 습득하며, 노동자 민주주의와 연대의 가치를 훈련하는 위대한 기회가 돼야 한다. 특별 귀족학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방식의 현장실습제나 직업계 고등학교는 폐지해야 한다. 그 대신 학생들의 연령에 걸맞고, 육체적·정신적 발전 정도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과학과 기술의 성과를 노동과 접목하는 유기적인 교육이 진행되는 일반학교 시스템을 안착해야 한다.

 

이런 단일한 일반학교 시스템을 통해 모든 학생이 각각의 재능과 자질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협력하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며 하나의 공동체로 어우러지는 공동체주의적 정신과 가치를 자연스레 습득하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개인의 발전이 공동체의 발전의 계기가 되고, 공동체의 발전이 개인의 발전의 계기가 되는위대한 사회,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아니라 만인의 상호협력 원리가 인도하는 위대한 사회를 여는 초석으로 교육제도가 기능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사회발전의 절실한 요구에 화답하는 길이기도 하다.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이것을 생산에 접목하는 것의 중요성이 비약적으로 커지는 현대사회에서는 사회발전의 토대인 노동의 생산능력을 최대치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완성된 노동자를 육성하는 것이 사활적인 조건이 된다. 완성된 노동자란 과학·기술을 습득하고 이것을 자신의 노동과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발적,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하는 노동자를 뜻한다. 나아가서 나날이 발전하는 생산의 사회적 성격이 요구하는, 동료들과의 집단적 협동능력을 갖추고, 사회적 필요와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노동자를 뜻한다. 이런 완성된 노동자를 자본주의 교육체제는 절대 만들어낼 수 없다. 오직 노동자계급의 투쟁,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 교육체제만이 그것을 강제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결정적 교육제도 사회 그 자체


이와 같은 교육제도의 혁명적 변화 과정은 학생, 교사, 학부모라는 교육의 3주체 사이의 민주적인 토론과 합의로 이뤄져야 한다.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교육제도는 사회의 밑그림을 만들 뿐만 아니라 사회제도를 그림자처럼 온전히 반영한다. 그 점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제도는 바로 사회제도 그 자체다.

 

학교 바깥의 사회가 부유한 자본가계급과 가난한 노동자계급으로 완전히 분열돼 있다면, 또한 자본주의 분할 경쟁정책으로 인해 노동자계급 내부에서도 소수 고임금 노동자와 다수 저임금 노동자로 분할돼 있다면, 어떠한 훌륭한 교육제도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사회의 잔인한 경쟁논리가 교육제도를 지배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노동자에게 완전한 일자리를 보장하라!” “비정규직제도를 철폐하고, 하후상박의 원리 하에 모든 노동자의 임금을 상향평준화하라!”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라! 자본가계급에게 대폭적인 세금을 물리고, 이것을 일자리와 안전조치 확대, 임금인상, 정규직화의 재원으로 투입하라!” 등을 내건 노동자투쟁과 맞물릴 때만 교육제도 개선을 위한 발걸음이 진정한 의미를 갖고, 진정한 성과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비정규직제도를 철폐하고 완전고용만 보장하더라도, 지금의 교육제도 하에서도 학생들 사이의 잔인한 경쟁의 강도는 훨씬 낮아질 것이다.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만 보장되더라도 실업자나 비정규직이라는 미래의 불행한 처지를 피하기 위해 학생들이 바로 옆 친구들과 몸부림치면서 경쟁해야 하는 이 잔인한 상황은 무뎌질 것이다.

 

이처럼 평등한 세상을 향해 노동자운동이 기운차게 전진하고, 이와 함께 교육제도 개선을 위한 노동자투쟁을 통해서 예비 노동자인 학생들이 경쟁에서 자유로워지고 연대의 정신 아래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면서 건강하게 자라나게 해야 한다. 그 성과는 다시 노동자운동 속으로 흘러들어와 이 운동을 더욱 기름지게 가꾸고, 더욱 젊고 역동적이며 근본적인 단계로 밀어 올릴 것이다. 자본주의 교육제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와 연대의 정신 하에서 새롭게 자라나는 학생들의 압도적 다수는 미래의 노동자운동을 이끌 새로운 노동자 세대이기 때문이다. 교육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동자투쟁, 그것은 현재의 노동자계급이 미래의 노동자계급을 책임지는 위대한 행동이며, 바로 그렇게 노동자계급의 현재와 미래가 손을 굳게 맞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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