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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터뷰 ∣ 이현경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대의원 - "서울교통공사,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해 규탄 성명 올린 아이디부터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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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자전진 여성운동위원회 조회 1,141회 2022-10-1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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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여성노동자의 죽음을 누구보다 먼저 규탄한 이들은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노조) 책읽는여성노동자모임(책모임)이었다. 이 책모임에서 활동해온 이현경 대의원은 동료 여성노동자를 잃은 고통과 분노 속에서 추모제와 집회에 참여하며 공사에 책임을 물었다. 그런 이현경 대의원을 전진 여성운동위원회가 만났다. 그는 여성노동자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다시 추적했다. 역무실 옆 여성노동자의 허술한 숙소와 악랄한 성차별, 대책이라고 나온 인력감축안. 그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제까지 수면 위로 드러난 진실은 보잘것없어 보였다. 심지어 여성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한 공사는 사건 후에는 동료 여성노동자들의 입부터 틀어막았다. 이현경 동지는 “고인이 누른 비상벨을 기억하자, 그 소리를 들었다면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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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광장에서 열린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제’에서 이현경 대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 : 민주노총 생중계 화면 갈무리)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인사건으로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이들은 책모임이었다. 책모임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


서울교통공사에서 일하는 여성조합원 10여 명(30대~50대)이 만든 것이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게 주된 활동이다. 2017년 7월부터 매월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있다. 이번 달 모임이 49번째였고, 코로나 때문에 두어 번 빼먹었지만, 줌도 이용하면서 꾸준하게 걸어오고 있다. 실천이나 다른 문화활동을 하기도 한다. 핵심 주제는 여성과 노동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이번 사건에 현장노동자, 특히 여성노동자들의 반응이나 분위기는 어떠했나


9월 14일 밤에 일하던 여성이 신당역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터질 게 터졌다. 우리가 그렇게 사람 달라고 얘기했는데 이 지경까지 겪어야 하다니!’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처음에는 ‘여성과 노동을 같이 공부하는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어떻게든 입장을 정리해보자’고 해서 성명서를 썼다. 그런데 새벽에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알게 되면서 성명서를 그대로 낼 수 없었다. 가해자는 직원이었고, 피해자를 스토킹으로 괴롭혔던 자였다. 그래서 ‘젠더폭력임을 명확히 하자, 일터에서 노동자가 죽은 것이다!’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그런 와중에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에서 ‘노조에서는 아직 성명이 안 나왔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문의해 우리 모임의 입장을 보내주었다. 첫날 신당역 집회 때까지 노조의 입장은 나오지 않았고, 우리 입장만 온라인으로 여기저기 퍼졌더라. 애초에 우리가 외부에 알리려고 입장을 낸 것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뭐라도 해야 하니 일단 조합원들에게 우리 입장을 알리자는 생각에서 낸 것이다. 현장 모임인 우리는 우리대로 입장을 내고, 노조는 노조대로 제 역할을 했으면 됐는데, 노조가 발 빠르게 대응하지도 입장을 내지도 못했다. 


우리 입장에 대해 페미니즘 시각을 가진 동지들은 좋다고 해 주시는데 굉장히 껄끄러워하는 집단도 있다. 공사가 가장 그렇다. 우리글을 사내게시판에서 두 번이나 내렸다. 올린 지 10분 만에 내려서 다시 올리려 하니 게시 권한 없음이라고 떴다. 사내게시판은 1인 1아이디이고 비실명인데도 위에서는 다 알 수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한 노조 간부가 아이디를 만들어 우리의 입장에 동의하여 게시한다고 밝히고 사내게시판에 다시 올렸는데 또다시 바로 삭제됐다. 9월 16일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여성노동단체들과 함께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살해됐다’는 추모행진을 했는데, 이를 알리는 게시물도 내려졌다. 


노조가 정식 요구와 실천 계획을 담은 입장을 내지 않고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던 상태에서 신문보도는 계속 터져 나오니 현장조합원, 직원들이 굉장히 갑갑해했다. ‘우리의 입장은 뭐지?’라는 궁금함과 갈급함이 있었는데 어디에서도 제공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모임의 입장이라도 계속 확산시키고 동의를 구하고자 했던 것인데 공사에 의해 차단당했다. 노조는 우리 모임 입장이 나온 다음날에 입장을 냈다.


내가 직접 뛰어다니며 현장분위기를 파악한 것은 아니라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현장은 사건 이전부터 굉장히 침체한 상태였다. 사건 이후 분노는 매우 컸지만 내부적인 힘이 모이지 않았다. 공사에서는 계속 차단하려고 했고 결과적으로 노조도 기대만큼 적극적이지는 못했다. 그렇다 보니 외부와 연대하는 데 한계가 명확했다. 내부에서 끌어가야 하는데 내부 동력이 없어서, 2주 동안 형식적인 추모행사를 진행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직원과 조합원들은 ‘밖에서는 시끄러운데 우리 내부에선 왜 별 게 없지?’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모임이나 직원들이 요구했던 근조리본 달기나 분향소 설치도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이뤄졌다. 충분히 애도하며 이 문제가 공통된 문제라는 공감대를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했는데 대응이 너무나도 늦어버렸다.


다만 여성노동자들이 갖는 부담과 남성노동자들의 그것은 확실히 다를 것이라고 본다. 여성노동자도 세대에 따라 다르다. 나 같은 세대는 이 사건이 일터에서 벌어졌다는 것 자체에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면, 젊은 세대는 직접적인 자기 몸에 대한 타격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무섭다, 두렵다, 밤에 (현장 숙소에서 취침해야 하는데) 잠이 안 온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가 지회 대의원인데 우리가 요구해서 17개 역을 조사해 보니 전자키를 안에서 잠글 수 없는 데가 두 군데나 있어서 시급하게 잠금장치를 설치해 달라고 했다. 사건 후 회사 차원에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이렇게 일터에서 사람이 죽었는데도 바뀌는 게 없구나’라고 내부 구성원들에게 더 큰 낭패감, 절망감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우리 교통공사는 i-센터에서 고객 응대를 한다. 잠금장치가 있지만 수시로 왔다 갔다 해야 하니까 평소에 잘 안 잠그곤 했는데 이번 사건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이젠 무조건 잠근다. 또 잠겼나 한 번 더 확인하게 된다. 전 직원이 받은 내상이 있는데 이게 치료되지 않아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염려스럽다.



이번 사건에 2인1조 근무,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했다. 여성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 만들기라는 점에서 중대한 요구이다. 여성 개인의 죽음이나 스토킹 여성살해로 한정하지 않고 산업재해로 바라보고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요구하는 것이 재발 방지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본다


2인1조 근무는 10여 년 전부터 지속해서 요구했던 사항이다. 1인 근무로는 안전에 무방비하다.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계기가 있지 않았는가. 2016년 구의역 사건이나 발전소 김용균 사건도 있고. 최소한 2명은 일해야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대처할 수 있다. 이것은 사회적 약속이라고 생각하는데 지켜지지 않았고 내부적으로도 ‘그게 되겠어?’라는 생각이 퍼져 있다. 워낙 오랫동안 굳어져 있다 보니 두 명이 같이 일하는 게 맞는데도 ‘너무 큰 요구 아니야?’라는 생각을 한다. 이번 죽음이 안타까운 게 한둘이 아닌데 ‘만약 2명이 순회했더라면 과연 가해자가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설령 어떤 상황이 벌어졌다 하더라도 혼자서 비상벨을 누르다 죽음에 이르는 상황으로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다. 비용이 많이 드니 우리가 포기해도 되는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의 목숨이 걸린 문제인데 자본뿐 아니라 노동자들도 너무 쉽게 불가능한 문제로 생각해온 것 같다.


산재라고 이야기한 것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었으니까 당연했다. 그것 말고 다른 게 필요할까 싶다. 근무 중에,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개인적인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하게 되어 있는 업무 수행 중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므로 그 앞에 어떤 구체적인 서사가 있고 없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산재로 인정되지 않으면 도대체 산재란 무엇인가? 그래서 당연히 산재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족이 장례를 치렀고 노조와 유족이 접촉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만약 산재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때에도 여전히 유족만의 문제로 둬야 할 것인지 의문스럽다.


노동자가 출근해서 안전하게 퇴근할 수 있기까지의 전 과정은 사용자의 책임 아닌가. 이번 사건 직후 공사가 각 부서에 안전대책을 내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래서 나온 대안이라는 게 여성 당직 폐지라거나 화질 좋은 CCTV의 어마어마한 확충, 그리고 호신술 장비 도입이었다. 그 상상력이란 참! 작업장의 안전을 사용자가 책임질 생각을 해야지 개인의 능력에 맡기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호신장비를 도입했으니 회사는 할 일 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려다 보니 해괴한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공사 사장이 국회 여성가족위에 대책으로 내놓은 ‘여성 직원 당직근무 축소’는 정말 현장을 전혀 모르고 한 소리이다. 당직은 밤 1시부터 새벽 4시까지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번 사건은 밤 9시에 순찰하다 생긴 것이다. 사실 당직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2인1조 근무는 노동자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요구안이다. 그러나 공사는 명색이 공공기관이면서도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에 따라 인력 감축과 외주화를 강행하며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요즘 노조는 임단협 중이다. 10월 4일 본교섭 자리에서 공사가 안을 제출했는데 구조조정이 골자였다. 원래 9월 하순 경에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이번 사건으로 보름 정도 미뤄지다가 ‘인력공백, 2인1조 순회하지 못하는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나왔다. 사건 대책 같은 이름을 달고 있지만, 핵심은 인력감축이다. 공사의 전체인력이 1만7천 명인데 1,200명을 줄이려고 한다. 정직원의 다양한 업무를 자회사로 이관하고, 위탁하고, 2호선을 1인 승무체제로 바꾸고, 1인 근무 인력공백 방지를 위해 현재의 4조2교대 근무형태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존 인원의 지원근무 시간을 늘리고자 한다. 현재는 연 6일 지원근무를 하는데 이를 연 28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지원근무는 굉장히 어렵다. 현재의 근무형태인 주야비휴-주야비휴에서 비번 때 야간 근무를 해야 한다. 그러면 그 다음 주야비휴는 정신없는 상태로 지나간다. 이렇게 힘든 지원근무를 연간 28일 하면 노동자의 생체리듬과 생활리듬은 완전히 깨져버린다. 


공사가 정말 악랄하다. 자기들이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이 인원 부족으로 목숨까지 잃었는데 대책이라며 내놓은 것이 근무형태 개악이다. 그러나 이는 인력도 줄이고 노동자 건강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니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신당역 사건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개선책도 내놓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공기업 사장은 허수아비나 다를 바 없다. 특히 서울시 투자기관이니 뒤에 오세훈 시장이 있고, 그 뒤에 윤석열 정부가 있는 것이다. 오세훈 시장, 윤석열 정부와 이들의 하수인인 사장이 만들어낸 셈이니 공사의 책임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공사가 어떠한 재방방지대책도 내놓지 않은 것은 이번 사건을 직장 내 성폭력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기껏해야 직위해제되면 사내전산망 접속을 차단하는 정도인데, 그것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순 없다. 가장 먼저 사업장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단 공사 마음대로 하지 말고 공사 때문에 발생한 사안이니 노조와 공동의 조직문화실태조사 TF를 꾸려야 한다. 또 노조가 주도해서 외부전문가를 영입하고, 노조가 그 전문가들과 실태를 조사할 수 있는 조건 역시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개선책이 가장 시급한데 현재 그런 고민은 전혀 없다. 



직장 내 성폭력을 외면해온 자본이 이 참사를 낳았다. 몇 년 전 여성노동자 채용 과정에서도 비리가 있었다. 여성노동자의 당직을 줄이는 걸 대책으로 내놓은 것도 문제다. 성차별적인 시각이나 문화가 만연해 있을 듯하다


언론에도 나온 비리나 당직 제한 대책 등이 모두 구조적인 차별에 해당한다. 윤석열 대통령에게만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 사업장이 가진 성차별적 문화는 어느 조직에 있든 여성노동자라면 모두 느낄 수 있는 것들이다. 일상적으로 여성이 제일 마지막에 승진된다. 내가 일하면서 느낀 가장 큰 남녀갈등은 인원과 관련된 것이다. 역무직에서 나는 통상근무를 하고, 남성들은 교대근무를 한다. 내가 통상근무를 하는 건, 공사가 날 배려해서가 아니다. 여성에게 통상근무가 훨씬 수월하다는 차원의 문제도 아니다. 교대인력이 부족한 걸 메꾸는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소인력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주간에 통상근무자인 내가 없으면 남성노동자들은 휴가를 쓸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교대근무 하는 남성들은 통상근무 하는 여성이 굉장한 특혜를 받는다고 여긴다. ‘우리도 통상근무 하고 싶은데 왜 여자들은 교대사업장에서 교대 안 하고 통상만 하냐’ 20년 넘게 들어온 얘기다. 9 to 6(오전 9시에서 오후6시까지) 통상근무는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동안 기형적인 형태로 오전반, 오후반 2조1교대를 하다가 인원이 줄어드니까 8~5시, 주7일 근무주기의 변형일근을 했다. 그런데 인원을 늘리지 않은 채 4조2교대로 바뀌면서 공백을 메꿀 누군가가 필요해졌고 그래서 통상근무가 도입된 것이다. 5~8호선 얘기다(구 서울지하철은 조금 다른 체계다.) 


우리 사업장에서는 2012년부터 여성도 교대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서울지하철은 2006년부터 시작했다. 교대근무를 하면 여성도 이제 남성과 동등하다는 얘길 들어야 하는데 그래도 여성은 욕을 먹는다. ‘여성은 노동자 한 사람 몫을 못 하니 우리 조엔 오지 말라’라고 한다. ‘야간에 취객 상대하려면 여성 혼자는 어렵다’, ‘남성이면 혼자 할 수 있는데 여성이면 힘을 보태야 하니 여성 때문에 남성이 힘들다’ 이렇게 되는 것이다. 5~8호선에는 여성 숙소가 없는 곳도 있다. 여성교대근무가 늦게 도입되어서 공간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숙소까지 이동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이걸 두고 남성노동자들은 ‘막차에서 승객 다 내리게 하는 걸 남성들만 한다, 여성은 힘든 일 같이 안 하고 자러 간다, 아침에 일할 준비 다 해 놓으면 그때 온다, 여자들은 더 편한데 어떻게 같은 교대근무냐’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건 구조적인 문제다. 교대 여성노동자들은 ‘똑같이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왜 조건을 안 만들어 주냐, 내가 일하는 역에도 숙소를 만들어 달라’라고 요구해 왔다. 인원문제는 남녀가 서로 싸울 게 아니라, 공사와 서울시를 향해서 남녀가 같이 요구하고 투쟁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멀고 힘들다 보니 함께 일하는 남녀 내부에서 서로 옥신각신한다. 우리 사업장에도 차량, 기술, 승무에 여성노동자들이 들어온다. 그런데 역만큼은 아니더라도 남성이 많은 데서 여성이 일하니 불편하고 부담스러워한다. 남성들은 ‘여성이 우리와 똑같은 양의 노동을 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사업장 내에 존재하는 성차별 또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다. 


2016년 면접점수를 조작해 여성 응시자를 떨어뜨린 것에 대해 사측은 ‘여성을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라고 변명했다. 승강기안전문 관련 부서였는데 실제 100% 남성이다. 여성이 들어오면 침실, 샤워실, 휴게실 등이 필요한데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면 어떻게 여성이 일을 할 수 있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그러니까 여잔 필요 없어, 여잔 안 뽑아, 그러기 위해서 우린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 이렇게 된 것이다. 일자리는 여성에게 생존이다. 이제 더 이상 남편이 돈 벌어오고 여성은 집에 있는 시절은 지났다. 똑같이 배웠고 졸업과 동시에 남성 못지않게 여성이 취업하는 게 너무도 당연한 사실인데 사회는 여전히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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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광장에서 열린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제’   



이번 죽음의 책임이 공사에만 있지는 않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며 여가부를 폐지하려 한다


며칠 전에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교육부를 폐지하겠다고 하던데, 어떻게 이 정권에서는 자기 부서를 폐지하겠다는 사람이 장관이 되나 싶다. 말이 안 된다. 윤석열 정부의 여성관을 우리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딱 그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여성은 복지의 대상, 여성관련 정책은 비용이 나가는 시혜로 생각한다. 너무 자존심 상한다. 실제 여가부가 우리 사회의 성평등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 있어서 과연 얼마만큼 일했느냐는 여가부 폐지와 다른 문제라고 본다. ‘여가부가 그동안 제대로 기능도 안 했는데 비판받든 말든 무슨 상관있어, 어차피 노동자와 관계없는 국가의 한 부서일 뿐인데’ 이렇게 보는 것은 너무 단편적인 것 같다. 여성가족부를 자본도, 국가도 필요로 하니까 만들었겠지만 지금 그 부처를 폐지하겠다고 하는 건, 두 가지 이유인 것 같다. 하나는, 윤석열이 말하는 구조적인 성차별이 끝났다는 것의 연장, 다른 하나는 자기들 내부에서 대선에서 재미를 봤네 안 봤네 말이 많지만 남녀 편 가르기이다. 특히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지금, 다시 한 번 젊은 남녀 편 가르기를 통해서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도 여성은 절대 주체로 상정되어 있지 않다. 여기 붙여도 되고 저기 붙여도 되는, 부수적인 존재 또는 얼마든지 자기들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굉장히 불쾌하고 자존심 상한다. 조직의 효용성을 따지기 이전에 무조건 폐지는 막아야 한다. 여성들이 좀 더 저돌적으로 여가부 폐지 반대 운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가부 장관이 신당역에 헌화하러 와서 이건 젠더폭력이 아니라고 말했다. 직장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가 죽었는데 직장 내 성폭력도 아니고, 산재 여부도 명쾌하지 않다고 하는 공사와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그 장관과 관계없이 여가부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부처이다. 



여성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산업재해로 규정한다면, 마땅히 중대재해로 취급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엄벌주의가 성폭력 사건과 여성살해에 대한 근본대책은 될 수 없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의 안전과 목숨보다 자본의 안위와 이윤을 더 중시하며 철저히 자본 위주로 미미한 처벌만을 고집한다. 노동자를 위협하는 각종 산업재해, 직장 내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처벌수위를 강화하기 위한 투쟁을 민주노조운동이 더 힘 있게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강화돼야 하고 산업안전보건법도 직장 내 성폭력을 명확히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의 안전할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이므로 직장 내 성폭력은 산업안전의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 대개 성희롱 피해자들이 직장을 떠난다. 사실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떠나는 경우도 모두 자기 생존권과 관련돼 있다. 직장 내 성폭력은 섹슈얼리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여성노동자에게는 근본적인 노동권의 문제이다. 그 노동권을 침해당한 것이므로 산업재해로 취급해야 한다. 반드시 법률적으로 보완돼야 한다. 직장 내 성폭력에 현재 제외된 스토킹 등이 포함되고, 산안법에도 노동권을 침해하는 직장 내 성폭력이 포함돼야 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과연 법만의 문제인가라는 점이 남는다. 노자 간 힘의 관계에서 노동자가 우월한 힘을 가지고 절차적 필요에 있어서 산안법을 노동자의 입장으로 해석하고자 한다면 지금도 충분히 그럴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해석을 관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일부 강화한다고 해서 사용자가 그걸 겁내 노동자가 안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하려고 할까? ‘차라리 처벌받고 말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법의 보완은 필요하지만, 법에 기대는 것에는 회의적이다. 웬만큼 높은 처벌 수위를 정하지 않는 한 한국 사회 자본가들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만 해도 사업장에서 사망한 노동자가 계속 나오고 있고, 대부분 하청, 하청의 재하청에서 사건이 생기는데 그걸로 원청 사용자가 처벌받았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이번 사건에 대해 누구보다 앞장서 투쟁한 당사자로서 전국의 투쟁하는 노동자들, 특별히 여성노동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한다


엄청난 사건이 터졌고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변화를 기대했다. 그런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그라들고 어떤 변화도 만들어진 게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일터에서 사람이 죽어도 공사가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고 변화도 없으니 내부 구성원들이 ‘안 되는구나’라는 절망감이나 패배감을 가지면 안 되는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나 염려가 된다. 젊은 여성들이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하고 도와달라고 한 대가가 조건의 변화가 아니라 자기에 대한 폭력, 심한 경우 목숨을 잃는 것이라면 차라리 혼자 고통을 참는 게 낫지 않나’ 이런 얘기를 자기들끼리 했다는 걸 듣고 정말 마음이 아팠다. 


고인이 누른 비상벨을 기억해 보자. 살기 위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다했고 그 비상벨은 살려달라는 신호였을 뿐 아니라 살고 싶은 욕구, 살아야 한다는 신호가 아니었을까. 고인을 애도한다면, 우리가 그 비상벨 소리를 들었으니 우리가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이번 일을 겪으면서 겁도 나고 두려움이 이전보다 커지기도 했겠지만 숨거나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여러분이 일하는 사업장에도 정도는 다르겠지만 성희롱이나 성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여성노동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면 부족하더라도 옆에 있는 여성노동자와 같이 문제를 풀어줬으면 좋겠다. 사실 내부의 힘만으로는 고인을 추모하는 추모제나 집회를 2주 동안 매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여성단체, 노동단체, 노조의 여성간부와 활동가들이 함께해 줬기에 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여성들이 연대하고 손잡고 해 나간다면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게 완전히 불가능한 문제는 아니지 않을까? 보신각에서도 끝까지 싸우자고 외쳤는데, 그럴 수밖에 없고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서로가 알아봐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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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살해당했다” 9월 16일 여성노동자가 안전한 일터를 위한 침묵 시위에서 이현경 대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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