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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 차별만사] 여성노동자 잇다(3) I 병원엔 여성으로서의 삶들이 다 있어요 - 보라매병원 진료예약센터 전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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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정리 홍희자 조회 4,491회 2022-03-2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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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안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초반에 우리가 투쟁할 때 왜 모였는지, 우리가 뭘 바꾸고 싶어 했는지 잊지 말았으면 해요. 정규직 전환만이 목표는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서울 보라매병원 진료예약센터에서 환자예약 업무상담을 하고 있는 39살의 비혼 여성 전수진이라고 합니다. 고향 강원도에 부모님이 계시고 오빠는 경기도에서 직장에 다녀요. 보라매병원에서 일한 지는 10년 정도 됐어요. 같이 근무하는 친구와 10여 년째 동거하고 있어요. 어르신들은 그래서 시집을 못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부서원 분들이 저희한테 가장 부러워하는 게 결혼 안 해서 퇴근 뒤 집에 가면 편히 쉴 수 있는 거예요. “넌 행복한 줄 알아라. 우린 집에 가서 뭐 해 먹지?’부터 생각한다.”

 

진료예약센터에서 예약업무, 민원처리도 하고 직원들 관리하는 팀장 업무도 겸해서 하고 있어요. (2021) 정규직 전환 이후 일이 더 많아졌지만 기분 좋게 일하고 있어요. 전에는 하청업체여서 맡겨지는 일이 많지도 않았고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어요. 정규직 전환이 되니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병원의 한 구성원으로서 대우를 받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병원 측에서 예전 말로 닭장 같은콜센터를 더 크게 넓혀줬어요. 정규직 전환 전에는 사무실이 하나였는데 지금은 두 군데로 나눴어요.

 

남자가 잘하면 당연한 것, 여자가 잘하면 독한 것

 

전에는 컴퓨터 관련한 서버 다루는 회사에 7년 가까이 다녔어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 짧게 한 걸 빼면 그 IT회사가 첫 직장이죠. 지금 급여의 2배 이상 받았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48시간 동안 근무하고 쉬고 계속 그런 식으로 일하다 보니 어느 순간 지치더라고요. 소진됐죠. 몸이 만신창이가 돼서 건강이 정말 안 좋아졌어요. 야간 생활을 계속 한 셈이니까요. 일에 대한 만족감도 없고 이젠 좀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집에서 가까운, 컴퓨터 만지는 일 말고 단순업무 할 수 있는 곳이 없을까 하다가 이 업종을 알게 됐어요.

 

사실 그전까지는 콜센터 상담업무가 뭔지 잘 몰랐어요. 이 회사를 선택할 때 생각한 건 딱 하나, 정시출근, 정시퇴근! 요즘 말하는 워라밸. 내 능력치나 급여 생각했을 때는 후회되는 부분이 사실은 조금 남아 있죠.

 

그전 직장에선 여성이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느꼈던 부분 이게 아무래도 많았어요. 남녀 비율이 82 정도였는데 남자 셋과 제가 똑같은 계약직으로 입사했어요. 입사동기 셋은 벌써 업무를 배우고 있는데 저는 일종의 서무업무부터 배웠어요. 단순 문서복사나 누가 출근이 늦을 테니 컴퓨터를 켜 둬라, 말 같지도 않은 그런 잡무. ‘왜 이래야 하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내가 여자라서? 아니길 바랐죠.

 

몸이 힘든 것도 돈 벌려면 버틸 수 있겠죠. 근데 자존감이 떨어지더라고요. 똑같은 업무실적을 내도 남자 직원이 잘하면 당연한 것이고 제가 잘하면 저는 독한 거예요. 그런 말 들으면 상처가 많이 됐죠. 똑같은 능력을 갖고 똑같이 일하는데 그런 평가를 받으니까. 여자는 IT업계에서 뭔가 부족하다는 엄청난 고정관념을 갖고 딱 얘기하는 느낌.

 

컴퓨터를 다루다 프로그램 상에 오류를 발견해서 제가 상사에게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게 왜 오류야? 몰라서 그래. 잘 다뤄보지 않아서 그래.” 그런데 다른 세 명의 남자 직원이 얘기하면 벌써 그런 걸 깨우쳤어?” 하는 식이예요.

 

단순 업무, 문서파쇄 그런 걸 막내를 시키면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3, 4년 차가 됐는데도 제가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회사 그만둘 즈음 새로 들어온 여직원에게 제가 하던 일과 똑같은 걸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남녀 한 명씩 들어왔는데 저조차도 남자 직원은 저기 가서 프로그램 배워요말하고 여자 직원에게 서무업무를 가르치고 있더라고요. 이러고 있는 저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진짜 그 틀에서 살았구나, 나도 그런 찌질한 인간 중에 하나였구나 싶어요.

 

그땐 화나고 상처받으면 혼자 우는 게 다였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내가 목소리를 내봤자 쟤는 왜 저래? 다른 여자 뽑으면 되지이런 생각할 거라는 걸 스스로 느꼈나 봐요. 초반에는 정말 많이 울었는데 나중엔 눈물도 안 나더라고요.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겼어요. 그래도 오래 버텼죠, 시골에서 올라와 취직한 딸을 대견해할 고향의 부모님 생각해서.

 

콜센터 여성 상담원은 이 사회 가장 밑바닥?

 

저희 진료예약센터에는 27명이 일하는데, 전부 여자였다가 최근에 남자 직원이 한 명 들어왔어요. 대부분의 콜센터는 100% 여자입니다, 관리자부터 완전히 다. 왜 콜센터는 다 여자인지 그것도 잘 이해가 안 돼요.

 

고객이나 환자들이 말도 안 되는 걸로 우기는 경우가 있어요. ‘그냥 여자 상담원이라서그러시는 분들도 아주 가끔 있어요. 그런데 그런 환자와 남자 직원의 통화내용 들어보면 부드러워요, 전혀 달라요. ‘뭐지?’ 싶다니까요.

 

친구한테 한번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근데 자기도 화가 나서 전화했는데 여자 직원이 받으면 부정적인 말부터 나오고 남자 직원이 받으면 뭔가 행정적인, 상호적인, 조금 더 잘 처리해 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답하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냥 사회 전반적으로 콜센터는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사람들이 인식해서, 고객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어떤 존재, 더 못해 보이는 여성이 전화를 받아야 더 신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고객들이 진짜 밑바닥으로 보고 대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일할 땐 다른 거 없고 고객한테 더 넙죽 엎드리죠.

 

고객이 갑질 아닌 갑질을 하긴 하지만 직장에서, 일에 있어서는 업무상으로 차별적인 건 사실 없어요. 여자가 대부분이어서인지, 제가 만족을 하고 살아서 그런지.

 

그냥 딸이라서

 

어릴 때 집안 형편이 좋지는 않았어요. 그렇게 공부를 못한 건 아닌데 이미 아버지가, 오빠가 대학 가야 하니 너는 실업계 고등학교 가는 게 어떠냐 해서 싫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어요. 공부 더 하고 싶은데 하지 말라고 하니까, 내가 선택해서 실업계를 가는 건 괜찮은데 그냥 딸이라서 그래야 한다면 부당하다고 느꼈나 봐요. 그래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내주셨죠.

 

두 살 터울 오빠가 워낙에 비싼 대학교를 다녔어요. 한 학기 등록금이 1천만 원 넘는 학교. 다행히 제가 대학 입학할 때쯤에 오빠가 군대를 가서 제가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죠. 국립대여서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어요. 집안 재정에 많이 도움이 되니깐. 그런데 오빠가 복학할 시즌이 온 거예요. 결국 전 3학년 못 돼서 자퇴했어요. 부모님이 자퇴나 휴학을 강요하진 않았는데 머리가 좀 크니까 집안 사정이 보이는 거예요. 알바하면서 돈을 벌어보니 두 명이 대학 다니는 게 보통 일은 아니겠구나 싶어서. 당시에 또 IMF 시기이기도 했고.

 

그래서 부모님한테는 다음 학기 등록금은 제가 내겠습니다하고 자퇴한 거예요. 제가 딸이라서 감당을 했던 것 같더라고요. 나무를 좋아해서 조경과를 갔어요. 정말 재밌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무나 화분도 잘 죽이고 소질은 없었던 것 같고. 그냥 그때는 그랬어야 했던 것 같아요. 내가 그렇게 해야 부모님도 마음 안 아프고 오빠도 편히 학교 갈 수 있고.

 

병원엔 여성으로서의 삶이 다 있다

 

저희 어머니가 지금 투병 중이세요. 몇 달 휴직하고 간병한 적도 있어요. 긴 병에 장사 없다고 간병이 너무 힘든 거예요. ‘근데 이걸 왜 나만 해? 왜 나만 휴직해?’ 그런 생각하면 안 되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되더라고요.

 

병원에 가 보면 여성으로서의 삶들이 거기 다 있어요. 여자 환자의 보호자도 여자, 남자 환자의 보호자도 여자. 돌봄은 여자의 몫, 부모의 부양이나 돌봄은 자식이 남자든 여자든 다 똑같이 해야 하는데 사회 자체가 이렇게 갈라놓는 것 같아요.

 

병원비가 많이 들어가요. 부모님껜 내가 돈 낼게!” 멋있는 척 말했지만 액수가 커지니까 힘들죠. 오빠한테 말 못하는 내가 문제인 거예요. ‘오빤 나중에 결혼하면 집도 사야 하니까 적금 깨거나 하면 안 되지나도 모르게 이렇게 살고 있더라고요.

 

임신, 출산 눈치 보기

 

여자들만 있어서 그런지 임신, 육아에 대해 굉장히 걱정들이 많으세요. 아이를 가지시려고 하는 분들이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휴직 못하고 그냥 잘렸지만 지금은 할 수 있다, 휴직제도가 있어서 휴직하시면 대체근무자가 오면 된다, 근데 뭐가 문제냐고 말해도 아직까지 그런 고민들을 많이 하세요. 제가 결혼을 안 해서 공감이 부족한 건지?

 

30대 초중반 분들이 임신 계획을 세우고 계세요. 그런데 저한테 팀장님, 저 분 언제 아이 갖는대요?” 물어보세요. 그럴 때가 제일 안타까워요. 임신순번제처럼 약간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요. ‘TV에서나 보던 것을 우리 센터에서 나한테 묻지?’

 

하청일 때는 임신하고 출산할 때 되면 직원들이 대부분 알아서 그만뒀어요. 아주 드물게 출산휴가 사용한 사례가 있긴 했지만. 그때도 분명 본사에 휴직제도가 있었을 텐데 누가 말해주지도, 알아봐 주지도 않으니까 알아서 그냥 포기하는 식으로.

 

지난해에 정규직 전환되고 나서부터는 출산 때 보통 석 달 쉬고 복귀해서 육아기 단축 근무를 많이 해요. 두세 시간씩 일찍 퇴근하는데 그것도 눈치 봐요. 몇 명 안 되는 동료들이 근무하다 보니 미안한 마음에 그런 건 알겠지만 육아휴직은 아예 먼 나라 얘기인 거예요.

 

휴직이 두려워서 휴직 문제 때문에 다른 직원이 언제 임신하는지 묻거나 내가 쉬었을 때 대체근무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국가 차원에서 출산을 장려한다면서 왜 여자들이 이런 고민을 하게끔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청일 때는 몰라서 그랬고 정규직 전환되고 나서는 조건은 갖춰졌는데 여성들 스스로 아직 문화를 충분히 바꾸지 못해서 눈치 보고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초심 잃지 않고 노조로 뭉쳐 목소리 냈으면

 

요새 육아휴직. 남자도 쓸 수 있습니다이런 캠페인도 있잖아요.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던데 여성 직장인들이 당연히 쓸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쓰지 못하게끔 만들어 놓은 게 참 이상해요. 남자들은 쓰면 멋지다고 하고. 여자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밖에 안 되는 거잖아요.

 

지금은 워낙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많고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하지만 교육부터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남성, 여성 차별 두면 안 된다, 같은 존재다, 어릴 때부터 가르쳐주는 게 있었다면 이런 인터뷰도 하지 않았겠죠?

 

노조에도 직장 내에서의 여성 권리를 알려주거나 하는 부서가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려면 누군가가 이런 게 있다, 저런 게 있다 내용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래야 더 신경 쓸 텐데 그렇지 않으면 당장 내 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고.

 

변영주 감독 진짜 좋아하거든요. 그분이 TV 나와서 남자 패널한테 야 너 그거 모르잖아호통칠 때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껴요. 전문 여성이고 잘나서 그러신가 싶고 멋지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되려면, 어쨌든 목소리 내려면 뭘 알아야겠죠.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누구한테 얘기할 수 없을 테니까.

  

나 혼자서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기 때문에 노동자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든 게 노동조합이잖아요. 지금에 안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점점 그렇게 돼가고 있는 것 같아서요. 초반에 우리가 투쟁할 때 왜 모였는지, 우리가 뭘 바꾸고 싶어 했는지 잊지 말았으면 해요. 정규직 전환만이 목표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걸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싶어요. 간혹 노조 탈퇴할까 고민하는 직원도 있는 것 같아요. 예전 투쟁할 때처럼 매일 투쟁하는 삶을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직은 사회가 개인의 목소리를 들어주진 않으니 우리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는 노동조합에 의지해서라도 바꿔보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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