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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상담 일기 (2) I “아직도 월급을 현금으로 받는다고요?” - 주얼리 노동자 노동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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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조회 1,994회 2022-06-2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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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 귀금속 거리 풍경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에는 700여 개의 주얼리 업체가 밀집해 있다. 대로변 1층의 화려한 주얼리 매장 뒤편에는 약 7천 명의 노동자가 귀금속 세공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매장의 판매직 노동자까지 합치면 1만 명에 이르는 수준이다. 

 

그런데 종로 주얼리 노동자의 90% 이상은 아직도 현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옛날 7~8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월급봉투가 버젓이 돌아다닌다. 주얼리 노동자들의 월급날인 매달 10일이나 말일의 점심시간과 퇴근시간 무렵이면, 주얼리 노동자들이 현금으로 받은 월급을 계좌에 입금하려고 현금인출기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서는 진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인터넷뱅킹과 스마트폰뱅킹이 일상이 된 이 시대에, 주얼리 자본가들이 여전히 현금 지급을 고수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자의 고용 사실을 은폐함으로써 4대보험료 등 간접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고, 영세업체로 위장해 노동법의 적용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영세업체랍시고 각종 지원금은 다 받아 챙긴다!)

 

2016년부터 종로 귀금속거리에서 귀금속 디자이너로 일해온 혜은(가명) 씨도 예외가 아니다. 2016170만 원으로 시작해 매년 기본급만 10만 원씩 인상됐을 뿐인 혜은 씨는, 그동안 시간 외 수당, 연차수당 등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는 월급을 전액 현금으로만 받다가 2018년에야 4대보험에 가입하면서 처음으로 계좌로 월급을 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업주는 최저임금 인상분을 보전해주는 일자리안정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뒤늦게 4대보험에 가입했다.) 그것도 월급 전액이 신고된 게 아니어서, 실제 임금의 절반인 월 90만 원만 보수 총액으로 신고됐다고 한다. 고용보험에 신고한 90만 원은 계좌이체로, 나머지 절반의 90만 원은 현금으로 지급하는 식이다.

 

코로나19 여파로 귀금속 거리에 불경기가 닥쳐오자, 이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에서조차 완전히 비껴 있다는 것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일거리가 없다는 이유로 노골적인 해고를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는데, 이들 대부분은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했다. 그동안 4대보험에 가입된 적이 없고, 월급을 받으며 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근로계약서를 쓴 경우도 드물다.) 실제로 2018년 고용노동부가 종로·중구 귀금속 사업장 3,271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용보험에 미가입한 사업장이 83.9%였고, 제조업 종사자 7,635명 중 1,849(24.2%)만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

 

혜은 씨는 코로나19 한파가 지속되는 와중에 사업주로부터 해고됐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그저 핑곗거리였는데, 사업주는 혜은 씨를 해고한 직후 곧바로 디자이너 채용 공고를 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에서 다만 몇십만 원을 더 주는 정도의 추가 부담도 싫었던 모양이다. 혜은 씨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하자, 사업주는 자기 사업장은 상시 노동자 수가 3~4명에 불과해 해고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뻔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적어도 노동자 수가 상시적으로 12~15명에 이르던 업체였는데, 4대보험에 신고된 인원 수는 딱 그만큼이었기 때문이다.

 

혜은 씨 외에도 주얼리 노동자들 대부분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또 다른 업체에서 3년 넘게 일하던 40대의 미은 씨는 임신한 몸으로 출산 직전까지 남들과 똑같이 일해야 했다. 그리고는 출산 후 6개월을 무급으로 휴직하다 복직했는데, 사업주는 미은 씨가 4대보험에 가입된 적이 없으므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은 당연히 줄 수 없는 것이라 우겼다 한다.

 

아직도 70년대를 살고 있는 주얼리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실태가 공론화된 것은, 그나마 20184월 금속노조 서울지부에서 주얼리분회가 조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 주얼리 노동자 수에 비해 조직된 노동자 수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주얼리분회 조합원들은 기초적인 노조활동 보장을 위해서도 자본가들의 각종 부당노동행위와 위장폐업에 맞서야 하는 일이 다반사다. 좀 더 강한 조직력과 풍부한 자원을 갖춘 조직 노동자들의 실질적 지원과 연대가 실현된다면, 최소한 21세기에 월급봉투로 장난질하는 후져빠진 자본가들 정도는 일망타진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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