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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가짜 난민’을 방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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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5,330회 2018-07-0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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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한국을 찾은 평범한 예멘 사람들. 이들을 ‘괴물’로 만들 때 우리가 ‘괴물’이 된다.(사진_제주신보)

 

제주도에 밀려온 500여 명의 예멘 난민들이 한국사회를 흔들고 있다. 난민 수용을 거부하는 측에서는 이들을 받아들일 경우 살인과 강간 등 범죄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고, 테러리스트들이 똬리를 틀 것이며, 더 많은 일자리를 빼앗길 거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6월 20일자 <뉴스1> 기사에 소개된 제주난민대책도민연대 이향 사무처장은 “우리는 인종차별 집단도, 난민혐오 집단도 아니다. 갈 곳 없는 난민을 받아줘야 한다는 건 인정하지만 가짜 난민까지는 받지 말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비국민이 국민으로 쉽게 흡수되는 게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가짜 난민’

 

이들이 보기에 한국에 온 예멘 사람들은 ‘가짜 난민’이다. 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진짜 난민’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아마도 굶주려 뼈만 남은 사람들, 초점 잃은 퀭한 눈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피투성이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 제주도에 나타난 예멘 사람들은 멀쩡하게 옷을 차려 입고, 스마트폰까지 손에 쥐고 있다. 이들이 난민이라니!

 

놀라지 마라. 그들은 난민이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동등한 사람들이며, 단지 전쟁과 죽음의 위협을 피하고 싶어 고향을 떠난 슬픈 사람들이며, 평화롭게 일해 자신과 고향에 남겨진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인종차별이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런 평범한 사람들에게 테러리스트, 강간범, 저 혼자 살자고 가족을 버린 후레자식 같은 딱지를 붙이며 추방해야 한다고 외치는 태도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

 

다행히 근거 없는 난민혐오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완강하다.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범죄율이 한국인 범죄율보다 결코 높지 않다는 점,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인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주로 3D 업종에 종사하면서 오히려 한국경제 일부를 지탱한다는 점, 지금껏 해외에서 발생한 테러사건들도 ‘가짜 난민’이 아니라 대부분 그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 등에 대한 지적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뿐만 아니라 예멘이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등에 의해 군사적으로 난도질당하는 데 한국 역시 군사훈련과 무기수출 같은 책임이 있다는 점, 강제징집의 위협을 피하면서 일자리를 구해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야 할 필요 때문에 난민신청자 중 상대적으로 젊은 남성의 비중이 크다는 점, 이들에게 스마트폰이란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연락하기 위한 필수품이란 점도 지적됐다.

 

통계와 숫자를 넘어

 

그런데 범죄율 등에 관한 팩트체크 식의 ‘통계와 숫자’로 이 갈등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람들이 통계와 숫자를 읽을 줄 모르기 때문에 난민혐오 감정을 갖거나 가짜 뉴스에 이끌리게 되는 건 아니다. 그들 말마따나, 난민들을 쫓아내자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다(그 뒤에는 인종차별 조장 세력이 있을 수 있다). 그 평범한 사람들이 예멘에서 온 또 다른 평범한 사람들을 혐오하는 감정에 휩쓸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비국민이 국민으로 쉽게 흡수되는 게 공포스럽다”는 그들의 말을 상기해보자. 그들에게 ‘국민’이란, 세균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일종의 보호막 같은 거다. 그래서 난민을 받아들인다는 건 그 보호막이 찢겨나가는 것과 같은 공포를 유발한다. 이걸 뒤집어본다면, 난민혐오 정서의 밑바닥엔 결국 자신의 일상을 지킬 수 있는 보호막에 대한 갈망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갈망이 자라날 수 있는 근거도 차곡차곡 쌓여 왔다.

 

누적된 위기감

 

예를 들어 1997년 IMF 사태가 일어나자 평범한 삶을 이어가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났다. 당시 대통령은 ‘10년만 허리띠를 졸라 달라’로 말했다. 10년이 지나자 이번엔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흔들어놓았다. 점점 더 늘어나는 비정규직의 절망에 비례해, 내 일자리를 꽉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정규직의 불안도 커져갔다. 한쪽에서 노인빈곤이 심화되는 것과 나란히, 그 반대편에선 청년실업이 가중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을 겪으며 하루아침에 일상이 허물어질 수 있다는 불안이 극대화됐다.

 

이 모든 불안과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은 건 자연스런 생존본능이다. 하지만 그 불안과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아직 분명하게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럴 때 손쉽게 공격할 수 있는 누군가를 원흉으로 지목해 없애버림으로써 안도감을 얻으려는 욕구가 창궐할 수 있다. 전쟁, 기근, 페스트 같은 전염병이 유발한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녀사냥에 빠져들었던 유럽인들처럼 말이다.

 

현대의 마녀사냥

 

이런 뒤틀린 대응은 오늘날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되풀이된다.

 

“모든 걸 포기하고 죽어라고 공부해 가까스로 정규직이 됐는데, 정부정책에 편승해 시험도 안 보고 손쉽게 정규직이 되려는 비정규직들의 요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군대도 안 갔다 왔으면서 권리만 누리려는 여성들 때문에 남성들이 점점 더 불행해지고 있다. 남성의 권리가 짓밟히고 있는 실정이다.”

 

“이주 노동자, 불법 체류자들이 한국 노동자 일자리를 죄다 집어삼키고 있다. 굶어죽지 않으려면 그들을 모두 추방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예멘 난민들 때문에 우리의 삶이 난도질당하게 됐다는 주장으로 이 유서 깊은 마녀사냥은 이어진다.

 

이런 주장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의 비유를 빌리자면, 주인의 채찍 아래 노를 젓고 있는 노예선의 노예들이 함께 주인에게 맞서기보다는 서로를 증오하고 탓하며 다투는 것과 같다. 채찍을 든 주인은 이 노예들의 다툼이 노예선 전체의 ‘질서’를 무너뜨리지는 않도록 관여하고 필요에 따라 억제할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노예들이 서로를 질시하며 분열돼 있는 모습에 안도하며 미소 지을 것이다.

 

체념과 복종의 습관

 

노예선의 노예들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예들이 합심해 주인에게 도전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뿌리 깊은 체념이다. 괜히 나섰다가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주인에게 덤비는 것보다 충성을 바쳐 밥 한 그릇이라도 더 얻어먹는 게 낫다는 복종의 습관이다. 

 

자본주의라는 노예선에서 살아가는 현대의 ‘임금노예’, 노동자들도 이런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가? 지금 당장의 모습만 본다면 썩 희망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싸워봤자 내 인생만 망가진다는 두려움, 동료들과 단결하느니 회사에 줄 잘 서서 내 일자리 지켜보자는 복종의 습관, 심지어 회사도 싫고 노조도 싫고 오직 나만 살면 된다는 각자도생의 원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듯하다.

 

다른 길이 열려 있다

 

하지만 노동자는 충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여전히 두렵겠지만 복종의 굴레를 떨치고 투쟁에 나설 수 있다. 각자도생을 넘어 단결에서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노동자운동의 역사였다. 지금도 해마다 곳곳에서 노동자들은 단결투쟁에 나서며 스스로 희망이 되고자 한다.

 

아직은 그렇게 단결해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의 힘이 부족할 따름이다. 그 약점을 비집고 ‘외부의 적’을 만들어내 그들을 처단함으로써 살 길을 찾으려는 퇴행적인 정서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난민혐오 정서도 그 연장선에 있다. ‘가짜 난민’ 같은 허구의 적을 만들어내고 ‘국민’이라는 기만적인 보호막으로 자신을 둘러치려는 절망적인 시도다.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실마리도 바로 이 약점을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노동자를 갈라놓는 일체의 경계선을 넘어 노동자의 이름으로 단결하는 것만이 체제가 강요하는 온갖 불안과 고통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는 진정한 보호막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일 때, 비로소 난민혐오 같은 퇴행적인 정서도 발붙일 곳을 잃어버리게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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