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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자영업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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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6,112회 2018-08-18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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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부림치는 자영업자들, 고함치는 대자본가들 

 

8월 6일, 수원역 앞에 경기도 소상공인연합회 회원들이 모였다. 이들은 정부가 700만 소상공인을 버렸다고 외치며 최저임금 인상을 규탄하고, 릴레이 삭발식을 벌였다. 8월 9일엔 광화문에서 ‘소상공인 119 민원센터’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의 플래카드엔 “2년 새 29% 인상! 최저임금제도 개선!”이라고 적혀 있다. 자영업자들은 “다양한 업계 관계자들과 연대”해 8월 29일 ‘전국 소상공인 총궐기’를 조직하겠다고 선포했다.

 

인크루트와 알바콜에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지난해보다 매출이 감소했다는 자영업자가 53%, 수익이 감소했다는 자영업자가 64%에 이르렀다. 물론 이런 수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몰락의 비탈길에 위태롭게 서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언론을 쥐고 있는 대자본가들은 이렇게 절규하는 자영업자들에게 확성기를 들이대며 최저임금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들이 상상해낼 수 있는 온갖 자극적인 표현을 동원하며, 최저임금 인상 탓에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 고함을 친다.

 

이들과 마주한 청와대 자영업비서관

 

이달 6일 청와대는 자영업비서관이라는 새로운 직책을 만들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인태연 회장이 발탁됐는데, 그는 과거 <노동과세계>, <오마이뉴스> 등에도 기고하면서 자영업자들의 절망스런 처지를 대변해 왔다. 올해 1월 <창작과비평>에 기고한 글에서도 그의 시각이 잘 드러난다.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대형유통재벌들의 시장독점 욕망에 있다.” “대기업과 연관된 가맹점, 프랜차이즈 등 대리점 사장님들의 목을 죄는 수탈체계는 집요하고 잔인하다. 불공정한 카드수수료 체계와 통제되지 않는 임대료도 자영업자들을 먹이 삼은 사나운 맹수와 같다. 자영업자들이 일군 시장을 파괴하고 빼앗고 수탈하는 자본의 무한증식 욕망이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다.”(“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는 자영업자”, 2018년 1월 31일자 창비주간논평)

 

자영업비서관이라는 직책을 새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도 이례적인데, 그 자리에 “자본의 무한증식 욕망”을 규탄하는 인물을 세웠다는 사실을 보며 누군가는 “역시 촛불 대통령답다!”고 감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급하게 감탄하기 전에, 실제로 청와대가 하려는 게 뭔지 좀 더 들여다봐야 한다.

 

아름다운 ‘사회적 합의’의 나라

 

같은 글에서 그는 이런 결론으로 나아간다. 

 

“이 시점에서 나는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해당사자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이루는 사회적 시스템이 가동되기 바란다. … 자영업자와 노동자 그리고 유통대기업 등 관련 당사자들의 사회적 협의 테이블을 정부가 나서서 지속적으로 이끄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운영되는 노사정위원회가 자영업 관련 분야에서도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더할 나위 없이 명료하게 인태연 자영업비서관의 시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청와대도 그의 이런 면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그는 대자본가들이 어느 정도 양보해 주기를 기대한다. 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으로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저임금 노동자가 서로 양보해야 한다”며, 모두가 양보하기를 바란다.(8월 8일 ‘이범의 시선집중’,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이렇게 해서 아름다운 ‘사회적 합의’의 나라를 만드는 게 청와대의 꿈이다.

 

아름답지 않은 결과

 

노동계에 정통한 인물 문성현(전 금속연맹 위원장, 전 민주노동당 대표)을 영입해 노사정위원회를 가동하려 했을 때 청와대가 꾼 꿈도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도 이미 나와 있다. 

 

노동조합운동의 지도부들은 저 사회적 대화, 사회적 합의로 뭔가 이뤄지기를 기대했다. 그러는 동안 정부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악을 강행하며 이들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다. 사회적 합의란 덫으로 노동자운동의 팔다리를 묶어놓는 게 정부의 계획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점점 더 노골적으로 대자본가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면모를 내보이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벌어진 일이 이제 자영업자들에게 벌어질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어떤 ‘선의’를 가지고 있는가와 무관하게(그런 게 있는지 의문이지만),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가하는 압력이 정부의 모든 행동을 제어할 것이다. 돈의 힘으로 사회를 주물럭거리는 대자본가들은 계속 밀어붙일 것이고, 청와대 자영업비서관이 규탄한 “자본의 무한증식 욕망”은 정부의 보호 아래 생채기 하나 없이 꿈틀댈 것이다.

 

위기는 어느 방향으로?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자본이 주인인 사회다. 노동자가 절대적, 상대적 빈곤을 면할 수 없는 것처럼, 자영업자 역시 끊임없이 충원되면서도 끊임없이 몰락할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장기불황 시대에 자영업자의 불만, 분노, 절망은 점점 더 거칠게 누적된다. 

 

그리고 어디에도 답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방향감각을 잃은 자영업자들의 분노는 가장 절망적인 형태로 폭발할 위험이 있다. 지금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최저임금 인상을 공격하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대자본가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행동부대로서 전면에 나설 수 있다. 이는 노동자운동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할까? 자본주의 살리기에 매진하는 자본가들로부터, 정부로부터 답을 찾을 순 없다. 그렇다고 자영업자들 스스로 “자본의 무한증식 욕망”을 타개할 답을 끌어낼 수도 없다. 인태연 자영업비서관 말마따나 “소상공인들은 보수적인 집단”이다. 이들은 자신을 이끌어줄 어떤 ‘힘’을 느낄 때에만 진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상황은 엄중하다

 

사실 가난한 자영업자 상당수는 이미 최저임금 자체가 아니라 대기업 프랜차이즈 수수료, 임대료, 카드 수수료 등이 결정적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대금이 밀리면 바로 재료공급을 끊어버리는 대기업의 횡포에, 조물주보다 높은 곳에 있는 건물주의 위협에 도전할 엄두는 못 낸다. 그래서 제일 만만해 보이는 최저임금을 물고 늘어진다.

 

이런 상황은 저 자본주의 지배자들에게 누군가 대담하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일 때만 달라질 수 있다. 노동자들이야말로 그런 도전에 나서야 할 당사자들이다. 임금, 고용, 복지, 교육, 의료, 환경 등 어느 하나 이 체제에서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겐 자본주의 지배자들에 맞서 싸울 이유가 넘쳐난다.

 

누구도 도전할 엄두를 못 내는 그런 자들에 맞서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다면, 몰락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영업자들의 생각도 달라질 것이다. 정부와 자본가들에게 매달리며 최저임금을 물어뜯는 대신, 투쟁하는 노동자들 편에 서는 게 더 낫다고 여길 것이다. 반대로 그런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다수 자영업자들에게 노동자들이란 변함없이 ‘제일 만만해 보이는’ 세력으로 남을 것이다. 

 

상황이 달라지길 원한다면, 무엇보다 노동자운동 자신이 크게 달라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혀끝만 쳐다보며 이른바 사회적 대화로 뭔가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일체의 환상과 깨끗하게 단절하는 게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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