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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을 말하는 자들이 김원봉과 의열단을 거론할 자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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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익 조회 7,072회 2019-06-1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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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호소하며 연설하는 약산 김원봉 선생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광복군에는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고 언급했다. 또한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이 논쟁의 씨앗이 됐다. 약산 김원봉 선생의 약력이 문제가 됐다. 자유한국당 이만희 대변인은 미군 전몰장병의 희생까지 기린다면서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고 6.25 남침의 공으로 북한에서 훈장까지 받았다는 김원봉을 콕 집어 언급한 데 대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발표했다. 전희경 대변인도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자신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친일파세력과 맞닿는 게 자유한국당이다. 광복 과정에서 민족반역자로 처단될 위기를 친미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가까스로 모면했던 자들의 당이 자유한국당의 모태다.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출신이고, 이승만 정부는 일제에 복무했던 민족반역자 장교들과 경찰들을 그대로 중용했다. 이른바 국군’, ‘한미동맹의 결정적 토대는 바로 친일파 집단이었다.

 

이런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자유한국당과는 다른 정통성을 갖고 있는 것일까? 갑자기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왜 잘 어울리지도 않는 붉은 옷’(김원봉)국군한미동맹에 입히려 한 것일까?

 

김원봉의 약력

 

김원봉은 공산주의자였던 적이 없었다. 그는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는데, 다만 공산주의에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는 좌든 우든 모두가 합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의열단의 창시자였던 그는 의열단의 모든 단원들이 그러했듯,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였다. 의열단은 노동자, 민중의 집단적 힘 대신, 극소수 영웅적 투사들의 테러행위에 기반한 폭력적 민족해방을 추구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맞선 폭력해방노선은 정당했고, 목숨을 내던진 영웅적 행위의 가치도 분명했다. 또한 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종파적 분노로 어떤 협력도 거부했던 우익 민족주의와는 달리, 의열단은 사회주의 세력과의 연합에 적극적이었다. 그만큼 의열단은 진지하고 투철한 민족주의 세력이었다. 목숨을 걸고자 하는 진지한 민족해방 투사들은 의열단 주위로 결집했다.

 

실제로 의열단은 친일파와 일본 총독부를 향해 여러 차례 공격을 감행했다. 그런 공격은 당시 한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 저항의지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의열단 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에 대해 일제는 무려 100만 원(현재 환산 320억 원)의 현상금을 걸었을 정도로 두려워했다. 임시정부 수장인 백범 김구에게 결린 현상금 60만 원과 비교해보면, 의열단과 약산의 엄청난 위상을 짐작케 한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김원봉이었지만, 그는 해방 후 친일 악질 순사이자 고문 전문가에서 이승만 정부의 핵심 경찰 간부’(지금의 한국 경찰의 원조)로 변신한 노덕술에게 체포돼 뺨을 맞고 고문을 당하는 등 최악의 모욕을 당했다. 좌도 우도 아닌, 오직 투철한 민족주의자로서 남한을 선택했던 그는 풀려난 뒤 34일 동안 대성통곡을 한 뒤, 가족을 이끌고 월북했다. 공산주의자는 아니었지만(물론 과거나 지금의 북한이 공산주의 사회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친일파들이 장악한 남한 정부에 협조하는 것은 독립운동가로서의 자존심이 결코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19년 설립된 의열단

 

 

프레임

 

반민특위의 와해가 결정적이었다. 미군정과 이에 부역한 이승만 정부는 빈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해산하고, 친일파를 중용했다. 노덕술은 반민특위 조사 대상자였으나, 풀려난 뒤 이승만 정부의 경찰 핵심으로 발탁됐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났다. 국군은 박정희 같은 친일파 장교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른바 피로 맺은 한미동맹의 실체는 사실 친일파와 미국사이의 굳건한 동맹이었다. 중요한 것은 부역자들의 기득권 지키기미 제국주의의 이익이었을 뿐이다. 이것이 친일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한다는 기막힌 현실을 만들어냈다.

 

일제 부역자들은 독립투사 처단이란 과거 모토를 반공이란 새로운 모토로 치환했다. ‘반공이란 철갑옷을 두른 뒤 친일파로서의 치 떨리는 과거 행적에 대한 모든 비판의 창을 무력화하려 발악했다. ‘친일파냐 독립투사냐라는 프레임을 반공이냐 친공이냐로 치환했고, 6.25를 거치면서는 한미동맹이냐 반미냐라는 새로운 프레임까지 장착했다.

 

친일부역자들이 만들어 놓은 이 프레임은 결코 낯설지 않다. 지금껏 자유한국당이 고수하는 프레임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추념사에 대한 자유한국당의 비판은 그 프레임을 건들지 말라는 경고장이다. 박근혜 탄핵정국 속에서 자리잡았던 민주주의냐 독재냐라는 프레임을 깨고, 과거의 프레임을 부활시키겠다는 발악인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의 추념사가 이 프레임을 깬 것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다. 문재인의 발언, 그리고 이어진 청와대의 해명은 분명 대한민국 국군창설, 한미동맹이란 과거 프레임에 그대로 갇혀 있다. 다만 문재인과 민주당은 친일행적으로 누더기가 된 국군과 경찰, 한미동맹을 의열단, 김원봉이라는 새로운 좌익적 실로 꿰매 정통성을 되살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프레임의 틀은 똑같다. 의도도 똑같다. 문재인 정부든 자유한국당이든 친일행적으로 얼룩진 이 정부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드러내 바로잡을 생각이 전혀 없다. 문재인 정부든 자유한국당이든 미국(친일파들을 부활시키고 앞잡이 삼아 친미정부를 수립했으며, 제국주의 패권을 위해 소련과 충돌하면서 6.25 전쟁을 불러왔고, 지금도 북한 김정은 체제, 중국 제국주의와 충돌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위기를 불러오고 있는 바로 그 미국)과의 군사동맹을 해체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단지 문재인 정부는 심지어 친일파 정부에 실망해 월북해버린 의열단 김원봉 선생까지 활용해 관료적 국가와 한미동맹을 미화하고자 하는 반면, 자유한국당은 그런 활용은 부적절하다고 항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실제로 자유한국당만 친일파 세력을 선조로 모시고 있는 게 아니다. 민주당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한민당(한국민주당)은 창당 때부터 친일파 지주집단을 수용했으며, 해방 이후 숨죽이고 있던 친일파 지주들을 향해서 토지소유권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거라며 다독였다. 한민당은 자기 내부의 친일파들에 대해 이들이 극악한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는 아니었다는 식의 볼품없는 변명으로 둘러댔다.

 

한 때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한 민주세력의 적통을 자임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버지 김홍조는 1930년대 경상남도 통영경찰서 사찰과에서 경찰로 일했는데, 주임무는 독립지사 색출 및 불순분자 감시였다. 그는 당시 순사부장인 노덕술과 형제처럼 지냈다고 한다. 1945년 초 경찰 고위간부로서 경찰직에서 은퇴한 그는 선박업에 뛰어들어 선박을 100여 척이나 보유한 갑부가 됐다. 친일파들은 정부만 장악했던 것이 아니라 자본가로 변신해 수많은 산업을 장악했다.

 

이 시대의 의열단

 

반공이냐 친공이냐’, ‘친미냐 반미냐라는 과거 친일파 세력의 프레임은 계속 부식돼왔다. 1980년대를 거쳐 촛불항쟁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프레임은 민중의 투쟁을 통해 민주냐 반민주냐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대체됐다. 결정적으로는 19876, 7, 8월 노동자대투쟁과 민주노총 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자계급이냐 자본가계급이냐라는 새로운 화두가 떠올랐다.

 

이 새로운 화두는 착취자와 피착취자로 분열된 이 사회의 적대적인 실체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내버리기 때문에 민주당, 자유한국당을 가리지 않고 모든 지배정당들은 그것이 시대를 규정하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부상하는 것을 저지하려 발악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결연한 투쟁이 터져나올 때면, 그리고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정리해고제, 구조조정, 비정규직제도 등 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쟁점들이 솟구쳐오를 때면 노동과 자본사이의 격렬한 대치선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불평등과 계급투쟁의 문제라는 점이 진실을 거역하지 않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해져왔다. 민족해방의 과제에서 친일파 청산의 과제로, 민주주의의 과제로, 급기야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평등, 전 세계 노동자 총단결을 통한 제국주의 철폐의 과제, 즉 사회주의의 과제로 시대의 요구는 이동해왔다.

 

김원봉과 의열단이 지금으로부터 약 80여 년 전 목숨을 걸고 실현하고자 했던 민족독립, 일제와 친일파 처단은 한국인의 명예와 한국사회의 진보를 대변했던 사활적인 과제였다. 이 영웅들의 숭고한 행위는, 자유한국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 정부도 결코 계승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 할 뿐이다. 김원봉이 희망을 찾아 떠났던 북한 체제가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노동자계급을 억압하는 관료자본주의 체제는 절대 의열단의 시대정신을 계승할 수 없다.

 

이 시대의 의열단, 이 시대의 김원봉은 이 시대의 절실한 새로운화두를 자신의 임무로 떠맡아 모든 것을 거는 이들만이 붙일 수 있는 명예로운 칭호다.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평등, 전 세계 노동자 총단결을 통한 제국주의 철폐의 과제를 향한 노동자들의 집단적 운동만이 이 시대의 의열단이 될 수 있다. 바로 노동자계급만이 독립투사들의 명예를 복원하고, 친일파들, 독재자들, 착취자들 모두를 척결하며, 한국사회를 진정 정의롭고 무엇보다 진보적인 미래를 향해 전진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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