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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획연재⑧ 마르크스의 정치 - 국가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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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익 조회 5,799회 2018-11-0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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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되지 않은 통합물로 접근했다. 특히 사회주의 노동자혁명에서 그 점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다.

 

경찰, 군대, 관료제로 구성된 자본가국가가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등장하기 이전에, 자본가계급은 경제적 지배권을 이미 거머쥐고 있었다. 봉건적 생산력을 대체하는 자본주의 생산력이 기계제 대공업과 시장경제의 발전 속에서 이미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낸 상태에서, 자본가계급은 국가권력을 틀어쥐는 정치혁명으로 전진했다. 경제혁명이 정치혁명에 앞서 이뤄진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봉건제를 철폐하는 자본주의 혁명이 유산자계급의 혁명이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봉건지주계급이라는 하나의 유산자를 자본가계급이라는 다른 하나의 유산자로 바꾸는 것에 불과했으므로, 이 유산자혁명(부르주아혁명)에 대한 기존 유산자들(지주계급)의 반발은 상당히 누그러질 수 있었다. 프랑스 같은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상당수 자본주의 국가에서 부르주아 혁명은 봉건지주계급과 신흥 자본가계급 사이의 타협 혹은 기존 지주계급 일부가 직접 자본가계급이 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봉건지대가 자본주의지대로 전환해 자본가계급이 거둔 이윤의 일부를 지대로 분배받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만 보더라도 자본가계급과 봉건지주계급 사이의 타협의 물질적 기초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다른 무엇보다도 봉건체제 내에서 상품교환을 매개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성장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정치적으로 봉건권력이 지배하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성장을 늦추었고, 반대로 급진적 부르주아혁명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경제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촉진했다.

 

이것은 정치권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본가계급은 봉건국가권력을 굳이 타도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수선해서, 나아가서 봉건국가가 물려준 경찰, 군대, 관료제를 더욱 완성시켜 자본주의 발전을 추구하는 자본가계급의 국가로 전환시키는 것이 자본가계급에게 훨씬 유리했다. 특히 프랑스에서의 경험은 그 점을 모든 나라의 자본가계급에게 일깨웠다. 봉건절대왕정을 타도하고 수립한 프랑스의 부르주아 민주공화정은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했지만, 동시에 프랑스 노동자계급에게 혁명적 투쟁의 기회를 제공했다. 1848년 혁명, 특히 1871년 파리코뮌의 경험은 그것을 명확히 보여줬다.

 

그 뒤 모든 나라의 자본가계급은 봉건지주권력이 형성해놓은 반동적 국가권력, 즉 경찰, 상비군, 국가관료체계가 다른 누구보다도 자본가계급에게 유용하다는 점, 즉 원래는 자본가계급이 타도 대상으로 삼았던 이 낡은 반동적 국가권력이 노동자계급을 정치적 억압하고 노동자투쟁을 진압하는 데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게 됐다. 봉건국가권력을 타도하기보다는 지주계급 및 기존 봉건국가권력과의 정치적 타협을 통해 봉건국가를 자본가국가로 점차 개조해가는 것이 자본가계급의 전략적 방침으로 자리잡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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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혁명의 한 장면을 묘사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테니스 코트의 서약’(1791년 작). 

 

 

격렬한 계급투쟁

 

하지만 모든 종류의 유산자계급의 지배를 철폐하면서 무계급사회를 열어젖히는 무산자혁명이 노동자혁명의 본질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존 지배계급과의 모종의 타협이라는 것이 노동자 사회주의혁명 단계에서는 애당초 성립할 수 없다.

 

우선 사회주의혁명은 생산수단을 사회화함으로써 자본가계급을 비롯한 모든 유산자계급의 착취의 원천을 고갈시켜버린다. 사회주의혁명에도 불구하고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통해 이윤을 쌓아가는 자본가가 존재하는 것은 결코 상상할 수 없다. 공장과 기계, 작업장, 원료 모두가 사회화된 상태에서 그 어떤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고용될 것이며, 착취를 허용하겠는가? 바로 그 점 때문에, 혁명이 그 외관에서 평화적으로 이뤄지느냐와 무관하게, 모든 착취계급은 마지막 한 방울의 힘까지 동원해 사회주의혁명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개량적방식의 혁명이 애당초 성립할 수 없는 본질적 이유다.

 

마르크스는 그 점에서 사회주의혁명이 기존 혁명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거듭 강조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혁명이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근본혁명이고, 따라서 이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격렬하고 치열한 계급투쟁과 함께, 노동자계급의 힘이 엄청나게 높은 수준으로 고양되고 발휘돼야 함을 지적했다.

 

정치혁명과 경제혁명

 

부르주아혁명과 달리, 노동자혁명에서 정치혁명과 경제혁명은 동시적으로, 그리고 유기적으로 연결해 진행할 수밖에 없다. 국가권력을 장악해서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전면적으로 대변하고 착취계급의 반혁명을 진압하는 정치혁명 없이는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경제혁명)를 도저히 실현할 수 없다.

 

우선 사회주의경제는 개별 기업 수준에서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장악해 스스로 운영하는 방식으로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있을 수는 있으며, 또한 노동자혁명의 출발점에서 자연스레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자본가의 소유권 보호를 본질적 기능으로 삼는 자본가국가의 탄압과 즉각 맞닥뜨린다. 자본가국가의 탄압을 넘어서는 정치적 힘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즉 국가권력이 노동자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개별 기업 수준의 노동자 자주관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다음으로 사회주의경제의 본질 자체가 개별 기업 수준이 아니라, 심지어는 개별 산업 수준이 아니라 전체 사회 수준에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태내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지만,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제약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생산력을 전면적으로 해방시키는 데 사회주의경제의 본질이 있다. ‘세계혁명없이는 사회주의의 전면화가 불가능한 것도, 바로 그러한 사회주의경제의 본질적 속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주요한 결정적 생산수단을 사회적 공동소유로 전환시키지 않고서는 사회주의경제는 제대로 출발할 수조차 없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노동자계급이 혁명을 통해 국가권력을 노동자계급의 수중에 틀어쥐고, 이 힘을 바탕으로 모든 주요한 생산수단과 교환수단(가령 은행)을 국유화(사회화)함으로써만 실현 가능하다. 그 점에서 노동자계급에게 정치적 힘(국가권력 장악)은 곧 경제적 힘(사회주의 건설)이 아닐 수 없다. 반대로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경제적 고지를 향해 전진하지 않는다면, 정치적 힘(국가권력 장악)은 곧 부식돼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계급을 착취로부터 해방시켜 경제의 주인공으로 도약시키는 경제혁명으로 전진하지 않는다면, 노동자계급은 착취자들의 지배를 경제적으로 용인하는 그러한 국가를 위해 결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동자혁명에서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은 뗄 수 없는 하나로 결합된다.

 

어떤 국가든 그 본질은 특정 계급의 정치적 지배기관이다. 자본가국가는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지배기관이며, 이 국가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독재를 통해 자본가계급의 착취를 뒷받침하는 것을 본질적 사명으로 삼는다. 노동자국가도 이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국가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지배기관이며, 이 국가는 자본가계급에 대한 투쟁을 통해 모든 계급과 착취를 철폐하는 것을 본질적 사명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노동자국가는 자신의 소멸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계급지배의 기관인 이상, 사회주의 건설의 전진에 따라 계급 자체가 소멸해간다면 노동자국가 또한 계급지배기관으로서의 역사적 소임을 마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계급사회로 전진하면, 특정 계급의 지배기관으로서의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게 된다. 군대나 억압적 경찰은 소멸할 것이고, 단지 공동체사회의 운영과 관리, 계획화를 위한 역할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런 역할 또한 더 이상 국가기구의 관료제에 의해 수행될 이유가 없게 된다. 생산공동체를 대표하는 자들이 운영하는 민주적 기관에 의해 사회가 운영될 것이다. 바로 그 사회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사회’(노동자 생산공동체사회)라고 불렀다. 그리고 사회주의사회에서 공산주의사회로 이행하는 역사적 과정에 대응하는 정치적 도구를 마르크스는 노동자국가라고 불렀다. 이 노동자국가는 더 이상 억눌러야 할 자본가계급이 존재하지 않게 됨으로써 자연스레 그 과정에서 축소되고 소멸해가는 국가인데, 그럼에도 이 국가는 그 탄생 시부터 노동자대중의 민주적이고 직접적인 통제 속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더 이상 통상적인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마르크스는 강조했다.

 

마르크스의 정치투쟁노선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긴밀한 결합이란 관점에서 마르크스는 정치노선을 수립했다. 정치란 일종의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보면서 정치투쟁에 기권하며 경제투쟁만을 강조했던, 다양한 무정부주의 조류들에 반대해, 마르크스는 노동자계급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정치투쟁이 사활적으로 중요한 요소라고 거듭 강조했다.

 

우선 마르크스는 자본가국가를 대체하는 노동자국가 건설이 사회주의혁명에서 갖는 중요성에 주목했다. 비록 노동자운동의 궁극적 목표가 모든 형태의 국가를 없애는 것일지라도,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정치투쟁을 통한 정치권력 장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

 

그 결론에 마르크스가 이르게 되는 데는 노동자투쟁의 역사적 경험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파리코뮌을 통해 프랑스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와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철폐할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바로 파리코뮌과 같은 노동자계급의 정부였다. 당시 파리 노동자계급은 프루동주의 같은 비사회주의적 지도자들이나 블랑키스트 같은 무정부주의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파리코뮌에서, 파리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계급적 본능과 현실의 요구에 발맞춰 자신이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찾아 움직였다. 자본가국가를 넘어서 노동자국가를 수립하는 데로 전진한 것이다. 노동자 민병대를 근간으로, 광범위한 노동자대중이 직접 대표자를 선출해 수립했던 파리코뮌은 노동자계급 정부로서의 본질을 드러냈다.

 

비록 충분히 단련돼 있지 못해 사회주의로 직선적으로 전진하지도 못했고, 노동자국가로서 단호하게 자본가계급의 반혁명에 대응하지 못해 붕괴하고 말았지만, 파리 노동자계급이 수립한 파리코뮌과 같은 노동자정부가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결정적 수단임을 마르크스는 간파했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정치노선의 근간이 됐다. 그 핵심은 노동자국가(권력)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투쟁 속에서만 노동자계급은 해방으로 전진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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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수립된 최초의 노동자권력, 1871년 파리코뮌.


 

다음으로 마르크스는 그러한 정치적 힘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활용하는 정치적 투쟁 또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란 껍데기 민주주의에 불과하고, 부르주아선거란 노동자를 지배할 자들을 주기적으로 뽑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선거나 의회를 비롯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노동자의 혁명적 입장을 선전 선동하고,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조직화를 촉진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이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마르크스는 비록 낡은 것일지라도, 그것이 새로운 것이 등장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면, 그 마지막 한 방울까지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투쟁, 즉 대립물의 투쟁의 초기 단계는 낡은 것 내부에서 진행된다는 점을 주목했던 것이다. 낡은 것(부르주아 민주주의)을 대체하는 새로운 것(노동자 민주주의, 노동자권력)이 완전한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낡은 것 속에서 그것에 대항하는 모순적이고도 격렬한 투쟁의 과정이 일차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낡은 것(부르주아 민주주의)을 통해서는 노동자혁명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대립물의 투쟁이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낡은 것 내부에서가 아니라, 낡은 것 외부에 존재하는 새로운 것과 낡은 것 사이의 전면적인 투쟁을 통해서만 새로운 단계로의 이행, 즉 혁명적 이행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한 낡은 것 내부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진정한 역사적 의미는 낡은 것과 전면적으로 대립하는 새로운 것을 키워내고 성숙시키는 역사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활용하되,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포섭되고 그것을 영구적 정치체제로 받아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허구성과 한계를 폭로하고, 그것을 대체하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운동과 조직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정치적 노선은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정치적 수단(선거, 의회)을 계급투쟁의 일정한 단계에서 혁명적으로 활용하기를 거부하는 무정부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구분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마르크스의 정치적 노선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절대화하고 영구화하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서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운동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구조 바깥에서 건설해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점진적 개량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구분했다.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의 정치적 노선은 노동자계급의 독립적 정당(사회주의 노동자정당)에 대한 강조로 특징지을 수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등장과 계급투쟁의 고도화에 따라 자본주의사회의 주요 계급인 자본가계급, 중간계급, 노동자계급 사이의 정치적 대결이 더욱 의식적이고 전면적인 양상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이 세계 역사상 최초로 전면적으로 충돌했던, 프랑스의 1848년 전투는 정당을 매개하지 않고서도 전투적 서클과 다양한 소규모 조직의 연합을 통해서도 가능했던 사실상의 마지막 전투였다. 두 가지의 결정적인 상황 변화가 일어났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자본가국가는 경찰과 상비군으로 아직 중무장하지 않은 원시적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1848년 프랑스 전투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노동자운동의 혁명적 힘에 놀란 자본가계급은 봉건국가로부터 물려받은 경찰과 상비군, 관료제를 대대적으로 확대하고 체계적으로 강화해 자본가국가를 정비했다. 무장한 소규모 블랑키스트 서클들의 연합으로는 이런 거대한 자본가국가와 결코 맞설 수 없었다. 전체 노동자운동을 하나로 결집시켜 자본가국가에 맞선 전면적인 정치투쟁을 이끌 수 있는 강력한 노동자조직이 필요했다. 바로 노동자정당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런 억압적, 관료적 장치에 더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교활한 지배가 결합했다. 부르주아선거와 의회를 통해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지배기관인 자본가국가를 국민의 국가로 둔갑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기구와 사적(민간) 부문을 긴밀히 하나로 융합해, 자본주의체제를 보호하는 촘촘한 그물망을 창출했다. 학교, 교회, 언론, 부르주아 시민조직 등을 총망라하는 사적 부르주아기구들을 육성해, 노동자계급의 의식을 마취시키고 분열시키려 했다. 이 사적 부르주아기구들은 자본가국가를 외곽에서 지지 엄호했고, 핵심 지도자들을 자본가국가에 공급했다. 자본가계급의 공적(국가), 사적 부문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전투를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자본가정당이 떠맡았다. 자본가정당은 자본가계급의 정치적 지도기관이었고, 그들의 대중적 전위를 하나로 결합해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이끄는 핵심 참모본부였다.

 

이에 맞서기 위해서는 노동자운동 또한 훨씬 높은 수준으로 고양돼야 했다. 노동자계급의 대중적 전위를 결속한 노동자정당만이 부르주아국가, 학교, 언론, 시민조직에 맞서 노동자계급 전체를 하나로 단결시키고 정치적 방향타를 제공하면서 자본가계급에 맞선 전투를 진두지휘할 수 있었다. 1인터내셔널, 그리고 이후 국가단위로 형성된 대중적 사회주의정당들이 그것의 표현이었는데, 마르크스는 여기서 이론적, 실천적 중심으로 분투했다.

 

마르크스에게 사회주의란 단결한 노동자계급의 공동의 이해와 요구의 과학적 표현이었다. 또한 마르크스는 모든 계급단결투쟁은 필연적으로 정치투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정당이란 노동자계급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기관이어야 하며, 나아가서 그 단결은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총단결이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국가별로 나뉜 노동자정당 대신, 국적을 초월해 하나로 단결한 노동자정당(인터내셔널)의 형식을 지지했고 지향했다.

 

물론 마르크스는 그것에 기계적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 1인터내셔널을 해산하고 제2인터내셔널이 수립되기까지 수십 년 동안, 마르크스는 독일의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을 중심으로 주요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하는 데 집중했다. 1인터내셔널 시기와는 달리, 주요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노동자운동이 이미 대중화된 상황에서는 이것을 반영하는 국가별 사회주의정당들의 토대 위에서 건설되는 인터내셔널만이 세계 노동자운동을 이끄는 진정한 인터내셔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그 시기에조차 이 사회주의 노동자정당들이 민족의 테두리에 갇히지 않고 세계 노동자계급 총단결투쟁의 관점에서 전진하도록, 즉 인터내셔널의 관점에서 전진하도록 고무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관념적으로 설교하거나 노동자운동에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운동 스스로의 발전을 통해서, 그리고 노동자운동의 계급적 단결의 확대를 통해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사회주의를 해방의 유일한 길로 선택하게 하려 했다. 이것은 사회주의사회, 나아가서 공산주의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힘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사회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도약해나가는 노동자계급의 발전에 있다는 마르크스의 굳센 확신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운동을 통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 이것이 마르크스의 정치노선을 관통하는 핵심 사상이었다.

 

그러한 자기해방운동의 전진, 즉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발전을 이론적, 실천적으로 촉진하고 계급투쟁의 선두에 서서 안내하는 것, 바로 이것이 마르크스가 제기했던 사회주의자들의 역사적 임무였다. 사회주의사상은 그러한 노동자계급의 발전을 통해 도달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계급 해방의 과학적 길이고, 사회주의자의 실천은 바로 그러한 발전의 핵심 과정인 계급투쟁을 이끄는 것이었다. 그에게 이 두 가지 과제 이론적 과제와 실천적 과제 는 사회주의정당에서 반드시 하나로 융합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노동자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의 역사적 실천 속에서 더욱 날카롭게 벼려지고 구체화해야 하지만, 이런 마르크스의 노선은 지금까지도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근본방향을 제시한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방향을 따라, 부단한 이론적 활동과 실천적 분투를 통해 사회주의 노동자운동이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완성해나가는 것, 바로 이것이 마르크스를 계승하고 따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오늘날 해야 할 역사적 임무다. 이어지는 연재기사 마지막 회는 바로 그 점에 대해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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