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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번역 I 사회정의 노동조합주의: ‘U세대’가 계급적 연대를 구축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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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양준석 조회 6,404회 2022-05-0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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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기사

Social Justice Unionism: How ‘Generation U’ Is Building Class Solidarity

에즈라 브레인  I  2022년 4월 29일 



미국에서는 지금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규모로 노동조합 조직화가 진행되고 있다. 통신기업 버라이즌 매장에서부터 아마존 물류창고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명백히 노동자계급에 대한 수십 년의 신자유주의 공격과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결과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은 필수적이지만 사장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데 현재 노조가 건설되는 방식과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노조가 운영되는 방식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현 노동자투쟁 물결의 주요 경향은 풀뿌리 노동조합주의. 현장 노동자들은, 사장들과 민주당에 협조적이면서 여전히 노동자운동의 많은 부분을 통제하는 노조관료들에 점점 더 기꺼이 맞서고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노동자들은 잠정합의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고, 아마존에서는 독립노조를 건설했다. 풀뿌리 노동조합주의는 지금 시기를 다른 시기들과 뚜렷이 구분 짓는다. 하지만 이 새로운 노동조합 조직화 물결 속에는 또 다른 주요 경향이 담겨 있다. 이른바 사회정의 노동조합주의로 알려진 그것이다. 

 

이 용어는 새로운 게 아니다. 이 개념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신노동운동주창 세력들에 의해 진정한 노동조합 투쟁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투쟁하는 대신 작업장 밖에서 비영리 단체와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개념이었다. 게다가 이 용어는 노동조합운동 안에서의 사회정의를 향한 투쟁 시도들을 노조관료들이 억제하려는 의도 속에서도 종종 사용되었다. 따라서 사회정의 노동조합주의라는 오래된 개념은 허약했고, 주로 위에서 아래로 전개됐다.

 

그런데 지금 새로운 세대 노동조합원들은 사회정의 노동조합주의라는 개념을 급진화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의 맥 빠진 정책을 추구하는 대신, 지금의 사회정의 노동조합주의 물결은 노동자계급 연대에 입각한 사회정의라는 메시지를 노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다.

 

지금의 노동자투쟁 물결을 낳은 일차적인 배경은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일부 노동자들은 집에 머물 수 있었지만 (대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이었던) 다른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경제 가동을 책임지며 위험한 조건에서 일해야 했다. 사망자 수가 증가하고, 국가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보호조치를 사실상 전혀 취하지 않자,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과 더 큰 불의(不義) 사이의 연관성을 보기 시작했다.

 

팬데믹과 함께 또 하나의 정치적 계기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의해 주어졌다. 전국에서 봉기가 일어났고, 수백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유색인에 대한 국가공인 폭력에 항의했다. 이 운동은 미국 자본주의가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다른 방식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토론을 전개해 나갔다. 흑인의 생명에 대한 공격에서부터 트랜스젠더 인권에 대한 공격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체제는 자본가들을 제외한 누구를 위해서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많은 사람들에게 분명해졌다.

 

현 정치상황의 또 다른 주요 측면은 민주적 권리와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이들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이다. 많은 주에서 투표권 보호조치 철회, 사실상의 낙태 불법화, 트랜스젠더 아동에 대한 전면전이 펼쳐지는 지금, 우리는 우파의 전진을 목도하고 있다. 또한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이에 맞선 거리 투쟁도 노동계급의 의미 있는 저항도 거의 없는 것을 보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현재의 순간에 도달해 있다. 노동자들은 점점 더 노동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해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기초가 되는 계급 적대가 어떻게 이런 저런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억압하는 힘을 생산하는지에 대해서도 자각해 가고 있다. 성소수자혐오, 인종차별, 장애인차별, 성차별, 외국인혐오는 모두 우리를 착취하고 억압하기 쉽도록 노동자를 분할하는 시스템의 부산물이다. 새롭게 정치화된 세대가 무대에 오르면서, 임금이나 노동시간 같은 빵과 버터문제와 억압에 맞선 싸움 같은 사회정의문제 사이의 인위적인 경계가 점점 더 흐려지기 시작했다. (노동조합을 뜻하는) U세대라는 별명을 가진 이 세대는 점점 더 퀴어화되고, 정치화되며, 인종정의·젠더정의·환경정의·장애정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기존의 노동조합은 대부분 노조관료들의 엄격한 통제 아래 있는데, 노조관료들은 민주당이라는 동맹세력의 노선을 추종하면서 조합원들을 거리에서 끌어내 투표소로 밀어 넣으려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행동하는 대신 공허한 지지 성명을 낼 뿐 사회적 억압에 맞서 투쟁하는 것을 주저해 왔다. 이것은 노동조합의 범위를 제한하고, 나아가 조직화된 노동자계급 전체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한한다.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이들에 대한 공격이 증가하고 있는 이 시점에, 노동자들이 자본가계급의 이러한 공격으로부터 우리 자신과 동료를 방어할 힘과 의무가 있음을 이해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사회정의 노동조합주의의 새 경향은 이러한 방향으로의 중요한 이동을 보여준다. 또한 노동자들이 점점 더 자신의 억압받는 정체성과 착취당하는 노동자계급 구성원으로서의 역할 사이의 연관성을 직시하게 된 결과다. 예를 들어, 스태튼 아일랜드 아마존 물류창고 노동자들은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들이 어떻게 작업장 노동조건 개선 투쟁을 인종정의를 위한 투쟁의 일부로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이야기한다. 아마존 물류창고의 한 조직가는 <레프트보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 자각이 어떻게 자신을 노동조합 조직화 투쟁에 앞장서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말했다. 몇 주 전 미니애폴리스 교사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 그들의 주요 요구 가운데 하나는 유색인 교사들을 추가 고용하고 규모를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스타벅스에는 트랜스젠더 노동자의 수가 유난히 많은데, 그들은 작업장 노동조건 개선 투쟁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이것은 2020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봉기 동안 우리가 보았던 초창기 노동자 행동을 연상시킨다. 버스 기사들은 경찰이 체포된 시위대 수송을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 거부했다. 항만노조는 시위에 연대하며 미국 서부해안의 항구들을 봉쇄했다. 이처럼 2020년은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이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놓였던 인위적인 구분이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었다.

 

사회정의 노동조합주의의 이러한 물결은 몰계급적인 정체성 정치에 대한 반격이기도 하다. 몰계급적인 정체성 정치는 신자유주의의 한 축이었다. 한동안 우리는 정체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각각의 정체성 집단 속에서 부르주아 구성원들이 피억압자들의 운동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또한 그러한 운동들을 광범한 노동자계급과 분리시킬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전술이었다. 이제 노동자계급 구성원들은 계급이 정체성보다 훨씬 더 우리를 단결시킨다는 점을, 또한 우리의 정체성 해방을 위해 투쟁하려면 우리 계급의 적들이 우리 운동으로 침투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는 점을 점점 더 깨닫고 있다.

 

지금의 노동조합 조직화 물결이 지역과 산업을 넘어 확산돼 나갈수록, 자본주의가 노동자계급에게 강요한 정체성에 기반한 모든 분열을 넘어 진정한 계급의식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게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의식을 자연스러운 결론으로 ​​가져가는 것은 폭발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억압을 철폐하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계급이 자기 계급 전체를 위해 또한 노동자계급 내부의 다양한 공동체와 정체성을 위해 반격에 나서고 성과를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을 분열시키고자 하는 주인들에 맞서서 말이다. 물론 포섭의 위험이 있으며, 특히 노조관료들은 노동자운동의 이 새로운 에너지 물결을, 광범한 계급전투를 진정으로 조직하는 대신 말로만 떠드는 온화하고 개량적인 노동조합주의로 길들이려 한다. 따라서 이에 맞서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주요한 분할은 계급 분할이며 다른 모든 분할은 그로부터 가중된다는 점,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오직 자신만을 의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오직 노동자계급만이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다. 해방은 이른바 부르주아 동맹세력에 의해서는, 또한 노동자운동·사회운동 관료들 속에 있는 그 친구들에 의해서는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사회정의는 오로지 노동자계급의 단결된 힘을 통해서만 획득될 것이다.

 

우리가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이루고자 한다면, 그것은 노동자계급과 피억압자들의 조직적인 노력을 통해, 압제자와 착취자들에 맞선 단결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을 되찾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정의 노동조합주의와 더불어, 전체 노동자계급을 위한 투쟁으로 노동조합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계급투쟁 노동조합주의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노동자들은 우리 투쟁의 상호연결성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의식이 계속 심화되고 급진화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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