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기타

서평 | 불꽃으로 살아간 여성 노동자 강주룡 - 박서련의 <체공녀 강주룡>

페이지 정보

홍희자서울성모병원 노동자 조회 7,624회 2018-09-28 15:39

본문

 

2ebeefda01b37a5b76a8483ee347c631_1538116691_2799.jpg
을밀대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강주룡

 

“이천삼백 우리 동지의 살이 깎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 한 몸뚱이 죽는 거이 아깝겠습네까? 내래 배워 아는 것 중 으뜸 되는 지식은, 대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처럼 명예로운 일이 없다는 거입네다. 하야서 내래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지붕 우에 올라왔습네다. 평원고무 공장주가 이 앞에 와 임금감하 선언을 취소하기 전에 내 발로 내려가는 일은 없습네다. 끝내 임금감하를 취소하지 않는다면 내 고저 자본가 압제에 신음하는 노동대중을 대표해 죽기를 명예로 여길 뿐입네다.”(을밀대 위에서 주룡이 외친 말) 

 

 

 

처음엔 특이한 제목과 강렬한 표지에 끌렸다. 읽는 내내 요즘 한창 인기인 TV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여주인공과 강주룡이 겹쳐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큰 차이가 있다. 의병 소재의 드라마 여주인공이 가상인물인 반면, 강주룡은 일제 강점기에 실재한, 독립운동가이자 노동자투사라는 점.

 

당찬 여성 노동자

 

나는 이번에 강주룡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그의 매력에 푹 빠져서 주룡과 함께 웃고 투쟁하고 가슴아파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작가가 그린 주룡이 실제의 그와 얼마나 닮아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료들에 상상력을 더해 작가가 되살린 주룡은 그 누구보다 강하면서 당찬 여성이자, 동료애와 자본에 대한 분노를 품은 훌륭한 노동운동 지도자다.

 

그는 다섯 살 연하 남편과 함께 잠깐이지만 무장독립운동에 몸담기도 했다. 남편이 죽은 뒤 평양으로 이사 와서는 고무공장에 다니며 가장 역할을 한다. 1929년 세계대공황으로 임금삭감, 정리해고, 노동강도 강화 등 노동조건이 더욱 살인적으로 바뀌자, 평양의 여러 고무공장 노동자들이 대대적인 파업투쟁을 벌인다. 주룡은 투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단식농성, 고공농성 등을 하고, 조선노동당 적색노조에 가담한 혐의로 옥고를 치르다 32살 젊은 나이에 건강악화로 숨진다. 

 

짧은 생이지만 참 파란만장하다. 늘 바지런하게 일하고, 현실 앞에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눅 들거나 움츠러드는 기색 없이 할 말은 하고 역경은 꿋꿋이 헤쳐 나가는 강인함을 지녔다. 

 

“일생을 걸 결심이라야!”

 

무엇보다 동료들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참 재미나고 인상적이다. 주룡은 주변의 많은 공장에서 파업이 벌어질 때 파업단에 찾아가 열심히 교육을 받는다. 노조에 먼저 가입했다가 사측의 탄압과 남편의 만류에 탈퇴할 수밖에 없게 된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나가면 내 들어갈란다. 네 대신으루 내래 노동운동 아조 끝장을 볼라니. 내래 보통 단원이 되지 아니할 거이간. 내 우에 계속 가입 미뤘는디 모르갔어? 내래 일생을 걸 결심이라야 가입하는 거이 마땅하다 여겨서 여즉 가입 안 한 거이야.” 그리고 그는 그렇게 파업투쟁의 선봉에 선다.

 

자기 사업장에만 시야가 갇히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탁월한 사람, 싸우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 “우리는 마흔아홉 우리 파업단의 임금 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네다. 이거이 결국에는 피양 이천삼백 고무직공 전체의 임금 감하를 불러올 원인이 되기에,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고 있는 것입네다.” 

 

뜨겁게, 불꽃으로 살다

 

조선노동당에서는 떡잎부터 다른 그를 적색노조로 조직하고자 삼고초려한다. 남성 인텔리 위주의 세미나에 참여해 현장 노동자이자 여성 노동자로서 거침없이 논쟁하고 비판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조직이 침탈되고 파업투쟁이 위기에 처하자 ‘진짜 죽기를 각오하고’ 많은 사람 앞에 자신이 누군지, 왜 죽으려는지 당당히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을밀대에 오른다. 구속돼서도 단식을 지속하고 풀려나자마자 조합원들에게 달려가 함께 싸워 기어이 임금삭감을 막아낸다.

 

한때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주룡은 민족주의자가 아니라 철저히 노동자로서, 대중 지도자로서 뜨겁게 살았다. 노동운동 지도자 위치에 오른 뒤 대중의 요구와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사는 대신, 대중 위에 군림하며 자본과의 타협과 거래에 더 노련한 노조관료로 둔갑한 이들이 숱한 오늘. 진정한 지도자, 강단 있고 대중과 함께 하고자 하는 헌신적인 투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 불꽃으로 살다간 주룡의 이야기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2ebeefda01b37a5b76a8483ee347c631_1538117127_9934.jpg
 
 

 

 

<가자! 노동해방>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소식을 스마트폰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텔레그램 검색창에서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을 검색해 채널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노동해방투쟁연대’)도 있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노동해방투쟁연대

텔레그램 채널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

유튜브 채널 노해투

이메일 nohaetu@jinbo.net

■ 출력해서 보실 분은 상단에 첨부한 PDF 파일을 누르세요.

■ 기사가 도움이 됐나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온라인 정치신문 <가자! 노동해방>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058-254774 이청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목록

Total 42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로그인
노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