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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불법파업’ 위협을 어떻게 다룰 건지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교사파업이 가르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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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5,654회 2018-04-0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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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이어졌던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교사파업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에 파업한 웨스트버지니아주 공립학교 교사들의 평균연봉은 미국 51개 주 중 끝에서 다섯 번째다. 가족을 부양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임금수준 때문에 교사들 중에선 국가에서 식료품 지원을 받는 푸드스탬프를 신청하는 사례도 있었고, 주말에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선 이들에게 2019년에 2%, 그 이후 2년간(2020~21) 1%라는 모욕적인 임금인상안을 내던졌다. 교육에 대한 주 정부의 투자도 형편없었다. 학생들에게 나눠줄 학용품을 교사들이 사비로 충당하기도 했다. 반대로 그간 주 정부는 기업유치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한다며 법인세를 크게 인하했다. 이 때문에 세수가 줄었는데, 그 손실을 교사를 포함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삭감이란 방식으로 떠넘겨온 것이다.

 

알바 뛰는교사들의 파업

 

2만여 명의 교사들은 5%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222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모든 공립학교가 폐쇄됐다. 교사들은 파업을 하면서도 일부 학생들을 위한 식사를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17%가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웨스트버지니아에선 학교에 오지 않으면 아침과 점심 식사를 해결할 수 없는 학생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만 챙기는 정책에 대한 반감과 교사들의 책임 있는 모습에 대한 공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번 파업은 지역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교사들은 단체교섭권을 누리지 못하고 파업도 불법으로 금지돼 있었다. 하지만 투쟁의 기세가 강하게 뻗어나가자 교육감들은 교사들이 불법파업에 따른 처벌을 피할 수 있도록 서둘러 휴교령을 내렸다.

 

파업이 시작되고 일주일이 채 되기 전인 227, 주지사는 교사들의 요구대로 5% 임금인상을 약속했다. 노조 지도부는 파업이 승리했다고 선포했다. 언론에선 이제 교사들이 파업을 접고 복귀할 거라고 떠들어댔다.

 

우리 임금만 챙기는 건 승리가 아니다

 

하지만 웨스트버지니아주 교사들은 그런 약속이 번번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주 의회에서 교사, 공무원들의 임금문제가 확실히 처리되기 전엔 파업을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확산됐다.

 

게다가 주지사의 약속은 교사 임금을 5% 올리는 대신 다른 공공부문 노동자 임금인상률을 3%에 묶어둔다는 내용이었다. 교사들은 화를 냈다. 교사와 나머지 공공부문 노동자 모두의 임금이 함께 인상되지 않는 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노조 지도부의 방침과 무관하게 교사들은 비공인파업을 이어갔다. 이들은 우리가 노조의 주인이다!”라고 외치며 노조 지도부에게 재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더 나아가 최종결정이 이뤄져야 할 주 의회에 눌러앉아 농성을 벌였다. 2011년 위스콘신주 공무원들이 단체교섭권 박탈에 항의해 주 의회 점거농성을 벌였을 때와 매우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교사들의 투지가 살아나며 마침내 이들의 요구가 관철됐다. 교사들은 스스로의 투쟁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파업을 벌였던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노동운동가들과 사회주의자들 모두가 이 투쟁에 환호했다. 미국의 노동자운동이 가망 없이 죽어버렸다는 생각에 통쾌한 반격을 가한 셈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언론이 파업의 의미를 날카롭게 포착했다

 

그런데 노동운동가들이나 사회주의자들보다 오히려 한 부르주아언론의 반응이 눈길을 끈다. 미국의 3대 일간지의 하나인 <워싱턴포스트> 313일자 기사로 웨스트버지니아 교사파업이 여성들의 정치적 힘을 보여준 4가지 방법이란 글이 게재됐다. 그중 이런 내용을 읽을 수 있다.

 

교사들의 정치적 권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집단적인 행동이 더 중요하다.”

웨스트버지니아 사례가 보여주듯이 그들의 영향력은 노동을 중단할 수 있는 힘에 달려 있다. 명시적인 법적 권리를 갖고 있는가와 무관하게 말이다.”

웨스트버지니아가 남겨준 교훈의 하나는, 남성 중심 정치체제의 저항을 뚫고 나아가려면 여성들이 조직돼야 한다는 점이다.”

 

웨스트버지니아를 포함해 미국 내 27개 주에선 교사들의 파업이 불법이다. 이런 법적 제약은 노동자들을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법제도적 권리개선이 우선이며, 이게 해결되지 않는 한 투쟁에 나서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파업은 그런 생각을 멋지게 날려버렸다. 법적 제약 때문에 투쟁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집단적인 행동과 투쟁의 힘으로 법적 제약을 무력화하고 정당한 요구를 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마치 한국 노동자들이 전진하던 시기에 악법은 어겨서 깨뜨리리라!” 하고 당당하게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이와 더불어 이번 파업은 여성차별에 맞선 투쟁에 노동자계급이 응답하는 방식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미국 교사들의 76.7%가 여성이고 이들은 형편없는 처우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하지만 파업에 나선 이 여성노동자들은 개인적인 결단, 개인적인 외침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참여한 것이고, 파업이라는 집단적인 행동에 뛰어든 것이다. 그렇게 동료들과 어깨 걸고 싸워나간 만큼의 성과를 거머쥐었다.

 

이런 경험은 노동자들에게 세상을 바꾸는 방법에 대한 가장 훌륭한 교육이다. 우리 역시 그런 경험에서 함께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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