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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국가부도의 날’ - 재난 속에 살아남는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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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익 조회 1,136회 2018-12-3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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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CJ엔터테인먼트

 

국가부도의 날은 꽤 진지한 영화다. 이 영화는 엥겔스의 리얼리즘의 승리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프랑스의 위대한 소설가였던 발자크의 정치 성향은 반동적인 왕당파 편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 무엇보다 적나라하게 왕당파가 몰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드러낸 것과 함께 새로운 사회의 등장의 불가피성을 어렴풋하게 예고했다. 이것은 발자크가 리얼리즘(사실주의)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엥겔스는, 발자크의 정치적 반동성에 대해 그의 리얼리즘이 승리한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물론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감독인 최국희가 발자크처럼 낡은 사회 체제를 옹호하는 정치적 반동은 아니다. 그렇다고 최국희 감독이 혁명적 정치의식을 갖고 영화를 제작한 것도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장점은 리얼리즘의 승리라고 불러 마땅하다. 자본주의 체제, 특히 재난에 직면한 자본주의 체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자크와 마찬가지로, 최국희 감독 또한 정치적인 한계가 완전한 리얼리즘을 실현하는 데서 장애물이 되고 있다. 발자크는 그의 정치적 반동성 때문에 봉건왕정 체제를 무너뜨리는 혁명의 파도를 충분히 담아낼 수 없었다. 발자크는 허물어지는 낡은 과거는 정확하게 드러냈지만, 떠오르는 새로운 미래는 어렴풋하게만 드러낼 수 있었다.

 

이 영화도 비슷하다. 총체적인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 드러나는 낡은 자본주의의 치부를 훌륭하게 드러냈지만, 그것을 대체하는 새로운 미래의 힘, 즉 노동자계급의 분노와 저항, 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이런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리얼리즘의 승리를 이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즐겁다.

 

영화가 드러낸 것

 

우리 사회는 여러 재난에 직면하고 있다. 세월호 사태, 최근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이 또 다시 드러낸 위험의 외주화는 그것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가장 큰 재난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IMF 사태다. 120만 명의 실업자가 양산됐고, 자살률은 40% 이상 증가했다. 일종의 전쟁과도 같은 재난 상태가 전개됐다. 게다가 이 재난은 이후 비정규직화와 실업률 증대로 만성화됐다.

 

만연한 재난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실업자에게만 치명상을 입히지 않는다. 취업 노동자, 심지어 정규직 노동자까지도 언제 이런 재난에 휩싸일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준 재난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1997년 이후 전쟁과도 같은 재난 속에 허우적대고 있는데, 이런 공포는 젊은 세대를 더욱 강하게 짓누르고 있다.

 

IMF 사태는 1960년대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구가했던 한국 자본주의가 쇠퇴하면서 자본주의의 보편 법칙인 불황과 공황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분기점이었다. 이 분기점은 삶의 질 개선, 충분한 일자리가 영원하리라 믿었던 한국인들에게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실체를 대낮처럼 밝게 보여줬다.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는 가파르게 성장할 수 없으며, 그 결과 실업과 생활의 불안정은 상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경쟁의 톱니바퀴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이 누구에게나 분명히 드러났다. 나아가서 이 국가는 노동자대중의 공포와 불안감을 결코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누구도믿을 수 없고, 오직 만을 믿어야 한다는 생존법이 보편화됐다. 영화는 이런 과정을 담담히 드러낸다.

 

재난의 2라운드

 

이 영화의 리얼리즘은 그것을 넘어선다. 무엇이 이런 상황을 초래했는가? ‘여신으로 표현되는 자본주의 신용제도의 고리가 어떻게 작동하고, 그것이 무너졌을 때 어떻게 자본주의 체제 전체가 비틀거리는지 영화는 드러낸다. 재난의 뿌리는 바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재난에 대처하는 지배계급의 모습을 조명한다. 미국 자본가계급은 한국의 IMF 외환위기를 미국 대자본의 한국 진출 계기로 이용한다. 정부 핵심 관료들과 대자본가들은 이것을 전면적인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개선, 즉 이윤율 증가의 계기로 접근한다. 이들은 파이를 누가 더 먹을 것인가를 두고 갈등하기도 하지만, 노동자에 대한 무자비한 구조조정(임금삭감, 비정규직 확대, 노동강도 증대, 노동개악 등) 앞에서는 하나로 단결한다.

 

그로부터 20. 오늘날 한국사회의 모습은 무엇인가? 말미에 영화가 밝히듯, 한국사회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홍수, 상시적인 구조조정, 죽음의 위협 속에 놓여 있다. 반면 IMF 위기를 착취강화의 기회로 삼은 한국의 자본가들은 더 큰 부자가 돼 불평등이 확대됐고, 미국 자본가들은 그 파이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게 됐다. 생존의 절벽 밑으로 떠밀렸던 중소 영세 자본가들은 IMF의 경험을 무자비한 착취 강화의 불가피성으로 소화하고 있다.

 

다른 미래는 없을까? 더군다나 더 큰 재난이 다가오고 있음이, 아니 재난이 상시화되고 있음이 분명해지는 상황에서, 다른 미래는 없을까? 불행하게도 영화의 카메라는 그 미래를 전혀 비추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노동자계급이 완전히 실종돼 있다. IMF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노동자들이 겪어 온 피눈물 나는 고통과 분노는 보이지 않는다. 정리해고제, 비정규직 제도 등 재난에 맞섰던 한국 노동자계급의 1997, 1998년의 위대한 투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루지 않은 그것이 진정으로 중요하다. 자본주의가 불러오는 재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재난의 컨베이어벨트에 더 이상 깔리지 않겠다는 노동자들의 단결투쟁이며, 이 자본주의 재난 시스템을 박살내겠다는 노동자들의 위대한 혁명적 전투능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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