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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 대표성 없는 대표들의 사회성 없는 사회적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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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7,147회 2019-03-1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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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축발언은 우연히 나온 게 아니다. 들러리를 원하는 지배계급의 욕망이 슬며시 흘러나온 것일 뿐.(사진_연합뉴스)

 

37일에 이어 11일에도 여성, 청년, 비정규직 계층별 대표 3이 불참하면서 경사노위 본위원회 의결이 무산됐다. 경사노위의 효용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여전한 환상

 

하지만 경사노위를 통해 사회적 대화가 의미 있게 이뤄질 수 있다는 환상이 여전히 강력하다. 다름 아니라 본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던 계층별 대표 3스스로가 그렇다. 이들 대표 336일 성명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아직도 경사노위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은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제대로 다해야 합니다. 민주노총도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하여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장외투쟁만으로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기 어렵습니다.”

 

이 몇 문장에 담긴 혼란과 환상에 대해선 조금 뒤에 살펴볼 것이다. 그 전에 경사노위의 대표성이란 환상을 먼저 짚어보자. 경사노위는 노동, 자본, 정부를 각각 대표하는 18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민주노총의 불참 결정으로 지금은 17명으로 구성). 그런데 그 위원들에게 누군가를 대표할 수 있는 권한을 누가 줬을까?

 

양도한 적 없는 대표성

 

잠깐이라도 차분하게 생각해 본다면, 저 대표들의 대표성이란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자본과 정부를 대표하는 위원들이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할리는 없으므로 그들은 논외로 하자. 경사노위에 참여한 한국노총과 여성, 청년, 비정규직 계층별 대표 3이 노동자를 대표할 수 있는 권한을 누가 줬을까?

 

노동자들은 그런 권한을 양도한 적이 없다. 한국노총은 전통적인 어용노조로서, 노동자 전체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도 수시로 팔아넘겨 왔다. 여성 대표가 속한 전국여성노조가 한국의 여성 노동자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청년 대표가 속한 청년유니온, 비정규직 대표가 속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의 반발

 

청년유니온의 경우 같은 단체 대의원이 2차 경사노위 본위원회를 앞두고 대표의 불참을 촉구하는 호소문이 나오기까지 했다. 호소문을 낸 청년유니온 대의원은, 지금 청년유니온이 있어야 할 곳은 경사노위가 아니라 청년 노동자와 어깨를 걸고 실질적인 반대와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라고 역설했다.

 

36일엔 파리바게트, 네이버, 라이더, 방송작가, 택배기사 등 다양한 직종의 청년들이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경사노위를 향해 재벌들의 숙원사항을 처리하기 위해 청년을 도용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거짓말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항의

 

계층별 대표 3이 경사노위 본위원회 참여를 고민하고 있는 동안,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에 참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35월부터 7일까지 경사노위에서 항의농성을 벌였다.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경사노위란 노동개악위원회일 뿐이며, 해체해야 마땅하다고 외쳤다.

 

요컨대 한국노총 위원장과 저 계층별 대표 3이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얘기는 민족대표 33인이 3.1운동을 대표했다는 얘기만큼이나 실없는 소리다. 이로부터 경사노위의 실체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대표성 없는 대표들을 자리에 앉혀 놓고 사회적 대화, 사회적 합의라는 환상을 조장하는 것이다.

 

대화의 전제조건이 결여됐을 때

 

대표성 없는 대표들의 사회적 대화가 허상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점도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이 점을 다루기 위해 처음에 인용했던 계층별 대표 3의 주장으로 돌아가 보자. 이들은 장외투쟁만으로 전체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기 어렵기 때문에 민주노총도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화가 이뤄지려면, 그 대화 참가자들이 동등한 위치에 서야 한다. 동등한 위치가 전제되지 않은 대화는 대화의 탈을 쓴 강제, 명령, 압박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면 경사노위에 참가하는 대표들의 위상을 보자. 정부를 대표하는 자들에겐 정치권력이란 무기가 있다. 사용자를 대표하는 자들에겐 경제권력이란 무기가 있다. 한국노총 위원장과 계층별 대표 3에겐 저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는 무엇이 있는가?

 

솔직하게 얘기해보자. “투쟁할 생각이면 들어오지도 말라던 경사노위 문성현 위원장의 으름장을 듣고도 고분고분 경사노위에 들어간 이상, 저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한다는 건 애당초 기대할 수도 없다. 여기에서 나올 수 있는 결과란 한국노총 위원장처럼 탄력근로제 밀실야합에 동참하거나, ‘계층별 대표 3처럼 들러리 역할에 머무는 것이다. 이들 3인이 본위원회 불참을 알리면서 거수기로만 전락하는 식이었다고 불평하게 된 것도 너무나 자연스런 결말이 아닌가.

 

민주노총은?

 

계층별 대표 3의 희망처럼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들어가면 사회적 대화가 이뤄질까? 여기서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치권력, 경제권력을 갖고 있는 자들에 맞서 민주노총이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는 무엇이 있는가?

 

적어도 수십만 조합원을 거느린 거대 노동조합이란 점에서 전국여성노조, 청년유니온, 한국비정규노동센터보다는 큰 힘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한국노총을 보라. 아무리 큰 노동조합일지라도, 그 조직의 힘을 동원할 생각이 없다면 종이호랑이일 뿐이다.

 

계층별 대표 3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민주노총은 오직 장외투쟁에서 자본의 이윤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강력한 투쟁을 조직할 때 비로소 정부 및 자본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는 힘과 가능성을 갖는다. 그것도 일부 조직 노동자들(조합원들)만의 협소한 이익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고 그럼으로써 수백만 노동자들의 사회적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 때에야, 민주노총의 발언은 진정한 계급 대표성사회적 힘을 갖는다.

 

바로 그 순간 사회적 대화가 시작된다. 즉 실질적인 사회적 대화란, 서울시 종로구 에스타워 경사노위 사무실이 아니라 계급 대 계급의 힘이 충돌하는 투쟁의 현장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어디가 인가?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바로 이 점에서 결정적인 약점, 아니 위험성을 갖고 있다. 김명환 위원장은 “(경사노위) 바깥에서 비판하는 평론가로 남기보단 사회적 대화라는 링 위에서 선수로 뛰면서 노동·산업정책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2019121<매일노동뉴스>). 그에게는 경사노위가 진짜 이다. 다시 말해 그는 어디가 링이고 어디가 잡담가게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이렇게 분별력을 잃고 좌충우돌하면 현장의 혼란은 더 커지고, 투쟁력은 마비된다. 자본과 정권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그 사이에 자본가들의 숙원사업인 노동개악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성 없는 대표들의 사회성 없는 사회적 대화 사기극에 서둘러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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