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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시작했기에 같이 끝낼 생각입니다” - 10월 5일 희망버스에 오르며 되새겨보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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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조회 6,770회 2019-10-0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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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충남노동자뉴스 길


편집자 주 105일 오늘, 김천 도로공사 본사를 향해 희망버스가 출발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 구사대와 경찰의 폭력, 사측의 회유와 협박, 정부의 사측 편들기로 온몸이 짓눌리는 가운데,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내가 과연 무엇을 위해 이렇게 투쟁하는지매일매일 되새겨봤을 겁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이겨내고 고지를 향해 올라서는 만큼, 이 동지들은 점점 더 멀리 내다보게 됐습니다. 아래 소개하는, 정년을 코앞에 둔 두 조합원 동지의 인터뷰 글이 그 증거가 아닐까요. 담담하게 심경을 드러내는 짧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누구와 함께,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희망버스에 오르며 다시 한 번 그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글은 924일과 26, 이용덕 동지의 페이스북에 먼저 게재됐습니다.)


첫 번째 글

 

99일 우리는 도로공사 본사에 들어왔습니다. 어떻게든 도로공사 안으로 들어가서 이강래 사장을 만나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버스에서 모두 긴장했습니다. 다들 말도 없었습니다. 달리기 순번을 정했습니다. 회사가 소식을 알고 대응할 텐데 재빠르게 달려 문을 열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버스에서 내려 앞에서 달렸습니다. 처음엔 힘들 줄 몰랐는데 2~3일 지나니 온 몸이 아팠습니다.

 

내년 정년입니다. 우리 나이로 60입니다. KBS <거리의 만찬>에 제가 청와대 앞에서 응급차에 실려 나가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남편이 저에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느냐고 했습니다. 직접고용 돼도 1년도 못 다닐 건데 정말 왜 이러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얘기했습니다.

 

나는 지금껏 요금수납원 일하면서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으며 살아왔다. 부당한 일이 정말 많았는데 비정규직이라 잘릴까봐 비겁하게 참아 왔다. 이제 나한테 떳떳해지고 싶다. 내 스스로 괜찮은 인생을 살았다고 얘기하고 싶다. 누구의 위로나 칭찬이 아닌 나의 위로와 칭찬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후부터는 남편이 반대하지 않습니다.

 

시험 쳐서 직접고용으로 들어오라고요? 그럼 대법원에서 왜 직접고용 판결했어요? 왜 시험이 유일한 방법이어야 합니까? 이강래 시험 쳐서 들어왔어요? 지금 정규직 중에 수납원으로 들어와서 과장, 소장된 남자들 있습니다. 축구 잘해서 배구 잘 해서 들어온 사람도 있습니다. 수납 일은 우리가 프로입니다. 하이패스 위반, 민원 응대 등 다른 일도 정말 많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로공사 지시를 받고 수많은 일을 했습니다. 시험 못지않게 어려운 일입니다. 외주화되기 전에 도로공사 직원이기도 했습니다. 모두 직접고용 권리가 있습니다.

 

이강래는 교섭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자회사만 고집합니다. 1,500명이 해고돼 3개월 동안 청와대 앞에서 싸웠습니다. 서울요금소 캐노피 위에선 여성 노동자들이 86일째 고공농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1,500명 직접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조차 무시하고 교섭조차 거부하는 이강래입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엔 자회사 갈 생각이었습니다. 나중에 민주노조 가입하고 활동하다 보니 동료들, 후배들 생각하게 됐고 동료들을 위한 싸움, 후배들을 위한 싸움이 됐습니다. 이제 어느새 비정규직 대표하는 싸움이 됐습니다. 같이 시작했기에 같이 끝낼 생각입니다.

 

 

두 번째 글

 

저는 내년이 정년입니다. 1인 지회 소속입니다. 처음에 6명이 민주노총에 가입했다가 회사의 협박에 자회사로 갔습니다. 정말 회사가 집요하게 자회사 가라고 회유하고 협박했습니다. 도로공사 차장이 와서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이가 많은데 배가 부르니 자회사 안 가고 직접고용 주장한다고. 저희는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받았습니다. 미납대금도 대납시켰습니다. 그래서 제가 배부른데 보태준 거 있냐고 따졌습니다.

 

자회사 가면 정년 1년을 연장시켜 준다고 했습니다. 임금도 올려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돈 안 받고 직접고용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도로공사가 관리자가 찾아왔습니다. 주말에도 찾아왔는데 도로공사 관리자가 저보고 선생님, 잠깐 자리에 앉으세요,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댁의 선생님입니까, 반박했습니다. 제가 장애인으로 2002년 입사했습니다. 그동안 언제 그렇게 대우해줬다고 선생님, 선생님 합니까.

 

저는 나이가 많고 직접고용이 된다 해도 얼마 다니지 못합니다. 후배들이 많습니다. 정말 이 나라에 비정규직이 많습니다. 고달픈지도 모르겠습니다. 농성장에 갇혀 있어서 답답해서 그렇지, 힘든 지도 모릅니다. 청와대 앞에서도 즐겁게 싸웠습니다. 다 좋아요. 60 평생에 이런 일을 언제 해보겠습니까. 후배들을 위해,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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