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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왜 살인을 계속 용인해야 하는가? 기업살인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활동가에게 듣는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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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조회 7,115회 2019-01-2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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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28년 만에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의 여러 한계 중 기업주 처벌의 하한형(1년 이상) 삭제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지금처럼 집행유예나 벌금 받고 끝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기업살인법의 의미를 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여전히 국회에 잠들어 있다. 노동건강연대는 2003년부터 기업살인법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줄기차게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라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활동가를 만나 기업살인법의 문제의식과 노동안전투쟁에 대한 고민을 들었다. 인터뷰는 두 번에 나눠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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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죽음은 기업이 저지른 살인이며, 마땅히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기업살인법이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는 용어는 법적 용어는 될 수 있겠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에게는 잘 안 와 닿고 취지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 저희가 기업살인법을 처음 소개했을 때 취지는 노동자의 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라는 이거 딱 한 가지였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기업살인법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지금 국회에는 여러 개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발의돼 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원청 기업의 법적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원청 사업주의 안전조치의무 및 보건조치의무 강화, 재해에 대한 경영책임자 처벌 강화, 노동자 사망 시 가중처벌 및 징벌적 손해배상, 중대재해 기업 5년 이내 영업정지, 5년 이하 보호관찰, 공공기관이나 국가행정기관도 처벌대상 포함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안전의무를 소홀히 해 얻는 이익보다, 재해를 일으켰을 때 받는 불이익이 적으면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기업살인법을 소개한 처음의 취지는?

 

노동건강연대의 출발은 1988년 만들어진 노동과건강연구회였다. 30년 정도 됐다. 1988년 문송면이라는 열다섯 소년이 온도계를 만들다 수은중독으로 죽었다. 그 사건 이후로 계속 열악한 노동환경과 기업이 노동자를 죽이는 문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해 왔다. 2001년 노동건강연대 설립과 동시에 기업살인법 운동이 제안됐다. 영국에서 이런 운동을 한다더라.

 

그런데 영국에서의 운동 취지는 법 제정 자체가 아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이 이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지르는지 사회적으로 널리 알리고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저항이 확산되면 법이 만들어질 수 있겠지만, 그 전에 최소한 일하다 죽는 거는 말이 안 된다는 아주 기본적인 진실을 부각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기업살인법 현수막을 들고 집회에 나갔을 때, 조합원들이 지나가면서 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기업에다 살인을 붙일 수 있냐. 그래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영국 기업살인법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달라. 영국 산재사망률은 한국의 18분의 1에 불과하다는데.

 

1987년 대형선박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보조갑판장이 선수문을 닫지 않은 채 항해를 했고 결국 192명의 선원과 승객이 사망했다. 영국에서도 유가족들이 시작했다. 2007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이 제정됐다. 기업살인법 운동은 기업이 고의적으로 살인을 한다는 걸 천명한 사건이다. 우리도 이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산재 사망률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산업구조가 다르다. 영국에선 산안법이 아주 잘 지켜진다. 사망률이 낮은 건 비단 기업살인법의 힘 때문만은 아니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얼마나 지킬 수 있는지가 첫 번째다. 그리고 그것에 힘입어 산재사망은 살인이라는 인식이 깔린 사회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동시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사망률이 낮은 것이지, 단순히 기업살인법이 제정돼 그런 건 아니다. 법 제정 하나만으로 그렇게 되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영국에서도 큰 기업들은 잘 빠져 나간다. 그래도 기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고 기업이 망할 정도로 징벌적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이 아무래도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기는 하다.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자기 권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왜 죽이느냐, 왜 살인을 용인하느냐, 그래서 목숨을 담보로 일을 시키는 건 사회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 법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법 자체가 많은 걸 하지는 못한다. 법을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기업살인법을 끊임없이 쟁점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과정을 듣고 싶다.

 

기업살인법을 계속 알렸지만 처음엔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살인기업 선정식을 하게 됐다. 공식적인 통계를 가지고. 그건 반응이 있었다. 기업이 직접 지목되니까. 그다음에 고발운동을 전개했다. 2010~2011년 철도 하청 노동자들이 철로에서 죽었다. 20119월 공항철도 계양역에서 철로 보수작업을 하던 하청 노동자 5명이 열차에 치여 즉사했다.

 

그 무렵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을 만들어 위험의 외주화 피해자가 누구냐를 본격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여러 단체들과 함께 코레일 사장 고발운동을 전개했다. 현대중공업에서 하청 노동자가 많이 죽어 현대중공업 원청을 고발하기도 했다.

 

그 이후 일상적인 활동을 고민했다. 그래서 감시팀도 만들었고 매일 매일 산재 기사를 검색했다. 기사에 의존하는 한계는 있었지만 노동조합이 없는 훨씬 열악한 곳에서 노동자들이 많이 죽고 있었고 하청 노동자들이 많이 죽고 있었다는 걸 아주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됐다.

 

살인기업 선정식 하고, 고발운동 하고, 모니터링 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하는 10년이 넘는 과정이 있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처벌기업 제정이 부각이 되긴 했는데, 가장 크게 부각된 계기는 세월호 참사였다. 세월호 참사 후 유가족들이 많이 공감했고, 중요하게 다루려고 노력했다. 세월호 특별법 다음으로 이 기업살인법을 제정하려고 노력했다.

 

어려움은 없었는가?

 

직접 연결돼 있는 노동조합과 현장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고발이 쉽지는 않았다. 하청 노동자 사망에 원청 대표이사를 고발하니 원청에 노동조합(정규직 노조)이 있는 경우에 그 노동조합에서 항의를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교섭할 때 사측이 물어본다는 거다. 니네가 부추겨서 고발을 한 거 아니냐, 그러니 취하를 해 달라. 그래서 많이 싸웠다.

 

또 하나는 당사자들을 못 만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어떤 노동자가 죽었을 때 가족들이 뭔가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굉장히 드문 일이다. 사회단체가 장례식장에 가면 니네가 뭘 원하고 왔냐,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조용히 끝내고 싶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자꾸 그런 일을 겪다보니 우리도 처음과는 달리 큰 대기업이나 공기업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하게 된 것 같다.

 

많은 분의 용기가 활동에 큰 도움이 됐다. 201385일 문경 회룡저수지에서 만 19세의 나이로 죽은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있었다. 저수지 배수관을 점검하는 일을 하다가 죽었다. 그는 한국농어촌공사가 일을 발주한 하청에 재하청인 한빛환경이라는 업체의 직원도 아닌 일용직 알바생이었다. 그 때도 유가족들이 장례를 미루고 항의하고 싸웠다. 고 김용균 노동자 유가족의 용기, 너무나 훌륭한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한편으로 세월호 등 우리 사회가 겪은 경험의 반영이라고 본다.

 

몸통이 아니라 깃털만 약하게 처벌된다. 기업, 특히 원청과 최고경영자는 처벌되지 않는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이전인 2013년 성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가 있었다. 아주 짧은 기사를 보고 알게 됐고 메트로 사장을 고발했다. 나중에 그게 구의역 사건으로 연결돼 구의역 사건이 몇 번째다 이렇게 얘기됐다. 성수역 사고 때 메트로 사장을 고발했는데 이 때 이슈는 두 개 있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불법 파견 혐의. 차일피일 미루더니 무혐의 판결이 났고, 곧 구의역 사고가 터졌다.

 

2013년 아르곤 가스 질식으로 현대제철 당진공장 하청인 한국내화 노동자 5명이 죽었다. 노동건강연대와 충남지역 시민노동단체들이 현대제철 대표이사를 고발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통지를 보냈다. 법원 판결도 형편없었다. 1심에선 판사가 사회적으로 굉장히 문제가 되기 때문에 엄청난 형을 때려야 한다고 판결문을 장황하게 써두고 구속을 유예했다. 2심에서 현대제철은 5천만 원의 벌금만 받았고,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였던 A 부사장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판결 이유도 어이없다. 현대제철이 한국내화와 하청 노동자들에게 잘못해서가 아니라 원청 노동자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이유였다. 당시 노동부는 1,123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하지만 산안법으로는 사실상 원청을 처벌할 수 없다. 사실상 위험한 환경을 조성한 장본인인 원청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 개정된 산안법에서 도급인(원청) 기업의 책임을 과거보다 조금 더 확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원청 기업이 책임져야 할 안전 및 보건조치의 내용이 무엇인지 정하지 않고 있다. 언제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기 때문에, 이 디테일을 만들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지난 8년 동안 12명이 숨졌는데 다친 사람들, 장애를 입은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산재보험 통계에도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 다친 과정도 다 밝히고, 다 알리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싸우는 것, 바로 이런 것이 기업살인법 제정의 과정이라고 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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