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정치

“칼 든 강도의 입장부터 인정하라”는 계급협조주의 전도사

페이지 정보

이청우 조회 6,414회 2019-03-20 15:57

본문


 

68e48770e20cdb86104a2fc0a9b0fc90_1553064979_2831.png
3월 14일자 <매일노동뉴스>에 실린 이남신의 칼럼

 

 

“어느 마을에 칼을 든 강도 무리가 나타나 가진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우선 마주 앉아서 강도의 입장부터 인정하고 이해해보라’고 충고한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가진 것의 절반을 내줬다. 강도 무리는 전부 빼앗아가지 못해 아쉬워하면서, 내년에 다시 오겠다며 떠났다.” 

 

어느 우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아니다.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는 이남신이 <매일노동뉴스> 칼럼(3월 14일자)에서 쓴 글을 비유해본 것이다. 이남신은 경사노위에 반대하는 주장을 비난하면서, “상대방의 존재와 처지, 입장부터 인정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대화는 불가능하고 효능도 없다”고 썼다. 그렇다. 개인 간의 대화를 풀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세다. 그러나 문제는 이남신이 개인 간의 관계에 적용할 자세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에 사회적 대화란 이름으로 끌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취약 계층 노동자들을 외면해선 안 된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는 일념”, “일터에서 차별받고 고통 받으며 남몰래 눈물 흘리고 있을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개선” 등을 위해 사회적 대화는 필수라고 주장하는 이남신의 칼럼은 한 문장 한 문장 절절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안에 일부 ‘전향적인 내용’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가 야합한 합의안 어디를 뜯어봐도 전향적인 내용은 찾을 수가 없다. 자본가들은 애초에 단위기간 1년을 요구했는데, 6개월로 합의했으니 전향적이고 자본가들이 양보한 것이라 볼 텐가? 임금보전방안을 마련해 노동부장관에게 신고하고, 신고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한 것을 전향적이라고 보는가? 탄력근로제 자체가 노동자의 공짜노동과 장시간, 과로노동을 부추기는 것인데, 그러고서 오남용 방지책을 마련한다는 건 이율배반이다. 그마저도 노동자의 90%가 미조직 상태인 현실에서 ‘근로자대표’와의 합의를 통해 다 면제될 수 있다.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가 바로 ‘차별받고 고통 받으며 남몰래 눈물 흘리고 있을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합의다. 그렇기 때문에 탄력근로제 야합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일어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경사노위 해체를 요구했다. 그런데 사회적 대화론자 이남신은 심지어 탄력근로제 합의에도 전향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고 포장하며, “사회적 대화나 경사노위를 아예 부정해 버리는 건 한국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경사노위를 통해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하자? 

 

이남신은 더 나아가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회적 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썼다. 노사 모두 조금씩 양보하고 정부는 지원해야 한다는 말일 테다. 자,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것인지 로드맵이나 모델을 제시해보라.

  

사회적 대화론자들은 박근혜와 문재인 정부 모두로부터 노사협력과 상생 모델로 추켜세워지는 SK하이닉스의 임금공유제를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2015년 SK하이닉스 노사는 임금인상분(3.1%)의 10%인 30억씩 내놓아 60억을 4천여 명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첫째, 하청 노동자들에게 지급된 금액은 150만 원, 고작 시급 4백 원이다. 이로 인한 임금인상 효과가 약 6.5%라고 하니, 이전 임금은 2,300만 원 수준이란 얘기다. 이와 별도로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됐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원하청 자본이 부담해야 할 하청 노동자의 임금인상분을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에서 떼어준 것이다. 이것을 두고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 모델로 칭송할 수 있는 뻔뻔한 자들은 앞으로 나와 보라. 

 

둘째, SK하이닉스는 2015년 4조 3천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임금공유제를 위해 내놓은 30억 원은 당기순이익의 고작 0.7%다. 이때까지 SK하이닉스가 쌓아놓은 이익잉여금은 13조 6천억 원(사업보고서 기준)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사회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는 SK하이닉스 박성욱 사장은 2015년에 15억 5천만 원의 보수를 받았고, 하청 노동자들에게는 시급 400원을 올려줬다. 이 얼마나 역겨운 자본가들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인가. 

 

정부와 자본, 사회적 대화론자들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주문만 반복적으로 외울 뿐,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어마어마한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진실은 애써 감추고 있다. 

 

계급 경계선 지워버리기

 

생산수단과 교환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함으로써만 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 반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고용돼야만 임금을 받아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임금노예라 불린다. 임금과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자본가의 이윤을 침해해야 한다. 이렇게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은 적대적인 이해관계에 놓여있다. 그런데 이남신은 마치 두 계급 사이에 적대적인 경계선이 없는 것처럼 서로 상대의 처지와 입장부터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사업장 단위의 노사협조주의가 사회적 차원으로는 계급타협주의로 나타난 것이다. 현장에서 “노사 모두 윈윈하면 좋은 거 아니냐”, “사측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왜 문제냐”와 같은 말들을 듣는다. 그러나 ‘윈윈’으로 포장된 그럴싸한 주장은 실제로는 항상 노동자의 양보와 희생으로 귀결된다. 자본주의에서 적대적인 두 계급 모두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기구, 경사노위는 자본의 요구와 정부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다. 계급협조주의로 노동자계급을 꽁꽁 옭아매 무장해제하는 수단이다. 이남신의 말처럼 탄력근로제 합의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게 아니라, 경사노위의 계급적 성격이 그런 것이다. 누구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은 적도 없고, 누구로부터도 통제받지 않은 채 비정규직 대표를 자임하며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는 이남신(“경사노위: 대표성 없는 대표들의 사회성 없는 사회적 대화” 참조)은 계급협조주의 전도사일 뿐이다. 

 

계급협조주의 VS 노동자계급의 독립성과 대안

 

조직 노동자운동은 90%의 미조직 노동자들과 다르게 너무나 귀족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고,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기구에 들어가서 양보와 타협을 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는가?

 

아니다. 다른 길이 있다. 조직 노동자운동이 전체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진짜 계급적인 단결을 위해 자신의 힘을 제대로 동원하는 것이다. 전체 노동자계급의 삶의 개선을 위해, 불평등과 양극화의 실질적인 해소를 위해 자본의 이윤과 소유권을 침해하는 과감한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이 사회에 재원이 없는 게 아니다. SK하이닉스를 포함하여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883조에 이른다. 극소수 재벌이 움켜쥔 이 막대한 부를 사회 전체를 위해 사용하면서 경제를 재조직하면 된다. 자본가들이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이윤을 목적으로만 작동하는 자본주의를 해체하고, 사회 전체의 필요를 위해 작동하는 새로운 구조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가령 조직 노동자운동이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인상하라고 요구하며 결사적으로 싸운다면? 그것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을 폐기하고 올해 최저임금 인상분 820원만큼이라도 시급이 오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싸운다면? 정규직 임금 깎아서 시급 400원 올려주겠다는 정부와 자본가의 허튼소리가 가난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청와대, 정부, 여야 가릴 것 없이 장시간, 과로노동을 유발하고 임금은 강탈하는 탄력근로제 확대를 밀어붙일 때, 조직 노동자운동이 재벌의 사내유보금으로 노동시간 단축, 양질의 일자리 창출, 저녁 있는 삶을 제공하라고 과감하게 투쟁에 나선다면 미조직 노동자들이 누구 편에 서겠는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섰다고 하지만, 노동자들은 전혀 체감할 수 없다. 양극화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7년에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6%를 가져갔다. 이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상위 1%는 IMF 이후 소득비중이 급상승해 2017년 전체 소득의 15.26%를 가져갔다.

 

이런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한 자본주의 자체가 계급적 단결의 기초를 만들어준다. 단, 조직 노동자운동이 전체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서 투쟁을 조직할 때 말이다. 그 길에 나서기 위해서는 경사노위나 사회적 대화는 걷어차고, 노동자의 이름으로 독자성을 유지해야 한다.

 

 

 

<가자! 노동해방>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소식을 스마트폰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텔레그램 검색창에서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을 검색해 채널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노동해방투쟁연대)도 있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노동해방투쟁연대

텔레그램 채널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

유튜브 채널 노해투

이메일 nohaetu@jinbo.net

■ 출력해서 보실 분은 상단에 첨부한 PDF 파일을 누르세요.

■ 기사가 도움이 됐나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온라인 정치신문 <가자! 노동해방>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058-254774 이청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목록

Total 963건 58 페이지
게시물 검색
로그인
노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