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I 신당역에서 살해된 여성노동자가 김용균이다 -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처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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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4주기가 다가온다. 2018년 12월 10일 김용균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일하다 석탄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 2인1조로 일했다면 비상장치를 가동해 살릴 수 있던 목숨이었지만 관리자는 이를 묵살했다.
지난 9월 14일에는 20대 여성노동자가 신당역에서 홀로 야간근무를 서다 살해됐다. 입사동기였던 범인이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스토킹하다 불구속 재판을 받던 중 1심 선고를 하루 앞두고 저지른 일이었다. 안전이 위태로웠던 피해자는 구속수사를 호소했지만 처음에는 법원에, 그다음에는 경찰에 묵살됐다. 결국 자유롭게 활보하던 범인은 사내 인트라넷에 접속해 피해자의 근무지와 야간근무 일정을 알아내어 범행을 저질렀다. 노조가 요구한 2인1조 근무가 받아들여졌다면 막을 수 있던 죽음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경영혁신이란 이름으로 역무인원을 감축해온 공사에 의해 묵살됐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는 매일 2.5명꼴로 일터에서 숨진다.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고 기계에 끼어 죽고 정화조에 빠져 죽는다. 많은 경우 사측이 작업장 안전을 우선했다면 지킬 수 있던 목숨들이었다. 그런데 여성노동자는 이번 신당역 살해 사건처럼 직장 내 성폭력에도 목숨을 잃는다. 지난해에는 직장동료였던 30대 여성을 60대 남성이 살해했고, 20대 남성은 직장동료인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하려 했다. 30대 남성이 직장동료 여성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도 있었다. 심지어 2016년에는 여성노동자가 직장 선배의 충고에 비꼬듯 대꾸했다는 이유로 살해됐다. 2015년에는 자신보다 젊은 여성이 지시를 내리고 말을 함부로 한다며 여성의 몸에 시너를 뿌려 불을 질렀다. 일터는 여성에게 가장 안전하지 않은 공간 중 하나이다.
그러나 직장 내 성폭력에 제대로 대응하는 사업장은 드물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2021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에 대한 대처 행동으로 66.7%가 ‘참고 넘어감’이라고 답했는데, 그 이유로 5명 중 1명 이상은 ‘문제를 제기해도 기관/조직에서 묵인할 거 같아서’(22.2%)라고 답할 만큼 제대로 된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기업은 직장 내 성폭력을 방치할 뿐 아니라 많은 경우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더욱 억압하기도 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서울교통공사는 가해자가 입건됐을 때 성폭력방지법에 의거해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했지만 이를 외면했다. 더구나 살해 사건이 발생한 뒤 교통공사 내 여성소모임이 사내게시판에 성명을 내자 이를 삭제해버렸다. 김상범 공사장은 “여성 직원들의 당직을 줄이겠다”라며 여성을 배제하는 해결책을 발표했고, 사과문도 사건이 발생한 지 10일 만에야 발표했다.
직장 내 성폭력은 구조적인 문제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이 같은 태도는 기업주의 일시적인 실수나 착오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차별과 성폭력이 기업 내에 단단히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단적으로 서울교통공사의 사례를 보면, 기업들이 얼마나 직장 내 성차별과 성폭력을 외면해왔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공사는 2016년 무기계약직 공개채용 시 여성 지원자들 면접 점수만 고의로 조정하여 합격권이던 여성 6명을 전원 탈락시켰다. 9월 16일 <가자! 노동해방> 온라인신문 기사 “신당역 여성 노동자가 살해됐다 - 국가도 법원도 서울교통공사도 공범이다”에서 지적했듯이, 2018년에는 성폭력으로 징계받은 관리자를 피해 여성노동자의 인접 근무지로 발령을 내 논란을 낳았다. 심지어 그 뒤에는 공사가 성희롱 사실을 폭로하고 후속조치를 요구해온 피해자의 동향을 감시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또 같은 해에는 여성노동자를 이름 대신 성기 비속어로 불렀다가 논란을 일으킨 직원을 현장 고위관리직으로 임명했다. 더구나 과거에도 이번 사건과 유사한 성폭력 2차 가해가 서울교통공사 내부에서 벌어진 바 있다는 사실이 최근 공사 노조에 의해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직장 내 성폭력이 여성노동자의 안전을 일상적으로 위협하는 구조적인 폭력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여성노동자가 겪은 성폭력 사례를 조사한 여러 통계도 이 점을 뒷받침한다. <성희롱 실태분석과 형사정책적 대응방안 연구>(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6)를 보면, “현재 근무하는 직장에서 한 번이라도 성희롱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5%에 달했다. 9월 25일 경찰청이 권인숙 의원실에 제출한 ‘스토킹처벌법 처리 현황’에 따르면, 지난 10월 21일부터 올해 8월까지 발생한 스토킹 범죄의 가해자 7,152명 가운데 피고용자가 1,925명(26.9%)으로 가장 많았다. 이뿐만 아니라 직장 내 성폭력의 가해자 역시 상급자라는 점에서 이 폭력이 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서울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상담결과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 80.3%는 직장 상사 및 사장 등 상급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직장 내 성폭력이 여성노동자의 안전을 구조적으로 위협하고 있음에도 현재 정부가 정하는 산업재해는 직장 내 성폭력을 명시적으로 포함하지 않는다. 2020년 7월 31일 한겨레21 “성희롱 방치 직장은 위험한 일터다” 기사를 보면, 근로복지공단은 직장 내 성희롱을 위험요인으로 보아 산재로 인정하고 있지만 직장 내 성희롱이 산재에 해당하는지 판정하는 구체적인 기준은 없다. 다만 산재보험법 시행령의 ‘업무상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기준’에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규정하여 직장 내 성희롱에 의한 피해를 산업재해로 판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직장 내 성희롱을 산업재해로 신청하는 수 역시 극히 저조하다. 2019년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산재 신청 건수는 32건(승인 29건)에 불과했다. 2019년 산재 신청이 14만 7천여 건인 것과 비교하면 0.021%에 지나지 않는다.
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적용해야
일터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성희롱, 스토킹 등 성폭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직장 내 성폭력 그 자체를 산업재해로 규정하고 이를 근절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이번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해사건에 대해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엄벌하여 재발을 막아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종사자 1인 이상 사망 등 중대재해에 대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에 대한 책임을 묻게 하는 만큼 이를 신당역 여성노동자 살해 사건에 적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나아가 여성노동자의 다수가 5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하는 만큼 법의 적용범위도 전면 확대하여 사각지대 역시 해소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하여 사측에 책임을 묻는 사례가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해 개인뿐 아니라 기업에도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물리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재판관의 판결을 위반하는 기업(사용자)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묻는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여성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은 언제라도 다시 위협될 수 있다. 자본주의의 가부장제는 여성의 지위를 남성에 종속하고 노동력을 가치 절하하여 여성을 가정에서는 무급 가사돌봄노동자로, 일터에서는 값싼 저임금 노동자로 착취한다. 성 상품화와 통제, 여성혐오 역시 자본주의 가부장제가 배태한 모순이다. 그래서 성폭력은 폭력의 지위를 갖지 못하며, 직장 내 성폭력은 재해의 지위를 갖지 못한다. 그러나 신당역 여성노동자는 산업재해로 희생된 하청 저임금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과 다르지 않다. 숨질 때까지도 비상벨을 누르며 끝까지 싸운 신당역 여성노동자의 싸움을 이제 우리가 이어 나가자. 여성노동자가 앞장서 살아서 퇴근할 수 있는 일터를 쟁취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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