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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사태에서 드러난 노조운동의 약점과 과제③(마지막 회) -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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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분회 조회 5,789회 2018-06-0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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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여 명 희망퇴직, 기본급 동결과 성과급 제로, 각종 복지혜택 폐지 및 축소 등으로 GM은 연간 최소 7천억 원의 인건비를 줄이게 됐다. 본사 차입금 출자전환으로 매년 억울하게 물어오던 1,500억 원의 이자비용 부담도 줄었고, 군산공장 유지 관리 비용도 줄어든다.

 

GM은 이번 구조조정으로 최소 1조 원의 비용을 절감한 셈이다. 그렇다면 내년에 흑자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차가 잘 팔리고 사업이 잘 돼서 그런 게 아니다. 사람 자르고 비용 줄이는 축소 구조조정으로 절감한 비용, 즉 노동자의 살과 피를 희생시킨 결과로 얻어진 흑자전환이다.

 

GM 자본은 노동조합의 양보만이 아니라 8,100억 원의 자금과 수많은 특혜지원을 약속받는 등 한국 정부를 상대로도 완승을 거뒀다. 결국 2018년 구조조정은 GM 자본의 완승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패배주의와 자기최면이 쌓인 지난 몇 년

 

GM의 완승, 정부와 노조의 완패를 선언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노동자계급 투사들이 해야 할 진짜 일은 이 투쟁이 왜 패배했고, 어떻게 하면 다음에 패배하지 않을 것인지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2018년 투쟁 전반을 돌아보면 도대체 뭘 평가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정도로 투쟁다운 투쟁 한 번 해보지 못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앞선 두 차례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100시간 가까운 파업을 벌였던 2012년을 정점으로 한국GM 현장투쟁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대기업 현장투쟁의 하강이 대부분 그렇듯이, 한국GM 역시 이 과정에 노조운동 지도부의 도덕적 타락이 동반됐다.

 

공교롭게도 생산량과 물량도 2012년 이후 지속 하락하는데, 지도부의 도덕적 타락과 함께 현장투쟁의 하강을 더욱 재촉하는 하나의 요인이 됐다. “내가 집행하는 동안에만 큰 일이 나지 않으면 돼라는 폭탄 돌리기, “정년퇴직자 등 자연감소만으로도 회사는 구조조정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는 자기최면도 그 부산물이었다.

 

완성차 공장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현장에서의 노사분쟁이 한국GM에서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분쟁도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한국GM 미래발전전망이라는 중차대한 의제를 올려 임단협을 전개해 놓고도, 정작 합의내용을 보면 사실상 회사의 다음해 사업계획을 확인하는 수준 이상이 아니었다.

 

차세대 크루즈 배정 않겠다, 쉐보레 유럽 철수한다, 부평 1·2공장 통합하자, 쉐보레 러시아도 철수한다. 위기의 징후는 매년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노동조합의 대응은 봉합이었고, 그 이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현장 활동가들의 추동도 없었다. “결국 회사정책을 넘어서는 건 불가능해라는 패배주의부터 뭐 큰 일이 벌어지기야 하겠어?”라는 자기최면이 쌓이며 째깍째깍 구조조정의 시계바늘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토론과 논쟁, 학습이 사라진 현장운동

 

2018GM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에 맞서 한국GM이라는 자회사만이 아니라 GM 본사와 한국 정부를 상대해야 했다. 조기 임단협, 임금체불, 조건부 합의 종용, 법정관리 협박 등 굵직한 이슈가 1주일이 멀다 하고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을 노동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활동가들과 현장조직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노조 소식지 이외의 홍보물이나 대자보 한 번 구경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대의원들이 현장 조합원을 모아놓고 공청회를 하거나 간담회를 하는 풍경도 보기 어려웠다. 몇몇 활동가들이 공동행동을 조직하고 토론회를 열긴 했으나 극소수를 넘지 못했다. 수천 명의 생존권이 오락가락 하는 거대한 구조조정 국면, 그러나 현장에서는 토론도 논쟁도 벌어지지 않았다.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서 학습이 사라진 지도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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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밑바닥에서 평조합원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며, 활동가들이 그런 내용을 교류하기 위한 학습토론의 기풍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평조합원들은 여간 해선 입을 열지 않았다. 하긴, 그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입을 열기 위한 활동가들의 노력이 전혀 없는데 입을 열 이유가 없었다. 대중투쟁 자체가 벌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그들이 입을 연다 해도 조합원들의 의견이 반영될 여지도 없었다.

 

활동가들과 현장조직의 움직임은 선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집행권을 장악하면 회사와 교섭권을 배타적으로 향유하기 때문에, 자기 조직을 확대하기 위한 수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발탁채용 과정에서도 자본은 집행권을 장악한 조직에게 더 많은 비리의 기회를 제공하기 마련이다.

 

발탁채용으로 정규직이 된 젊은 조합원들 역시 그러한 힘 관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채용되는 과정에 암암리에 어떤 힘이 작동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 조직들에 줄을 서는 것이 편한 현장생활의 밑거름이 된다는 꿀팁’(?)을 일찌감치 실천에 옮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공장 별, 세대 별, 고용형태 별로 갈라진 이해관계

 

수만 명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는 건 자연스럽다. 민주노조운동은 복잡한 이해관계를 계급적 요구로 통일시키면서 성장하는 법이다. 그러나 현장투쟁이 내리막길을 걷고, 토론도 논쟁도 학습도 사라진 현장에서, 평조합원들이 믿고 의지할 것이라곤 바로 옆의 다른 평조합원들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공장별 이해관계가 싹트기 시작했고, 부평 창원 군산 간 불협화음이 생겨났다. 같은 부평공장 안에서도 팽팽 돌아가는 1공장과 휴업이 잦은 2공장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GM지부가 아닌 충남지부로 편재돼 있는 보령 변속기공장의 경우,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파악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이해관계 충돌은 다른 사업장과 마찬가지 상황이라 구체적으로 서술하진 않겠다. 다만, 갈라진 이해관계의 사례 중 그동안 크게 얘기되지 않았던 부분 하나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계급 내 세대 간의 이해관계 충돌이다.

 

2001년 대우차 정리해고사태를 경험했던 고참 조합원들, 그 이후 발탁채용을 거쳐 정규직으로 입사한 젊은 조합원들 사이에 경험 차이가 상당한 만큼 생각 차이도 만만치 않다. 고참 조합원들 상당수는 요즘 젊은 것들 노조엔 관심도 없고 너무 개인주의적이라 평가하곤 한다. 그런 평가에는 분명 정당한 근거들이 없진 않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현재 젊은 세대를 규정짓는 특징이란 말인가? 아예 노동자계급운동과는 담을 쌓은, 글러먹은 세대라는 말일까? 노동자계급 투사들은 이런 패배주의적 관념론에 운동의 미래를 맡겨선 안 된다. 현재의 고참 조합원들도 이미 퇴직한 늙은 노동자들에게 똑같은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그들도 한때 전혀 가능성 없어보였던 젊은 노동자 시절을 지나왔다.

 

우리가 접한 한국GM 젊은 노동자들의 시각은 달랐다. “선배 노동자들은 미래발전전망 쟁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매번 막판에 가서 돈 몇 푼으로 정리하시잖아요. 정년퇴직 몇 해 안 남은 선배들이야 그런 선택이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돈 몇 푼 못 받더라도 미래전망이 없으면 도대체 노동조합에 뭘 기대하겠어요?”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GM의 구조조정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부평 2공장 미래전망에 대해 여전히 “1교대 물량밖에 없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유럽 수출물량과 다마스, 라보가 단종되면 창원공장에도 위기가 닥쳐온다. A/SCKD 부문 역시 통폐합, 외주화, 축소 구조조정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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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경영 정상화 항의하는 부평 비정규직 노동자들. GM은 이 노동자들 15명을 직접 출입통제시켰다. 계급적 단결을 조직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현장의 힘을 조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사진_인천일보) 

 

끝나지 않은 구조조정, 이번 투쟁에서 배우지 않으면 다음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어디에서 무슨 준비를 해야 다음 투쟁에서 밀리지 않을 것인가? 몇 가지로 과제를 요약해 보자.

 

첫째, 무너진 현장을 살리기 위해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출발하자. 집행권을 잡아야, 대의원에 당선돼야 할 수 있는 운동은 허위에 불과하다. 조합원들과 공청회, 간담회 한 번 열지 못하는 간부들이 평조합원을 모아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건 불가능하다. 가장 밑바닥에서 평조합원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며, 활동가들이 그런 내용을 교류하기 위한 학습토론의 기풍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하자.

 

둘째, 얽히고설킨 현장의 이해관계를 계급적 요구로 통일시키는 노력 속에서만 새로운 대중투쟁의 흐름을 열 수 있다. 첫 번째 글에서 밝힌 것처럼, 현장투쟁이 내리막길을 걷던 시점에 유일한 예외가 바로 2014년부터 창원 비정규직투쟁을 중심으로 생산직, 사무직 노동자들이 공동의 네트워크를 구성했던 사례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 충돌을 넘어서려 할 때, 생산직과 사무직의 갈라짐을 넘어서려 할 때 비로소 현장의 역동성이 살아나기 마련이다.

 

셋째, 새로운 운동의 활력을 구하기 위해서도 노동자계급 젊은 세대를 조직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이는 고참 세대와 젊은 세대의 이해관계 충돌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세대의 과거 투쟁 경험은 소중하지만, 젊은 세대를 주체로 세우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젊은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그들이 집단화할 수 있는 계기를 포착해 실제 대중투쟁의 경험을 쌓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자동차산업 전반에 몰아치는 구조조정에 맞서 자동차산업 노동자의 연대로 맞서야 한다. 한국GM 사업장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 하면 전망이 나오지 않는다. 유사한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이 모일 때 새로운 전망 수립이 가능하다. 현대차, 한국GM, 금호타이어 등 이미 거세게 구조조정이 몰아치고 있는 완성차, 당연히 칼바람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부품사 활동가들을 묶어세우기 위한 전국적 노력을 전개하자.

 

다섯째, 본색을 드러낸 문재인 정권에 일체의 환상을 버리고 대자본 교섭 및 투쟁과 함께 대정부 교섭 및 투쟁의 전망을 열어내자. 최저임금법 개악으로 전체 노동자계급의 분노가 타오르고 있으며, 문재인에 대한 환상이 걷히면서 노동자투쟁도 점차 올라오고 있다. 사업장을 넘어선 노동자의 연대는 자연스럽게 사업장 수준의 전망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전망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는 또한 미래자동차로의 전환과도 맞물리는 지점이며, 자동차산업 전반의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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