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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김용균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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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노동자들 조회 6,233회 2019-01-1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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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 “청춘은 숨 쉬고 싶어요.” 고 김용균 동지 추모와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명운동에 참여한 한 서명자가 남긴 문구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비참한 사고는 모든 노동자에게 슬픔과 분노를 안겨줬지만, 그와 같은 세대의 젊은 노동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남다를 것이다. 숨조차 쉬기 힘든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모아봤다.

 

 

저는 당신과 같은 청년 노동자입니다.”

김민지 SK브로드밴드 홈앤서비스 노동자

 

 

나 김민지는 홈앤서비스(SK브로드밴드 자회사)에서 기술전산, 상담업무를 하는 가짜 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나는 25살 청년 여성 노동자다. 20181211, 94년생 김용균 동지가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나이와 같은 나이가 됐다. 소식을 접하고 처음엔 얼떨떨했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걸 바꿔 놨다

 

바로 김용균 동지가 죽음을 맞기 열흘 전 찍었던 사진이었다.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비정규직 그만 쓰개!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이 추진한 문재인 대통령과 비정규직 100인의 대화에 참가신청을 하면서 찍은 사진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공동투쟁 일정이 처음 시작되던 날 우연히 나는 그 현장에 있었다.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이지 참담했다. 도대체 무엇이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힘들게 하는지 억울하고 분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용균 동지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구직 6개월 만에 잡은 첫 직장. 하루 12시간 2교대. 한 달 급여 160만 원. 헬조선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건 한낱 소모품 인생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가고 싶은 청년의 희망찬 꿈은 그저 사치일 뿐이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한 달 벌어 한 달 겨우 먹고 사는 삶 자체가 다행이라며 위안 삼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아버렸을 것이다.

 

이 시대 젊은 노동자들이 설 자리는 도대체 어디일까? 이 청년의 죽음은 잠시 무뎌진 감정을 흔들어 깨우며 현실을 되돌아보게 해줬다. 헬조선의 양심도 없는 자본가, 권력자들의 횡포. 천박하고 가증스러운 자본주의. 더 이상 노동자들이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일깨워줬다.

 

항상 주위를 서성이는 죽음의 위협

 

김용균 동지의 죽음뿐만 아니라 며칠 새 거듭 일어났던 산재 사망사고를 보면서, 우리 가족의 경험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젊은 나이에 결혼해 남편과 함께 같은 회사에서 일한다. 동갑내기 남편은 현장에서 인터넷 설치, AS 업무를 하는 인터넷 기사다. 회사에선 서비스매니저님이라고 부르라 하지만, 고객도, 직원끼리도 기사님이라는 호칭이 익숙하다. 남편이 맡은 지역은 주택이 많았다. 주택 작업을 하면 전주에 오르는 일이 많다. 걱정되긴 했지만 튼튼하고 젊은 나이여서 괜찮을 줄 알았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어느 날 회사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있는데, 함께 하기로 했던 남편이 안 왔다. 전화를 했더니 병원에 가고 있다고 한다. 저녁 8시경, 일몰 이후지만 고객 요청으로 AS 방문을 해 전주 선로를 재포설하다 발을 헛디뎠다는 거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다행히 손잡이를 잡아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결국 발목 인대 파열 진단을 받았다. 그만하길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남편과 함께 작업하던 목격자가 있었는데도, 산재처리는 엄청 복잡하고 까다로워 신청하는 데만 한 달 넘게 걸렸다. 회사에서 직인 하나 받는 것도 엄청 힘들었고, 골칫거리라는 식으로 눈치를 주기도 했다.

 

위험도 떠넘기고, 책임도 떠넘기고

 

산재처리를 받고 휴직을 하고 있는데, 회사에선 아내인 나에게 남편이 언제 복귀하느냐고 계속 물어봤다. 사실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수술을 포기했다. 수술 후 회복하는 데만 1~2년 걸린다는데 홑벌이로 아이 둘을 기르는 것도 녹록치 않았고, 무엇보다 회사의 압박이 컸다. 남편이 쉬는 동안 그 지역을 맡아서 할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복귀가 늦어지면 그 지역을 없애고 남편을 다른 부서로 발령하겠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사람이 일하다 다쳤는데 걱정은커녕 다른 부서로 발령 내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듣는다는 것이. 고객의 요청이라면 안전수칙이고 뭐고 밤늦게라도 전주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도. 생활임금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통증을 무릅쓰고 근무해야 하는 환경도.

 

결국 3개월만 쉬고 복귀하게 됐고, 전봇대를 타는 승주 작업이 들어오면 번번이 동료에게 부탁하거나 어쩔 수 없이 전주 위에 오르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후 노동조합에서 안전한 일터를 보장해 달라 요구하며 21조 작업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그저 비용과 효율성 문제를 앞세우면서, 21조 작업을 원하는 심정은 알겠지만 실현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과연 그들은 돈을 몇 배 준다고 한들 우리와 같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까? 우리의 외침을 들으려고는 하는가?

 

자회사가 설립되면 이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신세를 벗어나 정규직이 되는 거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가면에 불과했다. 우리는 여전히 비정규직일 때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가짜 정규직이다. 모든 게 이미지 메이킹이었던 SK브로드밴드의 자회사를 보고 우리는 자회사는 사기다!’라고 외치며 투쟁해야만 했다.

 

달라진 게 없는 현실, 우리가 바꿔야

 

이른바 김용균 법이 통과됐다고 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추모했는데도 왜 계속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서냐는 질문을 많이 보고 듣는다.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떡하란 말인가. 우리는 계속 똑같은 상황이고, 다음 차례가 우리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 누구도 목숨에 값어치를 매길 수 없다. 모든 노동자는, 모든 생명은 고귀하고 소중하다. 반복되는 노동자의 죽음을 막고, 파리 목숨 취급되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

 

25살 노동자 김민지가 김용균 동지를 애도하며 결단한다. 청년 노동자로서,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 갈 주역들의 앞길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망치지 말라 외칠 것이다. 두 자녀의 부모로서, 우리 자녀들에게 이런 추악하고 슬픈 현실을 물려주지 말자고 외칠 것이다.

 

한창 아름다운 나이 20대 노동자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자. 잊지 말자.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다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노동자가 더욱 마음을 굳게 먹고 세상을 바꿔나가야 한다.

 

용균 동지 미안합니다. 저는 당신과 같은 청년 노동자입니다. 이런 현실을 바꾸고자 더 노력하지 못하고 용기를 내지 못했던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럽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헛된 죽음이 되지 않도록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사고를 당했던 당사자의 증언

김준상 SK브로드밴드 홈앤서비스 노동자

 

 

비정규직으로 3년간 시급을 받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월급을 많이 준다는 소리에 지금의 회사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들어와 봤더니 기본급도 없이, 한 집 당 몇 천 원의 수수료가 있는 임대장비 회수업무가 떨어졌습니다. 자차로 하루에 400킬로미터를 차 안에서 끼니를 때워가며 일했고요. 그렇게 장비 회수하러 다니면서 월급은 80만 원 나왔는데 기름값만 100만 원 들어간 적도 있었어요. 하청회사는 원래 가르쳐준다고 했던 업무를 가르쳐주기는커녕, 업무량을 늘리기만 했어요.”

 

어렵사리 중간중간 일을 배워가며 1년짜리 계약직 개인사업자 인터넷 기사 일을 시작할 수있었습니다. 처음 하는 일들은 쉬운 업무였는데요. 하지만 쉬운 업무만 주는 회사는 없죠. 전신주에 승주해서 외부 케이블 선을 집안까지 집어넣는, 남들이 꺼려하는 일까지 하게 됐습니다. 힘들었지만 집에 있는 두 딸을 생각하며 열심히 했어요.”

 

자회사로 바뀌고 두 달도 안 돼, 전신주에 올라 일하던 중 날이 어두워 발을 헛디디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퇴근 후까지 근무시간 외 작업을 하던 거였는데, 어이없게도 회사는 산재를 인정해주지 않으려 했어요. 혼자 갔었다면, 개인사업자였다면, 그리고 노조가 없었다면 아마도 산재인정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전신주에서 인대가 파열되는 사고가 있고난 후 전신주 승주작업이 두려워졌습니다. 말로만 대기업인 이 회사는 말로는 안전을 우선시하지만, 현장상황은 아직도 열악합니다. 저희와 마찬가지로, 21조 작업만 됐었더라도 김용균 동지는 목숨을 잃지 않았을 거예요. 자본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어렵고 힘든 일을 이렇게 혼자 하게끔 합니다. 요구사항도 많고요. 청년들의 꿈을 도와주진 못해도, 망치고 짓밟진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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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은 늘 우리 곁을 휘감고 있으며, 자본은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데 관심이 없다.

 

 

93년생 또 다른 김용균이

 

 

201812,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가 세상을 떠났다. 구의역 사건의 충격과 아픔이 엊그제 일 같은데, 또 다른 청년이 일을 하던 중 컨베이어벨트에 집어삼켜졌다는 소식에, 심지어 내 또래라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태안화력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하청업체 직원이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음을 암시하는 그의 유품을 보며, 문득 스무 살 무렵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왜 학교에서는 공부 열심히 하고 노력하면 네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을까. 장래희망을 적는 란은 왜 있었을까. 아무리 노력한들 대다수 젊은이들은 사회에 나와 비정규직이 되고 내 꿈은 이룰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될 텐데.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 젊은이들이 느끼는 괴리감과 상실감은 다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을 존엄한 생명이 아닌 부품으로 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 또한 국민을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닌 부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비극이 계속 반복될 수 없다. 심지어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촛불로 만들어진 문재인 정부에서도 노동개악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건 나라가 아니었는데, 그러면 이건 나라냐!

 

그의 사망 이후 국회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했다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참으로 허울뿐이다. 이대로라면 분명 구의역의 김 모 씨,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 씨에 이어 또 다른 청년의 목숨을 담보 삼을 것이다. 이 시대의 청년들이 부디 안녕했으면 좋겠다. 끝으로 고 김용균 동지가 부디 차별 없고 평등한 세상에서 편히 쉬기를 바랍니다.

 

 

섬찟하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세상

GM 노동자

 

 

우리 공장에서도 이런 사고가 빈번하다. 공장 개조 후 짧아진 라인 때문에 작업자들은 더 빠르게 움직이면서 일해야 했다. 누가 봐도 작업자들의 안전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생산성에 맞추며 라인을 개조했다.

 

그러더니 이틀 만에 사고가 났다. 차량과 차량이 부딪치고 그 사이에 끼일 뻔 했던 작업자가 피하려고 몸을 날렸고, 뒤로 넘어지면서 단단한 쇠봉에 머리를 부딪친 것이다. 뇌진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였다.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 이 라인은 과연 멈췄을까? 그러지 않았다. 잠깐 멈췄던 라인은 그 작업자를 빼내고다시 가동됐다. 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바로 옆에서 일하던 작업자는 라인 사이에 발이 끼었다. 안전화 때문에 큰 부상은 없었지만, 옆의 동료가 라인을 멈추지 않았다면 발 전체를 잃어버리는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이때도 라인은 5분 만에 재가동됐다.

 

라인을 재가동하려면 재발방지를 위한 안전대책을 세우는 것이 상식이다. 관리자는 사진 찍지 말라며 쉬쉬하고, 물량 달린다며 바로 라인을 가동하라고 지시했다. 최소한의 상식도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누가 다치든 죽든 아무런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쨌든 물량을 뽑아야 한다고 다그친다. 그렇게 자본을 위한 컨베이어 라인은 이윤만을 위해서 잔인하게 계속 돌아간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동료들의 육성 증언에 의하면 사고가 났는데도 라인은 30분간 재가동됐다고 한다. “사람이 죽어나갔는데 걔들은 기계 돌려서 자기들 주머니 챙기기, 돈 챙기기 바쁜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에요.”

 

인간의 생명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죽음의 컨베이어벨트가 아직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기만 하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께서 마이크를 잡고 절규하며 외치는 목소리가 절절히 내 마음을 후벼 파고든다. “앞으로도 이 일이 잠잠해지면 누군가는 또 죽어나가야 하고, 다치고, 저 혼자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저는 이거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음의 외주화를 떠안은 비정규직들은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것인가? 죽음의 사슬 속에서 위험한 업무를 짊어진 채 살아가게 만드는 비정규직 제도를 철폐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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