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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번역 I 트로츠키, <통일되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노동자의 우크라이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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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양준석 조회 659회 2022-03-11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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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옮긴이 주  2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전격 나섬으로써 핵심적인 국제 이슈로 부상했다. 1939년 트로츠키가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해 쓴 글은 현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을 정립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트로츠키의 글을 최근 <레프트보이스>가 덧붙인 해설·주와 함께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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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기사

Leon Trotsky: For a United, Free and Independent Workers’ Ukraine!


(레프트보이스 해설) 레온 트로츠키는 1939년에 발표한 이 기사에서 억압받는 우크라이나 인민에 대한 사회주의적 해답을 제시한다. “파시스트 제국주의든 민주주의 제국주의든, 제국주의와 조금도 타협해서는 안 된다! 종교반동주의든 자유평화주의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에게 조금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전위로서 프롤레타리아 당의 완전한 독립성을 사수하자!”

 

트로츠키는 193959<사회주의자의 호소>(Socialist Appeal)에 이 기사를 발표했다.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서로 나눠 갖는 히틀러-스탈린조약에 서명하기 불과 몇 달 전 일이었다. 독일이 서부 폴란드를 침공한 직후 소련이 동부 폴란드를 침공했다. 소련은 이 침공을 폴란드 영토 안에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에 대한 우려를 앞세워 정당화했다. 그러나 소련 안에서 스탈린 정권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민족적 억압을 강화해 오고 있었으며, 결국 우크라이나 대중들은 점점 더 민족적 독립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로츠키는 모든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옹호한 볼셰비키 강령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하면서 기괴한 반공주의 연설을 했다. 푸틴은 레닌이 이끈 정부가 피억압 민족에게 탈퇴할 권리를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푸틴이 지적한 것처럼, 스탈린은 이 정책을 뒤집어 레닌의 정책이 헌법에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러시아 국수주의로 돌아갔다. 이러한 사실들과 연결해서 트로츠키의 이 기사를 읽는 것은 특히 흥미롭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국제주의자가 작성한, 이 뛰어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오늘날 우크라이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제공한다. 트로츠키가 80여 년 전에 썼듯이 제국주의 열강은 우크라이나를 해방하고 보호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지만, 그들의 유일한 의도는 나라를 약탈하고 인민을 착취하는 것일 뿐이다. 진정한 독립은 오직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위한 강령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강령과 직접적이고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

 

트로츠키의 기사는 당시에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몇 달 뒤 그는 제기된 질문에 답하는 두 번째 기사를 발표했는데, 우리는 이 기사도 추천한다.

 

***

 

많은 정부와 많은 사회주의자’, 심지어 공산주의자들조차 잊으려 하거나 역사의 깊숙한 금고 속에 밀쳐두려 했던 우크라이나 문제가 다시 한번 배가된 비중을 갖고 당대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 문제가 악화된 것은 소련과 코민테른의 퇴보, 파시즘의 성공, 그리고 다가오는 또 한번의 제국주의 전쟁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네 개의 주변국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한때 폴란드가 유럽의 운명을 좌우했던 것과 같은 위치에 있다. 차이가 있다면 이제 국제관계가 무한히 더 긴장되고 사태발전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문제는 가까운 장래에 유럽의 운명을 좌우하는 거대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히틀러가 더 큰 우크라이나건설 문제를 그렇게 시끄럽게 제기한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그가 그토록 빠르게 살며시 이 문제를 포기한 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무시해서는 안 되는 질문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관료·노동귀족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제2인터내셔널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완전히 무시했다. 심지어 좌익조차도 필요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뛰어난 지성과 진정으로 혁명적인 정신을 가졌지만, 우크라이나 문제를 소수 지식인의 발명품이라고 선언했다.1

 

레프트보이스 주1: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썼다. “러시아 내부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체코·폴란드·핀란드 민족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는 경제적·정치적·심리적 관계에서 아무런 뿌리도 없는 쁘띠 부르주아 지식인 수십 명의 어리석은 변덕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는 셰우첸코의 반동적인 낭만주의 시를 제외하고는 국가나 정부를 구성한 적도 없고 민족문화도 없었기 때문에 어떤 역사적 전통도 없었다.” <러시아 혁명>, 1918

 

이러한 입장은 폴란드 공산당에도 깊은 각인을 남겼다. 코민테른 폴란드지부의 공식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혁명적 문제라기보다는 장애물로 여겼다. 그래서 끊임없이 기회주의자들은 이 질문을 피하거나, 억누르거나, 묵묵히 넘기거나, 무한정한 미래로 미루려고 한다.

 

볼셰비키당은,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레닌의 지속적인 압력 아래서 점차,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민족자결권, 즉 분리할 권리는 레닌에 의해 폴란드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동등하게 확대되었다. 레닌은 특권적인 민족을 인정하지 않았다. 레닌은 억압받는 민족의 문제를 회피하거나 연기하려는 모든 경향을 대()러시아 우월주의의 징후로 여겼다.2

 

레프트보이스 주2: 예를 들어 레닌은 이렇게 썼다. “민주주의자라면 누구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서 자유롭게 분리할 권리를 부인할 수 없다. 이 권리를 조건 없이 인정해야만 우크라이나인과 대()러시아인의 자유로운 연합, 한 국가 안에서 두 민족의 자발적인 결합을 옹호할 수 있다. 이 권리를 조건 없이 인정해야만 차르가 다스리던 저주받은 과거를, 언어·영토·성격·역사에서 매우 가까운 두 민족이 모든 점에서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를 완전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청산할 수 있다. 저주받은 차르 체제는 대()러시아인을 우크라이나 인민에 대한 사형 집행자로 만들었고, 우크라이나 어린이가 모국어로 말하고 공부하는 것을 금지시킨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을 조장했다. 러시아의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이 진정으로 혁명적이고 진정으로 민주적이고자 한다면, 반드시 과거와 단절해야 한다. 그들 스스로를 위해, 러시아의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 우크라이나 노동자와 농민에게서 형제적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한다. 그런 신뢰를 다시 얻는 것은 자유롭게 분리할 권리를 포함해서 우크라이나의 모든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작은 국가의 존재를 선호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 나라의자본가들과 다른 모든 나라의 자본가들에 맞서는 세계 노동자들의 가장 긴밀한 연합을 지지한다. 그러나 이 결합이 자발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부르주아지를 조금도 잠시도 신뢰하지 않는 러시아 노동자는 이제 우크라이나인들의 분리할 권리를 지지한다. 자신의 우정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면서, 하지만 그들을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에서 동등한 동맹이자 형제로 대우함으로써 그들의 우정을 얻고자 분투하면서.” <우크라이나>, 19176

 

권력을 장악한 후, 옛 차르 러시아로부터 물려받은 수많은 민족 문제의 해결을 둘러싸고 볼셰비키당내에서 심각한 투쟁이 일어났다. 민족 문제 담당 인민위원을 맡았던 스탈린은 변함없이 가장 중앙집중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경향을 드러냈다. 이것은 특히 조지아 문제와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두드러졌다. 이 문제를 다룬 서신들은 아직까지 출판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일부라도 출판하기를 희망하는데,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매우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레닌이 쓴 편지와 제안은 과거 억압받은 민족들에게 가능한 한 동의하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대로 스탈린의 제안과 선언에는 관료적 중앙집중주의 경향이 변함없이 뚜렷했다. “행정적 필요”, 즉 관료의 이해관계를 보장하기 위해 피억압 민족들의 가장 정당한 요구가 쁘띠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표명이라고 선언되었다. 이러한 모든 증상은 빠르게는 1922~23년부터 목격됐다. 이후 사태가 엄청나게 발전해서, 소련 안에서 인민들이 독자적인 민족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어떤 종류든 노골적으로 압살당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에 대한 볼셰비키의 구상

 

과거 볼셰비키당은 소비에트 우크라이나가 강력한 중심축이 되어 우크라이나 인민의 다른 부분들을 단결시켜야 한다고 구상했다. 실제로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는 초기에 민족적 측면에서도 강력한 매력을 발산했으며, 폴란드의 노예였던 서부 우크라이나의 노동자, 농민, 혁명적 지식인을 투쟁으로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테르미도르 반동을 거치며,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지위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태도가 급격히 바뀌었다. 희망이 컸던 만큼 환멸은 더욱 쓰라렸다. 관료집단은 대()러시아 안에서도 인민들을 교살하고 약탈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는 민족적 희망을 학살함으로써 문제가 더욱 심각했다. 어디에도 한계선이 없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더 큰 자유와 독립에 대한 우크라이나 대중의 강력하고 뿌리 깊은 갈망을 살인적으로 일소하기 위해 숙청과 탄압 그리고 모든 종류의 관료적 폭력행위가 저질러졌다. 전체주의적 관료제 아래서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경제단위로서의 행정구역이자 소련의 군사기지가 되었다. 스탈린 관료집단은 셰우첸코의 동상을 세웠지만, 오로지 더 철저하게 우크라이나 인민을 짓누르고 크렘린의 강간범 도당에게 코브자르(셰우첸코의 책 옮긴이)의 말들로 찬가를 부르도록 강요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소련 국경 밖에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에 대한 크렘린의 태도는 오늘날 모든 피억압 민족, 모든 식민지·반식민지에 대한 태도와 같다. 즉 제국주의 정부와의 국제적 결합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하찮은 문제로 취급하는 것이다. 최근 소련공산당 제18차 대회에서 우크라이나 공산주의의 가장 역겨운 배신자들 가운데 하나인 마누일스키는 소련뿐만 아니라 코민테른도 압제자가 모스크바 지배도당의 적이 아닐 때는 언제나 피억압 인민의 해방에 대한 요구를 거부했다고 아주 공공연하게 설명했다. 오늘날 스탈린, 디미트로프, 마누일스키는 인도의 해방을 지지하지만 그것은 일본에 맞선 해방만을 뜻할 뿐 영국에 맞선 해방은 아니다.3

 

레프트보이스 주3: 1930년대 중반, 스탈린이 이끌던 코민테른은 영국과 프랑스 같은 민주적식민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기 위해 모든 반()식민주의 요구를 포기했다.

 

그들은 크렘린궁 관료들에게 당장에는 이익이 될 것으로 보이는 외교협정을 체결하는 대가로 서부 우크라이나를 폴란드에 영원히 양도할 준비가 돼 있다.

 

스탈린과 히틀러 그리고 우크라이나

 

과거에 서부 우크라이나 대중이 크렘린에 대해 가졌던 믿음과 공감은 이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우크라이나에서 최근 벌어진 살인적인 숙청이후, 서방의 누구도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라는 이름 아래 비극이 계속되는 크렘린 통치구역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서부 우크라이나, 부코비나, 카르파티아-우크라이나에 있는 노동자와 농민 대중은 혼란에 빠져 있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가? 이런 상황은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 내부의 지도력을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가장 반동적인 일당들에게 넘겨주고 있는데, 그들은 허구적인 독립을 약속받는 대가로 이편 아니면 저편의 제국주의에 우크라이나 인민을 팔아먹을 길을 찾고 있다. 이 비극적인 혼란 위에서, 히틀러는 우크라이나 문제를 기반으로 대외정책을 펼친다. 한때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스탈린이 아니었다면 (, 독일에서 코민테른의 치명적인 정책이 아니었다면) 히틀러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이제 이렇게 덧붙일 수 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간이 없었다면, 히틀러의 우크라이나 정책은 없었을 것이다.

 

히틀러가 더 큰 우크라이나라는 슬로건을 (최소한 일시적으로라도) 버리게 만든 동기를 여기서 자세히 분석하지는 않겠다. 그 동기는 한편으로는 독일 제국주의의 사기성 정책들의 결합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떨쳐버리지 못할 악령을 불러낸다는 두려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히틀러는 헝가리 도살자들에게 카르파티아-우크라이나를 선물로 주었다. 이것은 모스크바가 공개적으로는 승인하지 않을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추인할 것이라는 믿음 아래 진행됐다. 이것은 마치 히틀러가 스탈린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았다. “만일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을 준비 중이라면, 나는 카르파티아-우크라이나를 내 수중에 넣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스탈린은 소련공산당 제18차 대회에서 서방 민주주의의 중상모략에 맞서 히틀러를 공개적으로 옹호했다. 히틀러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려 한다? 그런 조짐이 없다. 히틀러와 싸운다? 그럴 이유가 조금도 없다. 히틀러가 카르파티아-우크라이나를 헝가리에게 넘겨준 것을, 스탈린은 명백히 평화를 위한 행동으로 해석하고 있다.4

 

레프트보이스 주4: 카르파티아-우크라이나는 1938년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를 멸망시킨 뒤 출현한 독립국이었으나, 몇 달 만에 헝가리에 합병되었다. 스탈린은 이렇게 말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 언론이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에 대해 유난히 소란을 떨었다. 그 나라의 언론인들은 독일군이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를 향해 진격하고 있다고 목이 쉴 때까지 소리쳤다.” <소련공산당 제18차 대회 중앙위원회 활동에 대한 보고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를 위해!

 

이것은 크렘린이 국제정책을 타산하면서 우크라이나 인민의 일부를 아주 하찮게 취급했음을 뜻한다. 4인터내셔널은 남동부·동부 유럽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운명에 있어 우크라이나 문제가 갖는 엄청난 중요성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우크라이나 인민들은, 숫자로는 프랑스 인구와 맞먹고, 최고의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 유달리 풍요로운 영토를 차지하고 있으며, 자신의 생존능력을 입증해 왔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이라는 문제가 전면적으로 제기돼 온 새로운 상황에 부응하는 명확하고 확고한 슬로건이 필요하다. 내 생각에 현재로서는 단 하나의 슬로건이 있을 수 있다: 통일되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노동자·농민의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이 강령은 무엇보다 폴란드·루마니아·헝가리 세 제국주의 열강의 이해관계와 화해할 수 없이 충돌한다. 우크라이나의 해방과 통일이 평화로운 외교수단, 국민투표, 국제연맹의 결정 등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망적인 평화주의자 돌대가리들뿐일 것이다. 물론 한 편의 제국주의에 맞서 다른 편의 제국주의 휘하에 들어감으로써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하는 민족주의자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것은 아니다. 히틀러가 카르파티아-우크라이나를 헝가리에 넘겨주고 그 즉시 헝가리가 적지 않은 우크라이나인들을 학살한 것은 그 모험가들에게 귀중한 교훈을 주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군사력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한, 이편 또는 저편의 승리는 우크라이나 인민의 새로운 분열과 훨씬 더 잔인한 예속을 뜻할 뿐이다. 제국주의 시대에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위한 강령은 프롤레타리아 혁명 강령과 직접적이고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 이 점에 조금이라도 환상을 품는 것은 범죄가 될 것이다.

 

소비에트 헌법은 민족자결권을 인정한다

 

그러나 통일된 우크라이나의 독립은 소련으로부터 소비에트 우크라이나의 분리를 의미할 것이라고 크렘린의 친구들은 합창을 할 것이다. 우리는 답한다. 그게 뭐가 그렇게 끔찍한 일인가? 국경을 열렬히 숭배하는 것은 우리에게 생소한 일이다. 우리는 통일되고 분리 불가능한전체라는 입장을 옹호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소련의 헌법조차 연방을 구성하는 인민들에게 자결권, 즉 분리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크렘린 지배집단조차도 이 원칙을 감히 거부하지 못한다. 물론 그것은 종이 위에만 남아 있다. 우크라이나 독립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려는 가장 작은 시도조차 반역 혐의를 뒤집어쓰고 즉각적인 처형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노동자대중이 대()러시아 대중보다 훨씬 더 크렘린의 통치를 무시무시한 압제로 보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비열한 말 바꾸기이며, 민족의 자유를 추구하는 모든 사상에 대한 무자비한 박해다. 이런 내부 상황 앞에서 서부 우크라이나가 현재 구성된 소련에 자발적으로 합류하는 것은 말조차 꺼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결과적으로, 우크라이나의 통일은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를 스탈린주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문제에서도 보나파르트 도당은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련의 군사적 약화를 의미하지 않는가? 크렘린의 친구들은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우리는 소련의 약화가 보나파르트 독재가 만들어낸 점증하는 원심 경향에 기인한다고 대답한다. 전쟁이 날 경우 지배도당에 대한 대중의 증오는 10월 혁명의 모든 사회적 성과가 붕괴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패배주의적 분위기의 근원은 크렘린에 있다. 반면에 독립된 소비에트 우크라이나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전적으로 추구할 수만 있다면, 소련의 강력한 남서부 요새가 될 것이다. 지금의 보나파르트주의 특권층이 타격받고 뒤집히고 분쇄되고 일소되는 게 빠를수록, 소비에트 공화국의 방어는 더욱 굳건해질 것이며, 그 사회주의적 미래는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제국주의와 모스크바 보나파르트주의에 맞서

 

당연히 독립적인 노동자·농민의 우크라이나는 나중에 소비에트 연방으로 합류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발적으로, 또한 스스로 수용 가능하다고 여기는 조건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소련의 혁명적 재탄생을 전제로 한다. 우크라이나 인민의 진정한 해방은 서방에서 하나의 혁명 또는 일련의 혁명이 일어나는 것, 그래서 소비에트 유럽합중국의 창설로 이어지는 것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독립적인 우크라이나는 이 연방에 동등한 자격으로 가입할 수 있고 또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다. 다음 차례로 유럽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스탈린주의 보나파르트주의의 역겨운 구조물을 지탱하는 돌멩이 하나도 남겨놓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비에트 유럽합중국과 재탄생한 소련의 긴밀한 연합은 필연적일 것이며, 유럽과 아시아 대륙에 무한한 이점을 제공할 것이다. 물론 우크라이나 또한 포함해서. 하지만 이것은 두 번째, 세 번째 순서에 해당하는 문제들이다. 첫 번째 순서에 있는 문제는 한편으로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 모스크바 보나파르트주의에 맞선 투쟁을 통해, 통일되고 독립적인 노동자·농민의 우크라이나를 혁명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민족해방 투쟁에서 잘못된 경로를 걸었던 경험이 특히 많은 나라다. 소부르주아 라다, 스코로파드스키, 페틀류라, 독일 호엔촐레른 왕가와의 동맹”, 영국·프랑스·러시아 3국 협상과의 결합 등 여기서는 모든 것이 시도됐다. 이 모든 실험을 거친 후, 정치적인 좀비가 아니고서야 우크라이나 부르주아지의 어떤 당에게도 민족해방 투쟁의 지도자로서 계속 희망을 걸 수는 없다. 우크라이나 프롤레타리아트만이 본질적으로 혁명적인 민족해방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결을 위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오로지 프롤레타리아트만이 농민 대중과 진정으로 혁명적인 민족적 지식인을 결집시키는 중심이 될 수 있다.

 

지난 제국주의 전쟁 때, 우크라이나인 멜레네프스키와 스코로피스-옐투코프스키는 우크라이나 해방운동을 호엔촐레른 왕가의 루덴도르프 장군 휘하로 배치하려고 시도했다.5

 

레프트보이스 주5: 1918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은 독일 제국주의의 후견 아래 독립적인국가를 건설하려고 시도했다. 루덴도르프는 독일군 최고사령부의 총참모장이었다.

 

그들이 좌파의 언어를 사용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하려 했지만,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단호하게 그들을 몰아냈다. 바로 그게 혁명가들이 앞으로도 계속 행동해야 할 방식이다. 임박한 전쟁은 온갖 종류의 모험가들, 기적을 노리는 자들, 황금 양털을 찾는 자들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특히 민족 문제 주변에서 안주처를 찾으려는 이 신사들에게 노동자운동은 자신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파시스트 제국주의든 민주주의 제국주의든, 제국주의와 조금도 타협해서는 안 된다! 종교반동주의든 자유평화주의든,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에게 조금도 양보해서는 안 된다! “인민전선을 반대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전위로서 프롤레타리아 당의 완전한 독립성을 사수하자!

 

국제적 토론을 위해

 

나는 이것이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개인적인 내 입장을 밝혔다. 우크라이나 문제는 국제적 토론에 붙여져야 한다. 이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는 우크라이나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최대한 귀를 기울일 것이다. 다만 서둘러야 한다. 준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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