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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강원도 산불 | 저들은 말로는 영웅이라 칭송하고, 행동으로는 영웅의 손발을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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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조회 6,771회 2019-04-1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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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도 정규직, 비정규직 따로 있나?

 

 

처우개선 없이 산불특수진화대만 무기계약직화?

 

목숨을 걸고 야간에 산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 화재를 진압한 이들은 노동자들이었다. 영웅으로 불린 산불특수진화대 노동자들은 6~10개월짜리 단기계약직이었다. 그들은 성과금, 퇴직금도 없이 일당 10만 원을 받는다. 그들의 장비는 플라스틱 헬멧에 마스크, 천 원짜리 빨간 면장갑뿐이다.

 

여론이 움직이자 산림청은 현재 330명 규모인 산불특수진화대 규모를 두 배로 늘리고 장기적으로 무기계약직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페이스북에서 자신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린 한 산불특수진화대 노동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산불특수진화대 처우개선 없이 저희 같은 비정규직을 더 늘리겠다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고 예산이 없어서 장기적으로 무기계약직 전환을 하겠다는 것은 쌀로 밥 짓는다는 말처럼 하나마나한 뻔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시급한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고, ‘장기적으로 무기계약직 추진이라는 막연한 말만 하니 답답하다는 얘기다. 또 하나 짚어볼 점은 처우개선과 고용문제가 산불특수진화대에게만 필요한 것이냐다.


산불예방진화대는 더 열악하다. 그들은 5개월 일하는 단기계약직이고 하루 5만 원 정도를 받는다. 그런데 그들에 대해서 산림청은 이렇게 얘기한다. “산불전문예방진화대는 산불조심기간에만 한시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 여건 자체가 안 된다.”(201948일자 <참세상>)

 

갈수록 산불이 연중 수시로 일어나고 아주 크게 번진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얘기 아닌가? 산불조심기간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여론을 의식한 보여주기 쇼가 아니라면 산불특수진화대만이 아니라 예방진화대, 산불감시원 등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고용안정, 대대적인 인력충원을 위해서도 재정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앞에서 얘기한 노동자는 이렇게도 썼다. “올해뿐만 아니라 동해안지역은 매년 대형산불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고 합니다. 사고 후에 드는 엄청난 복구비용에 비해 전국에 몇 안 되는 산불특수진화대를 계속 운영하는 비용이 얼마나 될까요?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이나 될까요?”

 

누가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을 매장하는가?

 

이번 강원도 산불에서도 노동자 민중의 역량이야말로 재난을 예방할 수 있는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버팀목이라는 진실이 드러났다. 소방관, 산불특수진화대, 산불예방진화대, 산불감시원, 그리고 수많은 공무원 노동자가 발이 부르트도록 뛰면서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택시 노동자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미처 대피하지 못한 노인들을 대피시켰고,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는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하는 좁은 길 곳곳을 돌며 주민 대피를 도왔다. 누군가는 펜션을 쉼터로 내주고, 또 누군가는 이재민을 위해 무료식사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장애인들은 방치됐다. “공중파 3사인 KBS, MBC, SBS 어느 곳에서도 수어통역은 지원되지 않았다. 휠체어 탄 장애인은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대피 정보도 알 수 없었다. 방송사들은 대피 장소에 대한 안내만 할 뿐 그곳이 휠체어 접근은 가능한지, 장애인 편의시설은 있는지, 수어통역사는 있는지 등은 알려주지 않았다.”(201946일자 <비마이너>)

 

그런데 정부는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노동자의 힘을 매장시킨다. 소방관, 산불특수진화대, 산불예방진화대의 현실은 너무나 열악하다. 많은 지자체는 산불감시원이나 진화대원을 감시단속직 노동자로 분류해 연장근로수당도 지급하지 않았다. ILO는 소방공무원의 단결권 보장을 얘기하고 있다. 노동자의 권한이 증대돼야 재난을 막을 수 있다면, 소방관의 노조가입과 쟁의권 보장을 조금이라도 미룰 이유가 있는가?

 

고성 산불의 원인으로 한전의 전신주 개폐기 관리 부실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 개폐기 유지 관리조차 한전이 직접 하는 게 아니다. 외주화돼 있다. 열악한 처우와 빈약한 안전설비 때문에 수많은 전기 노동자가 개폐기를 교체 또는 신설하다 죽거나 다친다.

 

노동자의 힘을 매장시키는 모든 일은 위험 요소의 근본 제거를 가로막는다. 실제로 위험을 제거하는 사람들은 정치인들이나 정부 고위관료들이 아니라 바로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말로는 영웅이라 칭송하고, 행동으로는 영웅의 손과 발을 묶는다

 

산불진화 헬기 165대 중 야간 운행이 가능한 헬기는 하나도 없고, 산불예산은 전년대비 8%나 줄었다. 지자체 재정 자립도에 따라 소방 인력과 장비 편차가 크기 때문에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어마어마한 재난 앞에서 그 누구도 대의를 부정할 순 없다. 안전을 위한 비용은 충분히 늘릴 수 있고, 늘려야 한다. 문제는 실행능력이다. 자본가들이 노동자의 피땀을 쥐어짜 쌓아놓은 돈의 일부만 사용해도, 그들에게 강력한 세금을 매기기만 해도 충분하다.

 

게다가 수많은 젊은이와 실업자가 사회를 위해 봉사함으로써 노동의 고귀한 가치와 자존감을 확인하고, 이로부터 안정적인 생존의 기반을 얻고 싶어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이 생산해낸 사회적 부를 노동자계급의 고용을 위해, 사회의 안전을 위해 과감히 쓰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악조건 속에서도 수많은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자기 가족을 뛰어 넘는 숭고한 책임감과 희생정신을 보여줬다. 현장과 지역의 상황을 잘 아는 평범한 노동자들이 사회의 안전을 가장 잘 담보할 수 있다는 진실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대폭 향상돼야 한다. 그들의 권한이 대폭 증대돼야 한다. 그들이 내놓는 의견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와 자본가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앞에서는 그들을 영웅으로 치켜세우지만, 뒷전에서는 그들의 권한을 억압한다. 그들의 헌신과 열정을 이용할 뿐이다. 그리고 기껏해야 아주 소심하고 제한적인 지원만 한다.

 

영웅들은 이 사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일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하지만 지배자들은 한 푼의 위험수당, 한 푼의 생명수당 지급조차 거부한다. 그러다가 또 재난이 발생하면 그들은 또 다른 영웅들을 칭찬할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가 이 사회의 힘 있는 주인공으로 스스로 일어나야 가능하다. 입으로는 영웅이라 칭송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영웅의 손과 발을 꽁꽁 묶어버리고 있는 저 가증스런 지배자들에 맞서야만 한다. 이 영웅들에게 정당한 임금과 정규직 고용을 보장하라고, 이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하며 연대의 손길을 내밀자. 이들에게 단결해서 투쟁할 수 있는 권리,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함께 투쟁하자. 노동자계급이 당당히 투쟁해야만, 비로소 이 사회는 영웅들을 진정으로 존중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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