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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 계엄령 문건은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좋은 본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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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5,670회 2018-07-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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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에 담긴 내용들

 

계엄령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위수령을 선포하고 이후 계엄령 선포로 나아간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광화문 일대, 여의도 국회 등 서울 각지에 탱크 200여 대, 장갑차 550여 대, 무장병력 4,800여 명, 특전사 1,400여 명을 투입한다.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전역에 기계화보병사단, 특전여단, 기갑여단 등을 투입해 장악한다.

국회가 위수령 무효법안을 만들 경우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한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국회에 병력을 보내 장악하고 국회의원을 체포, 구금한다.

계엄협조관(48)을 편성해 24개 정부 부처에 파견하고, 정부연락관(58)을 소집해 정부 부처를 지휘 감독한다.

정보수사기관을 조정, 감독해 집회, 시위 주동자 등 계엄사범을 색출한다.

보도검열단(48), 언론대책반(9)을 운영하면서 군 작전을 저해하는 내용이 보도되지 않도록 언론을 통제한다.

방통위에 유언비어 대응반을 만들어 시위를 선동하는 등 포고령을 위반하는 자의 SNS 계정을 폐쇄한다.

시위진압을 위해 필요하면 발포한다.

(문서 전체는 군인권센터 홈페이지 성명 및 보도자료에서 볼 수 있다.)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 속에 촛불시위가 벌어지던 무렵, 기무사에선 계엄령 선포를 준비했다. 기무사에서 작성한 문건은 이게 나라냐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좋은 본보기가 된다.

 

이 문건의 제목은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다. ‘전시라는 문구가 버젓이 들어가 있다는 데 주목해 보자. 이 문건은 당시 추진되던 박근혜 탄핵이 기각되면 국민감정이 폭발하면서 극도로 심각한 사회질서 혼란이 유발될 것이며, 따라서 국정 전반이 마비상태에 이르러 군에 의한 사회질서 조기 안정화 필요성이 대두된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박근혜는 탄핵됐고, 저들이 두려워 한 극도로 심각한 사회질서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들은 충분히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여겼고, 그것을 전시상황으로 규정했다. 이렇게 투입된 군인들에겐 촛불시위에 나온 사람들을 향해 발포할 권한이 부여된다.

 

극우세력은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드러냈다

 

군인들이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을 무렵 집권세력이었던 자유한국당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 사태를 정당화한다. 79일 김성태 원내대표는 문건 그 어디를 봐도 계엄령을 발동해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쿠데타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강변했다. “이런 대비책도 없으면 그게 군인가?”(김영우 의원)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지 않는 것은 군의 직무유기다.”(김태흠 의원)

 

그들의 주장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건 쿠데타 계획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당연히 마련해야 할 위기 대비책이다. 둘째, 기무사 문건은 촛불 집회만 겨냥한 게 아니라 태극기 집회도 겨냥했다. 순수하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의도였다. 셋째, 기무사 보고서를 유출한 군사기밀 유출 사범부터 수사해라.

 

이런 주장은 그들의 사고방식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첫째, 박정희, 전두환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에도 그들에게 그것은 군사혁명’, ‘구국의 결단이었지 결코 쿠데타가 아니었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라고 하는 시민들이 청와대로 달려가 실제로 그 주권을 사용하려 하는 건 저들에게 최악의 상황일 것이고, 그런 최악의 상황을 군사력으로 진압하는 게 저들이 통제하는 군대의 임무다.

 

둘째, 기무사의 계엄령 선포 계획이 촛불 집회뿐만 아니라 태극기 집회 세력도 염두에 둔 거라고 하지만, 그 무렵 어차피 우익들의 집회장에선 이미 군대여 일어나라’, ‘계엄령 선포하라따위의 구호가 나오고 있었다. 태극기를 들고 모인 우익들에게 계엄령 선포란 환영할 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셋째, 군사기밀 유출 운운하는 주장 역시 저들의 사고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헌법에 따르자면 국민이 국가기구 위에 있는 주권자일 텐데, 그 주권자들이 국가기구로부터 국가의 운영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감춰야 할 게 많은 모양이다. 주권자들에게 총부리를 겨누겠다는 계획서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 반면 지배계급끼리는 거래와 협력이 종종 잘 이뤄진다. 한국과 일본 지배계급 사이에서 군사기밀을 주고받기로 약속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그 사례이고, 문재인 정부도 이 협정의 효력을 연장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얼마나 다를까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316일에 기무사 문건 관련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그 문건이 폭로될 때까지 4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외부기관에 기무사 문건의 법리검토를 지시했을 뿐이다.

 

중요한 대목은 그다음이다. KBS 보도에 따르면 79일 송영무 장관은 국방부 내 간담회에서 기무사가 위수령을 검토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법리 검토 결과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 계획은 문제될 것이 없다”,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라고 했다. 단지 기무사의 직권남용이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발언이 논란이 되자 국방부는 송영무 장관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으나, 그 해명조차 궁색했다.

 

기무사에 대한 개혁 의지가 강했다고 알려진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기무사가 너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싶었을 뿐이다. 거기까지다.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는 주권자들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관점을 동일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문건 폭로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최악의 경우 군을 투입해서 질서를 확보하겠다,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주 세밀하게 들어가서 계획을 세우는 것, 이른바 실행계획을 짜는 것은 기무사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다.(75JTBC 인터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마찬가지로 주권자들을 겨냥해 군대를 투입해 질서를 확보하는 것에 대해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기무사의 권력남용은 문제이고 우리 사회는 민주국가이므로, 군대 대신 경찰을 투입하면 된다고 이철희 의원은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저 민주국가의 경찰에 의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피를 흘리고, 구속되고, 목숨을 잃었는지 결코 잊을 수 없다.

 

기무사 개혁?

 

기무사 사태에 대한 이들의 해법도 아주 제한적이고, 따라서 기만적이다. 단지 그들 권력집단 내에서 기무사가 과도한 권력을 가져가지는 않도록, 월권하지 않도록 제약을 가하자는 게 전부다. 그걸 대대적인 개혁”(이철희 의원), “해체에 버금가는 전면 개혁”(추미애 의원)이라고 저들은 부른다.

 

그런데 이번에 폭로된 기무사의 행태는 결코 처음이 아니다. 보안사 시절부터 그들은 이름만 바꿔가며 민간인 사찰을 지속했다. 여러 차례 쿠데타 계획을 모의했다. 세월호 투쟁과 박근혜 퇴진 촛불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정치공작을 벌였다. 우익단체들을 양성하는 데 관여했다. 그것이 기무사의 역사다. 서류상의 규정이 아니라 이 역사가 곧 기무사의 설립 목적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를 해체하자는 건 아니고를 되풀이한다. 결국 우리 앞에 남는 건 기무사의 막강한 파워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자들과 다소 제약하려는 자들 간의 권력다툼밖에 없다.

 

사실관계의 폭로와 당사자의 부인, 진술과 번복이 뒤섞이면서 언뜻 현상은 상당히 혼란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주권자가 진짜로 주권을 행사하려고 하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 때, 그들의 태도는 명확해진다. ‘질서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가 결코 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명확하게 드러난다. 선거 때 표 한 번 던지는 걸 넘어 정말로 주권을 행사하려는 주권자는 저들에게 그저 진압해야 할 폭도로 간주될 뿐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앞에서 서 있는, 지배자들의 손아귀에 있는 국가의 모습이다. 지배계급의 국가가 우리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은, 굶주린 호랑이가 숲 속의 사슴을 지켜줄 거라는 믿음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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