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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570명 정규직화, 더 멀리 도약하는 디딤돌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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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5,229회 2018-03-26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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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 제로정책에 앞장서기 위해 대형마트 업계 최초로 정규직 전환 내용에 전격 합의했다.” 홈플러스에서 올해 21일 임금협약 및 부속합의를 체결하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약속한 임일순 사장의 설명이다.

 

가진 자들과 부패한 정치권을 향한 대중의 분노를 낚아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는 기업들의 행보가 이어졌다. 공공부문의 인천공항공사, 민간부문의 SK가 대표 사례였다. 여기에 영화 <카트>의 주인공인 홈에버 파업노동자들의 일터, 지금의 홈플러스에서도 12년 이상 근속 노동자 570명의 정규직화 합의가 이뤄졌다.

 

정부가 바뀌더니 정말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을 품을 만도 하다. 이런 생각은 곧 사생결단 투쟁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거나, 파업은 그만 하고 문재인 정부가 잘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정확한 통계가 나온 바는 없지만, 민주노총 조합원 중에서도 적지 않은 수가 그런 생각에 이끌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을 배반하는 현상도 벌써 나타나고 있다. “정기상여금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즉 산입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건 다름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홍영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다. 그는 이에 대해서는 당내에 많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실토했다(323일자 <문화일보> 인터뷰.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원장으로서 이례적인 것 아닌가라고 묻자 나온 답변이다).


홈플러스는 다른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데 홈플러스에서 올해 초 합의한 정규직화는 (당장이 아니라 7월부터 시행 예정이고 12년 이상 근속 노동자라는 제약이 있긴 하지만) 뭔가 달라 보인다. 그간 정규직화라는 이름의 기만책으로 동원됐던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도 아니고, 최근 또 다른 기만책으로 떠오른 자회사 정규직화 같은 것도 아니다. 기존에 시행되고 있는 정규직의 직책, 임금, 승진체계에 그대로 편입된다. 게다가 실질임금을 삭감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기 위한 강제적인 근무시간 단축 같은 꼼수도 배제하기로 합의했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 사측은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 다른 대형마트 사례와는 구별되는 진짜 정규직화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홈플러스가 처음부터 흔쾌히 정규직화에 합의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애초에 사측은 홈플러스일반노동조합의 정규직화 요구를 딱 잘라 거절했다. 지난해부터 임기가 시작된 새 집행부(위원장 이종성)는 정규직화 사안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조합원들도 이번엔 파업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교섭은 몇 차례나 결렬됐다. 완강하게 버티던 사측은 일차로 15년 이상 근속 노동자의 정규직화 정도로 물러났고, 최종적으로 12년 이상 근속 노동자 정규직화 합의로 올해 초 교섭은 마무리됐다.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당시를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2007년 파업 때처럼 그렇게 싸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기왕에 파업할 거라면 즐겁게 하자고 뜻을 모았다. 우리가 그런 결의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회사가 이만큼이라도 양보하진 않았을 것이다.” 홈플러스에서의 정규직화 합의가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이와 같은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지가 일궈낸 성과라는 데 있다.


하지만 정말로 다를까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만 접한다면 정말로 회사가 통 큰 결단을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파업 경험이 있고 오랜 기간 노동조합을 지켜온 조합원들은 쉽사리 환상을 품지 않았다. 정규직화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을 취소하기 위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는 데 홈플러스가 앞장섰다는 사실에 이들 조합원들은 분개했다. 영업시간 제한이 해제되면 고스란히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홈플러스의 경우 비정규직 못지않게 정규직 노동자 처우가 매우 열악하다. 현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평균 10% 정도라고 한다. 이 때문에 57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더라도 이 때문에 회사의 비용부담이 크게 늘지는 않을 거라는 예측이 나온다.


또 다른 선제적꼼수도 발견된다.


2017년 자료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매출은 이마트나 롯데마트와 달리 쪼그라들었는데(전년대비 3.3% 감소), 영업이익은 오히려 늘어났다. 2015년에 2,408억 원이던 영업이익이 2017년엔 3,090억 원으로 뛰어올랐다.

 

비결은 간단하다. 급료와 수당이 전년대비 20.6% 삭감됐고, 복리후생비는 무려 80%나 삭감됐다. 고용된 노동자의 숫자도 201520,466명에서 201719,938명으로 줄었다. 사장들이 간단히 비용절감이라고 부르는 조치들이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이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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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도 홈플러스 판매비와 관리비 내역. 201797일자 <뉴데일리경제>에 인용된 홈플러스 자료


이런 선제적조치로 노동자들에게 꾸준히 손실을 전가한 뒤, 마치 파격적인 양보라도 한 것처럼 업계 최초 진짜 정규직화를 떠벌리는 게 홈플러스의 모습이다.


물론 이게 끝이라는 보장도 없다. 포기할 줄 모르고 끈질기게 영업시간 관련 헌법소원을 내는 것처럼, 홈플러스는 570명 정규직화가 야기할 아주 약간의 손실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또 다른 꼼수를 준비할지 모른다.


그런 꼼수에 당하지 않기 위한 비법? 먼 데서 찾을 필요는 없다. 570명 정규직화를 손에 넣을 때까지 노동자들이 잊지 않았던 태도, 즉 정부의 정책이나 회사의 선의에 어떠한 환상도 품지 않고 오직 노동자의 단결 정신과 투쟁 의지에 기대는 것이다. 그런 단결 투쟁의 힘을 단단히 모아나갈 때, 올해 570명 정규직화라는 성과 역시 더 멀리 도약할 수 있는 단단한 디딤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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