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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삶, 자유” - 여성살해에 맞선 이란 여성들의 시위, 남성들도 함께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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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홍여성운동위원회 조회 1,044회 2022-10-0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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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삶, 자유”, “독재자에게 죽음을”, “내 누이를 죽인 자는 내 손에 죽을 거다”, “우리의 인내심은 바닥났다”, “가난, 부패, 폭압”, “왕이든 최고지도자든, 압제자에게 죽음을!” 지금 이란을 뒤흔들고 있는 시위 현장에서 외쳐지는 구호들이다. 지난달 13일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게 폭행당하며 끌려갔고, 3일 만에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이 여성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가족들은 마흐사 아미니의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목격자들은 도덕경찰이 곤봉으로 아미니의 머리를 구타했다고 말한다. 항의 시위가 격렬해지자 이란의 라이시 대통령은 뒤늦게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고 실탄까지 사용하면서 시위를 진압했다. SNS와 인터넷도 차단했다. 현재까지 2,000명 이상이 체포됐다. 130명을 넘어선 사망자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남성들도 함께 싸운다

 

이번 이란 시위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장면의 하나로, 여성만이 아니라 수많은 남성 노동자, 학생들이 함께 여성 살해를 규탄하는 투쟁에 나섰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남성들은 투쟁에 나선 여성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경찰에게 돌을 던지고, 날아드는 고무총탄을 몸으로 막았다. BBC와 인터뷰한 여성은 “하늘을 향해 히잡을 흔드는 동안 남성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보호하는 모습에 감동 받았다. 연대를 확인해 기쁘다”고 말했다.

 

이전부터 히잡 강제 착용에 반대했던 한 이란 남성은 이런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히잡을 안 쓴 여성이 불명예스러운 게 아니다. 우리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이 땅의 여성들이 이런 억압과 제약 속에 지내도록 그냥 두고 보는 게 진짜 불명예스러운 것이다.” 이 남성의 글은 우리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일터에서, 학교에서, 길거리에서, 공중화장실에서, 집 안에서 숱한 여성이 스토킹 당하고 폭행당하고 살해당하는 한국의 상황에서도 다수의 남성 노동자, 민중이 기꺼이 여성의 편에서 함께 싸우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쓰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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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남성들도 여성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한 남성이 손을 치켜들고 있다.(사진출처: AFP) 

 


제국주의 개입과 이란 정권 둘 다에 반대해야

 

이란 정권은 처음에는 ‘쿠르드족’을(사망한 여성이 쿠르드계였다), 그다음에는 ‘미 제국주의의 음모’를 투쟁의 배후로 지목했다. 미국의 오랜 경제 제재는 이란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었고 그 피해는 누구보다도 노동자, 민중에게 무겁게 전가됐다.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과 경찰에 의한 살해, 반동적인 낙태죄 부활, 노조 탄압, 가공할 만한 빈부격차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 채 이란의 여성 인권을 들먹이는 미국 지배자들의 역겨운 제국주의적 개입에 대해서는 철퇴를 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1983년에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은 채찍 74대를 맞게 하는 처벌을 도입하고, 이후 최대 2개월의 징역형이나 벌금형을 추가한 것, 2005년에 이른바 도덕경찰, 공식 명칭 지도순찰대를 창설해 여성의 복장과 화장 등에 한층 더 폭력적인 억압체제를 도입한 것, 올해 8월 공공장소에 설치된 CCTV를 이용해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단속하기로 한 결정 등은 전적으로 이란 정권의 성차별적, 폭압적 실체를 숨김없이 드러내 준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열강의 ‘개입’이 이와 같은 억압체제를 바꿀 수 없다는 점은 미국이 20년 전쟁 끝에 야반도주하듯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명백히 확인됐다. 이번 투쟁의 전면에 나선 여성들과 함께 남성들이, 노동자와 학생들이 똘똘 뭉쳐 대규모 항쟁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만큼 이란의 현실은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모순들이 쌓이고 서로 엮여 있을 때

 

하나의 사건이 순식간에 거대한 투쟁으로 번졌다는 것은 그만큼 통제할 수 없는 모순들이 켜켜이 쌓이고 서로 엮여 왔다는 걸 뜻한다. 반대로 이는 자본주의 위기와 모순이 만성적으로 누적된 상황에서는 작은 불씨 하나로도 폭발적인 항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2019년의 칠레항쟁도 그랬다. 시위대는 “30페소가 아니라 30년이다”라고 외쳤다. 지하철 요금 30페소(약 50원) 인상이 투쟁의 방아쇠를 당겼는데, 그 밑바닥에는 수십 년간 쌓인, 아니 칠레에서 자본주의가 굴러가기 시작한 이래 끝없이 누적된 계급 간 빈부격차와 부패에 대한 울분이 깔려 있었다. 고용불안과 저임금, 열악한 의료체계, 보잘것없는 연금, 가장 비싸면서도 형편없는 수준의 교육, 경찰과 고위관료와 기업들의 유착과 부패, 수도 민영화 등 모든 게 엉망진창인 칠레 사회를 빙산에 비유한 그림이 유행처럼 나돌았다.

 

2011년 이집트항쟁의 이면에도 30년 동안 장기집권한 무바라크 정권의 폭정과 모든 부를 독점한 자들에 대해 켜켜이 쌓인 분노가 있었다. 그 토대 위에서 이집트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빵(아이쉬)의 원료인 밀가루 가격이 폭등했다. 2010년 여름, 기후위기 탓에 이집트의 핵심 밀가루 수입원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이상고온, 가뭄, 산불이 이어져 밀가루 생산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고, 가격이 폭등했다. 그 타격이 고스란히 이집트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됐다.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 속에서 “빵, 자유, 인권”이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도처에 얽혀 있는 투쟁의 실마리를 붙잡고 

 

그리고 이제 이란에선 여성 살해를 규탄하는 저항이 정권을 겨냥하는 전국적인 시위로 확산됐다. 이란에서도 느닷없이 이런 투쟁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만 보더라도, 2017년 물가폭등과 경제난에 시달리던 민중의 시위, 2018년에 경제난과 정부의 부패를 규탄하며 재개된 총파업과 시위, 같은 해 6월 깨끗한 식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책임을 물으며 일어난 시위, 2019년 11월부터 2020년까지 두 배로 폭등한 기름값 인상에 항의해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위, 2021년 7월 다시 물 부족에 항의하는 시위, 그리고 2022년 5월엔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밀가루 가격이 폭등하고 일부 식료품 가격이 300%까지 치솟는 상황에서 파업과 시위가 터져 나왔다.

 

시위가 발발할 때마다 이란 정권은 최루탄과 실탄 사격으로 응수했다. 어느 시위에서나 사망자가 생겼다. 2019년 시위에선 1,5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정권이 결코 노동자, 민중의 생명을 지켜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삶을 빼앗긴 한 여성의 죽음을 보며, 이제는 여성뿐만 아니라 수많은 남성도 함께 분노하고 싸움을 시작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니라 이란 정권이다.

 

우리는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열강의 개입에 반대하고 규탄하면서도, 이란 정권이 아니라 이란 노동자 민중의 편에, 투쟁하는 여성의 편에 서야 한다. 더 나아가 여성 살해를 비롯해 다양한 유형의 성차별적 억압, 만성불황에 따른 생계난, 실질임금 하락과 불안정한 일자리, 인종차별, 기후위기, 식량난, 제국주의 패권 갈등과 전쟁 등 온갖 모순이 뒤얽히며 이 시대를 절박한 위기의 시대로 몰아가고 있는 현실을 똑똑히 직시해야 한다.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를 걷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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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워하라, 두려워하라, 우리는 함께 한다” 10월 5일, 한국에서도 이란 여성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이 이란대사관 앞에서 열렸다. 기자회견에는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도 공동주최단위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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