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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했던 현대중공업 법인분할 주주총회 봉쇄투쟁, 그 의미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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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석울산노동자배움터 조회 6,311회 2019-06-0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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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치기 주주총회를 막지는 못했지만, 현대중공업 조합원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투쟁했다.

 

 

531일 오후 1,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의 법인분할 주주총회 봉쇄투쟁 마무리집회가 울산 동구 한마음회관에서 열렸다. 27일부터 이어진 45일 투쟁을 마감하는 자리였다.

 

많은 조합원들이 눈물을 흘렸다. 한마음회관을 틀어막고 현대중공업 정문을 틀어막으며 필사적으로 뛰었건만, 저 멀리 울산대학교에서 열린 날치기 주주총회만은 끝내 틀어막지 못한 게 너무나 분해서였다.

 

가슴 깊은 분노였다. 정씨 재벌의 3대 세습을 위해 수많은 노동자의 생존권을 다시 한 번 벼랑으로 내모는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최소한의 상식과 절차마저 다 팽개쳐버린 자본의 발가벗은 탐욕에, 또한 자본의 편에 서서 그 악랄하고 치졸한 행태마저 비호하는 이 나라의 경찰과 정부에 그야말로 치가 떨렸다. 이 모든 일들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다가오는 월요일에도 전면파업을 이어가기로 결의했다. 각 지단별 집회도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어느 지단에서는 50대 후반의 선배 조합원이 현장에서 끝장 승부를 봐야 한다, 저도 여러분들과 끝까지 같이 하겠다고 해서 큰 박수를 받았다. 모든 집회가 끝난 뒤에도 이곳저곳에서 자발적인 분임토의들이 이어졌다.

 

과감하게 경계를 뛰어넘은 45일의 점거투쟁

 

527일 오후 330, 현대중공업지부의 한마음회관 기습 점거는 일대 도약이었다. 상당수 젊은 조합원들이 그동안 하도 많이 실망해서 지부가 이렇게까지 할 거라곤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그랬다. 2015년 이후 원하청 노동자 35천 명이 구조조정을 당하는 동안, 현대중공업지부는 의식적으로 정면승부를 회피했다. 수많은 파업을 벌였지만, 현장을 멈춰 세워 파업의 진정한 위력을 획득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위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동안 단 한 명의 구속자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법을 잘 지키는온건한 투쟁에 머물렀다.

 

현대중공업지부의 무기력한 투쟁은 대중동력의 격감으로 이어졌다. 2013년 말 민주집행부가 등장한 뒤 2014년 다시 시작된 첫 파업에 6천 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다. 20152천 명으로 떨어졌던 파업대오는 2016년 정규직 조합원에게까지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4천 명으로 다시 늘었다. 하지만 지부의 계속되는 우유부단함과 무기력으로 파업대오가 꾸준히 줄어들어 20188백 명으로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내리는 소나기는 피할 수 없다며 구조조정의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던 현대중공업지부의 전략은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세계 조선산업이 회복되면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도 끝날 줄 알았건만, 정작 돌아온 것은 대우조선 인수와 물적분할이라는 끝없는 구조조정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노동조합이 무기력한 대응만을 거듭하면서 자본의 탐욕이 하늘 높이 부풀어 오르는 걸 전혀 제어하지 못한 결과였다.

 

다행히도 조합원들은 정씨 재벌의 뻔뻔하고 가증스런 탐욕 앞에서 새롭게 분노를 모아나갔다. 대우조선과의 중복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부채의 95%를 몰아넣고 단체협약조차 승계하지 않는다는 물적분할의 실체가 알려지면서 현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물적분할 반대서명에 거의 모든 조합원이 참여했다.

 

516일 시작된 물적분할 반대파업엔 다시 25백 명의 조합원이 집결했다. 민주 집행부를 재건한 이후 처음으로 가스밸브를 잠그고 전기를 차단하며 현장을 멈춰 세우기 위한 실질적인 행위로 나아갔다. 522일 현대중공업지부와 대우조선지회가 공동으로 진행한 상경투쟁에서 조합원들은 경찰에 연행된 2명을 구출하려다 10명이 추가로 연행될 정도로 물러서지 않는 기세를 보여줬다.

 

527, 주주총회를 나흘 앞두고 주주총회 장소인 한마음회관을 전격 점거했다. 오전에 법원이 사측의 주주총회 방해금지 가처분을 받아들였지만, 간단하게 무시해버렸다. 지난 5년여 현대중공업지부를 가두었던 합법주의의 경계를 단숨에 돌파해 버린 일대 도약이었다.

 

지부 집행부의 과감한 결단은 파업대오의 뜨거운 호응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진짜 싸움을 하는구나. 그래 해보자. 젊은 조합원들의 눈빛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파업대오도 더 늘어났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집회, 침탈에 대비한 예행연습, 또 집회, 또 예행연습 . 며칠 동안 토막잠을 자면서도, 엄청난 피로에 시달리면서도 조합원들은 생기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531일 오전, 한마음회관을 연대 대오에게 맡겨두고 현대중공업 조합원들은 사측이 제2의 장소로 추진한 현대중공업 사내체육관을 봉쇄하기 위해 정문으로 달려갔다. 주주총회를 시작해야 할 10시가 그냥 지나갔다. 한마음회관이 봉쇄됐고, 현대중공업 정문도 봉쇄됐다. 주주총회는 어디서도 열리지 못했다!

 

그러나 1035, ‘1110분 울산대학교 체육관이 새로운 시간과 장소로 발표됐다. 조합원들이 다급히 오토바이를 몰고 30분을 달려가 경찰과 용역을 뚫고 체육관에 들어섰을 땐 이미 주주총회가 끝나 있었다. 어떤 조합원은 오토바이 사고가 나도 그냥 다시 오토바이를 몰고 달려갔고, 어떤 조합원은 체육관으로 들어갈 길을 열기 위해 경찰과 몸싸움을 하다 방패에 찍혀 대퇴사두근의 80%가 파열됐다.

 

그렇게 싸웠다. 정말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므로 비록 날치기 주주총회까지는 막지 못했을지라도 현대중공업 조합원들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경계를 뛰어넘는 과감한 투쟁을 펼침으로써 노동자들이 어떻게 자기 권리를 지키고 되찾을 수 있을지를 현대중공업 조합원들은 스스로 배웠고 또한 보여줬다.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울산대 체육관으로 향하던 오토바이 대오 그 처절했던 순간이 이후 투쟁을 열어젖힐 것이다. 그 역동성, 비통한 울음, 조합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죽음을 불사한 레이스로 울산대 후문 체육관을 뚫어낸 그 결기가 살아 움직여 월요일 전면파업에 확실한 현장투쟁으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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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타고 울산대로 달려가는 조합원들

 

 

문재인 정부 아래 노동자투쟁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

 

현대중공업지부의 주주총회 봉쇄투쟁에 연대하는 12일 투쟁을 위해 전국에서 2천여 노동자가 한마음회관으로 달려왔다. 30일 저녁 민주노총 영남권 노동자대회와 투쟁문화제가 이어졌고, 31일 오전 한마음회관 사수투쟁이 펼쳐졌다.

 

이 투쟁에 함께 한 많은 노동자들이 어떤 느낌을 말했다. 1987년 대투쟁을 열어젖혔던 이곳 현대중공업에서부터 다시 한 번 무언가 어떤 큰 변화가 시작될 수도 있겠다는 그런 종류의 느낌이었다. <현장투쟁 복원과 계급적 연대 실현을 위한 전국노동자모임>(전국모임)이 한마음회관에 내건 현수막 사랑한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동지들이여! 동지들이 자랑스럽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30년을 건너뛰고 연결하는 그런 느낌의 한 표현이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무엇보다, 무척 오랜만에, 특히 문재인 정부 아래서는 사실상 처음으로, 구조조정에 맞선 강력한 대중투쟁이 터져나왔기 때문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 동안 금호타이어, STX조선, 한국지엠, 대우조선 등에서, 그리고 바로 이곳 현대중공업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노동자들은 이렇다 할 투쟁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당해왔다. 그것은 한편으로 비정규직이 여전히 조직되지 못한 까닭이었고, 다른 한편으로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의 운동이 후퇴를 거듭해온 결과였다. 게다가 촛불을 찬탈한 문재인 정부를 촛불 정부로 잘못 인식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의식의 상당한 해체와 퇴보가 덧붙여진 까닭이었다.

 

문재인 정부 아래서 노동자투쟁의 실종은 대기업 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01570만이던 민주노총 조합원이 촛불을 거치며 급증하기 시작해 올해 초 100만을 넘어섰지만, 또한 그렇게 조직된 민주노총 조합원의 다수가 비정규직이었지만, 급격한 조직 확대는 투쟁의 분출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민주노총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환상을 걷어내지 못하고 경사노위 참여를 둘러싼 논쟁으로 허우적거리는 동안 문재인 정부는 자본가정부라는 자신의 본질을 점점 더 뚜렷이 드러냈다. 마침내 지난 4월초 경사노위 참여를 간절히 원하던 민주노총 위원장이 최저임금제·탄력근로제 개악에 맞서 그리고 다가올 노조법 개악에 맞서 직접 국회 담장을 뜯어내는 절박한 시위에 나서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528, 즉 현대중공업지부의 한마음회관 점거투쟁이 시작된 바로 다음날 검찰은 4월초 국회 앞 시위와 관련해 민주노총 간부 6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30일 법원이 3명에게 영장을 발부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점거투쟁이 노동자투쟁의 전면적인 부활과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강력히 억누르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사표현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현대중공업지부의 점거투쟁은 31일까지 흔들리지 않고 계속됐다. 그리고 이 투쟁에 함께 했던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가슴 속에 다짐을 안고 돌아갔다. 이제 내가 선 현장에서도 제대로 된 투쟁을 만들어내야겠다고.

 

원하청 공동투쟁으로 전진할 가능성: 승리를 위한 유일한 전망

 

많은 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에서부터 다시 한 번 무언가 어떤 큰 변화가 시작될 수도 있겠다고 느낀 더욱 큰 이유는 바로 여기서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이 거대한 규모로 터져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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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정권에 맞선 투쟁 속에서 정규직, 비정규직이 단결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

 

 

그것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었다. 지난해부터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하청 노동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대중적 흐름을 확산시켜왔고, 그 결과 510일 대우조선에서 하청 노동자 2천 명의 대규모 집회가 만들어졌다. 현대중공업에서도 임금체불에 맞선 투쟁 속에서 수백 명이 참여하는 <하청다함께> 카톡방이 만들어졌다. 530일 민주노총 투쟁문화제는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가 사회를 보았고, <하청다함께> 조끼를 입은 수십 명의 하청 노동자가 대열을 이뤄 참여했다. 금속노조 위원장도 하청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전진하자고 호소했다.

 

물론 현대중공업에서도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정규직은 내가 비정규직까지 책임질 수 있겠냐고 생각하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자기 목적을 이룬 뒤에 우리를 위해 싸워주겠냐고 생각한다. 분열과 불신의 이유는 차고 넘친다.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풀 수 없을 정도로 얽히고설킨 매듭은 단칼에 끊어내면 된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매듭을 끊어낼 때다.

 

생산을 완전히 멈춰 세우고 공장을 완전히 틀어쥐는 강력한 파업만이 날치기 주주총회를 무효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하청 노동자들의 전면적인 동참 없이 그런 파업은 불가능하다. 현대중공업지부의 파업은 하청 노동자들의 전면적인 조직화와 공동파업을 향해 단호하게 전진해야 한다.

 

3만에 가까운 하청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20~30%의 임금을 삭감 당했다. 만일 정규직이 전면적으로 손을 내민다면, 바로 지금이야말로 하청 노동자의 설움과 분노를 끝장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정규직이 아무리 옹졸했을지라도 그들은 하청의 적이 아니라 또 다른 힘겨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엄연한 동료가 아니겠는가.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간명한 목표와 그것을 기필코 이루고야 말겠다는 묵직한 뚝심이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여, 다시 한 번 과감하게 경계를 뛰어넘자! ‘법인분할 무효화하청임금 25% 인상이라는 공동의 요구를 내걸고, 전면적인 하청 노동자 조직화와 원하청 공동의 전면파업을 향해 대담하게 전진하자! 그리하여 다시 한 번 현대중공업에서부터 한국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나가자!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 순간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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