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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 우리는 상관없습니다” - 정말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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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조회 7,919회 19-03-2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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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날개를 달아주다

 

“우리 사업장은 계절적 영향을 많이 받는 건설업도 아니고, 특정기간에 업무가 집중되는 IT, 조선업도 아니다. 그래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려도 영향 받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영원히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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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월 단위기간을 연달아 설정하는 경우 벌어질 일.(그림_노컷뉴스)

 

 

3개월과 6개월은 차이가 크다. 사장들은 탄력근로제를 훨씬 폭넓게 운영할 수 있다. 사장들은 더 과감해진다. 

 

자동차공장_ 자동차공장 연구소에서 신차 출시 전 4~5개월 동안은 노동시간을 64시간까지 늘리고, 출시 시점부터는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줄이는 게 가능하다. 연구소만 아니라 공장도 가능하다. 주간연속2교대 사업장은 힘들지만 한국지엠 부평2공장 같은 1교대 사업장 또는 상시주간 사업장엔 부분적으로 도입될 수 있다. 부품사도 완성차와 똑같은 패턴으로 도입이 가능하다. 

 

발전소_ 대부분의 발전사들은 3개월 단위 탄력근로제를 도입해 둔 상태다. 아직까지는 임금삭감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지는 않은데, 앞으로 계획예방정비가 있을 때 1.5개월은 52시간 일을 시키고 1.5개월은 28시간 일을 시키며 연장수당을 주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이번에 단위기간이 6개월로 늘어나면 그걸 바로 적용할 수 있다. 

 

제철소_ 제철소는 ‘셧다운’ 공사라는 집중 정비(공사)가 있다. 현대제철은 사내하청뿐 아니라 수많은 외주업체를 쓰고 있고, 셧다운 정비도 외주업체가 하는 경우가 많다. 외주업체가 탄력근로제를 활용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지난 2월 현대제철에서는 외주업체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었다. 그만큼 노동조건이 열악한데, 여기에 탄력근로제까지 마구잡이로 확대되면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할까? 

 

경제위기에 따라 생산물량의 감소, 변동 폭은 더 커질 수 있다.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면서 임금은 줄이려는 자본가들의 욕망은 커진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는 자본가들의 욕망에 날개를 달아준다. 

 

내 임금만 보전해주면 괜찮은가?

 

미조직 사업장에서 어떤 사장이 임금보전을 해주겠는가? 사실상 유령이나 다름없는 ‘근로자대표’와 합의만 하면 노동부에 임금저하 방지책을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데. 과반수 노조가 있는 경우는 다를 것이다. 일단 과반수 노조가 합의하지 않으면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수 없다. 그런데 과반수 노조가 어느 정도의 임금보전을 약속받고 탄력근로제를 합의해 주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재 주 52시간을 일하고 있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탄력근로제를 반대하지만, 잔업수당만 지급되면 탄력근로제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도 있다. 주 52시간 노동만으로는 생활임금이 보장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정규직 노조가 정규직의 임금보전만 생각하고 탄력근로제를 받아들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건강을 잃는 건 말할 필요조차 없다.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권, 현장의 통제권을 회사에 빼앗겨 자본의 다른 공격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일자리도 늘리지 못한다. 자본은 기존 인원을 가지고 일을 몰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를 묵인하고 용인하는 게 청년 세대의 희망이어야 할 민주노조운동의 올바른 자세인가?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은 내년부터 주 52시간을 적용받는다. 원하청 자본이 곧바로 탄력근로제를 전면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청 노동자의 반발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하청 자본은 탄력근로제를 조금씩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경우 노동자들이 각개격파 당할 위험이 있다. 대부분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이 함께 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직 노동자가 뒷짐 지지 말고 탄력근로제 확대를 막기 위해 적극 나서고, 원하청 연대를 위해 싸워야만 미래의 불행을 막을 수 있다. 

 

지금도 너무 힘들다

 

탄력근로제를 비롯해 노동시간 단축 효과를 무력화하려는 자본가들의 공세 앞에 조직 노동자라고 자유로울 순 없다. 이번 경사노위 야합을 비판하며 청년 노동자의 탄력근로제 반대선언을 제안한 임종린 파리바게트 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갑작스레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회사는 기업노조를 방패삼아 민주노총과는 일절 대화를 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시행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① 오늘 한 시간 연장했으니 내일은 한 시간 일찍 퇴근하라고 한다. 다음날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한 시간 일찍 퇴근하지 못하게 돼도 노동자는 스스로 유령근무를 선택하게 된다. ② 오버된 시간을 잘라서 다음 주로 넘겨버리면 그 시간은 연장근무가 아니게 되어 1.5배를 받을 수 없게 된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크리스마스 당일 연장 발생에 대비해 크리스마스 며칠 전부터 퇴근을 일찍 시키고 일찍 퇴근시킨 그 시간을 모아 크리스마스 연장으로 퉁쳤다.”

 

이 사례에 나오는 미니 탄력근로제도 이렇게 노동자를 심하게 괴롭히는 수단이 되는데, 진짜 탄력근로제의 기간이 늘어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분명하지 않은가? 그나마 파리바게트는 민주노조가 있는 사업장이다. 미조직 사업장 노동자들은 이런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임종린 지회장은 탄력근로제 반대선언을 제안했다. 

 

사실 지금도 수백만 노동자는 탄력근로제와 무관하게 공짜 야근, 공짜 시간외노동을 하고 있다. IT업종에서는 일하는 시간에 관계없이 연장근로수당을 미리 합한 금액을 급여로 지급하는 포괄임금제가 판을 친다. 수많은 영세사업장에서는 노동시간 규제가 작동되지 않는다. 탄력근로제 개악 저지만이 아니라 포괄임금제 폐지, 모든 공짜 야근, 공짜 시간외노동 폐지,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함께 제기해야 하는 이유다. 

 

정치적 시험대

 

그 어떤 노조도 탄력근로제 확대가 자신과 상관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건 정치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탄력근로제가 직접 도입되는 사업장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만이 아니라, 탄력근로제 확대의 정치적 의미 때문에 그렇다. 

 

정부는 어떻게든 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제 합의를 밀어붙이려 했다. 저들은 방어력이 취약한 미조직 노동자들을 집중 겨누는 탄력근로제 확대를 먼저 다루면서 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사이의 골을 깊게 파려 했다. 조직 노동자의 배신, 무기력한 대응, 끝없는 양보를 이끌어내려 했다. 민주노총에 대한 미조직 노동자들의 더 많은 불신을 이끌어내려 했다. 

 

다행스럽게도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불참했고, 야합에 도장을 찍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노동자운동이 저들의 의도를 완전히 꺾은 건 전혀 아니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지금 민주노총이 말로만 반대할 뿐, 투쟁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무기력하게 밀린다고 생각해보자. 저들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라는 노동개악 전초전 승리를 바탕으로 무제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삭제, 사업장 내 점거 및 쟁의행위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쟁의행위 절차 엄격화 등 사상 최대의 노동개악을 거침없이 밀어붙일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이 제대로 맞설 수 있겠는가? 무슨 권위로 미조직 노동자에게 지지와 연대를 호소할 수 있겠는가? 

 

국회나 경사노위 쳐다보면서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다. 당장 현장의 모든 조합원에게 3월 27일 전국노동자대회 결집을 호소하자. 안이하고 느슨한 생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전면적 투쟁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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