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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상담 일기 (5) I 저출생 재난 앞에서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자본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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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조회 1,292회 2022-08-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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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통계청은 2021년 합계출산율이 0.81명을 기록했다는 공식 통계를 발표했다. 이 발표를 두고 내외신의 분석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사람들의 위기감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지적한 대로 저출생 문제만큼 통계지표가 보여주는 잿빛 미래와 체감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큰 사안도 없어 보인다. 저출생 문제에 대한 둔감함은 어쩌면 기후위기와 비슷해 보인다. 둘 사이에는 실제로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기후위기건 저출생이건, 이윤 증식이 목적인 자본가들이 불순한 의도로 목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그 위험성에 걸맞은 사회적 위기의식의 형성이 더뎌졌다는 것이다. 그린뉴딜과 친환경 산업전환을 자본의 새로운 이윤 창출 영역으로, 그리고 무노조 경영을 실현할 수단으로 치부하는 자본가들을 보며 노동자민중이 기후재난의 심각성을 직시하기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저출생 문제를 값싼 노동력 공급의 중단쯤으로나 여기는 자본가들 앞에서 저출생이 어떤 재앙을 가져올 것인지 보통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느 공동체건 간에, 누군가 새롭게 태어나고, 성장하고, 앞선 세대를 뒤이어 사회적 생산을 담당하지 않으면 그 누구의 인간적 권리도 보장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둘째, 눈앞에 당도한 재난이 어떤 모습일지 지금 부분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반지하에 살던 일가족이 침수 피해로 사망했던 8월 수도권 폭우는, 앞으로 훨씬 더 빈번해질 기상이변이 얼마나 참혹하며 불평등할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현재 저출생의 암울한 미래를 미리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지방이다. 올해 4월 발표된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에서 113곳이 소멸위험지역에 해당하는데 이 중 절대 다수(97)가 비수도권이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40%를 넘나드는 경북 의성군(41.8%), 전남 고흥군(41.1%), 경북 군위군(39.8%), 경남 합천군(39.3%), 전남 보성군(39%) 등은 저출생으로 맞닥뜨릴 한국의 미래를 앞당겨 보여준다. 서울과 지방의 불평등, 돌봄 등 각종 필수서비스의 이용 격차는 저출생 재난 속에서 더욱 심화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후위기와 저출생 문제 모두에서, 자본가들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공통점이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면서 제국주의 전쟁을 핑계로 석탄 발전을 늘리고 핵발전까지 재개하려는 자본가들에게 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저출생 재난을 눈앞에 두고도 여성과 이주민에 대한 혐오를 일삼으며 가장 기초적인 노동권마저 공격하려는 자본가들이 어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저출생의 가장 큰 원인이 성차별적 고용구조라는 건 이제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OECD에서 가장 큰 성별 임금격차(한국은 31.5%, OECD 평균은 11.7%), 독박육아 등 자녀 양육과 가사노동에서 여성에게 지워진 이중굴레, 그 동전의 양면으로서 남녀 모두에게 강요되는 장시간 노동(여성가족부의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차휴가를 사용할 때 눈치가 보인다’, ‘정시퇴근하면 눈치가 보인다는 문항에서는 남녀 사이에 격차가 없다) 등이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2021년 출생율 통계에 따르면, 공무원이 밀집한 세종시의 출생율은 1.28명으로, 서울시 0.63명의 두 배 수준에 이르렀다. 일자리의 안정성, 노동조건의 전반적 수준이 출생율과 직결됐다는 것을 실증하는 단면이다.

 

실제로 노조가 없는 대부분의 사업장, 특히 영세사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쓰는 것 자체가 고용 상실과 직결되는 경우가 여전히 허다하다. 가구배송업체에서 일하던 김혜은(가명) 씨는 출산휴가를 쓰겠다고 말을 꺼냈다가 즉시 해고된 경우다. 젊은 사장은 우리 회사는 출산휴가를 줘 본 역사(?)가 없다. 실업급여를 줄 테니 권고사직으로 처리하자고 강요하다, 김혜은 씨가 이를 거부하자 말도 안 되는 사유들을 꾸며 김혜은 씨를 즉시 해고했다.

 

서영은(가명) 씨는 출산을 앞두고 조기 진통으로 출산예정일보다 두 달 앞서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노동자다. 조기 진통을 겪는 임신부들은 몸도 마음도 힘들기 그지없건만, 안 그래도 서영은 씨가 못마땅하던 사장은 위로는커녕 예정된 출산휴가일에 앞서 무단결근을 한 것이라며 서영은 씨를 바로 해고했다.

 

또 육아휴직 신청은 곧 휴직 기간 종료 후 퇴직 신청과 동의어라고 여기는 자본가들이 수두룩하다. 비교적 번듯한 직장이라 해도 육아휴직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퇴사를 압박하는 자본가들이 곳곳에 넘쳐난다.

 

저출생으로 내일 세상이 망한대도, 자기 이윤을 헐어 노동자의 육아를 지원하는 것만큼은 절대 불가하다는 자본가들의 셈범이 철두철미하다. 이래 놓고 저출생 재난으로 향후 숙련 노동력을 구하기 힘들 것이라며 떠드는 자들, 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반사회적 집단이 바로 자본가계급인 것이다. 여성 노동자가 임신하면 즉시 퇴사시키면서, 저출생으로 유제품이 안 팔린다고 한탄했다는 남양유업 자본가는 사실 그리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다.

 

한국의 노동자민중은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것으로 저들에게 소극적인 저항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훨씬 나은 저항의 길이 있다. 한 줌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 노동자계급이 직접 이 사회를 운영하는 길 말이다. 불안한 고용과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결혼과 출산의 선택을 부당하게 제약받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진정한 행복을 추구해 나갈 수 있는 길, 그 길은 노동자가 권력을 가졌을 때만 실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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