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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4년 5개월 만에 복직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김채삼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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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예주 조회 5,775회 2019-08-3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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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노동탄압에 맞선 힘겨운 투쟁 속에 들려오는 노동자의 승전보는 가뭄의 단비 같다. 그 중에서도 해고자 복직소식이 으뜸이다.


45개월 해고생활을 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김채삼 수석부회장이 812일 원직 복직했다. 2015년 말부터 지금까지 35천 명의 원하청 노동자를 내쫓은 현대중공업 자본은 하청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짓밟아왔다. 비정규직이 노조하면 업체 폐업이든, 표적 해고든 쫓아내고야 말았던 현중 자본.


2003년 여름 노동조합을 건설한 사내하청지회가 투쟁해오면서, 그리고 20131017일 정규직 노동자들이 어용을 뒤집고 민주 집행부를 재건하면서 하청 노동자의 복직 역사도 쓰여지기 시작했다. 201310월 말, 대법원에서 복직판결을 두 번이나 받고도 현장이 들어가지 못했던 동지가 67개월 만에 복직했다. 현중 해양사업부 KTK의 기습 폐업 이후 2017년 여름 107일간의 교각농성투쟁까지 벌여 복직한 네 명.


그리고 2015320일 특수선사업부 금농산업에서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징계해고 당한 김채삼 동지가 1, 2심에 이어 2017년 대법원까지 방위산업체 불법파업혐의에 무죄를 선고받고 드디어 복직한 것이다. 812일 김채삼 동지가 복직하는 날, 일산 문에 현중 원하청 노동자들과 지역 동지, 가족이 모여 원직복직 출근 환영식을 했다.

 

하청 조직화와 원하청 공동투쟁 조직화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 가운데, 그리운 현장으로 돌아간 김채삼 동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고당한 노동자의 복직 인터뷰 기사가 더 많아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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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삼 동지가 복직한 812일 현중 원하청 노동자와 지역 동지, 가족이 모여 원직복직 출근 환영식을 했다.


 

무려 45개월만의 복직이다. 소감을 꼭 듣고 싶다.


긴가민가하다. 45개월, 회사에서 오래 나와 있다 보니 회사 갔을 때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고 뭐랄까 어색했다. ‘동료들과 인사를 어떻게 하지?’ 이럴까 저럴까 고민했는데, 제가 먼저 인사를 건넨 것 자체가 좋았다. 하청 노동자들이 내게 눈으로 말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출근 첫날, 공장 문 앞에서 복직을 축하해준 원하청 동지들, 지역 동지들이 고마웠다. 현중지부가 태풍이 지나가고 복직 축하 현수막을 업체건물 외벽에 걸어줬다. 그걸 보면서 정말 들어왔구나 생각했다. 업체가 떼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대로 있다. 게시기간이 따로 없어 내가 떼지 않으면 계속 현장에 선전될 것 같다.

 

지금도 만감이 교차하고 기분이 묘하다. 일 하는 건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해고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


2014년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가 첫 임단협 교섭과 파업투쟁을 했다. 계약해지, 업체폐업, 부당징계 등 탄압을 했다. 제가 일하는 업체의 사측은 업무복귀 공문을 수차례 보냈다. 특수선이라 불법파업이라면서 징계위원회를 열겠다고 했고, 지회는 멈추지 않고 싸우기로 했다. 320일 징계위원회를 열자마자 5분 만에 해고했다.


사실 징계는 예상했는데 해고를 시킬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원하청 사측이 다 준비해놓은 것 같았다. 해고되자마자 월급에, 적립된 퇴직금까지 바로 입금됐다. 심지어 해고 결과가 나왔을 때 아내에게도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귀가했는데 아내가 나를 보자마자 아무 말 없이 목이 잘리는 손짓을 했다. 황당했다. 해고의 충격을 가족에게까지 전달하는 모습에 배신감도 많이 들었다.


특수선부서는 조선에서 만들지 않는 군함, 잠수함 등 방산분야 선박을 주로 만든다. 또 지질조사선, 탐사선, 해양경찰선 등 특수한 목적으로 건조하는 선박을 만든다. 저들의 주장은 방산업체 쟁의권 금지다. 이전 방산업체인 풍산금속 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는데 불법이라는 판례가 있다. 우리는 하청 노동자의 파업은 합법이라고 주장했다. 사측은 특수선에서 파업은 불법이라는 법률 과정을 거쳐 검찰에 기소되면서 취업규칙 위반이라고 해고했다. 특수선은 출입증 제한이 있다. 기무사가 행하는 적격심사를 통과해야 특수선 현장에 들어와 일할 수 있다는데 공장 출입증은 집행유예나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뒤늦게 알았다.


2017년 대법원 판결 이후 7월에 출입증을 받았다. 재작년부터 특수선에 복직했어야 했다. 그런데 울산과학대 연대투쟁 건으로 집행유예 두 건 받은 게 걸려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복직하게 된 거다.


45개월의 해고는 매우 부당했다. 비정규직도 억울한데, 비정규직 노조탄압에다 방산업체 노조할 권리 탄압까지 정말 문제가 많다.


45개월 동안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아시히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나는 운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아사히 동지들은 마치 사막에서 싸우는 것과 같다. 울산은 투쟁하고 연대하는 많은 동지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게 싸울 수 있었다. 복직이 되든 안 되든 개의치 않았다. 옳은 걸 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의 힘이 정말 컸다. 아내가 모든 걸 감당해줬다. 6개월 실업급여, 6개월 금속노조 기금 받았다. 생계가 막막해 택배일도 해서 보충했다. 1심 판결 전에는 법에서 지면 싸움을 어떻게 하나 걱정이 컸다. 대법 판결 이후엔 휴직 처리가 합의됐다. 약간의 임금이 나오니 버틸 수 있었다.


아내가 정말 고생했다. 젊었을 때 다니던 회사에 노조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노조활동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거제를 거쳐 울산에 살다보니 점점 힘들어지는 조선소 노동자를 보게 되어 노조활동을 인정해준 것 같다.


해고는 경제적으로 힘들게 할 뿐 아니라, 주변사람과의 관계나 집안 관계까지 다 문제를 일으킨다. 다들 조선소 하청은 노조하면 해고된다고 말한다. 아내 주위에서 남편 노조하니까 결국 잘렸잖아라고 말했다. 모든 면에서 아내가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색 없이 노모와 아이들을 챙기고 해고기간 생계까지 책임졌다. 몇 년 전부터 아내는 나의 투쟁일정에 맞춰 자기 스케줄을 조정해줬다. 아내 덕분에 투쟁할 수 있었다. 아내가 최고의 후원자이자 최대의 피해자라 생각한다.


말을 안 했지만 복직하고 아내도 축하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남편 일하러 다닌다는 얘기에 기쁠 것이다. 요즘은 잔소리도 다정하다.


해고 이후 투쟁은 어땠나? 당시와 지금 달라진 건?


노조가입을 2014년 초에 해서 현장 활동은 짧았다. 현장 활동을 큰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동지들과 즐기면서 했다. 해고기간에야 노조 활동을 제대로 알게 됐다. 공부를 했고 연대를 했다. 이전에는 울산과학대와 밀양 송전탑 투쟁에 연대한 적이 있는 정도다. 해고기간엔 울산뿐 아니라 전국을 다녔다. 여러 투쟁하는 동지들을 만났다. 그리고 학습을 하면서 노동조합을 정확히 알았다. 제대로 노동자투쟁을 하려면 학습과 연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내가 왜 노조를 하나? 반문한 적도 가끔 있었다. 그런데 사명감 같은 것? 제대로 싸우고 복직해서 아직 노조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보여주자는 일념이 있었다. 공장 안에서 투쟁하지 못하는 건 답답했지만 45개월 동안 밖에서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단련시킨 것 같다.


조합원들, 활동가들과의 관계도 느긋하게 하는 걸 배웠다. 들어가서 뭘 할지 많이 고민했다. 45개월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진일보한,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됐다.

 

복직 이후 결의와 계획이 있을 것 같다.


현장을 더 알아야겠다. 해고기간 동안 갖지 못한 동료들과의 관계를 만들고 싶다. 현장 동료들과 친해지고 조합원으로서 모범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직화를 차근차근 하려고 한다.


특수선에 조직대상이 되는 사내하청 노동자가 1,000명 있다. 예전에는 노조가입을 달성하기 위해 조건부로 사람을 만나다보니 단시간에 실망했다. 이제는 노동자로 만나면서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과정을 밟고 노조를 말하고 싶다. 신뢰를 더 쌓을 것이다. 복직하고서 동료 하청 노동자가 보는 눈빛이 다르다. 특수선에서 원하청이 같이 현장 선전전할 때 나도 더 당당해졌고 하청 노동자들도 전과 다른 걸 느꼈다. 충분히 조직될 것 같다.


정규직 노동자들과도 연대를 계속 해나갈 것이다. 정규직 활동가들이 구조조정뿐 아니라 징계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걸 얼마 전 알게 됐다. 하청은 더러워서 못 다니겠다고 하고 옮기는데, 정규직은 해고되면 나락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힘들 것이다. 잘 이겨내고 같이 힘을 잘 모았으면 한다. 아직 세부적이진 않지만 하고 싶은 게 많다. 작은 것부터 실천할 생각이다.


현대중공업 투쟁은 진행형이다. 노동개악 등 전체적인 투쟁도 있다. 특수선 정규직 동지들에게 파업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고 싶다. 방산업체 쟁의권 금지에 맞서 싸워야 한다. 방산이라도 해도 업무는 여러 가지인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 희생이 불가피해서 어려운 문제이지만 시도해보고 싶다. 정규직 노동자가 내게 전화했을 때, 조심스럽지만 정규직도 파업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전했다. 한정된 조건에서만 활동할 수가 없다. 특히 특수선 정규직 동지들은 건강하다. 원하청 연대도 적극적이다. 그런데 파업을 하지 못해 불편하고 힘든 점이 있다. 새로운 싸움이 더 커지려면 이 점도 진지하게 고민하자고 건의하고 싶다. 조선이든 특수선이든 정규직은 다 현중지부 조합원이다. 하청만 조직하면 된다. 하청이 파업하면 공장이 멈춘다. 원하청 공동파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현중 사내하청노조 역사가 15년이 넘는다. 먼저 희생한 동지들이 있다. 열사와 선배 노동자들이 노조를 지킨 점이 크다. 어떻게든 현장으로 돌아가 조직하자고 생각했다. 현중 사내하청 조합원들이 움츠려 있는 점이 아쉽다. 하청 활동가들이 상반기 큰 싸움을 할 때도 뻗어 나오지 못했다.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열심히는 했는데 주어진 시간에 할 수 있는 것만 한 것 같다. 나 스스로도 더 조직하지 못한 게 아쉽다. 다들 그럴 것이다. 숙제로 남는다. 하청 조직화, 원하청 공동투쟁 방향은 명확하다. 더 고민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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