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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새 시대’는 오지 않는다 - 노동자운동의 독립성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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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 조회 6,108회 2018-06-2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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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에 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지면서 평화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오랜 적대관계가 낳은 불안감이 일부라도 해소되길 바라던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환영했다. 정상회담 합의문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가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이 행보를 환영한 사람들은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에 표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했다.

 

‘평화의 새 시대’가 정말로 다가오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절대로 비껴갈 수 없다. “노동자운동은 이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가?”

 

이른바 진보정당들의 태도

 

노동자들 상당수가 ‘진보정당’이라고 여기는 정의당은 북미 정상회담 성사에 기뻐하며 6월 12일 이런 입장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북미관계가 최종 정상화되고 냉전이 완전히 해체될 수 있도록, 평화정착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 적극 협력하겠다.”(이정미 대표)

 

민중당도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진 4월 27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만남 자체도 역사적인 사건인데 두 정상은 우리 민족에게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안겨주었다.” “8천만 겨레에 평화와 통일의 큰 선물을 안겨준 남북 정상의 노고에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민중당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5월 27일자 서울시장 후보 논평을 통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앞에서 열어가는 남북 정상의 의지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판문점선언 이행에 아낌없이 협력해 나갈 것이다.

 

지배계급 정상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평화’ 분위기와 관련해, 이 진보정당들은 자신의 위치와 과제를 아주 명료하게 선택했다. 이들이 선택한 위치는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지배계급 권력자들에게 찬사와 박수를 보내는 응원석이다. 이들이 떠맡은 과제는 우리에게 선물을 내려주신 정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아낌없이 협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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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과제는 우리에게 선물을 내려주신 정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아낌없이 협력하는 것이다.(사진_연합뉴스)

 

진정한 평화를 바라는 다수 대중의 마음에 대해서라면 우리도 흔쾌히 공감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몇 차례 살펴봤듯이, 평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지배자들의 계획에는 다른 계산법이 감춰져 있다. “북한 노동력은 노조 없는 대한민국 노동력”이라는 이종석 전 장관의 발언이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처럼, 저들은 남북경협이란 이름 아래 북한을 일종의 내부 식민지로 조성해가려 한다. 이는 동시에 한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옥죌 것이다. 한반도 전체의 착취강화 프로그램이다. 

 

이런 현실에 정의당과 민중당의 ‘적극 협력’하고 ‘충심으로 감사’하는 정신을 대입해보자. 이런 협력 정신은 진심으로 평화를 바라는 노동자들을 단지 문재인 정부의 2중대로 전락할 위험에 빠뜨리는 게 아닌가.

 

민주노총은?

 

5월 3일자 <한미 노동자 판문점선언 환영 및 한반도 평화선언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과정을 이끄는 주체는 바로 남북 노동자 민중”이어야 하며, “우리는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남북 노동자의 주동적인 역할을 지지”한다.

 

노동자를 단순히 정권에 협력하는 박수부대로 전락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런 입장은 꽤 훌륭하다. 그런데 이런 입장 위에 민주노총의 또 다른 수많은 발언이 쌓이면서 어지럽게 뒤섞인다.

 

“민족자주와 민족공조의 원칙….”(4월 27일자 성명) “남북 민족공조의 힘으로 복잡한 국제정치질서와 환경을 바꿔가고 있다.”(5월 27일자 성명) “민족의 공존과 공영을 이루기 위한…”, “통일의 주인은 남북해외 8천만 민족 전체다.”(6월 15일자 남북 노동자 공동선언문)

 

원칙이라고 일컬어진 ‘남북 민족공조의 힘’은 현 상황에서 사실 남북한 정권을 가리킨다. 이번 국면에서 남북한 노동자계급은 남북한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정치적 주장과 행동을 전혀 조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 ‘남북 민족공조의 힘’이 ‘국제정치질서와 환경을 바꿔가고 있다’고 말하는 건, 의도했든 안 했든 남북한 지배자들 간의 협정과 거래에 노동자의 운명을 의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도 노동자들은 정권의 2중대로 전락할 위험에 빠진다. 

 

더 나아가 민족 공동의 번영, 8천만 민족 전체를 운운하는 대목에 이르면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8천만 민족이란, 현실에선 자본을 투자하고 노동자를 통제, 착취하며 이윤을 벌어들이는 지배자들과, 그들에게 고용돼야 먹고 살 수 있는 노동자로 나뉜다. 노예와 노예주가 함께 번영하고 함께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노동자는 없으리라. 마찬가지로, 현대의 임금노예인 노동자와 임금노예주인 자본가가 민족이란 이름 아래 공동의 번영을 누리고, 함께 ‘평화의 새 시대’의 주인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노동자계급의 독립성이 없다면, ‘평화의 새 시대’도 없다

 

물론 ‘진보정당’이나 민주노총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입장들이 기층 노동자들의 다양한 생각을 온전히 담아내는 건 아닐 테다. 거듭 말하지만, 정직하게 평화를 바라는 노동자들의 정서를 우리는 기꺼이 지지한다. 그런데 정의당이나 민중당 같은 이른바 진보정당들과 민주노총 기구의 공식적인 입장은 기층 노동자들의 정당한 열망을 형편없이 일그러뜨린다. 다른 무엇보다도 자본가계급 정당들과 그들의 정부로부터 노동자들이 지켜내야 할 독립성을 뭉개버린다는 점에서 아주 위험하다.

 

노동자들이 남북한 정권의 박수부대로 전락해 버린다면, 저들이 요란하게 포장하는 ‘평화의 새 시대’란 단지 평화의 탈을 쓴 착취의 새 시대가 될 것이다. 남북한 정권의 2중대로 전락하지 않으면서, 자본가들의 한반도 착취강화 프로그램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으면서 ‘평화의 새 시대’를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정치적 독립성을 세워내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문재인 정부에 아낌없이 협력하겠다는 협조주의 정신과 단절하면서, 국경을 개방해 완전한 자유왕래를 보장할 것, 북한 노동자들의 이동과 취업의 자유를 보장할 것, 북한 노동자들에게도 최저임금제를 보장하고 임금을 직접 지급할 것, 사상과 표현의 자유, 단결과 행동의 자유를 보장할 것 등을 내건 노동자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운동은 이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아직 우리는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그러나 절대로 노동자운동이 준비될 때까지 역사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자본가들과 그들의 정부는 자기들의 시간표대로,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밀어가려 분투할 것이다. 

 

그들과의 ‘대화와 협력’에서 살 길을 찾으려는 일체의 시도와 단절하고, 오직 노동자계급의 독립적인 단결에서 살 길을 찾기 위해 더욱더 분투하는 것 외에, 노동자들이 자신을 준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미·중·러·일 제국주의 자본가계급과의 협력이 아니라 세계 노동자계급의 단결만이 진정으로 평화의 새 시대를 가능케 한다. 이를 위해 남북한 노동자들이 서로 단결해 투쟁할 수 있는 권리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남북한 지배계급에 대항한 단호한 투쟁정신을 곧추 세워야 한다. 바로 이것이 노동자 독립성의 출발이다. 이를 통해서만 한반도 노동자계급은 새로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 당당한 주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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