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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수출규제 vs 불매운동 – 민족주의 캠페인으로 일본 제국주의 제압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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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8,401회 2019-07-1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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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캠페인으로 아베 정권의 제국주의 패권전략을 꺾을 수 있을까? (사진_연합뉴스)

 

 

일본이 한국을 겨냥한 수출규제를 시작하자, 한국에선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번져나갔다. 지난해 1030일 대법원에서 일본 전범기업에게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책임이 있음을 명시한 판결이 나왔는데, 일본의 수출규제가 이에 대한 보복조치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맞불처럼 나타난 현상이다. 

 

제국주의적 침략과 억압의 역사에 대해 온전하게 책임지지 않는 일본 지배계급의 뻔뻔스런 행태에 분노하는 건 자연스럽고 정당하다. 노동자들 중 일부도 불매운동 식의 민족주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듯하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는 진지하게 되묻고자 한다. 일본 전체를 싸잡아 적대시하는 민족주의 캠페인으로 아베 정권의 제국주의 패권전략을 꺾을 수 있을까? 그 답을 찾아가기 위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의 의미를 하나씩 짚어보자.

 

아베 정권의 욕구

 

아베 정권이 처음 들고 나온 수출규제 근거는 강제징용 피해자에 관한 한국의 대법원 판결이었다. 하지만 금세 다른 근거가 등장했다.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한 고순도의 불화수소(에칭가스)를 북한에 넘겨, 북한이 그것으로 사린가스를 제조할 위험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터무니없는 날조라는 건 이미 여러 보도에서 입증됐다. 닥치는 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모양새다.

 

아베 정권이 이런 행태를 취하는 배경에는 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뒤 헌법상 군대를 만들 수 없게 된 일본 지배계급은 한동안 군비지출을 절감하면서 경제부흥에 몰두할 수 있는 장점을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공식 군대를 갖지 못하고 자위대 수준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상황이 내내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경력이 있는 일본 지배계급은 재차 첨예해지는 열강들 간의 경쟁에서 우위를 가늠하고 세력권을 보호하는 데 군사력이 최종적인 수단이라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경제력이 비대해지는 만큼 군사력도 빠르게 팽창하는 인접국가 중국을 바라보며 일본 지배계급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인 다수가 헌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바꾸려면 명분이 분명해야 한다. 즉 외부로부터 위협을 가하는 명확한 적이 필요하다. 수시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북한이 그동안 좋은 핑계가 됐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북한을 둘러싼 정세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올해 6월엔 일본이 의장국을 맡은 G20 정상회의가 진행된 바로 그 순간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악수를 나누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아베 정권이 이슈에서 밀려나고, ‘외부의 적도 불분명해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동아시아 정세가 재편되는 데에서 일본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것처럼 비쳤을 테니, 아베 정권 입장에선 꽤나 불쾌했을 것이다.

 

상황을 악화시키기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바꾸기 위해 일본 내부를 자극하고, 한국을 향해 일본이 동원할 수 있는 파괴력을 확인시켜줌으로써 줄서기를 제대로 하라는 메시지도 던져주며, 동아시아 세력권을 관리하는 데에서 일본을 건너뛰지 말라고 미국을 향해 넌지시 불만을 표출하는 데에도 쓸모가 있는 그런 계기를 마련해야 했다.

 

아베 정권은 그 계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 일본인들에게 과거 옴진리교 테러사건으로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사린가스에 대한 공포심을 이용해, ‘한반도에서 일본을 위협할 안보불안이 조성되고 있다고 선동하며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정당화했다. 곧 치러질 참의원선거와 이어지는 중의원선거에서 최대한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개헌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공포 마케팅을 벌이는 것이다.

 

수출규제는 삼성 같은 한국의 대자본가들과 문재인 정부에게 분명한 위협이 됐다. 세계시장에서 어깨를 겨룰 정도로 한국 자본가들이 성장했지만 일본의 눈 밖에 나면 그런 지위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신호가 전달됐다. 이미 한국 지배계급 우익들은 일본과의 동맹을 복원하는 데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이번 갈등으로 한일관계에 균열이 더 깊게 생기는 건 한미일동맹으로 동아시아 세력권을 관리하려는 미국 지배계급에게도 마뜩잖은 일이다. 게다가 일본이 이번에 수출을 규제한 포토레지스트는 차세대 극자외선 공정에 사용하는 제품으로 한정됐는데, 이를 통해 생산된 차세대 비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한 곳은 다름 아니라 애플과 퀄컴 같은 미국 기업들이다.

 

미국 지배계급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동아시아 세력권 관리를 하고 싶은 욕구와, 그것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는 일본 지배계급의 지분을 인정해줘야 할 필요 사이에서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트럼프는 한반도 평화같은 공문구가 아니라 오직 미국 지배계급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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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상황에는 단순히 한국과 일본 지배계급 간의 갈등 그 이상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사진_연합뉴스)

 

 

위대한 자유경쟁의 몰락

 

문재인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항의하면서 일본 정부가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길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는 게 어디 일본 정부뿐인가.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출생 배경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일본과 전면적인 재협상을 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활로를 열기 위해 한반도 평화 캠페인에 올인해야 하지만, 똑같은 이유 때문에 일본 지배계급과의 관계를 파탄 낼 수도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깊숙이 뛰어들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와중에 일본이 터뜨린 또 다른 갈등에 대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불과 며칠 전 G20 정상회의 선언문에서 자유롭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이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며, 안정적인 무역을 부르짖었던 일본은 자기 입으로 내뱉은 선언을 스스로 부정하며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무척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2008년 세계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전 세계 자본가들은 1929년 세계대공황 뒤의 암울한 기억을 떠올리며, 결단코 보호무역으로 나아가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들은 시장과 자유경쟁의 힘을 찬양했다. 그러나 세계 자본주의의 선두주자인 미국 지배계급이 선두에서 보호무역주의를 강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재앙의 늪으로 기어들어갔다.

 

이어서 일본 지배계급이 시장과 자유경쟁의 힘을 찬양한 뒤 곧바로 자유가 아니라 지배를 향한 열망을 드러내며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위선을 선보였다. 장기불황의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채 막다른 길로 내몰리는 자본주의의 가망 없는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갈 길을 잃어버린 자본주의가 모든 나라의 자본가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더욱더 극단적인 충돌 국면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자본주의가 알려주는 길

 

이로부터 우리는 하나의 실마리를 얻게 된다. 아베 정권의 폭주에 맞서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제국주의적 패권경쟁과 그에 따른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가망 없는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투쟁할 수 있는 세력을 불러 모아야 한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회집단은 노동자계급이다.

 

일본 내에서 노동자투쟁은 거의 궤멸되다시피 한 과정을 거쳐 왔다. 아래로부터 아베 정권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운동이 부재하다는 점 때문에 아베 정권이 더욱더 날뛸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의 노동자투쟁이 모든 가능성을 잃어버린 건 아니다. 아주 작은 힘일지라도 새로운 투쟁의 시대를 개척하기 위해 분투하는 흐름이 있다.

 

일본 지배계급 입장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싹부터 짓밟고 싶을 것이다. 작은 불씨가 결국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것이 노동자운동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그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아베 정권이 지난 6월 전일본건설운수연대노조 간사이지구 레미콘지부 사무실을 수십 명의 경찰을 보내 압수수색하고 노조 간부 7명을 체포한 사건은 주목할 만하다. 하청업체 비정규직의 정규직 고용을 사장들에게 강요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아베, 노조원 7명 체포와 10개소 압수수색으로 논란”, 78일자 <참세상> 기사) 지난해에도 아베 정권은 이 노동자들이 레미콘 운임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39명을 체포하고 그중 9명을 구속했다.

 

이런 탄압을 이겨내고 일본 노동자운동이 성장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면,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 내부를 단속하려는 아베 정권의 계획에도 금이 갈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지배계급을 뒤로 물러나게 만들 수 있는 힘은 불매운동 같은 민족주의 캠페인이 아니라, 일본 내부로부터 자라나는 독립적인 노동자투쟁의 힘에 달려 있다.

 

한국 노동자의 몫

 

이것은 일본 자체적으로 노동자운동이 성장할 때까지 우리가 팔짱 끼고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일본에서 투쟁의 흐름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하는 노동자들은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주목하며 여기에서 자신감을 얻으려 한다.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제대로 단결하고 투쟁에 나서는 게 곧 일본 노동자운동의 부활에 힘을 실어주는 실질적인 연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노동자들이 불매운동 식의 민족주의 캠페인에 휘둘리면 그런 국제적 단결의 길이 막힌다. 한국 노동자와 일본 노동자가 단결해 함께 지배계급에게 맞서는 전망 대신, 한국과 일본의 대결이라는 전망이 전면에 부각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 캠페인은 한국의 노동자들이 삼성 같은 자본가들과 한 편에 서게 만들고, 문재인 정부에 정치적으로 통합되게 만든다. 민주당에서 의병을 일으켜야 할 정도의 사안운운하며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기는 게 바로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다른 길로 가야만 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기세등등하던 1929년 원산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벌였을 때에도, 원산과 일본을 오가던 화물선의 일본 노동자들은 경찰의 위협적인 눈초리 앞에서도 파업 만세!”를 외치며 파업을 열렬히 지지했다. 이런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이 더 강력하게 성장하지 못한 결과 어떤 비극이 뒤따랐는지는 그 뒤의 역사가 보여준다. 혁명가 레닌의 말처럼 전쟁 이외에 자본주의 국가의 실제 힘을 시험하는 방법은 달리 없고 있을 수도 없었다.

 

일본 제국주의를 잡으려면 일본 내부에서 아베 정권에 맞선 노동자투쟁이 일어서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의 노동자운동이 제대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 길을 열기 위해선 노동자의 정치적 독립성을 상실시키고 문재인 정부와 뒤섞이게 만드는 민족주의 전망이 아니라,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을 지향하는 국제주의 전망을 움켜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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