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현장

기고 | ‘비정규직이 정규직 되는 것이 공정한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철도 내 ‘정규직화 반대’ 바람에 맞서

페이지 정보

김민성철도 노동자 조회 6,931회 2018-10-11 13:05

본문

 

053534cd6df3a3535691d5042023f35c_1539230695_9928.jpg
비정규직 차별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벌이는 철도 해고자 임도창 동지(사진_철도노조)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쇼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제대로 정규직화된 사업장은 찾아볼 수 없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 정규직화를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절대로 기존의 정규직, 즉 진짜 정규직은 될 수 없다는 기막힌 사실만 확인할 수 있는 약간의 조치가 시행될 뿐이다.

 

정부와 사측의 정규직화 정책이 기만적이고, 그 추진 속도도 지지부진한 것과 함께, 현장에서 크고 작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를 얼마나 노동자적으로 풀어내느냐가 한국 노동자운동의 전진과 후퇴를 가늠하게 될 것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노동자운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숨길 수 없는 창이다.


비정규직 자리, 정규직 자리가 따로 있는가?

 

지난해 철도노조는 철도 자회사와 외주회사의 생명안전업무와 일상업무를 정규직화한다는 입장으로 정규직화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러 과정을 거치며 자회사를 제외하고 외주회사의 비정규직만 정규직화한다는 입장으로 후퇴했다. 게다가 그 판단(생명안전업무와 일상업무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교수, 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한 전문가위원에게 맡겼다. 철도 비정규직의 운명을 그들의 손에 쥐어준 것은 철도 노동자를 대표하는 철도노조였다. 결국 그 전문가위원들은 자신의 책상머리 판단에 따라, 철도에서 정규직이 될 수 있는 비정규직을 솎아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철도비정규직연대회의에 모인 비정규직의 동의하에 이뤄졌다고 철도노조 담당국장은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위원이 찍어준 업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만 정규직화될 수 있다는 상황은 공정한가? 게다가 철도노조가 소위 전문가위원회에 정규직화 문제를 완전히 맡겨버리고 비정규직 정규직 단결투쟁의 길을 사실상 외면한 상황에서, 정규직화될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을 수 없었던 철도 비정규직에게 놓인 선택의 기회는 과연 공정한가? 이것이 과연 진정으로 비정규직의 동의인가, 아니면 동의를 가장한 협박의 결과물인가?

 

무엇이 공정성인가?

 

신입 정규직 사원들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반대바람이 작년에는 지하철에서 불었다. 올해엔 철도에서도 그 바람이 불었다. 신입사원들은 어려운 공채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던 자신에 비할 때, 외주회사 노동자가 이런 절차와 시험 없이 그냥 정규직이 되는 것이 공정한가를 물었다. “노동조합이라면 이런 불공정을 거부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규직화 작업을 지지한다면 노조 탈퇴도 불사하겠다고 노조를 협박했다.

 

이들의 논리는 간단했다.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고 선택돼야 한다는 것이다. 경쟁의 좁은 문을 뚫고 대기업, 공공기업에 취업한 자신의 피나는 노력과 불안의 세월을 경쟁을 통한 공정함으로 보상받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가계급의 공정함이지, 노동자계급의 공정함은 결코 아니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라! 그렇지 못하면 일자리는 보장할 수 없다! 공정한 경쟁의 룰에 따라 성과급 임금체계를 갖추자! 바로 이런 것이 자본가계급이 내세우는 공정함의 논리가 아닌가? 착취자의 논리와 이해를 반영하는 이런 공정함은 무자비한 해고, 노동강도 증대, 노조 분열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가?

 

게다가 신입사원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시험은 전혀 공정한 기준이 못 된다. 노량진 학원가에서 3년 공부한 스펙을 갖고 있는 신입사원보다 현장에서 3년 일한 비정규직의 업무 숙련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노동현장과 노동조합은 더 많은 사회성을 요구한다. 경쟁으로 누군가를 이기는 것보다 전체 노동자의 단결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능력(자본이 정한 기준!)에 따른 성과연봉제를 반대하고, 자본이 생각하는 공정성의 기준에 따라 주는 대로 받는 성과급을 거부하며, 노조의 성과급 균등분배를 통해 우리 기준으로 공평하게 재분배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공정성이란?

 

매일 출근하고 지속적으로 필요하며 항상 없어서는 안 되는 정규직 상시업무와, 2년에 한 번씩 회사를 바꿔가며 계약서를 써야 하는 비정규직 업무가 정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현장 생산, 노동방식의 변화에 따라 수많은 정규직 업무가 없어지거나 변형됐다. 반대로 비정규직이 수행하는 업무, 가령 청소, 식당, 위험하고 지저분하고 힘든 기피 업무 등은 철도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없어진 적 없는 정규적 상시업무였다.

 

이에 대해 신입사원 상당수는 정규직 업무와 비정규직 업무를 차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그런 가벼운 업무와 정규직의 복잡하고 고도한 업무를 단순 비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정규직 업무 내에서도 차별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규직도 운전, 운수, 차량, 전기, 시설로 나눠, 임금의 공정한 기준을 따지며 분열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문재인식 성과연봉제인 직무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자본의 입장에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지, 결코 노동자의 입장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수많은 비정규직 업무는 정규직 업무만큼 소중하며 가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더 힘들고 더 위험하기에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노동조합은 단결과 연대를 기본 정신으로 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공정한지, 아니면 한줌 자본가가 다수 노동자를 착취하는 게 공정한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물어야 한다. 이게 노동조합이 나아갈 길이다. 이 길로 전진하는 데 일부 신입사원이 저항한다면 우선 설득하되, 안 되면 제치고 나아가야 한다. 일시적으로 노조를 탈퇴하더라도, 분열의 쓰디쓴 대가를 치르고 나면 그들의 머릿속에도 단결이 각인될 것이고, 다시 민주노조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민주노조에게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

 

정규직 비정규직 단결만이 모두 살 수 있는 길

 

이쯤에서 철도노조의 정규직화 관련 단협 요구안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신입사원을 비롯한 철도노조 일부 정규직의 반발에 압도된 철도노조는 스스로 물러나고 말았다. 기존 정규직과 정규직으로 전환된 기존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격차(사실상 이중임금제 혹은 별도직군제)를 인정해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철도노조는 경쟁과 시험을 뚫고 입사한 신규사원의 처절한 고통을 이해해야 한다는 알리바이를 댔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의 고통? 수 년, 수십 년 반쪽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목숨 걸고 일해 온 비정규직의 고통의 눈물은 어찌한단 말인가? 철도노조는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얼마나 못된 행위를 한 것인지 똑똑히 되짚어야 한다.

 

이런 후퇴에 분노해 철도 해고자 임도창 동지는 본조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그의 주장은 분명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때문에 이의제기가 두려워 미리 양보안부터 던지는 것을 보며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을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10년의 암흑세월도 견뎌왔는데 이제 와서 왜 이렇게 쉽게 물러서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말할 만큼 한국사회가 양극화에 몰려 있는데, 시대의 아픔을 가장 먼저 공감하고,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보아야 할 노동조합이 무엇이 두려워 차별과 방관에 눈을 감아야 하는지, 아니 동조하고 나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본부조합 1인 시위에 들어가며 드리는 글>, 철도 노동자 임도창)

 

철도 본조 비정규직 담당 조직국장은 임도창 동지의 항의에 대해 과도한 비판이고, ‘과연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활동가들이 한 게 뭐가 있냐고 비판했다. 맞다! 철도 활동가들이 너무나 한 것이 없었고, 이건 정말 비판받아 마땅하다. 민주노조의 대의를 대변하는 이런 목소리가 그동안 너무 작았다. 그 물꼬를 임도창 동지가 텄다. 이제 그 바통을 철도의 살아 있는 노동자들이 받아 안아야 한다. 분명한 것이 있다. 철도에서 민주노조운동은 바로 이들로부터 개척될 거라는 점이다.

 

 

 

<가자! 노동해방>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소식을 스마트폰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텔레그램 검색창에서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을 검색해 채널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노동해방투쟁연대)도 있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노동해방투쟁연대

텔레그램 채널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

유튜브 채널 노해투

이메일 nohaetu@jinbo.net

■ 출력해서 보실 분은 상단에 첨부한 PDF 파일을 누르세요.

■ 기사가 도움이 됐나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온라인 정치신문 <가자! 노동해방>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058-254774 이청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목록

Total 963건 38 페이지
현장
강진관 20/08/22 7,191
국제
오연홍 20/08/21 5,128
현장
오지환 20/08/19 4,792
현장
20/08/15 11,521
현장
인터뷰/정리 이청우 20/08/14 4,807
사회
최영익 20/08/14 5,594
기타
양동민 20/08/13 29,534
현장
20/08/12 3,923
기타
김누로 20/08/11 5,343
사회
이용덕 20/08/10 4,996
게시물 검색
로그인
노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