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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이 사회의 또 다른 이름 ‘게 공선’, 항로는 지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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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 조회 6,765회 2018-08-0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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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게 공선>의 한 장면

 

게 공선’, 항로는 지옥행

 

영화 <게 공선>은 게살 통조림을 만드는 어선이자 공장이 배경이다. 게 공선은 선박이 아니라는 이유로 항해법이 적용되지 않는 동시에, 공장법도 적용되지 않는 무법지대였다. 여기서는 선장이 아니라 회사에서 파견된 감독이 노동자를 마음대로 관리하고 지배한다.

 

예를 들어 선장은 근처에서 조업 중 침몰 위기에 처한 다른 게 공선 지치부호를 당장 구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배권을 쥔 감독은 말한다. “이게 누구 배인지 아는가? 회사에서 내준 것이다. 돈을 내고 말이야. 발언권이 있는 건 회사 대표인 이 몸이다. 일자리로 돌아가!” 결국 나란히 항해했던 지치부호는 침몰한다.

 

노동시간 이외에도 일을 시키며 폭언, 욕설, 폭행을 일삼고, 다른 공선들과 동료들 사이의 끝없는 경쟁, 이간질 등등. 노동자가 바다에서 죽임을 당하는 일 따위는, 자본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게 공선의 항로는 지옥행이다.

 

지옥행에서 천국행으로

 

노동자들은 뱃가죽이 등에 붙어 죽어 갔다. 하지만 언제나처럼죽을 순 없었다. 몸에 이상이 없는 노동자가 없었고, 이들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주인공들은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가야만 할 이유가 없음을,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함을 깨닫는 경험을 하게 된다. 더 이상 일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다수에게 퍼져갔다. 이전까지 분열되어 있던 노동자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게 공선은 멈췄고, 노동자들은 변화해갔다. 감독이 휘두르는 곤봉은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게 공선이 노동자 없이는 움직이지 않고, 진짜 주인은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도무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현실에서 꿈과 희망이 생겼다. 게 공선의 주인이 노동자라면, 지옥행이 아니라 천국행으로 갈 수 있었다.

 

영화는 노동자들이 더 전진했는지 아니면 깨졌는지까지는 보여주지 않고 끝난다. 이후의 상황이 다시 지옥행이 될지, 진짜 천국행이 될지는 노동자들에게 달려있을 것이다

 

<게 공선>과 한국

 

이 영화의 원작인 소설은 1926년 일본에서 일어난 하쿠아이호사건 등을 소재로 만들어졌다. 영화를 함께 본 사람들은 대학생, IT업계 노동자, 공장 노동자, 알바 노동자 등 다양했다. 우리에게 약 90년 전 일본이란 배경은 그저 먼 과거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영화를 함께 본 한 대학생 청년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학생 청년은 왜 공감할 수밖에 없었을까?

 

한국은 최상층 1%와 중산층 9%, 평균 이하의 삶을 누리는 65%와 최하층 25%으로 구성된 사회다. 100명이 경쟁해서 서너 명이 승자가 되고, 나머지 모두는 패자가 되는데도, 노력한 만큼 얻어 공정하다고 믿는 사회다.

 

물론 그 믿음은 허망하기 짝이 없다. 한국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5.8명으로 OECD 평균 11.6명보다 월등히 높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따르면 국내 고등학생의 연간 학습시간은 2,757시간으로, 성인 연평균 노동시간 2,069시간보다 월등히 높다. 그 노동시간도 OECD 평균인 1,764시간보다 훨씬 길다.

 

이뿐만 아니라 강제퇴근, 임금꺾기, 임금체불, 근로계약서 미작성, 취업규칙 위반 등등이 만연하다. 필자의 경우 처음 노동을 했을 때, 주휴수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일했다. 당연히 근로계약서는 구경도 못했고, 일거리가 없으면 조기퇴근과 당일 날 갑자기 출근을 거부당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데도 일은 원래 힘든 것이고 남의 돈 벌어가는 게 쉽지 않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필자도 한 대학생 청년처럼 영화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8년 무렵 일본 청년들에게도 소설 <게 공선>이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 배경이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게 공선이다.

 

<게 공선>과 우리 사이의 간극

 

끔찍하기로 따지자면, 객관적 조건들은 우리의 현실과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게 공선>과 우리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그 주인공들은 객관적 조건에 갇히지 않았다. ‘게 공선의 노동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불평만 하지 않았다. 그들은 행동했다.

 

물론 그들도 처음엔 불평만 했었다. 그러나 누군가 먼저 다른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죽어라고 일하면서도 불평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함께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우리들이 일하지 않으면 게 한 마리라도 부자의 손에 들어갈까?”라고. 그리고 과감한 행동에 나섰고, 행동하는 만큼 무언가를 배웠다.

 

그런 일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그렇고말고, 당연히 할 수 있지.” 이렇게 영화는 나에게,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사회의 노동자들도 게 공선노동자들처럼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불평만 하고 있을 건가. 나 자신의 손으로 그리고 우리가 함께 행동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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