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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생일”, 연대의 공동체 속에서 새살이 돋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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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자서울성모병원 노동자 조회 5,962회 2019-04-19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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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엄마 박순남씨와 어린 동생을 지켜주는 착한 아이.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은빈에게 구명조끼를 벗어 건네고 밀어 올려주는 좋은 친구. 죽어서는 가족을 지켜달라며 외국에 있는 아빠에게 찾아가 부탁하는 듬직한 아들.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이를 생각하는 마음, 연대가 무엇인지, 공동체란 어떻게 유지되고 단단해질 수 있는지 수호를 통해 생각해 본다.

 

 

416일 아침, 영화 <생일>을 봤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생일>은 이 진부한 한 마디로 정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슬프기만 한 영화는 결코 아니다.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닌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뒤 2년 동안 엄마 순남(전도연)은 유가족들의 어떠한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고 그들을 외면하면서 어린 딸과 함께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아들의 방을 그대로 보존한 채 아들의 새 옷을 사고, 아들에게 말을 걸고, 오빤 밥도 못 먹는데 반찬투정이나 한다며 딸을 혼낸다. 한밤중에 아들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고 히스테리를 부릴 땐 정신과 약을 먹고 겨우 진정된다. 아들이 죽었을 때도 못 오고 뒤늦게 나타난 남편에게 이혼서류를 내밀며 집에서 내쫓는다. 아들 생일모임을 하자며 찾아온 사람들에게 무슨 꿍꿍이냐고 매몰차게 쏘아붙인다. 납골당에 찾아와 싸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수다 떨며 웃는 유가족들에게 소풍왔냐고 퉁을 준다.

 

순남의 아들이 벗어준 구명조끼 덕에 살아남은 은빈. 뒤따라 올라올 줄 알았던 수호가 죽자 그가 하던 알바를 하고, 그가 가고 싶었던 베트남 여행을 준비하며, 수호 교실의 책상에 앉아 남몰래 눈물짓는 등 부채의식을 가슴에 담은 채 지낸다.

 

외국 출장과 긴 수감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정일(설경구),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못난 아빠다. 공항에서 아들 여권에 출입국 도장 하나만 찍어달라고, 살아있는 사람도 아닌데 소원 하나 들어주는 게 뭐 그리 어렵냐며 울며 사정하고, 싫다는 아내에게 조심스레 아들의 생일모임을 하자고 한다.

 

이들은 웃음도, 소통도 없이 자기만의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가슴에 슬픔과 상처와 죄책감을 품고서 하루하루를 버텨낼 뿐이다. 살아있어도 사는 게 아닌 거다.

 

함께 한다는 것

 

수호의 생일모임. 수호의 어릴 적부터의 사진들로 장식된 방에 모인 이들은, 수호를 추억하는 영상을 보고, 수호에 관한 기억 한 자락씩을 이야기하며 다 같이 웃기도, 울기도 한다. 그동안 외따로 죽은 사람처럼 살던 순남, 은빈, 정일은 생일모임에서 비로소 속내를 털어놓고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상처를 조금씩 치유한다. 영화 끝 무렵, 순남은 차츰 일상을 되찾는다.

 

실제 영화의 생일모임 장면은 30분 동안 롱테이크로 촬영했다고 한다. 배우들은 연기가 아닌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며 눈물을 흘린다. 나도 그 자리에 있는 듯 보는 내내 같이 울었다.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위해 싸울 때 철저히 외면한 채, 자기 둘레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치고 오롯이 혼자, 죽은 사람처럼 슬픔과 상처를 안고 살던 순남. 반면 남편 정일은 의도치 않게 순전히 외적 요인으로 고립과 단절 속에 있었다. 이들은 생일모임을 준비하는 유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교류하면서 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상처를 치유 받고 껄끄러운 관계도 서서히 풀면서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해간다.

 

너도 처음엔 같이 울었잖아!”

 

만일 순남이 아들의 생일모임을 거부한 채 계속 자기만의 벽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더라면, 유가족과 친구들이 순남을 공동체 속으로 이끌기 위해 끈질기게 연대의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이런 변화는 가능했을까?

 

한밤중에 들려오는 순남의 울부짖음에 짜증스레 집을 나서는 옆집 딸은 너도 처음엔 같이 울었잖아!” 나무라는 엄마에게, 그렇다고 계속 참으며 함께 슬퍼해줄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항변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영화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은 유가족과 함께 슬퍼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당장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웅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 특히 순남의 변화를 통해, 공동체의 힘, 연대의 힘, 집단의 힘의 가능성에 대해 작은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고립된 개인으로 남아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엄청난 고통을 당한 뒤엔 일상을 지키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그런 일 겪고 아무렇지 않은 게 더 이상한거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마냥 슬픔에 잠긴 채 살아갈 수는 없다. 하기에 필요한 것은, 같은 고통을 겪고 마음을 이해하는, 처지가 같은 이들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보듬고 손을 잡고 앞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것이다. 이 연대의 공동체가 더 많은 대중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더 단단한 대오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대안을 찾아나아가는 것이다.

 

생일, 새로운 시작

 

이 영화는, 투쟁의 새로운 시작이라거나 계급적 단결 같은 전망을 제시하진 않는다.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애도나 추모에 그치는 것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수호가 죽은 날이 아니라 태어난 날, 생일에 맞춰 사람들은 그를 추억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바로 여기서 위로와 치유가 시작됐다. 세월호 참사는, 어쩌면 우리에게 안전한 사회를 향한, 이 체제의 부조리에 저항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한 보다 대중적인, 계급적인 투쟁을 펼쳐야 함을 일깨우는 번갯불이 아니었을까.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거대한 사회적 재난, 세월호 참사. 416일은 노동자계급이 연대와 단결의 정신으로 더 확고하게 무장하고 안전과 생명, 인간다운 권리와 평등한 공동체 사회를 위해 스스로를 다잡고 정신 똑바로 차릴 수 있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4.16, 세월호 참사는 그렇게 새로운 시작으로서 우리에게 기억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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