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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브로드밴드 | ‘자회사는 사기’라는 진실을 폭로한 노동자들은 왜 더 전진하지 못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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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조회 7,376회 2018-12-05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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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에 나선 SK 노동자들은 ‘자회사 정규직화는 사기’라고 외쳤다.(사진_노해투)

 

 

최근 자회사에 반대하고 직접고용을 요구했던 노동부 산하기관 잡월드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끝났다. 잡월드 노동자들은 이번에 자회사를 막아내지 못했지만, 2020년에 고용 및 처우개선을 포함한 발전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온전한 직접고용, 온전한 정규직화 쟁취 과제가 미뤄졌다. 노동자들이 자회사를 반대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가짜 정규직화이기 때문이다. 

 

자회사의 문제는 이미 많이 알려졌다. 잡월드 노동자들의 투쟁 이전에도 자회사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한 노동자들이 많이 있었다.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노동자들도 그 일부다. SK 노동자들은 ‘자회사는 사기’라는 진실을 폭로하며 포인트제 폐지, 생활임금 쟁취, 안전한 일터를 쟁취하기 위해 올 6월 말부터 파업투쟁을 전개했다. 투쟁의 힘으로 직접고용의 발판을 놓으려 했다. 

 

1,500여 명의 노동자들은 약 네 달간 힘차게 투쟁했으나, 자본의 공세를 뚫지 못했고 내년을 기약해야만 했다. 포인트제를 폐기하지 못하고 기본급 17만 원 인상에 머무른 합의안이 지난 11월 14일 가결됐다. 노동자의 힘도 분명히 드러났지만, 극복해야 할 한계도 명확히 드러났다. 

 

“자회사는 사기다”

 

작년 5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발맞춰 SK는 ‘민간부분 첫 정규직화’라는 호들갑을 떨면서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기였다. 온전한 정규직화가 아니라 ‘홈앤서비스’라는 자회사로 고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회사 전환 과정에서 수당이 없어져 임금이 삭감된 노동자들이 많았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라고 했더니 자본은 야간작업과 주말작업을 고정시키는 ‘유연근무제’까지 들이밀었다. 노동자 기본급은 식대 포함 171만 원에 불과했다. ‘포인트제’라는 실적급 체계를 고수하며 노동자들을 계속 밑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내몰았다. 자회사는 ‘덩치 큰 하청업체’에 불과했다.

 

자회사 1년, 노동자들은 일어섰다. 2014~15년 6개월 파업 이후 거의 3년 만의 파업이었다. 6월 29~30일 상경총파업에 1,300여 명의 조합원이 참가했다. 전국에서 모인 조합원들은 스스로의 힘에 놀랐다. 지난 파업의 후유증으로 이렇게 많은 조합원이 모일 거라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이 ‘민간기업 첫 정규직 전환’ 1년 만에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속사정에 주목했다. 이어서 SK 노동자들은 수시로 부분파업을 하면서 자본을 압박했고, 7월 20일에는 여성조합원 총파업도 전개했다. 사측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처리되지 못한 인터넷, IPTV 개통과 장애 건수가 쌓여만 갔다. 

 

자본의 반격 

 

SK 자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격했다. 원청인 SK브로드밴드 사장 이형희는 대체인력을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를 뒤집고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은 홈앤서비스가 사실상 ‘덩치 큰 하청회사’일 뿐이라는 진실을 스스로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증거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파업이 큰 부담이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대체인력 투입 공격에 효과적이고 강력한 반격을 조직하지 못했다. 

 

은평센터를 비롯한 몇 개 센터에서 대체인력에 대한 항의투쟁이 진행됐으나, 이후 사측이 경찰을 부르면서 강경하게 나오자 조합원들은 위축됐다. 전국에 수많은 센터가 흩어져 있고, 개통·수리 시간이 고정돼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체인력 저지투쟁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대체인력을 한두 번 잡아내도 원청은 다음날 다시 대체인력을 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의 중요성을 생각했다면 단지 법적 대응뿐 아니라 더 강도 높은 현장 대응이 필요했다. 설사 대체인력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대한의 힘을 집중해 저항을 조직하면서 더 전면적인 투쟁을 준비했어야 했다. 

 

이후 벌어진 사측의 징계와 임금체계통합안 총투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측은 쟁의행위 돌입 이전 선봉대 순회투쟁과 호남권 조합원 집단 연차투쟁을 빌미로 징계를 밀어붙였는데, 여기서도 집행부는 투쟁 강도를 높이지 않았다.

 

임금체계통합안 총투표는 사측의 승부수였다. 노조가 포인트제 ‘폐지’를 내걸었는데 포인트제 ‘조정’안 총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회사는 포인트제에 영향을 받는 현장기사만이 아니라 관리자 포함 전 직원의 투표, 비조합원과 2노조 조합원까지 포함하는 전 직원의 투표를 밀어붙였다. 조합원들이 투표 보이콧을 열심히 조직했지만 가결됐다. 회사는 임금체계통합안 가결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사실상 포인트제 폐지 문제는 끝났다는 선언이었다. 이 때 지부는 5일간의 총파업을 진행하는데 그쳤다.

 

모든 투쟁이 그렇지만, 특히 대재벌과의 투쟁에서 노동자의 힘을 모두 동원하고 연대를 확장하는 전면전 없이 승리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승부처에서는 과감하게 힘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 즉 더 전면적인 투쟁 단계를 향해 조합원의 힘을 끌어 모아야 한다.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는 중요한 승부처에서 강력하고 과감한 반격을 조직하지 못함으로써 초반의 기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측에게 주도권을 내주었다. 승리를 위해선 반드시 원청 SK와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어야 했는데, 그런 수준으로 전진하지 못했다. 

 

투쟁하려는 노동자의 의지, 이를 통제한 집행부

 

집행부는 10월 15일부터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하는 전면 상경총파업을 제안했다. 그런데 이미 조합원의 기세가 많이 꺾여 있었다. 결의는 쉽게 모아지지 않았다. 집행부는 다시 5일간의 상경총파업을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쟁대위에서 부결됐다.

 

이대로 올해 투쟁을 끝낼 수 없다고 생각한 동지들이 SK 본사 앞에서 자발적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전국에서 많은 조합원이 올라왔고 일부는 부분파업을 전개하며 노숙농성에 합류했다. 그러나 집행부는 노숙농성을 사실상 중단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조합원 분열이 우려되고 노숙농성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힘들다는 등의 이유였다. 자발적 노숙농성은 투쟁하려는 노동자의 자존심과 사기를 유지하며, 질서정연한 퇴각을 조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집행부는 이미 판이 끝났다고만 생각했다. 상경총파업은 부결됐지만 교섭과 투쟁을 계속 병행해 나간다는 자신들의 말조차 책임지지 않으면서 합의를 향해 달려갔다. 결국 사측 안 대부분을 수용했다. 

 

10월에 집행부의 계획과 조합원들의 결의 사이에는 분명히 간극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 간극이 발생한 이유는 애초부터 조합원들이 투쟁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기습파업, 부분파업 정도로는 승산이 없다고 한다면 당연히 전면전이라는 분명한 방향성 아래 조합원들의 힘을 의식적으로 끌어올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질서정연한 퇴각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막바지 국면에선 투쟁하려는 조합원들보다 지도부가 먼저 무너졌다.

 

다시 시작이다

 

많은 노동자가 올해 투쟁의 한계와 교훈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있다.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센터 시절과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 센터 시절에도 원청을 상대로 싸울 필요가 분명히 있었지만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 더 많은 힘을 준비해야 하고, 더 강한 투쟁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울타리를 넘어서야 한다. 더 크게 뭉쳐야 한다.” 

 

또 다른 노동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누가 집행부가 되는가도 중요하지만, 훨씬 중요한 일은 아래로부터 힘을 모으는 일이다. 집행부가 오른쪽으로 이동할 때, 잘못된 방침을 세우고 실천할 때, 집행부를 비판하며 독립적인 실천을 조직할 수 있는 세력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쓰지 못했고, 원청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번에 멈춰선 자리가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과 정부가 기만적인 자회사 정책을 스스로 포기할 리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언제까지 저임금, 장시간노동, 포인트제에 허우적대며 인간다운 삶과 권리를 빼앗길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임금, 장시간노동, 성과경쟁체제, 가짜 정규직화에 신음하는 수백만 노동자의 염원이 있기 때문이다. 단결과 연대의 힘을 키우기 위해 분투하는 노동자들은 다시 희망을 꽃을 피우기 위해 나설 것이다. 

 

 

노동해방투쟁연대(준)은 이번 투쟁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우리 동지의 오류와 실책에 대해 최대한 냉엄하게 평가했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진행했다. 자발적 노숙농성 통제 같은 결정은 투쟁하려는 노동자들의 의지마저 꺾은 관료적 통제로서,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스스로 훼손한 행위다. 우리는 이것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전체의 책임임을 통감한다. 이런 오류와 실책을 거듭 저지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분투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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