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국제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은 비현실적이다 … 라는 비관에 대해

페이지 정보

오연홍 조회 5,584회 2018-06-28 13:43

본문

 

전쟁위협과 평화무드가 현란하게 교차하며 한반도를 뒤흔드는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나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단결’이란 관점을 중심에 놓았다. 이런 결론에 대한 반응도 잘 알고 있다.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국제주의라는 구호는 낡아빠진 것처럼 보인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노동자들이 국제적으로 단결하는 모습을 찾아보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니 말이다. 일상적으로 국경을 넘어선 자유로운 교류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부족한 일자리를 빌미로 다른 나라 노동자들을 향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정치세력들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우리도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단결이 자연스럽게, 간단히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흥미로운 사진 한 장을 보자. 

 

fb4ddb9804bff4dfcecd2449a0fb3828_1530160892_2929.png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얼핏 보면 몇 년 전에 한창 유행했던 싸이의 말춤을 추는 것 같다. 맞다. 이들은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추고 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이라는 도시에서 일하던 건설 노동자들이 2012년 말에 공연장 건설을 끝냈는데, 해를 넘기고도 고용주가 임금을 체불해 항의시위를 벌이면서 싸이의 말춤을 췄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이런 춤이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을 뜻하진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왜 싸이의 말춤을 췄을까? 

 

이 사진 속 누군가는 당장 가족의 생계에 타격을 입게 됐다. 또 다른 누군가는 설날(춘절)이 다가왔는데도 고향에 갈 수 없게 됐다. 또 누군가의 자녀는 더 이상 고등학교에 다닐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절박했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고 많은 이들의 주목을 집중시킬 방법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 고민의 결과, 아마도 (필자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어디인지 알지도 못하는 우한이란 먼 곳의 노동자들이 싸이의 말춤을 췄다. 

 

여기에 우리의 상상력을 조금 보태보자. 그들은 이렇게라도 하는 게 자신의 요구를 쟁취하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될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국적도 언어도 다르지만, 그들은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봤고, 그것을 써먹기로 했다. 그 노래와 춤이 많은 이들을 끌어당기는 걸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싸이의 춤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매력적이고, 힘이 느껴지는 그 무언가를 보게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예를 들어 다른 나라 노동자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임금체불이나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은 자본가들을 가차 없이 응징하는 모습을 본다면? 들불이 번지듯이 도처에 민주노조를 세우고 자본가들을 몰아붙이는 모습을 본다면? 전례 없는 대대적인 총파업으로 정부를 벌벌 떨게 하고 노동자의 요구 앞에 무릎 꿇게 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래서 “우리도 그들처럼 싸우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면? 

 

이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나라의 노동자들이 “우리도 러시아처럼!”을 외쳤다. 1989년 중국 텐안먼 항쟁에 앞장섰던 우알카이시는 1987년 한국에서 벌어진 항쟁이 자신들의 모델이었다고 증언했다. 2016년 촛불항쟁에서 영감을 얻은 일본인들은 지금 이 순간 자기 나라에서 촛불을 들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를 일본어로 바꿔 부르며 아베 퇴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누가 이것을 ‘비현실적’이라고 할 것인가. 누가 이것을 ‘낡아빠진’ 생각이라고 할 것인가. 

 

이런 일은 ‘중국보다 먼’ 남북한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1917년에 그랬듯이, 그리고 1987년과 2016년에 그랬듯이, 한국의 노동자들 자신이 강렬한 단결과 투쟁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또한 중국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싸이의 춤을 보며 자신들의 투쟁의 방법을 고민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남북한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류할 수 있는 권리, 북한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단결하고 투쟁에 나설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그렇게 싸울 수 있고 싸워야 하는 조건을 지금 남북한 지배계급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 기회를 붙잡는 데 성공했을 때, 노동자운동은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단결이라는 ‘비현실적’인 구호를 현실로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싸이의 춤을 추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일들이 펼쳐질 것이다.

 

 

부록

2018년 5월 24일자 <가자! 노동해방> 5호에 실렸지만 온라인으로 공유되지 않았던 기사 “중국 플렉스(Flex) 노동자들과 크레인 노동자들의 투쟁”을 첨부합니다.

 

최근 한반도 정세 관련해서 우리는 항상 ‘지배자들 간의 동맹’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만이 진정한 평화를 보증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는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중국 지배계급의 목소리가 아니라 중국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며, 그들의 운동이 더 성장해 우리와 함께 전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올해 초 중국에서 벌어진 파업 사례들을 짧게 소개한다.

 

광둥성 플렉스(Flex) 노동자들의 파업

 

중국에서 팍스콘 다음으로 큰 전자부품 하청공장인 플렉스(Flex)에선 매각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고, 나중에야 새 소유주가 임금을 삭감하고 희망퇴직 방식으로 해고를 추진할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6,000명의 노동자들은 3월 29일 파업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공장에 비치된 공구처럼 팔려나갔다며 회사를 규탄했다. 매각에 나선 자본가는 임금과 고용 등 노동조건의 악화는 없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절대로 공식적인 합의서를 쓰지 않으려 했다.

 

4월 8일부터 사측은 경찰의 묵인 아래 파업을 깨기 위한 경비대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경찰이 오직 부자들만 지켜준다고 항의했다. ‘공식’ 노동조합은 사측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파업 이후 2주가 지나도록 아무것도 안 했다. 그다음에야 개입을 시작했는데, 노조가 꺼낸 말은 “지역 당위원회가 우리에게 사회안정을 유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었다. 노조는 파업 노동자들을 ‘선동꾼들’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플렉스의 파업 노동자들은 자본, 국가, 노조의 합동공격에 밀려,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파업을 끝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의 투쟁은 시진핑의 권력 강화 행보가 결코 노동자투쟁을 완전히 봉쇄할 수 없다는 점과 더불어, 노동자들에게 독립적인 민주노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크레인 노동자들의 파업

 

올해 노동절에 맞춰 크레인 노동자들이 20여개 지역에서 파업과 시위를 벌였다. 4월 25일부터 부분파업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들은 지난 십 년간 제자리걸음인 임금수준을 규탄하면서 더 나은 임금과 8시간 노동제 등을 요구했다. 

 

파업이 벌어진 노동절은 중국에서 법적으로는 휴일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노동자들이 추가수당도 없이 일을 한다. 더욱이 크레인 기사로 일하는 노동자들 대부분이 가난한 지방에서 일거리를 찾아 온 이주민들로서 임시직으로 고용될 뿐이고, 공식적인 고용계약이나 연금, 의료보험 등이 적용되지 않는다.

 

일부 언론을 통해 이들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8~9시간을 일하고 밤까지 추가로 일하는 경우에도 추가수당은 없어요.” “새벽 두 시까지 일할 때도 있지만, 사장은 신경도 안 써요. 바로 다음날에도 이어서 똑같이 일해야 할 때도 있어요.” “우리는 하루에 적어도 12시간 일합니다. 우리에겐 사회보장도 없고, 계약서도 없고, 정부 차원의 관리감독도 없어요.”

 

파업이 일어나자 곳곳에서 체포와 구타 등 경찰의 탄압이 이뤄졌다. 쓰촨성 남동부의 충칭에선 열 명 정도의 노동자가, 허난성 중부 정저우에선 스무 명 정도의 노동자가 체포됐다고 한다. 중국에선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조직화와 파업, 시위가 모두 불법이기 때문에, 이들은 QQ(중국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에 비공개 방을 만들어 서로 소식을 공유한다. 수시로 경찰이 이를 적발하고 폐쇄하지만, 노동자들은 새로운 비공개 방을 다시 만들면서 또 다른 저항을 준비한다.

 

fb4ddb9804bff4dfcecd2449a0fb3828_1530160956_7571.jpg
올해 초 투쟁을 벌였던 중국 플렉스 노동자들(위)과 크레인 노동자들(아래)

 

 

 

<가자! 노동해방> 텔레그램 채널을 구독하시면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소식을 스마트폰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텔레그램 검색창에서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을 검색해 채널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노동해방투쟁연대’)도 있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노동해방투쟁연대

텔레그램 채널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

유튜브 채널 노해투

이메일 nohaetu@jinbo.net

■ 출력해서 보실 분은 상단에 첨부한 PDF 파일을 누르세요.

■ 기사가 도움이 됐나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온라인 정치신문 <가자! 노동해방>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058-254774 이청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목록

게시물 검색
로그인
노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