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사회

[인생사 차별만사] 여성노동자 잇다(7) I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해방구를 찾는 과정 –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 경인지회 나기정

페이지 정보

인터뷰/정리 이혜정후원회원 조회 2,438회 2022-04-30 09:50

첨부파일

본문


15412a0ac2937fb5346761daa3a09f90_1651279677_4164.jpg

나기정(가명) 동지가 일하는 책상.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 노동자들은 이 작은 책상 위에서 하루 종일 다양한 억압과 차별을 경험하며 노동한다. 그 위의 작은 피켓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작은 해방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저는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40대 후반의 여성 노동자예요. 20대 초반에 일찍 결혼해서 아이들은 벌써 장성했죠. 저는 남편이랑 동갑이에요. 재수하면서 남편을 만났고 연애도 오래 했는데, 우리 시어머니가 처음에 저를 반대했어요. 제가 범띠에 새벽에 태어나서 여자가 기가 너무 세대요. 여자가 기가 세면 좀 어때요?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요? 시부모님의 그런 말들이 저에겐 너무 상처가 되었어요. 결혼과 동시에 여성들은 여러 통제의 범위 내로 들어가는 것 같아요. 어려서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많은 친구들이 내 꿈은 현모양처다이랬거든요. 한 반에 반 정도는 꿈이 현모양처였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게 되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 꿈인 거예요. ‘현모양처가 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거니까요. 

 

임신과 출산으로 시작한 부업

 

저는 임신 사실을 모르고 안산에서 서울까지 한동안 출퇴근을 했어요. 그러다 몸이 너무 피곤하기에 확인해봤더니 임신이더라구요. 먼 길을 오가며 출퇴근하는 것이 불가능해져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죠. 둘이 벌다 하나가 버니까 살림이 빠듯해지잖아요. 남편은 일을 하는데, 내가 일을 안 하고 있으니까 우리 가족 생계에 내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기가 죽어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집에서 부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애는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똥 치워주고 밥도 먹여야 하니까 유모차를 발로 밀어가면서 일했어요. 팬티 실밥 따는 일이 뭔지 아세요? 미싱하고 난 팬티에 남은 실밥을 하나하나 따는 거예요. 그런 일도 받아서 했어요.

 

집에서 육아를 하는 언니들은 부업을 다들 하나씩은 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언니들 부업 심부름해주면서 몇 번 짜장면 얻어먹다가, 본격적으로 일을 받아와서 하게 된 거죠. 남편은 그게 가계 소득에 뭐가 도움이 되느냐고 하지 말라고 했어요. 시어머니도 애나 잘 키워라그러시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냥 고생했다 위로라도 해주면 좋은데 말이에요.

 

엄마는 내가 고생하는 거 들으면 힘들어하니까 엄마한테는 이야기를 안 하게 되더라구요. 엄마도 그렇게 고생하면서 우리를 키우셨는데 딸도 고생하는 걸 알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한 번은 엄마가 제가 부업하는 걸 알게 되어서, 그냥 심심해서 하는 거라고 둘러댔어요. 아마 엄마도 알았을 텐데 그냥 넘어가 주셨죠. 그럴 땐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자본이 여성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법

 

저희 시어머니도 제가 기운이 센 사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꺼리신 것처럼, 이 사회도 여성이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예전에도 여직원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미스 양, 미스 남 이런 식으로 불렀잖아요.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은 거예요, 진짜. 제가 건보 고객센터 들어오기 전에는 개인병원에서 간호조무사 일을 20년 가까이 했었는데 의사가 간호사들은 무조건 치마를 입도록 강요했어요. 의사가 여자가 바지 입는 것을 되게 싫어했거든요. 겨울에도 치마를 입어야 해서 너무 싫었어요.

 

최근에는 코로나19 터지고 나서 2주 돌봄휴가라는 것을 쓸 수 있게 되었는데, 그거 한 번 쓰려고 하면 그렇게 치사할 수가 없어요. 애들이 유치원 다니는 집에서는 유치원이 쉬거나 하면 어떻게 해요. 애를 집에 두고 문 잠그고 출근할 수는 없잖아요. 그 휴가를 써야 애들을 돌볼 수 있는데, 쓸 수 있는 휴가를 쓰는데도 그렇게 더럽고 치사하게 구는 거예요. 가정을 돌보지 않을 수 없는 여성들은 노동현장에서도 가정 문제 때문에도 이렇게 온갖 종류의 통제를 경험하는 것이 일상이에요.

 

이곳에 입사할 때도 국민건강보험이라고 크게 쓰여있길래 국민건강보험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줄 알고 들어왔는데 근로계약서 쓸 때 업체 이름이 다 다른 거예요. 의아하게만 생각했어요. 저희가 전화를 받다 보면,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전화를 많이 받게 되는데, 나이가 많으신 분들 중에서는 본인이 어느 용역업체 소속인지 모르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업체가 계속 바뀌고 하니까 회사 이름이 뭐냐고 여쭤봐도 모르는 거죠. 그런 분들과 통화를 하다 보면, 이분들도 우리랑 처지가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저도 노동조합을 하면서 내가 비정규직이라는 것도,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거든요. 아직도 갈 길이 멀죠.

 

콜센터 노동자들의 전쟁과도 같은 일상, 화장실

 

우리는 화장실에 대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아요. 일하다 화장실을 가려면 개인 사유를 걸고 가야 하거든요. 팀장 모니터에는 누가 이석을 걸고 자리를 비웠는지 떠요. 동시에 세 명 이상 이석을 걸면 경고를 받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화장실을 가기 전에 일어나서 전체 자리를 쭉 훑어봐요. 몇 자리나 비어있나. 이석이 많으면 화장실을 못 가고 참는 거죠.

 

생리 때도 자연스럽게 화장실 가는 걸 참게 되더라구요. 그러다 보니 퇴근할 때 막 바지에 새어 나온 경우도 많았어요. 이후로는 무조건 생리 때는 오버나이트를 하고 일을 해요. 물은 당연히 안 먹게 되구요. 우리는 점심 때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 해요. “나 오전에 화장실 한 번도 안 갔다?” 이러니 방광염에 걸릴 수밖에 없는 거죠. 노조 생기고는 그런 게 개선되니까 너무 좋더라구요.

 

원주 파업 때도 경찰이 화장실을 가지 못하게 했잖아요. 그걸 버틸 수 있었던 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화장실을 참고 업무를 보기 때문에 내공이 생겨서 가능했던 거예요. (웃음) 지금은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너무 굴욕적이었어요. 나가면 못 들어오게 하니까 미치겠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간이화장실을 만들어서 사용했는데 당시 경찰들이 일부러 그 근처를 왔다갔다 하는 거예요.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나도 너무 신경 쓰였거든요. 일할 때도 그런데 파업 중에 화장실 가는 것까지도 그러니까 너무 분노스럽더라구요.

 

여성 노동자의 투쟁을 발목 잡는 가정

 

여자들이 투쟁을 하면 발목을 잡는 게 가정인 것 같아요. 노동조합 간부를 하게 되면 가정을 돌보기가 더 어려워지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이가 어리거나 돌봐야 할 노부모가 있거나 하면 노동조합 간부를 맡기가 쉽지 않아요. 간부에 적합한 사람이 있어도,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리고 어떤 사람은 가정 문제 때문에 투쟁에 자주 못 나오게 되면, 그 문제 때문에 조직 내에서도 갈등이 불거지기도 해요.

 

저희 가정부터가 그래요. 남편은 제 투쟁 일정이 잡히면 며칠 전부터 말이 없어져요. 청와대 행진 때는 굉장히 덥고 햇볕도 따가웠잖아요. 얼굴이 새카맣게 탄 채로 며칠 만에 집에 들어갔는데 남편이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더라고요. 나중에 들어보니 내 얼굴이 너무 보기 싫더래요. 그러면서 또 때려 치워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거죠. 남편이 제가 건보 콜센터 입사할 때부터 계속해 온 이야기였거든요.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왜 매번 제 의사가 이런 방식으로 묵살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 이 일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거거든요.

 

파업은 여성 노동자들의 해방구

 

우리는 투쟁하면서 가사 일도 다 하면서 해요. 며칠 동안 투쟁을 간다 그러면 집에 반찬이며 국이며 찌개며 다 끓여놓고 나와야 하거든요. 뭘 먼저 먹고 뭘 나중에 먹어야하는지 순서까지 정해주고 나와요. 냉장고를 채워놔야 제가 투쟁을 다녀와도 밥도 안 해놓고 나갔네이런 소리는 안 들으니까요. 그래서 진짜 파업을 하면 너무 좋아요. ‘노동해방가정해방을 한꺼번에 이루는 거잖아요. 평소에 가족들 때문에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는데 파업하면 동지들이랑 맛있는 거 찾아서도 먹죠. 언제까지 들어간다 남편에게 카톡으로 보고 안 해도 되고요. 많은 사람들이랑 밤새 이야기도 나누고요. 이런 경험을 가정 때문에 전부 포기하고 살았는데, 파업을 하면서 그걸 되찾은 것 같아요. 내 의사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해방감이 느껴져요.

 

저는 어려서부터 늘 직원이 많은 회사를 다니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기 들어오니 그게 너무 좋았어요. 저는 동료들과 함께 수다 떨면서 밥 먹으러 회사 와요. 아침에 일 시작 전에 같이 커피 마시고 하는 시간이 너무 소중해요. 노동조합 할 때도 투쟁하고 나서 동지들과 같이 한잔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하니까 그것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이 길이 나의 길, 노동자의 길

 

경찰이 우리를 막아서면 앞장서서 싸우면서 왜 내 앞길을 막느냐!”고 큰소리도 치구요. 노동가요 들으면 다 내 이야기 같고, 다 깨부숴야 할 것 같고 그래요. 노래 부르면서 동지들이랑 같이 걸으면 , 내가 갈 길은 이 길이야, 노동자의 길.” 이런 생각이 절로 들거든요.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가 여자들이 결혼을 하면 여러 어려움들이 생기니까 결혼을 안 하려고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키우기가 어려우니까 아이도 안 낳으려고 하잖아요. 국가가 책임을 져주지 않는데, 어떻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요. 그런 부분들부터 풀어줘야지 해결이 되는데, 무조건 결혼해라, 애 낳아라 하니까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 딸부터도 결혼을 안 할 거래요. 결혼을 하면 여자가 감당해야 할 부분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우리 여자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들 억압받고 살고 있잖아요. 왜 우리 여자들이 모여서 투쟁을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노동해방을 위해서 우리가 투쟁하는 것처럼 여성해방 투쟁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런 날이 오면 두 팔 걷고 앞장설 거예요.

페이스북 페이지 노동해방투쟁연대

텔레그램 채널 가자! 노동해방 또는 t.me/nht2018

유튜브 채널 노해투

이메일 nohaetu@jinbo.net

■ 출력해서 보실 분은 상단에 첨부한 PDF 파일을 누르세요.

■ 기사가 도움이 됐나요?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온라인 정치신문 <가자! 노동해방>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2-058-254774 이청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목록

게시물 검색
로그인
노해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