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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화염에 휩싸인 ‘송유관공사 민영화 성공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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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6,138회 2018-10-1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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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노동자가 날린 풍등 때문이라고?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사진_한국일보)

 

107일 대한송유관공사가 관리하는 고양시 저유소에서 큰 불이 난 뒤, 경찰은 근처에서 풍등을 날린 이주 노동자를 체포해 책임을 떠넘기려 했다. 하지만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은 반려됐다. 풍등과 화재사고의 인과관계를 제대로 밝히지도 않은 채 무리하게 구속하려 했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대중의 반발도 상당했다. 큰 사고가 터질 때마다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기업이나 정부의 태도를 지긋지긋하게 겪은 터였다. 국가기간시설인 저유소가 풍등 하나 때문에 폭발했다는 설명은 누구에게도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부실 덩어리

 

이미 많은 부실요인이 알려졌다. 석유저장탱크 주위에 잔디를 깔아놓은 것도 의아하지만, 잔디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한 후 폭발이 일어날 때까지 18분간 대한송유관공사는 화재 발생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CCTV 화면에 불이 난 장면이 포착됐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45대의 CCTV를 설치해 놨지만, 그걸 전담해서 모니터링할 인원이 없었다.

 

안전시설에도 문제가 있었다. 경찰은 저유소 저장탱크에 화재 감지센서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고 발표했고, 대한송유관공사는 감지센서가 있다고 반박했다. 경찰의 발표대로 감지센서가 설치돼 있지 않았어도 문제고, 대한송유관공사 주장대로 감지센서가 있었어도 문제다. 정작 불이 난 상황에서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국가기간시설인 저유소를 허가, 관리하는 책임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있는데, 안전관리를 위한 산자부와 지자체 사이의 협력체계도 사실상 부재했다. 전문가들이 참여해 저장탱크를 점검하는 정밀진단은 무려 11년 만에 한 번 실시한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대한송유관공사가 관리하는 저유소 8개소 모두가 화재경계지구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한송유관공사는 이번 사고를 겪은 뒤에야 부랴부랴 안전관리 자문기구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위험 앞에 무장해제된 과정

 

이렇게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된 배경으로 대한송유관공사의 민영화 과정을 주목해야 한다. 공사라는 이름과 달리 대한송유관공사는 민간기업이다. 1990년 설립 후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이 주주로 참여하면서 민영화가 이뤄졌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최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그룹 계열사로 간주된다. 실제로 민영화 이후 부임한 여섯 명의 CEO가 모두 SK 출신이다.

 

2001년 대한송유관공사 초대 CEO로 부임한 조헌제 사장은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사회악이라는 노골적인 자본의 논리를 경영방침 1순위로 삼았다(비슷한 제목의 책까지 냈다). 방만경영, 만성적자, 도덕적 해이 등 민영화 공격을 정당화하는 자본의 구호가 울려 퍼졌고, ‘강도 높은 경영혁신이 추진됐다. 실제로 벌어진 일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강력한 비용절감으로 건강한 회사가 됐다?

 

민영화 이전 10년간 대한송유관공사는 총 8,800억 원의 시설투자를 했다. 연평균 880억 원이다. 민영화 이후에는 880억이라는 숫자가 99억이라는 숫자로 대폭 감소한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채택한 3대 원칙의 하나인 강력한 비용절감이 작동한 것이다. 덕분에 대한송유관공사는 여러 언론에서 30%의 영업이익률을 내는 성공 사례로 칭송됐다. 20091111일자 <매일경제> 기사에선 대한송유관공사가 민영화와 구조조정을 거치며 건강한 회사로 거듭났다고 떠벌렸다.

 

그런데 이런 식의 영업이익률 증대는 곧 위험요인의 증대였다. 지난 3년간 대한송유관공사가 저유소 수선유지를 위해 투자한 비용은 201553억 원, 201645억 원, 201737억 원으로 해마다 줄어들었다. 반대로 주주배당금은 201590억 원에서 2016135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2017년에도 117억 원이 배당됐다. 이윤을 위해 이렇게 비용절감에 몰두한 회사에서,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 더 나은 안전설비를 기대하기 어렵다.

 

‘5명이 하던 일을 2명이 맡고

 

인원도 줄었다. 대한송유관공사 입장에선 민영화 이후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고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민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미 필요한 수준의 인원감축을 끝냈기 때문이다. 1997년에 523명이던 숫자는 민영화 직전인 1999년에 343명으로 감축됐다(물론 그 이후에도 인원은 계속 줄었다).

 

줄어든 인원으로 효율적인 경영을 하려 했기 때문에, “5명이 하던 일을 2명이 맡고 남는 3명은 다른 업무에 투입하는 식”(조헌제 사장의 2005년 인터뷰 중)의 쥐어짜기가 이뤄졌다. 고양시 저유소에 45대의 CCTV와 모니터가 있었지만 정작 그걸 전담해 관리할 인원이 없었던 것도 당연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노조와는 타협하지 않는다

 

공격적인 민영화 구조조정을 거치며 노동조합의 반발이 잇따랐다. 초대 조헌제 사장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올바르지 않은 노조의 요구에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앞세웠다. 단체협약에서 직원의 채용, 전보, 징계 시 노조와 사전 협의 또는 합의해야 하는 여러 항목을 삭제해버렸고, 간담회, 일대일 면담을 하며 조합원들에게 압력을 넣었다.

 

“(구내식당에서) 조헌제 사장은 오히려 마주치는 노조원들마다 일을 하고 밥을 먹어야지! 내내 싸움질만 하다가 때 됐다고 회사 밥을 먹나! 밥을 먹으려거든 그 볼썽사나운 투쟁복이나 벗고 와서들 먹어!’라며 호통을 쳐댔다.” “다음날 아침 본사 건물 곳곳에는 커다란 대자보가 내걸렸다. ‘깡패가 나타났다!’”(200581일자 <지앤이타임즈>)

 

당시 조헌제 사장은 조합원들에게 깡패CEO’라고 불렸다. 조합원들은 이 깡패와의 기세싸움에서 밀렸다. 민영화 과정에서도 무쟁의 선언을 하는 등 취약한 모습을 보이긴 했다. 자본과의 싸움에서 밀린 노조는 결국 민주노총에서도 탈퇴했고, 임금협상을 사측에 일임하는 무기력한 노조로, 사실상 자본의 파트너로 전락해버렸다. 무력화된 노조는 자본의 전횡에 대항할 수 없다. 이윤과 비용절감만을 외치며 안전을 위협하는 자본의 행태를 저지할 수 있는 최후의 버팀목마저 부러진 것이다.

 

누가 이 상황을 바꿔야 하는가

 

에너지산업 관련 언론사인 <지앤이타임즈>는 대한송유관공사 조헌제 사장의 투쟁을 취재하면서, “송유관공사의 민영화 성공스토리라는 그럴싸한 제목을 붙였다. 자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여러 매체에서 흑자기업으로 전환”, “국가기업일 때보다 성과운운하며 칭찬하기에 바빴다.

 

바로 그곳, 대한송유관공사의 저유소가 풍등 하나로 화염에 휩싸였다. ‘강도 높은 경영혁신’, ‘건강한 회사의 결과다. 지난 6년간 대한송유관공사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가 100여 건이 넘는다고 한다. 어찌 보면 지금껏 이번 같은 중대한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줄기차게 수익성 만세, 자본주의 만세를 외쳤던 언론매체들은 이제 와서 수익성 추구로 안전투자 미흡따위의 소리를 늘어놓는다(1012일자 <머니투데이>). 그렇다, 저들도 이윤에 목을 매는 자본주의가 이 세상을 얼마나 위험하게 만드는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저들은 세상을 바꿀 생각이 조금도 없다. 자본가들이 스스로 자기 손발을 묶을 리 없다. 그런 자본가들에게 봉사하는 정부가 아무리 대책을 강구한들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상황을 바꿔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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