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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LA교사파업: 지난해 교사파업 물결을 더 멀리 밀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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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7,252회 2019-01-3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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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인종, 나이 등으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 이것이 노동자투쟁의 힘!(사진_AP)

 

 

LA 교사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114, 많은 비가 내렸고 이 비는 며칠간 계속됐다. 하지만 궂은 날씨에도 5만여 명의 교사들과 지지자들이 모여 집회와 행진으로 위력을 과시했다. 파업 조합원들은 매일 아침 530분부터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형편없는 처지

 

이미 지난해 초 웨스트버지니아에서 교사들의 인상적인 파업이 진행됐고, 그 투쟁 물결은 오클라호마, 아리조나 등 다른 지역으로 확산돼 나갔다. LA 교사들의 파업이 그 연장선에 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LA교사노조는 지난해 8월 파업 찬반투표에서 98%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결의를 모은 후, 몇 달에 걸쳐 LA통합교육구 측과 교섭을 벌였다. 지난해 투쟁을 계기로 드러났듯이, 지역마다 편차는 있지만 상당수 교사들은 투잡을 뛰어야 생계가 가능할 정도로 형편없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LA 교사들도 임금 인상 요구를 내걸었다.

 

그러나 임금이 전부가 아니었다. 기존의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를 혼합한 이른바 차터 스쿨(재정은 공적으로 지원, 운영은 민영화)을 의도적으로 늘리고 이런 학교에 지원을 확대하면서, 공립학교에 대한 재정 지원은 점점 더 악화됐다. 한 교실에 초등학교 4~6학년은 39, 중학교는 43, 고등학교는 46명을 몰아넣었다. 50명을 앉혀 놓고 영어 수업을 하는 사례도 있다. ‘콩나물 교실이 따로 없다.

 

많은 학교에 상주 간호사(한국의 보건교사)가 없고,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하는 경우도 많다. 학생들이 일주일에 한 번만 골라 아프거나 다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학교에 도서관은 있는데 사서교사가 없어서 책을 빌려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상담교사도 부족하다.

 

그래서 파업 교사들은 학급 인원수를 줄일 것, 보건교사와 사서교사, 상담교사 등의 숫자를 늘릴 것을 핵심적으로 요구했다. 이를 위해 학급 인원수 제한을 무력화한 기존 단협 조항을 폐기하는 것도 요구에 포함했다. 이는 교사들의 노동조건과도 직결되고, 공립학교 학생들이 차별받지 않고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과제와도 직결된다.

 

정당한 투쟁

 

하지만 LA통합교육구는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일관하며 노조와의 교섭을 파행으로 이끌었다. 똑같은 핑계를 대면서 지난 10년간 교사들의 임금이 동결돼 왔다. 교사들에 대한 통제와 경쟁을 강화하기 위해 교원평가 시스템을 확대하고, 교사들에 대한 해고 권한도 강화하려 했다


그런데 LA가 속한 캘리포니아 주에 210억 달러(234천억 원)의 잉여예산이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LA통합교육구는 궁색한 처지가 됐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에 속하면서도,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투자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저들의 실체가 드러났다.

 

1989년 파업 이후 30여 년 만에 벌어진 이 투쟁은 많은 지지를 받았다. LA교사노조 조합원 숫자는 34,000여 명인데, 파업 집회와 행진에는 5만여 명이 모이곤 했다. 교사들은 투쟁의 정당성을 움켜쥐고 있었다. 지난달 15일에도 5만여 명이 모여 공교육은 우리의 권리다”, “LA 노동자들이여 이 투쟁에 함께 하자”, “교사파업을 위해 모두 일어서자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마침내 114일부터 파업이 시작됐을 때, LA통합교육구는 이 파업을 깨기 위해 두 배의 임금 지급을 미끼로 내걸면서 대체교사를 파업파괴자로 투입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제안을 받은 대체교사들 역시 파업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대체인력 투입을 통한 파업파괴 책동은 실패했다.

 

강력한 단결

 

이런 양상은 이번 LA 교사파업의 특징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단결함으로써 정말로 우리의 대의명분이 강화됐다. 이번 파업에서 나는 이 점을 절대로 잊지 않을 거다.” 


단결은 결코 ‘LA교사노조 조합원이라는 잣대로 제한되지 않았다. 학교에는 교사들뿐만 아니라 식당과 통학버스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조(SEIU, 전미서비스노조) 지도부는 교사파업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했지만, 적어도 10개 이상의 학교에서 SEIU 현장 조합원들은 연대파업을 조직했다.

 

더 나아가 팀스터노조를 포함한 지역의 트럭과 버스 노동자들, 항만 노동자들, 영화산업 노동자들이 파업을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함께 피켓을 들고 시위에 동참했다. 학부모들과 학생들도 교사들과 나란히 섰다.


이는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공화당 트럼프 정부는 배타적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따위를 부추기면서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 단결 정신을 마비시키려 해 왔다. 하지만 이번 파업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은 성별, 인종, 나이 같은 경계선을 넘어 하나의 대열로 단결했다.

 

파업 조합원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흑인이나 히스패닉, 동양인이 많았고, 당연히 학생들도 그랬다. 경쟁과 효율성을 앞세워 가난한 교사와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피해를 떠넘기는 자본가정부에 맞서는 과정에서 이들은 단결하지 않고선 결코 제대로 싸울 수도, 힘을 발휘할 수도 없다는 진실을 이해한 것이다. 그들은 동료 노동자들과 손잡고 나란히 섰다. 성별, 인종, 나이 같은 경계선으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저들의 시도는 실패했다!

 

이 점은 최근 몇 년간 벌어진 버라이즌과 AT&T 같은 통신 노동자들의 파업,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출발한 몇 차례의 교사파업에서 비슷하게 나타난 특징이다. 그리고 이는 미국에서 노동자운동이 지난날의 오랜 침체 분위기를 떨쳐내면서 조금씩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정치적 독립을 향해 한 걸음

 

그런데 올해 LA 교사파업은 지난해 교사파업 물결과 중요한 차이점도 갖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대부분 공화당이 주 정부와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서 교사파업이 벌어졌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트럼프와 맞서는 위치에 서게 됐는데, 민주당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런 상황을 활용하려고 했다


그들은 이런 투쟁의 성과를 자신들의 선거운동으로 끌어갔다(작년 11월 중간선거 결과 민주당이 하원에서 다수당이 됐다). 파업 노동자들도 미국 노동자운동의 고질병인 친민주당 흐름을 벗어나진 못했다LA 교사파업은 상황이 다르다. 여기서는 민주당이 주 정부와 주 의회, LA통합교육구를 장악하고 있다


모든 걸 집권 공화당과 트럼프 탓으로 돌리는 민주당 세력의 선동은 전혀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다. 트럼프에게 힘을 보탤 순 없다는 이유로 민주당에 대한 정치적 지지로 귀결됐던 그간의 모습과는 달리, 여기서 노동자들은 출발점에서부터 민주당의 반대편에 서야 했다. 민주당 권력자들이 교사들의 정당한 요구를 악랄하게 거부하고, 대체인력까지 투입해 파업을 파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노동자들은 관습처럼 이어지던 친민주당 경향의 치명적 한계를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지금껏 공화당과 번갈아 집권하며 노동자들에게 환상을 불어넣고 기만해 왔던 민주당까지도 투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한 번의 파업으로 일체의 자본가정당과 단절하는 정치적 독립을 쟁취하긴 어려웠겠지만, 그런 방향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중한 성과와 함께 약점도 드러났다

 

민주당과의 정책협약 수준에 손발을 묶지 않고 최대한 노동자의 단결투쟁의 힘을 동원하려 했기 때문에, 완강하게 저항했던 LA통합교육구가 결국 양보하기 시작했다. 122일 잠정합의안이 나왔다. LA교사노조는 6.5% 임금 인상을 요구했지만 교섭 결과는 6% 인상에 그쳤다. 하지만 교사들이 더 주의를 기울였던 다른 항목들에선 LA통합교육구의 고집스런 태도가 깨졌다.

 

2022년까지 각 학급당 학생 수를 4명씩 줄이고, 향후 3년간 300여 명의 보건교사, 80여 명의 사서교사, 17명의 상담교사를 추가로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LA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민가정과 그 자녀들을 지원할 수 있는 변호사도 배치하기로 했다. 이는 교사파업의 힘을 보여준 소중한 성과다. 그래서 많은 파업 조합원들이 환호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비판적인 반응도 나왔다SNS에선 학교와 교사들의 열악한 처지에 비춰볼 때 결과가 너무 보잘 것 없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진짜 문제는 투쟁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서둘러 진행됐다는 점이다. 22일 아침 집회를 마친 조합원들은 언론을 통해 잠정 합의안이 나왔다는 뉴스를 접하고, 오후 4시쯤에는 벌써 잠정 합의안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는 식이었다. 40쪽짜리 복잡한 합의서가 나왔는데 조합원들에겐 그걸 검토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교섭의 세부사항을 알기도 어려웠고, 조합원들끼리 모여 토론할 수 있는 여지도 거의 없었다.

 

성과를 디딤돌 삼아 더 멀리

 

일주일 넘게 전면적인 파업을 벌이면서 빨리 학교로 돌아갈 수 있길 원하던 대부분의 교사들은 잠정 합의안에 찬성표를 찍었다. 이번 투쟁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을 것이고, 지난 2년간의 단협도 없었던 상태를 벗어나 마침내 단협을 체결한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 노동자들은 교섭 결과를 제대로 공유하지도, 토론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너무 서둘러 타결했다는 점에 강한 문제의식을 느꼈다.

 

이런 문제의식이 아래로부터의 행동 조직화로까지 즉각 나아가진 못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지배계급과 그들의 정당들은 이번 파업에 밀려 내준 알량한 양보를 다시 회수하기 위한 술책을 모색할 것이고, 노동자들은 이번 투쟁으로 쟁취한 성과만으로는 넌더리나는 현실을 제대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을 것이다.

 

지난해 교사들의 파업이 이 도시 저 도시로 번져나갔던 것처럼, 올해 LA 교사들의 파업은 다른 지역, 다른 산업 노동자들에게 충분히 진취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어지는 다음 투쟁에서는 또 다른 한걸음 전진을 일궈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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