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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자동차 절망공장》 : 자본주의에 맞서지 않으면, 절망공장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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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노동자 조회 6,260회 2018-09-0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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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경향신문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

 

말라버린 수건을 비틀어 물을 짜낸다니? 제정신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행동을 할까. 그런데 여기 그걸 정말 잘해서 유명해진 기업이 있다. 일본에서 가장 돈을 잘 버는 기업, 도요타다.

 

작년에 순수익만 2조 4,939억 엔(약 25조 3,931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36.2% 늘어난 역대 최고치의 이윤이다. 도요타는 세계 최고의 판매실적을 누리지 못하지만, 순이익에서 다른 자동차 기업들보다 월등히 앞선다. 비용절감을 위해 1만여 명 가까운 임시직 노동자를 고용해 마른 수건처럼 쥐어짰기 때문이다.

 

《자동차 절망공장》의 저자인 가마타 사토시는 바로 이 도요타 자동차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1972년 9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약 6개월간 기간제 노동자로 일한 경험을 일기로 써내려갔고, 책으로 발간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는 “저임금의 임시직 노동자들은 고용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버려지기 위해 있을 뿐”이라고 말하며, ‘살인라인’이라고 저주했던 도요타의 참혹한 노동조건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글은 저자처럼 자동차공장에서 일하는 필자가 책 속에서 공감한 내용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또 하나의 일기다.

 

왜 이렇게 빨라? ― 컨베이어 벨트의 세계

 

내가 공장에 들어와서 단연코 힘들었던 건 작업라인 속도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천천히 흘러가는 줄 알았던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는 미친 듯이 빨랐다. 저자의 말처럼 “컨베이어 벨트는 보고 있는 것과 실제로 일하는 것이 속도가 다르다!”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 싶었던 작업은 하나의 동작만 실수해도 한참이나 밀리기 일쑤였다. 부품은 흠이 나면 안 되는 거라 어깨 위로 번쩍 들어야 했다. 그런데 어찌나 무게가 나가던지 일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자 근육에 바로 무리가 왔다. 병원에서 침을 맞아가며 몸이 어서 적응하길 바랄 뿐이었다.

 

강도 높은 노동이라는 걸 증명하듯 사람들은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한 달도 채 안 돼서 10명 넘게 교체됐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대부분 자동차 조립의 고된 노동의 부담감으로, 아니면 언제 잘릴 줄 모르는 비정규직이라서, “고용도 보장되지 않고 최저임금 받으면서 이렇게 힘들게 일해야 해?”라는 심정이 들어서 그만뒀을 것이다.

 

무엇보다 일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부터는 반복된 작업에서 오는 지루함이 나를 괴롭혔다. 저자의 말처럼 “베테랑이든 신참이든, 일이 빠른 자에게도, 느린 자에게도, 이 컨베이어 노동은 지긋지긋한 일일 뿐이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강요된 끝없이 긴 고역인 것이다. 일분이라도 빨리 해방되고 싶다. 이렇게 바라지 않는 노동자는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하든지 나가든지 

 

기계도 고장 난다. 사람이라고 평생 안 아플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런데 일하다 몸이 아프고 다치면 쉬는 걸 보장하는 게 아니라, 참고 일 할 건지 그냥 모든 걸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자발적’ 선택을 강요한다. 베테랑이라고 다를 건 없다. 한 번은 한 형님이 교통사고가 나서 쉬다 나왔는데, 더 힘들게 몸을 써야하는 보직에 배치해 버렸다. 못 버티겠으면 그만 두라는 거다. 

 

저자는 “고밀도의 노동,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 직업병, 노조 기능의 상실 등 이러한 것들을 한 몸에 짊어지고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표현했다. 도대체 내가 일하는 곳과 무엇이 다른 걸까. 자동차를 조립하다 보면 발생하는 불량품처럼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것이 노동자의 처지다.

 

어차피 똑같아 ― 노동의 소외

 

기계에 부품을 차곡차곡 채우고 작동시킨다. 공기압이 빠지고 삑 하고 기계음이 완성을 알리면 조립된 부품을 다시 빼낸다. 대차에 던지듯이 올려놓으면 바로 다음 부품을 똑같이 작업한다. 내가 일하는 공장은 조금의 쉴 틈도 없다. 저자는 도요타 공장이 “기계와 같은 스피드로, 기계와 같은 정확한 동작을 8시간 내내 계속해야만 한다”는 점을 노동자들에게 강조하지만, “기계는 지치지 않지만, 인간은 지친다. 계산에 민감한 자본가도 노동자의 피로는 계산에 넣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비슷해 보이는 반복적인 작업이라도 방식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기계에 부품을 올려놓은 순서와 조립방법을 달리하면 노동강도와 작업시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물론 큰 틀에서 정해진 작업시간을 벗어나긴 힘들다. 그럼에도 작지만 이런 차이가 작업자의 스타일이 되어 생산물에 영향을 미친다. 노동자 개개인의 개성은 미약하지만 이런 곳에 작게나마 등장한다. 이를 저자는 “본래 노동의 방법이란 노동자에게 속해 있는 것”이며, “그러니 어떻게 만들었더라도 그것은 노동자의 사정이며, 오히려 각각의 개성에 기초하여 만드는 법이 서로 다른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은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고참 노동자의 작업방식이 표준으로 자리 잡고, 거기에 맞춰 통일돼간다. 잡(시간당 생산물량)이 올라갈수록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가장 빠른 작업방식과 스타일로 바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 노동은 어떻게 될까? 결과야 뻔하다. 너도 나도 다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된다.

 

따라서 모두가 가진 노동의 개성은 없어진다. 뿐만 아니라 “작업 시스템이 일방적으로 완성되어 버리면 그다음은 오직 컨베이어의 스피드만으로 통제할 수 있다. 생산을 올리기 위해서는 스피드를 높이고 보다 장시간 컨베이어에 묶어두면 되는 것이다. 지금 바로 그렇게 되고 말았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

 

저자는 1970년대 도요타 공장의 절망적인 현실을 써내려갔다. 그로부터 수십여 년이 흘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거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왜 우리는 그의 책에 공감하는 걸까?

 

수십 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일한다. 우리는 컨베이어 라인을 타며 단순하고 지루한 노동을 반복한다. 절대로 적응할 수 없는 컨베이어의 피로감을 노동자는 매일매일 느낀다. 

 

1913년은 이 무시무시한 컨베이어 시스템이 헨리 포드에 의해 생산라인으로 구축된 해다. 컨베이어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태어난 셈이다. 동시에 지금도 계속해서 조립작업이 컨베이어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뭘 상징하는 것일까? 노동자의 안전과 노동의 소외문제는 전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노동자를 최대치로 쥐어짜서 이윤을 늘이는 것밖에 고려하지 않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본성에 컨베이어 시스템이 가장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1970년대 도요타의 생산방식은 2018년 한국 자동차공장의 생산방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저자와 우리는 똑같은 현실 속에 놓여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논리에 종속돼 착취당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이 자본주의 착취논리에 따라 집행되는 한, 그에 맞서 싸우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전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 절망공장》은 그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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