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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자 - 노조관료주의 극복과 노동자운동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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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조회 6,373회 2018-06-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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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비선라인 통해서 풀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같은 논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을 간파해야 한다.(사진_미디어충청)

 

6월 5일 금속노조 중집은 노조파괴 살인자 삼성전자서비스 최평석 전무에 대한 탄원서를 쓴 경기지부 간부 조건준 ‘면직’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 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전 부지회장이 협력업체 대표를 협박해 수천만 원의 금품을 챙긴 과정에 조건준이 중개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보도됐다. 언론사가 사실관계를 물었지만 조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정확한 사실관계를 알 순 없지만, 조건준의 ‘브로커 짓’이 과연 한두 개였겠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뿌리 드러내고 잘라내야

 

금속노조 중집 결정은 최악의 노동자 민주주의 파괴행위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금속노조는 파괴행위의 뿌리, 즉 비공개교섭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있다. 조건준은 2014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투쟁 때 최평석과 일명 ‘블라인드 교섭’이라는 1 대 1 비공개교섭을 주도했다. 당시에도 금속노조 안팎에서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그러나 금속노조는 비공개교섭을 용인했고, 그 이후에도 제대로 된 평가와 징계를 하지 않았다. 

 

바로 이렇게 금속노조가 원칙을 지키지 않고 허우적댔기 때문에 조건준은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브로커 짓’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싸우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비선라인 통해서 풀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혼자 독박 써야 하느냐”며 조건준을 감싸는 논리가 터져 나올 수 있었다. 

 

진정한 혁신을 위해 필요한 건 조건준 징계만이 아니다. 그것은 최소한의 출발이다. 이제라도 비공개교섭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바탕으로 교섭원칙을 재확립해야 한다. 그런데 금속노조는 그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금속노조는 탄원서사태에 버금가는 노조관료들의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묵과하고 있다. 금속노조 구미지부 간부 임강순이 KEC지회 투쟁이 한창이던 2014년 KEC 주식 28,543주를 구입한 일에 대해(2018년 현재 37,701주 보유) 조합원들이 징계요구를 한 지 한참 지났는데도, 금속노조는 아직까지 처리하지 않고 있다.

 

KEC는 2014년 10월 (공장을 폐업하고 공장부지를 상업용도로 변경해 복합쇼핑몰과 호텔 등을 건립한다는) 구조고도화를 추진하고 있었고 조합원들은 생존권을 걸고 폐업반대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구조고도화가 되면 KEC 주가가 10배 이상 뛸 거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왔다. 임강순은 조합원이 죽든 말든 자본의 이익을 나눠 갖겠다는 욕망으로 반노동자적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금속노조 진상조사가 5월 27일 시작됐는데, 진상조사기간이 무려 90일이고, KEC지회가 별도로 제기한 징계요구는 다루지 않아서 KEC지회가 항의하고 있다.

 

현대차지부에서는 지난 4월 지부 수석과 조직실이 사측과 술판을 벌인 사실이 폭로됐는데, 지부는 사과문 하나로 대충 마무리하려 한다. 곳곳에서 배신행위가 벌어지고 있지만,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판치면서 수많은 선배 노동자들이 목숨 바쳐 지켜온 민주노조운동의 규율과 투쟁기풍이 무너지고 있다. 그 뿌리에는 투쟁하는 노동자의 힘을 믿지 않고, 자본과 거래하다 급기야는 노동자 위에 군림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을 자본과 정부에게 갖다 바치는 노사협조주의가 놓여 있다. 

 

조합원들의 경험부족과 정치적 약점을 이용하는 관료들

 

2014년 블라인드교섭 문제가 처음 드러났을 때 나는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몇몇 동지들에게 비공개교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삼성 노동자들은 교섭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자체를 몰랐다고 얘기하며, 왜 지도부는 교섭 내용과 과정을 자세히 공개하지 않느냐고, 우리가 들러리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이제 막 노조에 가입하고 첫 싸움을 하고 있는데 사실 교섭과 투쟁의 원칙을 잘 모른다고 했다.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했다. 

 

조합원들의 경험부족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극복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민주노조운동의 근본원칙을 교육할 시간, 토론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조합원들은 이 기본원칙을 이해한다면 충분히 소화해서 실천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노조관료들은 근본원칙을 제시하고 함께 발전시켜 나갈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 뒤에 숨는다. 조합원들의 경험 부족을 이용한다. 아직 관료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단련된 활동가 층이 없는 신생 민주노조의 약점을 파고든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치열한 토론과 학습으로 조합원들의 의식적 힘을 키워 나가야 한다. 그런데 많은 민주노조에서 토론과 학습이 사라졌다. 학습과 토론이 있는 경우에도 그 주제는 당장의 투쟁을 둘러싼 전술문제로 제한된다. 조합원들의 정치의식은 성장하지 못한다. 관료들은 이것도 이용한다. 그렇다면 진지한 투사들과 평조합원들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답이 나온다.

 

노동자운동의 미래가 달린 문제

 

조건준은 2015년 이후에도 삼성이 지회에 전달할 내용이 있으면 전달했고, 지회가 삼성에게 전달할 내용이 있으면 전달했다고 한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지도부 자체도 거간꾼의 존재를 용인했고, 따라서 거간꾼이 활개 친 상황에 책임이 있다. 

 

탄원서사태가 터진 후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금속노조의 원칙과 규정에 따른 처리를 강조했지만, 조건준의 배신행위에 대해선 강도 높게 비판하지 않았다. 삼성의 전략에 말리지 말고 우리 갈 길을 가야 한다고 얘기한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런데 비공개교섭과 탄원서 등 노동자 민주주의 파괴행위에 대한 명확한 태도 없이 어떻게 제대로 전진할 수 있겠는가?

 

비정규직제도는 수많은 노동자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강요한다. 뼈저린 가난, 생활의 불안정, 수치심이 노동자의 삶을 망가뜨린다. 또한 이 제도는 그 어떤 사회적 합리성도 없다. 오직 노동조합 결성을 막고, 바지사장을 내세워 노동자를 더 지독하게 쥐어짜려는 착취자들의 더러운 욕망만을 반영한다. 

 

따라서 수많은 노동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이 비참한 비정규직 처지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 열망은 자본을 위협하는, 아니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엄청난 가연성 재료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정규직화를 열망하는 노동자투쟁을 차단하고 통제할 필요를 아주 강하게 느낀다. 어쩔 수 없이 정규직화를 실시하는 경우에도 온갖 덫을 설치해 노동자운동의 전진을 가로막으려 한다. 비공개교섭, 탄원서, 거래는 이런 의도를 가진 자본가들에게 완벽한 도움을 준다. 

 

조건준은 정말 교묘했고 비열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정규직화 열망을 이용해 자신의 배신행위를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조건준은 탄원서를 ‘정규직화를 위한 결단’으로 포장했다. 조건준은 이렇게 꼬드긴다. “어떻게든 정규직화만 되면 좋은 게 아니냐!”

 

하지만 조건준의 추악한 거래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피눈물 나는 투쟁을 지워버리고 민주노조운동의 앞길을 막는 최악의 배신행위일 뿐이다. 정규직화는 동료들과 함께 단결하고 당당하게 투쟁한 결과로 쟁취한 것일 때만 참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정규직화 이후에도 단결과 투쟁의 힘으로 자본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고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꿈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대의와 양심은 분명히 살아 있다. 탄원서사태가 알려진 후 많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분노했다. 한 노동자의 비판을 다시 한 번 인용한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범죄자를, 아니 살인자를 풀어주라고 했단 말입니까? 언제부터 노동조합이 사측과 딜을 하고 브로커 짓을 하나요? 기간이 1년, 아니 10년이 걸려도 당당하게 들어갑시다.”

 

그런데 관료들은 노동자의 대의와 양심을 확산시키고 노동자의 계급적 본능을 살리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꺾는다. 그리고 일부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조합주의적 의식에 영합한다. 

 

관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노동자의 대의와 양심을 확산시키고 노동자의 계급적 본능을 살리는 것이다. 조합주의 의식에 맞서 전체 노동자의 이해와 권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런 노력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강한 단결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아래로부터 조합원들의 비판과 행동을 끌어낼 수 있을 때 관료들을 제압할 수 있다. 이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끈기 있고 치열한 노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것만큼 가치 있는 일도 없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힘을 매장하고 있는 관료주의 극복에 노동자운동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자

 

조건준은 징계를 받았지만 탄원서사태를 낳은 뿌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민주노조운동 내의 적폐를 공론화시켜야 한다. 노조관료들이 퍼뜨리고 있는 조합주의, 노사협조주의, 개량주의에 맞선 노선투쟁을 회피하지 말자. 자신의 현장에서부터, 자신의 조직에서부터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을 전면화하자. KEC지회를 비롯해 관료들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방어하고 공동의 투쟁을 전개하자. 

 

노조관료주의 극복은 중요하지 않을 때가 없었지만, 앞으로 펼쳐질 문재인 정부에 맞선 투쟁에서 더욱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문재인 정부는 가짜 정규직화 같은 기만정책으로 노동자들을 포섭하기 위해 노조관료들과의 유착에 더 공을 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경제위기에 따른 노동자투쟁의 분출을 막기 위해 관료주의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다. 자본가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현장 노동자들의 주체성, 능동성, 투쟁의지다. 관료주의는 바로 이러한 노동자투쟁의 원동력을 무참히 파괴한다.

 

반드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노동자의 대의와 양심을 지키고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려는 동지들부터 실천해야 한다. 단호하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아래로부터의 집단적 힘을 신뢰하고 강화하는 것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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