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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희오토와 비교되는 ‘광주형 일자리’ - 노동자의 대안인가 자본가의 대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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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우 조회 12,599회 2018-06-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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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을 생산하는 동희오토 공장 내부. 겉으로 보기엔 여느 자동차공장과 다를 바 없다.(사진_충청투데이) 

 

2014~5년 경 내가 동희오토 공장에서 일하던 어느 날 대규모 방문단이 현장에 들어왔다. 정규직이 한 명도 없는 100% 비정규직 공장으로 악명 높던 동희오토는 많은 정부기관과 자본가들이 따라 하고픈 롤모델 같은 게 돼 있었기 때문에, 많은 곳에서 견학을 왔다.

 

하지만 그런 견학이 잦다는 건 정작 동희오토 현장 노동자들에겐 아주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청소를 그만큼 많이 해야 한다는 것, 작업시간 통제가 더 강화된다는 것, 동물원 원숭이가 된 듯한 모욕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그날 현장을 찾은 방문단은 광주시청이었다. 광주시청이 왜 동희오토를?

 

자동차 100만 대 생산기지로 시작된 광주형 일자리

 

2014년 광주시장에 당선된 윤장현은 박근혜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자동차 100만 대 생산기지 광주를 추진했다. 기아자동차노조 광주지회장도 적극 협력했고, 기아자동차 광주 4공장 유치라는 것으로 구체화됐다. 당시 새누리당도 당론으로 채택하고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정 대타협을 통해 적정임금(4천만 원)을 주고받는 형식으로 대기업 자동차공장을 유치, 일자리를 만드는 프로젝트인 광주형 일자리모델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기아자동차 광주 4공장 유치는 실패로 끝났다. 현대차그룹은 논의나 협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해외생산 비중을 높이던 현대차그룹으로서는 당시만 해도 국내에 투자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4년이 지난 201861, 현대자동차가 광주 빛그린산업단지에 완성차공장 건립에 참여한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기사회생했다. 64일 현대차 관계자들이 공장부지를 실사하면서 속도를 내는 것처럼 보였고, 613일 새로 광주시장에 당선된 이용섭도 광주형 일자리모델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히면서 급진전을 이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619일로 예정됐던 광주시와 현대차의 투자협약식은 연기됐다. 어떤 차를 생산할지, 법인구성을 어떻게 할지, 경영책임은 누가 질지에 대한 의견을 좁히는 데 실패한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와 비교되는 동희오토

 

광주시청이 동희오토를 견학한 건 광주형 일자리모델이 무엇을 벤치마킹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현대기아차 정규직 임금의 절반인 연봉 4천만 원의 임금과 위탁생산 방식의 자동차공장이 핵심인 광주형 일자리모델은 동희오토와 아주 많이 닮아 있다.

 

동희오토는 2001년에 설립돼 2004년 충남 서산에서 기아자동차 모닝을 위탁생산하기 시작했다. 기아자동차가 35%의 지분을 소유하고 현대자동차로부터 공장토지와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으며, 자동차 설계, 개발, 발주, 관리, 판매, 정비A/S 등 직접 생산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현대기아차가 담당했다. 현재는 모닝뿐만 아니라 레이와 레이 전기차까지 차종이 확대돼 연간 30만 대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현대차 자본은 경차를 정규직이 생산하면 적자라며 당신들은 건들지 않을 테니 외주 위탁생산공장을 짓는 데 합의하라고 종용했고, 기아차노조는 동희오토 설립을 합의해 줬다. 동희오토는 그렇게 노조 없고, 파업 없고, 정규직 없는 3공장을 목표로 전략적으로 설립됐다. 국내 자동차산업 최초의 완전 위탁생산공장의 탄생이었다.

 

악명 높은 위탁생산공장

 

동희오토의 생산직 노동자들은 모두 비정규직이다. 매년 최저임금이 이곳 임금의 기준이 됐다. 잔업에 특근, 야간까지 풀로 일해도 연봉 4천을 넘지 못한다. 2017년에는 최저임금 인상폭이 커지면서 상여금 600% 중에서 300%를 기본급에 녹였다. 그것도 연장, 휴일, 야간수당이 늘어날 것까지 대비해서 임금총액은 그대로 유지하도록 계산됐다.

 

현대기아차가 201334일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시해서 밤샘노동, 심야노동을 없앤 반면, 동희오토는 지금까지도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운영돼 왔다. 그나마 경차시장이 전반적으로 축소되면서 일감이 줄자 20188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시할 예정이다. 물론 임금삭감에 대한 보전은 미미할 뿐이다. 풀잔업, 풀특근으로 근속 10년차가 4천을 받던 시절은 이제 다시 오지 않게 되면서 퇴직하는 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컨베이어라인 편성률은 평균 90% 수준이고, 옵션에 따라서 97%까지 치솟는다. 여유인원도 부족하다. 노동부 근로복지공단은 2013년 야간조 근무 중식시간에 식당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노동자에 대해 산재를 인정했다. 이를 통해 동희오토의 살인적인노동강도라는 말이 단지 말뿐이 아님이 입증됐다.

 

이와 같이 동희오토의 임금, 노동조건이 열악한 상태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어용노조가 회사와 손발을 맞춰 왔기 때문이다. ‘노조 없는 공장을 목표로 한 동희오토에 노조라고? 그렇다.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5년 열악한 임금,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민주노조를 세웠다. 현대기아차 자본은 업체폐업, 계약해지, 징계해고, 협박, 강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민주노조를 탄압했다. 만일을 대비해 준비해 놨던 유령노조를 오픈시켜 강제로 노동자들을 가입시키고, 이 어용노조를 통해 노동자들을 통제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아직 대체로 성공하고 있다.

 

정규직을 공격하는 수단

 

자본가들과 조중동, 경제신문들은 동희오토를 추켜세웠다. 동희오토는 2007년 기준 1인당 생산량이 174대인데 비해 기아차 화성공장은 62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른 여러 조건을 감안하더라도 노동생산성이 기아차의 2배를 넘어서 경차=적자라는 공식을 깼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파업이 없는 것까지 감안하면 생산성 차이는 더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광주공장에서 생산되는 기아차 쏘울(AM)을 동희오토에 투입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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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없고, 파업 없고, 정규직 없는 3공장동희오토를 격찬한 자본가언론(20081016일자 <중앙일보> 기사)

 

현대차 자본은 동희오토를 설립할 때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구성되고 어용노조로 현장을 통제하는 동희오토가 정규직의 고임금, 낮은 생산성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둔갑하는 데는 몇 년 걸리지 않았다. 동희오토 비정규직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현대차 자본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있었던 만큼, 현대기아차 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한 비난 역시 거세졌다.

 

반면에 광주형 일자리는 처음부터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됐다. 정규직 임금의 절반인 연봉 4천만 원, 현대기아차 노조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독립법인을 강조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광주형 일자리를 현대기아차 노조가 반대한다면? 고임금 기득권에만 집착하고 생산성은 낮은 귀족노조로 몰아붙여서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정규직이 양보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찬성한다면? 위탁공장의 낮은 임금과 높은 생산성(=착취도)을 강조하며 정규직을 공격한다. 이것이 자본가와 정부의 전략이다.

 

동희오토와는 다르다과연 그런가?

 

광주형 일자리를 추진하는 광주시와 문재인 정부는 동희오토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 가지 점에서 동희오토와 다르다고 차이점을 밝혀야만 했다. 하나는 광주시가 투자에 참여한다는 것, 둘째는 노동자들의 경영참가를 보장한다는 것.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정책처럼 어쨌든 말로는 정규직 방식의 일자리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당연히 광주형 일자리도 동희오토처럼 생산직 전원이 하청업체를 통해 비정규직으로 채워지는 공장이 된다면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광주시가 투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정규직 고용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탁생산 방식이기 때문에 중규직이라고 비난받는 또 다른 방식의 자회사와 다름없다.

 

노동자들의 경영참가 역시 상황을 바꿀 수 없다. 자동차산업이 이미 포화상태인데다가, 전기차시장은 아직 출발단계이기 때문에 새로운 완성차공장이 이윤을 낼지 어떨지 전혀 알 수 없다. 현대기아차 정규직 노조의 통제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경영참가는 위탁생산공장이 안정적인 이윤을 내도록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동희오토에서 어용노조가 상여금 기본급 전환을 통한 임금삭감, 높은 편성률 등 공장운영에 대한 자본의 계획에 동의해주는 것도 일종의 경영참가가 아닌가.

 

동희오토 노동자들은 광주형 일자리 소식을 듣고 단박에 우리와 다를 게 없다”, “동희오토 판박이라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와 광주시가 아무리 정규직 고용, 경영참가라는 색칠을 하더라도 노동자의 눈에는 진실이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다.

 

일자리를 둘러싼 전투

 

자본주의 경제가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일자리문제는 이미 사회적 전투의 장이 됐다. 일자리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세력은 어떤 지지도 받을 수 없다. 자본가정부와 자본가들은 고용 없는 성장을 추구한 장본인이면서도 높은 실업률을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조직된 노동자들 책임으로 돌렸다. 가짜 정규직, 자회사, 무기계약직과 다름없는 조금 나은 일자리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청년실업률이 높고 저임금, 비정규직, 나쁜 일자리가 넘치는 판에 연봉 4천짜리 일자리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와 자본가들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란 이름으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기 정치적 기반으로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으면서도 자본가들은 광주형 일자리를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하는 기회로 보고 달려들고 있다. 한편으로는 연봉 4천만 원으로 새로운 노동자들을 값싸게 부려먹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빌미로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임금삭감을 강요함으로써 이중으로 이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GM 군산공장을 폐쇄한 것처럼 자본은 이윤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멀쩡한 공장을 고철덩어리로 만들어 수많은 노동자를 실업으로 내몰았다. 정부는 이를 방관했다.

 

자본가들과 정부는 좋은 일자리를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을 실현할 힘을 조직하지 않는 한, 자본가와 정부의 저 형편없는 대책조차 가난한 노동자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다. 만약 조직된 노동자운동이 자기 일자리와 임금을 지키는 것으로만 투쟁을 제한한다면 이런 상황을 절대 바꿀 수 없다.

 

30대 재벌 사내유보금은 해마다 늘어서 2017년 말 기준 883조 원이다. 이중 극히 일부만으로도 즉각 모든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1만 원을 지불할 수 있고,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일자리문제를 해결할 사회적 부는 엄청나다. 이 부는 노동자 전체를 다단계 하청구조의 사슬로 묶어 착취한 결과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자본가들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부라 불러야 마땅하다.

 

문제는 그 사회적 부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누가 결정하고 통제할 것이냐다. 조직 노동자운동이 거대한 사회적 부를 직접 통제하고, 한줌 자본가의 이윤이 아니라 노동자 모두의 생존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실제 투쟁을 조직하는 것으로 전진해야 한다. 그래야 가난한 노동자들도 이 투쟁에서 희망을 발견하면서 전체 노동자계급이 단결할 수 있는 기초가 만들어질 수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조직 노동자운동에게 이 길을 갈 준비가 돼 있느냐를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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