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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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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5,742회 2019-05-1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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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악수를 나눈 문재인과 황교안(사진_뉴시스)

 

 

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이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치 부역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우익의 주장을 규탄하며 프랑스 작가 카뮈가 남긴 말이다. 시대도 나라도 다르지만, 지금 우리에게도 아주 시의적절한 이야기다.

 

광주항쟁 39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면서 완곡하게 자유한국당을 견제했다. 그러면서도 학살의 주범들을 사법적으로 단죄했으며 더 이상의 논란은 의미 없는 소모일 뿐이라고 결론내렸다. “우리가 가야 할 길용서와 화해’, ‘포용’, ‘통합이라고 한다.

 

이런 태도야말로 목숨을 걸고 쿠데타 세력에 맞서 싸웠던 광주 시민들의 저항을 무의미한 희생으로 전락시키는 게 아닌가? 물론 전두환을 내란 수괴로 지목하고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 판결을 내림으로써 단죄가 이뤄졌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1997년 대선이 끝나고 일주일도 안 돼 전두환을 포함해 12.12 쿠데타, 5.18 학살극 및 비자금 사건 관련자 25명에 대한 특별사면이 이뤄졌다. 학살극을 일으킨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이 단숨에 무력화돼버렸다. 이 특별사면을 주도한 건 김영삼, 김대중 등 한 때 민주화운동 지도자로 추앙받던 자들이었다.

 

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당시 언론기사에선 국민의 74%가 조건 없는 특별사면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특별사면을 추진한 명분은 국민대통합이었다. 하지만 이는, 카뮈의 말처럼, 어제의 범죄를 처벌하지 않음으로써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행위였다. 전두환은 예금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며 추징금 납부를 거부했다. 한 인터뷰에선 광주는 폭동이야라는 망언을 터뜨렸고, 나중에는 광주항쟁 북한군 개입설까지 운운했다.

 

그럼에도 전두환 일당은 아무런 처벌 없이 무사태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 저들의 용기는 점점 자라난다. 1야당이라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공공연하게 광주 폭동’, ‘북한군 개입’,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운운하며 난동을 부렸다. 황교안은 망언 의원 징계요구를 거부한 채 대담하게 광주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주말마다 시위를 벌이는 극우단체들은 이제 광주에까지 내려가 항쟁의 역사를 모욕하고 있다.

 

바로 그런 순간에 문재인은 용서, 화해, 포용, 통합 따위의 문구로 기념사를 수놓았다. 어제의 민주화운동 지도자들이 마음대로 학살자들의 범죄에 관용을 베풀어 극우세력이 생명력을 이어가도록 길을 터준 것처럼, 오늘 문재인 정부는 또 다시 용서와 화해를 운운하며 극우세력이 기고만장해지도록 길을 터주고 있다. 극우세력의 폭동이라는 단어 만큼이나 문재인 정부의 용서라는 단어도 광주항쟁을 모욕하는 것이다.

 

애초에 문재인 정부가 그런 말을 내뱉을 자격이 없다. 학살자들에게 살 길을 열어준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 우선이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가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특별법으로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학살자들에 대한 단호한 처벌을 빼놓은 진실 규명은 솜방망이보다 무기력하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학살자들을 포함한 극우세력에 제대로 맞설 의사가 없음을 보여줄 뿐이다.

 

기대하지 말아야 할 자들에게 더 이상 기대해선 안 된다

 

공수부대의 폭동에 맞서 시민군이 무기를 들고 일어서자 그 전까지 민주화운동 지도자행세했던 인물들의 상당수가 모습을 감췄다고 한다. 김영삼, 김대중 같은 또 다른 민주화운동 지도자들도 결국 학살자들에게 면죄부를 내줬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박근혜 같은 자를 쫓아낸 힘은 결국 우리의 집단적인 투쟁에 있었음을. 이 투쟁의 고삐가 느슨해지자 민주당 같은 세력이 투쟁의 성과를 낚아채 집권하고, 그 권력으로 박근혜가 미처 완수하지 못한 재벌 자본가들의 민원사항을 하나씩 하나씩 실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노동자에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거듭 사기꾼들이 나타나 노동자를 농락하고, 기만한다. 한쪽에는 폭동 운운하며, 다른 한쪽에는 용서와 화해 운운하며 광주항쟁의 역사를 모욕하는 자들이 노동자 앞에 서 있다. 광주항쟁을 계승하려는 노동자에겐 그 둘 모두에 맞서 싸워야 할 책임이 있다.


[최종수정:  2019년 5월 19일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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