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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공공병원 정규직전환 표준임금체계 합의 논란: 결국 문제는 노선과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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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조회 7,425회 2018-10-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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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일어난 보건의료노조의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노사정 TF 합의 문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공공운수노조, 민주일반연맹 등은 이 합의가 민주노총의 직무급제, 표준임금체계 저지방침을 정면으로 위배했다며 가이드라인 폐기를 주장한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그 누구도 보건의료노조에 공공병원 파견, 용역 노동자의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결정할 권한을 준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배경

 

이 논란의 배경을 잠깐 살펴보자. 올 초 정부는 공공부문 청소, 경비, 시설관리, 조리, 사무보조 등 5개 직종 ‘표준임금체계(직무급제)모델 안’을 발표했다. 각 기관별로 ‘표준직무’를 분류하고, 각 직무 간 직무가치를 비교해 ‘직무등급체계’를 만드는 안이다. 직무등급 숙련 정도에 따라 ‘승급단계’를 두고, 각 직무등급별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직무급제, 표준임금체계를 밀어붙인 이유는 노동자의 임금상승을 억누르고 더 치열하게 경쟁시키기 위해서다. 직무등급에 따라 임금을 차별화하고, 숙련평가를 통과해야 승급할 수 있게 만들면 노동자들을 더 쉽게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표’ 성과연봉제인 셈이다. 민주노총은 당연히 폐기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공동의 투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느닷없이 이 가이드라인이 터져 나왔다. 

 

심각한 내용

 

그런데 이번에 보건의료노조가 합의한 가이드라인은 정부 안의 골격과 다르지 않다. 가이드라인의 내용은 이렇다. 

 

“직무 구분은 가군(미화, 주차, 경비, 식당, 콜센터), 나군(시설관리), 다군(요양보호사 등 기타)으로 한다. 가군 직무의 기본급은 매년 법정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한다. 나군 직무의 기본급은 가군 직무와의 격차를 고려하여 기관별로 정한다. 다군 직무의 기본급은 추후 의료기관별로 논의하여 정한다. 보건의료산업 내 동일직무군의 경우 기본급의 표준화와 평준화를 위해 노력하며, 식대, 상여금, 복지포인트 등은 의료기관별로 정한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정규직과의 차별적인 임금체계에 동의하면서 기본급의 핵심 기준을 직무가치로 정했다. 아래 표를 보면 알겠지만 정부의 표준안에서 최하위 직무군으로 분류된 미화, 경비 뿐 아니라 주차, 식당, 콜센터까지 최하위 직무군에 포함시켰다. 최하위 직무군의 시작 임금을 2018년뿐 아니라 앞으로도 최저임금으로, 최대임금을 시중노임단가 수준으로 고착화했다. 정부 표준임금체계(안)의 임금수준과 유사하거나 식당 등은 더 낮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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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공공병원 노사정 TF 합의안(왼쪽)과 정부 표준임금체계안(오른쪽)


 

직무급제냐, 호봉제냐?

 

보건의료노조는 가이드라인이 기본급을 ‘직무가치’와 ‘숙련’에 따라 결정한다고 되어 있으나, 본질은 매년 근속에 따라 18단계까지 올라가는 호봉제이므로 실질적으로는 직무급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직무가치평가를 바탕으로 직무등급을 구분한 정부의 직무급제와는 달리, 보건의료노조는 현재 파견용역직의 임금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임금수준에 따라 직무를 구분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직무급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현재 민주노총 중집을 비롯한 상층 논쟁의 핵심도 이 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왜 민주노조운동이 직무급제, 표준임금체계를 반대하려 했는지, 그 근본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식논리에 빠지거나 부분적인 쟁점에 매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학교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율 11%에서 볼 수 있듯이 빛 좋은 개살구로 판명됐다. 그마저도 자회사, 무기계약직 등 가짜 정규직화가 대부분이다. 노동자들은 임금 상향평준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 아래 차별과 저임금을 없애는 온전한 정규직화를 열망했다.

 

그런데 직무급제, 표준임금체계는 이러한 노동자의 열망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기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무급’이란 미명 아래 가장 낮은 임금 수준에 ‘영원히’ 묶어두기 때문이다. ‘정규직화’와 ‘영원한 저임금과 차별’을 맞바꾼 셈이 된다. 이미 상시적 고용 상태였던 수많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작 ‘영원한 저임금과 차별’을 얻기 위해 힘들게 싸우고 조직을 키워왔단 말인가? 

 

또한 자본가정부의 잣대를 적용해, 모든 의미 있는 노동을 ‘하위노동’과 ‘상위노동’으로 분류한다면 ‘격차’는 계속 발생한다. 이것을 용납하면, 이후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자본가정부의 판단에 전적으로 좌우될 것이다. 미화, 식당, 경비 노동자만이 아니라 이후엔 공공부문의 모든 노동자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표준임금체계를 안착시킨 후, 이 모델을 민간부문까지 확대하겠다고 공언한다.

 

그런데 누가, 어떤 기준으로 노동의 가치를 함부로 매길 수 있는가? 누가, 어떤 기준으로 노동자의 업무를 단순육체노동인지 아닌지 결정할 수 있으며, 단순육체노동을 낮은 등급으로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왜 교수의 임금과 학교 청소 노동자의 임금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나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고, 기업규모, 고용형태, 성별, 직무에 따른 차별에 도전해야 한다.

 

이 도전은 우리 노동자가 줄기차게 외쳐왔던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진정한 정신, 바로 평등과 단결 정신을 지켜내는 일이다. 그런데 감히 자본가정부는 이것을 ‘동일하지 않은 노동에 대한 차별임금’, 즉 노동의 분할 정책으로 대체하려 하고 있지 않은가!

 

보건의료노조의 이번 가이드라인에서 이런 도전정신을 찾아볼 수 있는가? 보건의료노조가 강조하는 ‘임금수준에 따른 직무 차이’는 과연 우리 스스로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할 금기 사안인가? 합리적인 차별인가? 거꾸로 저임금과 노동자 차별을 극복할 수 없는 호봉제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결국 이런 잣대를 적용한다면, 이 가이드라인을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이 이 가이드라인은 노동자투쟁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 또한 이 합의는 직무급제, 표준임금체계에 맞선 투쟁이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투쟁전선에 찬물을 끼얹은 배신적 합의다. 보건의료노조 산하 공공병원에만 영향을 미치는 합의가 전혀 아니다. 수많은 정부기관과 자본가들은 가만히 있겠는가? 게다가 이 합의는 비공개 논의로 만들어졌다! 이 가이드라인은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

 

어떻게 다른 전망과 대안을 만들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직무급제는 ‘직무’, 그리고 이것과 연동된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권한을 전적으로 정부와 자본에게 부여한다. 현장통제의 핵심인 인사고과 권한을 틀어쥐고 민주노조의 현장장악력을 뿌리 뽑겠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직무급제는 ‘하후상박’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상징되는 노동자운동의 계급단결전략을 정면으로 파괴한다. ‘노동의 차별’, ‘저임금 노동의 영구화’를 꾀하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차를 비롯해 대부분의 민간기업에서 성과급제를 전면화하려는 시도가 진행 중인데, 문재인 정부의 직무급제는 이런 시도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직무 중심 성과임금체계를 막는 건 비단 정규직 전환 노동자만이 아니라 기존 정규직 노동자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데서도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정규직 전환 노동자에게 적용될 직무급제를 격퇴하지 못하면, 그다음 차례는 기존 정규직 노동자가 될 것이다. 정규직 전환 노동자에 대한 직무급제 적용에 반대하고, 그들의 임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도록 요구하는 단결투쟁이 너무나 절실하다.

 

그런데 수많은 공공부문 노조가 직무급제, 표준임금체계로 표현되는 저임금과 차별을 거부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정부에 맞서기 시작하면 문재인 정부는 이렇게 맞받아칠 것이다. “각 기관별 총액임금은 건드릴 수 없다. 온전한 정규직화와 이에 따른 획기적 임금 인상, 차별 폐지에 따른 비용을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에게 청구하겠다.”

 

이 울타리를 과감히 거부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누군가 임금이 오르면, 누군가 임금을 토해내야 한다. 다른 말로, 정규직 전환 노동자의 임금을 획기적으로 올리려면,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을 감수하라! 바로 이런 식으로 자본가정부는 공공부문 노동자의 단결을 막아왔다. 공공부문에서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한 중요한 이유, 그리고 정규직 전환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직무급제에 단호하게 맞서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공공부문에서 노동자계급 총단결이 가능하려면, 정부의 임금 가이드라인, 총액임금제를 박살내야 한다. 정규직 전환 노동자의 획기적인 임금인상에 필요한 비용을 기존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과 정부에게 청구해야 한다. 

 

어떤 선택이 필요한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같은 타협의 우리 안에 들어가 정부를 설득할 것인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자본과 정부에 비용을 청구하며 단결의 힘으로 저임금과 차별을 박살낼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정규직 전환자들에 대한 직무급제 도입에 맞선 현장투쟁, 온전한 정규직화를 위한 공동투쟁에서 시작해야 한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공동요구를 내건 대정부투쟁을 겁내지 않아야 한다. 

 

도로공사, 강원랜드 노동자들이 자회사 반대, 직접고용 쟁취를 요구하며 민주당사에서 농성과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잡월드, 마사회,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온전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노동자의 힘을 하나로 모아나가자. 다시 직무급제, 표준임금체계 저지의 깃발을 세우고 공동투쟁을 만들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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