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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고 I 미래의 노동권을 얻어내기 위해 현재의 노동자와 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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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성공회대학교 제6대 인권위원회 위원장 조회 14,638회 2022-02-15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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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난 27,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당일 아침 11시에 예정돼있던 노동조합과의 면담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고객센터 민간위탁 입찰공고를 올렸다. 기존 노사합의를 내팽개친 채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겠다는 심산이다. 경악스러웠던 건 이날 사측의 구사대 노릇을 한 건보공단 정규직들의 행태였다. 정규직 직원들은 항의 서한을 전달하려던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텐트를 빼앗는 등 물리적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건보공단 정규직처럼 연대와 단결이라는 민주노조의 정신을 송두리째 팔아치운 자들도 있지만, 인간다운 삶을 향한 노동자투쟁에 연대하는 소중한 청년 동지들도 있다. 앞서 <기고 I 한여름의 인연, 한겨울의 연대> 기사를 작성했던 이훈 동지가 27일 투쟁에 함께하며 느낀 감상을 <가자! 노동해방> 온라인신문에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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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정규직들의 만행은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알에 게시된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2227,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조합은 원주에서 결의대회를 했다. 사측을 향한 여러 요구가 있었지만 가장 근간에 있는 요구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건보공단이 고객센터 노동조합에게 소속기관 정규직으로 전환을 약속한 지 100일이 넘었는데 약속을 지킬 기미가 없었다. 당일 오전 11시엔 공단 대표와 노조 대표가 만나는 회의 자리가 있었는데, 당일 오전 930분쯤 공단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며 만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노동조합과 연대자들은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발언을 했다. 이후 국민건강보험공단 건물로 다가갔다.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건물엔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굳게 잠긴 정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옆문이라도 있는지 갑자기 수백 명의 공단 정규직 직원들이 나타났다. 우리를 지켜보며 서 있었다.

 

우린 건물 앞에서 약식 집회를 했고 퍼포먼스를 위해 1인용 텐트를 공단 건물 앞에 펼치고 있었다. 그러자 공단의 담당자라는 남자가 나타나선 남의 건물에서 나가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나가지 않았다. 여긴 남의 건물이 아니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우린 유일하며 과반인 노동조합과 그에 연대하는 사람들이다. 건물의 문 앞에 잠시 서 있을 권리는 있다. 그러나 정규직 직원들은 곧 우리에게 달려들어 텐트를 뺏기 시작했다. 텐트를 훔치고 찢었다. 저항하는 조합원은 밀치고 멱살을 잡았다. 카메라로 현장을 찍는 연대자에게 다가와서 카메라를 내리치면서 어딜 찍어라고 했다. 텐트를 지키려고 조합원 하나가 텐트 위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사람이 있든 말든 통째로 끌고 갔다. 정규직이 던진 상자에 머리를 맞은 조합원도 있었다.

 

한 차례의 몸싸움, 욕설, 고함이 지나간 뒤에 대치 상황이 되었다. 아까 그 담당자는 어디선가 확성기를 가져와서 300명쯤 되는 직원들에게 명령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가운데에 두고 동그랗게 둘러싸라는 거였다. 명령이 떨어지자, 300명이 동시에 라고 답했다. 우렁찬 답까진 아니었지만 명확하고 확신에 찬 답이었다. 수백 명의 조용한 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동그랗게 가두기 시작했다. 나와 가까운 정규직들에게 진심이에요? 우릴 가두겠다고요?”라고 물으며 그들의 양심에 노크했다. 하지만 오와 열을 갖춰 가두기 시작하면서도 가두긴 뭘 가둬요라는 앞뒤가 맞지 않은 답만 돌아왔다. 3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우린 갇혔고 스크럼을 짜며 찬 바닥에 앉아서 버텼다. 담당자5분을 줄 테니 당장 나가라고 했다. 나가지 않으면 강제 퇴거시키겠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정규직들은 우리 조합원을 위협하거나 소속기관화가 10년은 걸리겠다며 비아냥대고 있었다.

 

우린 항의 서한을 전달하러 온 것뿐이다. 건물에 불을 지르러 온 것도 아니고 기물을 박살 내려고 망치나 톱을 들고 온 것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로비를 점거하려고 온 것도 아니다. 그저 서한을 전달하려는 거였다. ‘강제 퇴거같은 무서운 말을 들으며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갇힐 걸 예상하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내게 왜 예상하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우린 그저 서한을 전달하려던 것뿐이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편지를 주려고 온 사람에게 5분 안에 안 나가면 강제 퇴거하겠다고 말하는 일이 한국에서 흔한 문화는 아니기에, 예상할 수 없었다. 억울했다. 서러웠다. 묻고 싶었다. 왜 이러냐고. 우리는 약속받은 걸 지키라고 하는 것뿐이라고.

 

나는 약속은 지키려고 하는 거지, 어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배웠다. 만약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다면 매우 미안해 하면서 사과하라고 배웠지, 오히려 역정을 내며 전화나 받는 년들이 못 배워서 그렇지라고 말하라곤 배우지 않았다.


이 모든 상황이 끝나고 생각이 많아졌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투쟁하거나 노예가 되는 것 중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득해졌다. 정규직으로 일하면 노동조합을 모르는 척하거나 구사대 노릇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해졌다. ‘노동문제는 청년문제라는 명제가 이렇게나 체감되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언젠가 나는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데, 선택지가 똥이었다. 모든 선택지가 역겹고 더러웠다. 죽기보다도 선택하기 싫다. 심지어 내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래의 노동자는 지금의 노동자보단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사람 대접 받으면서 살고 싶다. 어쩌면 사람답게 노동하고 사람 대접 받고 싶다는 게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욕심이라면 나는 충분히, 넉넉하게 욕심내겠다. 희대의 욕심쟁이가 되겠다. 놀부는 우습고 구광모나 주명건도 혀를 내두르는 욕심쟁이가 되겠다. 미래의 노동권을 얻어내기 위해 현재의 노동자와 연대하겠다. 내 욕심을 채우려면 나의 연대투쟁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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