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기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획연재⑦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위대한 과업을 완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 노동자계급

페이지 정보

최영익 조회 6,297회 2018-10-22 18:18

본문

 

프랑스 68혁명 당시 총파업을 벌이며 사회 전체를 요동치게 만들었던 노동자들.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을 분석하면서 마르크스는 갈수록 반동화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체제로 대체될 수밖에 없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특히 생산의 사회적 성격이 발전함으로써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나날이 창출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러나 사회적, 집단적 생산력을 담고 있는 거대한 작업장과 기계가, 또한 이것들의 전 세계적 생산 연결망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혁명을 가능케 하는 물질적 토대를 제공할 뿐이다. 혁명의 역사적 주체는 오직 살아 있는 인간이다. 이러한 혁명의 주체라는 문제를 간과한다면, 마르크스주의는 대단히 불완전했을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 주체가 누구인가와 관련해 아주 분명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입장을 개진했다. 바로 노동자계급이었다.

 

왜 노동자계급인가?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온갖 모순의 결과로부터 신음하고 있는 피착취계급만이 혁명의 담당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갈수록 반동화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으로부터 중간계급, 심지어 확대되는 파산 위협 앞에서 자본가계급도 고통 받는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은 이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이 체제 속에서만 자기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중간계급은 자신들 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자본가들에게 시장을 빼앗기므로 성공 확률이 나날이 떨어짐에도, 약간의 성공 가능성에 마취돼 자본주의에 굴복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은 다르다. 노동자계급은 갈수록 무산자의 성격이 확고해진다.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인 노동력을 제외하면, 노동자는 다른 어떤 생존수단도 갖지 못한다. 소기업 같은 소규모 자본이 지배하던 옛날에는 성공해서 사장이 되는 것을 조금은 꿈꿀 수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그런 가능성은 닫힌다. 날 때부터 재벌이나 사장의 아들딸이 아닌 마당에, 평범한 노동자가 자본가가 되는 길은 사실상 없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자는 이 체제에서 자신이 더욱 보잘 것 없고 무기력한 지경으로 추락해간다고 느낀다.

 

마르크스는 고통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혁명적 해결책을 단호하게 지지할 수 있는 계급만이 혁명적 과업을 일관되게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점에서 중간계급은 자격 미달이었다. 왜냐하면 중간계급은 끊임없이 뒤를 돌아보면서, 유산자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길에 미련을 두기 때문이다. 작은 농지나 가게를 갖고 있는 중간계급은 갈수록 성공 확률이 떨어짐에도, 자신이 보유한 작은 생산수단이나 교환수단에 여전히 미련을 갖는다. 이들은 무산자의 혁명 대신, 유산자로서 성공을 꿈꾼다. 작은 사장에서 큰 사장으로 도약하는 것, 즉 중간계급에서 자본가계급으로 도약하는 것에 미련을 둔다.

 

반면 노동자에게는 그런 길이 갈수록 닫힌다. 노동자가 작은 가게를 차리는 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그것은 직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해고된 결과 어쩔 수 없이 택하는 가장 불행한 결과일 뿐이다. 대부분의 이른바 영세자영업자란,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실업 노동자들이 자영업자라는 허울 좋은 옷을 강제로 입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은 이제 상식이 아닌가? 일자리만 있다면, 자영업을 때려치울 사람들이 대다수다.

 

이것은 사회의 생산수단 중 더욱 결정적인 부분이 소수 자본가 수중에 집적 집중될수록, 그 반대편에서는 무산자로서의 노동자의 처지가 더욱 확고해진 결과물이다. 무산자인 노동자에서 유산자인 자본가로 도약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결과 노동자는 유산자가 아니라 무산자로서, 개인이 아니라 단결된 전체로서만 해방될 수 있음을 갈수록 분명하게 느낀다. 모든 생산수단을 사회의 공동소유로 전환해야만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점이 노동자에게는 갈수록 뚜렷해진다. 이것은 노동자운동을 혁명적 방향으로 이끄는 박차가 된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단결하고, 이 단결의 범위가 확장될수록 노동자에게 함께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생산수단을 사회적 공동소유로 전환하는 사회주의일 수밖에 없음이 분명해진다고 보았다. ‘모든 노동자가 하나로 단결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때필연적으로 도달하는 공동의 해방의 길이 바로 사회주의라고 마르크스는 지적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노동자운동을 하나의 단결된 대오로 조직하는 데 결정적 의미를 부여했다.

 

가장 결정적인 질문

 

하지만 노동자계급을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로 제기하는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 몇 가지 주요 반론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반론은 자본가계급의 온갖 지배 책략과 힘을 능히 분쇄할 수 있을 만큼 노동자계급이 강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반론은 결국 혁명의 주인공으로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불신을 깔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아주 분명하게 대답을 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고통 받는 것만으로는 혁명계급의 자격을 획득할 수 없고, 갈수록 그 힘이 강화되는 계급, 그래서 기존 지배계급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계급만이 혁명계급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자계급이 바로 그런 계급이었다.

 

우선 노동자계급은 갈수록 사회 내에서 다수를 점해간다. 중간계급은 몰락해 다수가 노동자계급으로 전화된다. 산업과 업종은 변화할지라도, 노동자계급은 모든 곳에서 더욱 결정적인 다수가 되고 있다. 초기에는 광업, 제조업에서 출발했던 노동자들이 의료, 유통, 서비스 등 온갖 산업 분야에서 다수자로 모습을 드러낸다. 사무, 금융, 연구, 기술, 교육, 공무원 분야에서도 더욱 결정적인 다수가 특권적 피고용인에서 일반 노동자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자본주의 발전의 실을 따라 노동자계급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최근 수십 년 사이에 10억 명에 가까운 새로운 노동자계급이 탄생했다. 이 숫자는 1917년 러시아혁명 시기 전 세계 노동자계급 숫자보다 훨씬 더 많다.


숫자는 노동자계급이 가진 위력의 일부만을 보여준다. 더 결정적인 것은 노동자계급이 가동하고 있는 사회적 생산능력의 규모다. 고도로 집단적으로 조직된 대작업장 노동자 1명이 가동하는 사회적 생산력은 중간계급 1명이 가내수공업이나 농장, 가게에서 가동하는 사회적 생산력에 비해 몇 배, 심지어 수십 배 이상 크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이 전체 사회에서 차지하는 인구 비중에 비해, 노동자계급이 가동하는 사회적 생산력의 규모는 훨씬 더 크다. 아프리카나 중동의 극히 후진적인 몇몇 나라를 제외한다면,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발전한 나라 대부분에서 노동자계급이 가동하고 있는 사회적 생산력은 90%에 육박하거나 그것을 상회한다.

 

이것은 소극적, 방어적 차원에서는 노동자파업의 힘을 극대화한다. 더 나아가 적극적, 공세적 차원에서 이는 노동자혁명의 힘, 그리고 노동자가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힘을 극대화한다. 거리에서 벌어지는 수백만 시위는 노동자파업과 결합되지 않는 한 자본주의 생산을 결코 타격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회적 생산력이 결집된 주요 산업에서 전개하는 노동자파업은 즉각 자본주의 사회를 코너로 몰아붙인다. 게다가 거리시위는 그 자체로는 대안사회를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들불처럼 확대되고 혁명적 지향을 띠는 노동자파업은 새로운 생산체제를 수립함과 동시에, 국가를 뿌리에서부터 완전히 재조직할 수 있는 위대한 조직, 즉 경제와 정치를 하나로 융합한 노동자평의회를 잉태한다.

 

혁명의 주인공으로 단련되는 역사적 과정 - 계급투쟁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혁명의 괴물이 자라난다면, 자본가계급은 온갖 수단을 총동원해 노동자계급의 힘을 줄여놓으려 발악하지 않겠는가? 이처럼 혁명을 예방하는 전략을 집행하면, 노동자혁명을 저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마르크스는 그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의 힘을 증대시키지 않는 자본주의 발전은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 사이의 무한대 경쟁에 따른 자본의 집적 집중은 노동자를 거대한 규모로 집적하고 집중할 수밖에 없다. 좁은 국내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자본의 필사적인 해외 진출 경향은 노동자계급을 세계 전반에 확산할 수밖에 없다. 다른 무엇보다 자본의 이윤의 원천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다. 노동자계급을 지워버린다면, 자본의 이윤마저 지워진다. 이는 임금노동의 뒷면이 바로 자본이라는 사실, 즉 자본-임금노동이라는 관계, 모순, 대립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결론이다. 그 점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결정적 힘은 바로 자본 그 자체에서 나온다고 규정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본주의에 맞선 혁명의 주인공인 노동자계급에 대한 불신이 거듭해서 등장한다. 심지어는 노동자운동 내부에서도 그런 주장이 등장하곤 한다. 그런 주장의 물질적 토대는 무엇인가? 그것은 일시적으로 노동자운동이 퇴보하거나 혁명적 지향을 잃고 비틀거리는 위기 상황, 또는 격렬한 계급투쟁에서 일시적으로 패배한 노동자운동이 힘을 회복해나가는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힘이 잠시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 이런 상황에서 용기와 혁명적 침착성을 잃은 사람들은 노동자계급에게 안녕을 고할 때라고 외치면서, 노동자계급을 대신하는 모종의 새로운 혁명주체를 고안하기 시작한다.

 

마르크스의 접근은 달랐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계급이 혁명의 주인공으로 도약하는 과정은 결코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며, 가장 처절한 계급투쟁 속에서 이뤄지는 의식적이고 능동적인 역사적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계급투쟁, 그리고 이 계급투쟁 속에서 이뤄지는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총단결, 나아가서 사회주의라는 혁명적 대안에 대한 확신을 통해서만 노동자계급은 비로소 혁명의 계급으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그런 역사적 과정이 필수적인 이유로서, 그 과정을 통해서만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가 심어준 오물을 토해내면서 새로운 공동체사회를 열 수 있는 위대한 자격과 능력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 역사적 과정을 촉진하고 맨 앞에서 이론적, 실천적으로 이끌고 안내하는 전위가 되는 것이 바로 사회주의자들의 역사적 역할임을 마르크스는 강조했다.

 

그러나 그런 역사적 과정은 마르크스의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이었다. 착취자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자본가계급의 교활하고도 필사적인 책동이 고도화, 전면화됐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의식을 해체하는 갖가지 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해 왔고 갈고 다듬어 왔다. 마르크스의 예상을 뛰어넘어 개량주의, 조합주의, 관료주의의 영향력을 활용해 노동자운동을 소부르주아적, 부르주아적 의식으로 마취시키는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전략은 고도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기본노선은 여전히 옳다. 노동자계급의 힘은 양적, 질적으로 더욱 강해지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수, 세계적 연결, 사회적 생산력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무산자로서 노동자계급의 성격, 사회주의 없이는 해방될 수 없는 노동자계급의 처지도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자본주의가 더 이상 생산력 발전을 이끌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이 초래하는 불평등의 확대, 야만화 경향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아직 노동자계급이 혁명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지지는 못했지만, 최근 200년 사이에 자본주의에 맞서 벌어진 모든 결정적 투쟁에는 노동자계급이 변함없이 중심에 서 있었다.

 

앞으로도 그 점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하려는 모든 진지한 투사들은 바로 이 노동자계급을 향해야 한다. 이 노동자계급 속에서만 자본주의를 때려잡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이 바로 그 위대한 힘을 자각하고, 자본주의가 심어준 온갖 오물을 토해내면서 자신의 힘을 현실화할 때, 아무리 고도한 자본주의 체제의 시도도 결국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이다.

 

관련 기사

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와 만나야 하는가?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변증법: 세계는 변화한다, 자본주의도 반드시 없어진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가자! 노동해방>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소식을 스마트폰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텔레그램 검색창에서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을 검색해 채널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노동해방투쟁연대)도 있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노동해방투쟁연대

텔레그램 채널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

유튜브 채널 노해투

이메일 nohaetu@jinbo.net

■ 출력해서 보실 분은 상단에 첨부한 PDF 파일을 누르세요.

■ 기사가 도움이 됐나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온라인 정치신문 <가자! 노동해방>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058-254774 이청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목록

Total 42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로그인
노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