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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상담 일기 (3) I 5인 미만 사업장 차별, 이윤이 아니라 삶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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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조회 1,108회 2022-07-0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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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알려진 것처럼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사업장의 상시 노동자 수가 5명 미만인 사업장에 대해서는 온전히 적용되지 않는다. 법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외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입법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노동시간 규제, 시간 외 수당, 연차유급휴가 등이 적용되지 않는데, 가장 핵심적인 차별은 해고 제한 규정의 배제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아무 때나, 아무 이유 없이 노동자를 자를 수 있단 얘기다. 

 

해고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5인 미만 사업장에 부분적으로 적용된다는 근로기준법의 규정은 유명무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윤선아(가명) 씨는 중고차 캐피탈 업체에서 일했던 노동자다. 캐피탈 업체는 중고차 판매법인과 업무위탁계약을 맺고 윤선아 씨를 중고차 판매지점에 파견했다. 사장은 윤선아 씨에게 주말 근무에 대한 추가 수당을 지급하겠노라고 약속해놓고 번번이 이를 어겼다. 윤선아 씨가 이에 항의하자, 사장은 잠깐의 고민도 없이 윤선아 씨를 즉시 해고했다.

 

이렇게 되면 곧바로 상시 노동자 수 산정 다툼이 시작된다.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상시 노동자 수 산정 방식을 다음과 같이 정해두고 있다. 법 적용 사유(부당해고 등을 판단해야 할 때) 발생일 전 1개월 동안 사용한 노동자의 연인원을 같은 기간 중의 가동 일수로 나누어 산정할 것. 여기에 예외 조건이 붙는다. 이렇게 해서 산정한 노동자 수가 5명 미만이더라도, 가동 일수 중 5명 이상을 고용한 날짜가 2분의 1 이상이면 5인 이상 사업장으로 본다는 것이다.

 

윤선아 씨 사업장의 경우 가동일수 중 5명 이상을 고용한 날은 12, 4명을 고용한 날은 15일이었다. 5명 미만 사업장으로 해고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결국 윤선아 씨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해고를 감내해야 했다. 문제는 4명만 고용된 15일의 대부분은 한 퇴사자의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공고 기간이었다는 것이다. 후임자가 딱 이틀 먼저 채용됐다면, 또는 윤선아 씨가 이틀만 늦게 해고됐다면, 해당 사업장은 5인 이상 사업장이 되어 해고 제한 규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었다.

 

5명 이상이냐, 미만이냐는 기준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사업장 노동자 수는 자본의 지불능력을 따지는 기준으로서도 일말의 합리성이 없다. 예컨대 개업의 한 명이 1년에 24천만 원 이상을 벌어간다는 병원에서도, 노동자를 4명만 고용하면 근로기준법의 무풍지대가 된다. 법의 허점을 활용해 실제로는 하나인 사업체를 서너 개로 쪼개서 각각 5인 미만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백화점 입점 판매업체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비판의 초점은 상시 노동자 수 5명이라는 기준이 합리적인지 비합리적인지를 따지는 데 맞춰져서는 안 된다. 상시 노동자 수 기준과는 다른, 무언가 합리적 기준을 적용한다 해도 문제의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노동법은 자본의 지불능력에 따라 차등 적용돼야 한다는 자본가들의 견해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우선 자본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생각, 즉 노동자 권리 보호의 전제는 어디까지나 자본의 안정적 이윤 창출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노동법은 오랜 노동자투쟁의 결과로,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저기준을 법으로 정해둔 것이다. 노동법의 제정은 그 자체로 자본의 이윤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는 것이기도 했다.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노동조건이란, 당연히 자본의 이윤과 지불능력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본이 이윤을 확보하지 못해 노동자에게 인간의 조건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이 사회의 운영권을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가 가져야 함을 증명하는 이유일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노동자운동 내부에서도 자본의 지불능력에 따른 노동법 차등적용을 당연한 것’, 또는 노동권 개선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생긴 듯하다. 시작은 2003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시행된 주 40시간 제도다. 이때 국회는 공기업 및 300명 이상, 100명 이상, 50명 이상, 20명 이상, 5명 이상의 5단계로 사업장 규모를 구분하고 200471일부터 201171일까지 만 7년에 걸쳐 주 40시간제를 차등 시행했다. 노동시간 단축이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 미조직 노동자들일수록 주 40시간제 시행이 늦었던 것이다.

 

자본가 정부가 자본의 지불능력을 앞세워 열악한 밑바닥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후순위로 밀어버린 법 제정에 대해 당시 노동자운동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이게 일종의 관행처럼 되자, 문재인 정부 역시 연장근로 한도 단축, 공휴일 유급휴일 적용을 사업장 규모별로 각각 201871일부터 202171, 202011일부터 202211일까지 차등 시행했다. 또다시 노동법의 보호가 가장 절실한 작은 사업장, 미조직 노동자들이 개정법의 적용을 늦게 받는 상황이 되었다.

 

거슬러 올라가 1989년 주 48시간제에서 주 44시간제로의 노동시간 단축 과정을 살펴보자. 이때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출현한 민주노조운동의 변혁성이 자신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국회는 주 44시간제를 시행하면서, 법 시행일(1989329) 즉시 모든 사업장의 노동시간을 주 48시간에서 주 46시간으로 2시간 단축했다. 그리고 1990101일부터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 1991101일부터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 주 44시간제를 시행했다. 현재 근로기준법이 세분화 된 기업규모별로 차등 시행되는 것과 뚜렷이 비교되는 장면이다.

 

노동자운동은 모든 노동자, 특히 노동법의 차별지대에서 고통받는 밑바닥 노동자들을 대변해야 한다. 지불능력을 핑계로 노동법의 차별지대를 만드는 저들에 맞서,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생존이 먼저라는 노동자 이데올로기를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이것이 그 시작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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